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막 30㎞… 알프스 풍광이고 뭐고 죽는 줄 알았다"

한현우 기자 hwhan@chosun.com 이

입력 : 2012.08.11 03:15 | 수정 : 2012.08.12 19:28

[두 40代 회사원, 7박 8일간 알프스 613㎞ 자전거 완주記]
첫날, 모든 게 진흙 범벅- 189개 팀 중 겨우 176위, 남자 샤워실에 여자가…
셋째 날, 눈 앞엔 빙하가- 한여름인데도 기온 영하로
마지막 날, 폭우 속에 완주- 둘이 손잡고 122등 골인…2000m 넘는 산 17개 돌파

두 40대 직장인이 7박 8일간 알프스 산맥 613㎞를 자전거로 달리는 '트랜스 알프스' 대회를 한 번도 컷오프(cut―off·제한시간)에 걸리지 않고 완주했다. LS전선 박상운(45) 총무팀장과 최해운(43) 법무팀장이 그 주인공으로, 이들은 10년 전 같은 대회를 동양인 최초로 완주한 구자열 LS전선 회장의 뒤를 이었다. 이들의 완주는 2002년 구 회장 일행 4명과 2007년 완주한 3인에 이어 세 번째 도전이다. 이번 대회엔 이들 두 사람 외에 부산MTB 회원 4명이 역시 완주했다.

이 대회 올해 코스는 7월 14일 독일 남부 오버라머가우에서 출발, 오스트리아와 스위스를 거쳐 21일 이탈리아의 리바 델 가르다까지 이어졌다. 2000m 넘는 산이 17개에 달했고, 가장 높은 산은 2737m였다. 특히 6일째 만난 코스엔 2300m 봉우리에서 해발 500m까지 단숨에 내려오는 '무시무시한 다운힐'과, 다시 2100m까지 한 번에 치고 올라가야 하는 '최악의 업힐'이 포함돼 있었다. 두 사람의 완주기를 날짜별로 정리했다.

독일에서 이탈리아까지 뻗은 알프스 산맥을 자전거로 넘는 8일간의 레이스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과의 격렬한 투쟁이었다. 왼쪽부터 두 바퀴에 의지해 알프스 613㎞를 완주한 최해운·박상운씨./박상운씨 제공
독일에서 이탈리아까지 뻗은 알프스 산맥을 자전거로 넘는 8일간의 레이스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과의 격렬한 투쟁이었다. 왼쪽부터 두 바퀴에 의지해 알프스 613㎞를 완주한 최해운·박상운씨./박상운씨 제공
◇첫날(14일)

온종일 비가 쏟아져 모든 게 진흙 범벅이 됐다. 첫날부터 자전거를 내동댕이치고 싶을 만큼 처절하게 체력의 한계를 느꼈다. 우리 두 명은 189개 팀 중 176위를 했다. 캠프에 도착해 파스타 파티(국수를 주는 저녁식사)에서 한참을 줄 섰다가 저녁을 먹었다. 여자 한 명이 남자 샤워실에 와서 힐끗 보더니 들어와서 샤워를 했다. 엄청난 문화 충격을 받았다.

◇둘째 날(15일)

어제 결과 때문에 맨 마지막 출발조인 D조에 배정됐다. 75세 생일 기념으로 왔다는 캐나다 할아버지가 같은 조에 있었다. 싱글 트레일(자전거 한 대만 갈 수 있는 좁은 길)에서의 다운힐은 비가 와서 무척 위험했다. 한 사람이 낭떠러지로 굴렀는데 다행히 5m 정도 구르다 나뭇가지를 잡았다. 자전거는 30m 이상 날아갔다. 후회는 소용없다. 우리가 그렇게 오고 싶어 환장해서 온 것이고, 어쨌든 페달을 밟아 앞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결과는 132위로 어제보다 나아졌다.

◇셋째 날(16일)

빨래가 마르지 않아 젖은 옷을 입고 출발. 출발하자마자 2700m가 넘는 산으로 15㎞가 넘는 업힐 구간이 있었다. 바람에 간간이 눈발이 날렸고 빙하가 장관을 이뤘다. 한여름인데도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다. 알프스에 와보지 않고 자전거 업힐과 다운힐을 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적은 159위. 다행히 햇볕이 나서 옷을 말릴 수 있었다.

◇넷째 날(17일)

작은 산(2000m급) 두 개를 넘는 코스였다. 이제 고산적응도 된 듯하고 끝없는 업힐의 고통도 익숙해진 것 같다. 이제야 알프스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싱글 트레일은 미끄럽고 시멘트로 포장된 다운힐은 급경사인데 브레이크가 견뎌주는 게 신기했다. 레이스를 끝낼 때 주최 측에서 '코리아'를 외쳐줘 힘이 났다. 성적은 139위.

◇다섯째 날(18일)

자전거 한 대가 간신히 가는 길 밑으로는 500m는 됨직한 낭떠러지다. 난간도 없어 자칫 한눈팔면 절벽으로 떨어진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우리 자전거 중 한 대의 타이어가 펑크나 시간이 약간 지체됐다. 137위로 골인. 부산팀 숙소로 초대돼 밥과 김치, 라면, 깻잎으로 황홀한 만찬을 했다. 정말 맛있었고 행복했다.

◇여섯째 날(19일)

가장 힘든 구간이 있는 날이다. 2300m에서 500m까지 끝없는 다운힐이 이어졌다. 너무 긴장되고 힘들어서 차라리 낭떠러지로 돌진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마침내 급식 지점에 도착해보니 물통이 기압 차 때문에 찌그러져 있었다. 다시 2100m까지 올라가는 코스가 이어졌다. 무려 30㎞나 업힐이 계속됐다. 알프스의 풍광이고 뭐고 눈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126위. 샤워를 하러 가니 여자 혼자 있었다. 이번엔 여자가 먼저 우리에게 "들어와서 샤워하라"고 했다.

◇일곱째 날(20일)

끝없이 이어지는 업힐이 눈앞에 펼쳐져 있어 자전거 행렬이 용이 지그재그 승천하는 것 같았다. 폭이 50㎝ 정도밖에 되지 않는 싱글 트레일에서는 산 쪽으로 자전거를 바짝 붙이다 보니 페달이 가끔 길 턱에 걸려 아찔했다. 독일 자전거 잡지에서 우리 팀을 인터뷰해 갔다. 동양인이어서인가, 꼴찌에서 헤매고 있기 때문인가. 이날 성적은 103위.

◇마지막 날(21일)

마지막 코스는 축제 분위기라더니 폭우 속에 기온은 떨어지고 온몸은 진흙투성이에 거지도 이런 상거지가 없었다.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손과 발이 마비돼 죽을 것만 같았다. 거의 마지막에 자전거를 끌어야만 하는 언덕이 나온 뒤 미끄러운 다운힐. 마지막 골인할 때는 둘이 손을 잡고 골인했다. 이날 성적은 93위, 전체 성적은 122등이었다. 'Finisher(완주자)'라고 쓰인 메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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