‘느림의 여유’를 즐기는 낭만 바이커

박소란 시니어조선 선임기자 psr@chosun.com 이 PHOTOGRAPHER 김승완(C.영상미디어)

입력 : 2013.05.28 18:42

THIS MAN | <자전거홀릭> 저자 김준영

10년 차 자전거 마니아 김준영. 왕복 40㎞의 출퇴근길을 자전거와 함께 하는 이 남자는 자전거로 인해 인생의 새로운 묘미를 알았다.

저는 <자전거홀릭>이란 책을 쓴 10년 차 자전거 마니아입니다. 친구 추천으로 엉겁결에 자전거를 탄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은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열혈 ‘자출족’이 됐죠. 자전거를 알기 전과 후의 제 일상은 정말이지 많이 달라졌습니다. 정신없이 살던 삶에 작은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요. 자전거가 주는 ‘느림의 여유’를 저는 사랑합니다.

운동 삼아 한번? 때는 2004년이었어요. 어느 날 친구가 자전거를 한번 타보라고 권하더라고요. 젊은 시절부터 인라인스케이트나 보드 등 여러 운동을 즐긴 터였지만, 어쩐지 자전거에는 도통 관심이 없던 저였는데 말이죠. 친구 얘기 에 ‘그냥 운동 삼아 한번 타볼까’ 하고 시작한 것이 여기까지 온 겁니다. 당시 방배동 집에서 서초동 회사까지의 거리가 워낙 가까워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고, 인터넷 카페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에도 가입했죠. 가끔씩 카페에 글을 올리곤 했는데, 회원들이 관심을 가져주니 슬슬 재미가 붙더라고요. 그 길로 개인 블로그를 개설했죠. 작성한 글이 500개 정도 쌓이니 여러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는 제안을 해오기도 했습니다.

자전거 마니아 김준영

왕복 40㎞ 지금은 일주일에 이틀 정도 자전거로 출퇴근을 합니다. 방배동 집에서 상암동 회사(김준영 씨가 근무하는 팬택은 2007년 서초동에서 상암동으로 사옥을 옮겼다)까지는 왕복 40㎞ 거리이고, 2시간가량 소요되죠. 밤 12시에 일이 끝나도 반드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갑니다. 익숙해지면 힘든 줄 몰라요. 대신 한겨울, 혹은 비나 눈이 올 때는 자전거를 탈 수 없잖아요. 계산해보니 한 해 평균 60일 정도 자전거를 타는 셈이네요.
2004년 이후 저는 자전거를 10번 정도 바꿨고, 지금은 두 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니다. 대만산 로드바이크 자이언트 TCR ADVANCED2와 영국산 미니벨로 브롬톤입니다. 자이언트를 주말 운동에, 브롬톤을 출퇴근에 이용하는 편이죠. 안장이나 핸들바, 타이어 등 소소한 부분을 취향에 맞게 튜닝한 정도입니다. 직접 조립한 자전거를 오랫동안 타기도 했지만, 자전거를 타면 탈수록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돼요. 나만의 특별한 자전거도 의미 있지만, 굳이 치장하지 않은 오리지널 그대로의 자전거에도나름의 멋이 있다고 느낍니다.

자신에게 몰두하기 저는 주로 혼자 자전거를 탑니다.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그룹 라이딩을 하기보다 개인 라이딩을 즐기는 편이죠. 초기에는 동호회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짬을 내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 타는 것이 제 체질에 맞습니다. 그룹 라이딩을 통해 뜻이 맞는 이들과 어울리는 재미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자전거의 본질을 알기 힘들다고 봐요. 자전거를 순수하게 즐긴다는 점에서는 혼자 타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덕분에 제 자신에게 좀 더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죠.

느리고 정직한 기구 자전거를 알고 난 후 저는 많이 달라졌어요. 자전거를 타며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그만큼 여유가 생겼죠. 솔직히 그 전에는 일에 치여 너무 바쁘게만 살았습니다. 제 자신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요. 굳이 자전거여야 하냐고, 자동차나 지하철 안에서도 충분히 여유는 누릴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자전거란 매우 느린 기구예요. 그리고 힘을 쏟는 만큼만 아주 정직하게 움직이죠. ‘느림의 여유’가 자전거에는 있어요. 속도에 취해 주위를 잘 보지 못하는 자동차와는 다르죠. 자연 구석구석을 눈 안에 담을 수 있어요. 어쩌면 느림의 여유를 아는 이들만이 자전거를 즐길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경쟁을 목적으로 자전거를 타는 이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바이커들은 소박하죠. 빨리 달려야겠다고 욕심내지 않아요. 100㎞든, 200㎞든 오늘 목표한 거리를 달려 목적지에 당도했다는 성취감에 큰 의미를 둡니다.

시행착오 최고의 자전거요? 그건 바로 자기 자신과 가장 잘 맞는 자전거가 아닐까요. 어떤 자전거가 나와 맞는 것인지는 금세 알 수 있어요. 관심만 갖는다면요. 물론, 여기서 말한 ‘잘 맞는’은 단순히 편의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 자전거를 타려 하는지를 생각해야 해요. 여행, 혹은 익스트림, 트릭? 처음 산악자전거를 타는 선수의 모습에 반해 MTB를 구매했다고 해서 그 MTB가 자신에게 잘 맞는 자전거라고는 할 수 없어요. 자신의 진짜 목적이 익스트림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것저것 경험해봐야 알죠. 인생을 살면서 갖가지 시행착오를 겪어낸 후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듯, 자전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잊을 수 없는 ‘발맛’ 자전거에 한번쯤 도전해보세요. 자전거만 한 운동이 없죠. 평생을 할 수 있는 스포츠예요. 타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낚시꾼들이 말하는 ‘손맛’처럼, 자전거에는 특유의 ‘발맛’이 있어요(웃음). 삶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과 재미, 여유를 얻을뿐더러 지구 환경에 작은 기여도 할 수 있죠. 물론, 자전거를 타는 데도 원칙은 있어요. 가장 중요한 건 뭐니 뭐니 해도 안전. 안전을 지키는 게 최우선이죠. 그 다음은 가정이나 회사에 폐를 끼치지 않는 것. 그러기 위해선 컨디션을 철저히 관리해야 합니다. 생활에 문제가 된다면 도리어 자전거를 오래 타기가 힘들 테니까요. 그리고 바이커의 한 사람으로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에티켓을 갖췄으면 좋겠다는 것. 우측통행 같은 기본 원칙도 모른 채 자전거를 타는 이들도 있는데 그건 매우 위험한 일이에요.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의식이나 문화 수준도 보다 성숙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전거 일주 앞으로 자전거 문화에 대한 책을 한 권 쓰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지금 당장은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업데이트할 생각이고요. 자전거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글에 담아내고 싶습니다. 또 기회가 된다면 한 보름 정도 짬을 내서 자전거를 타고 전국 일주를 하고 싶어요. 나아가 세계 일주도 할 수 있다면 좋겠죠. 일본이나 유럽 등지를 자전거로 횡단하는 겁니다. 참 멋진 경험이 될 거예요.


김준영(42)은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정보통신을 전공, 현재 팬택 소프트웨어 개발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개인 블로그 ‘주니의 자전거 이야기(http://blog.naver.com/jykim597)'와 네이버 카페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http://cafe.naver.com/bikecity)’에 자전거와 관련한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2009년에는 <자전거홀릭>을 펴내기도 했다. 단지 모양에 이끌려 자전거를 구입하던 생초보에서 자전거 고수가 되기까지 그가 배우고 익힌 것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