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야마구치현 오시마(大島) 일주

바이크조선

입력 : 2014.09.30 13:56 | 수정 : 2014.10.07 15:39

일본의 지중해, 세토내해의 빛나는 보석


	아름다운 세토내해의 해안길. 맑은 날은 더욱 깨끗하고 강렬한 풍경으로 변모한다
아름다운 세토내해의 해안길. 맑은 날은 더욱 깨끗하고 강렬한 풍경으로 변모한다

세토내해(瀨戶內海)는 일본의 주요 섬들에 둘러싸인 일종의 지중해다. 폭 40~50㎞, 길이는 400㎞가 넘는다. 세토내해의 서단에 자리한 야마구치현 오시마(大島)는 보석처럼 섬들이 흩뿌려진 다도해에 둘러 싸여 있고, 해안 경관이 아름다워 일본 굴지의 자전거코스로 손꼽힌다. 이 곳을 중심으로 올해 11월 9일 자전거 투어링 이벤트인 ‘서던세토 롱라이드’(Southern Seto Long Rode) 대회가 열린다. 이 아름다운 바닷길을 미리 답사해 보았다


부관페리는 상념의 온상이다. 부산과 시모노세키(下關)을 연결하는 부관페리는 일제시대에는 ‘관부(關釜) 연락선’으로 불렸다. 침략과 수탈의 첨병이기도 했지만, 숱한 만남과 이별이 횡행한 국제여객선의 애환이 절절이 스며있어, 한편은 추억이고 역사이며 때로는 낭만이다.


	오시마 중심부의 타카야마(618m) 정상에서 동쪽으로 본 파노라마(야나이시 상공회의소 제공 사진)
오시마 중심부의 타카야마(618m) 정상에서 동쪽으로 본 파노라마(야나이시 상공회의소 제공 사진)

세월은 흘러 배는 바뀌었어도 부관페리는 비련의 연인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 몸을 던진 윤심덕의 절망이 깃들어 있고,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애절한 절규도 갑판 어디선가 메아리친다. 

일제는 1905년 1월 경부선 열차를 개통하면서 그해 9월 경부선과 연계 교통망으로 관부연락선을 운항하기 시작했다. 관부연락선은 그때부터 일본과 부산~서울을 거쳐 대륙으로 진출하는 연결고리였던 것이다. 해방 후 한동안 뱃길은 끊어졌다가 1970년부터 재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부관페리는 한국 선적의 성희 호와 일본 선적의 하마유 호가 격일로 교차 운행한다. 배는 크기와 구조가 같은 쌍둥이 선이다. 부산~시모노세키는 직선으로 215㎞. 뱃길로 11시간 정도 걸린다. 


현해탄은 짧고 잔잔하여라 

다시 부관페리에 오른다. 부산하고 시끌벅적한 관광객들로 들썩이는 오늘날의 부관페리는 한마디로 국제 여객선일 뿐이다. 승객의 7할 이상이 한국인이고, 로비의 자유이용 테이블은 모두 식사와 음주로 떠들썩한 한국인들 차지다. 일본인 승객은 어디 숨었는지 보기도 힘들다.

휘황한 조명으로 물든 부산항대교를 지나 오륙도를 벗어나면 1만6천톤의 거대한 하마유(‘문주란’의 뜻) 호는 현해탄의 검은 물빛 위로 천천히 스며든다.

현해탄은 거친 물결이라고 했지만 밤새 물결은 너무나 잔잔해서 숙면을 취했다. ‘세월호’의 잔상이 아직도 선명하건만 비슷한 형태의 배에서 잠이 잘 오다니, 아이러니다. 하지만 승선 직후에는 나도 모르게 구명조끼와 비상탈출로, 구명정 결박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부관페리 일본 선적 배인 하마유 호가 시모노세키항에 접안하고 있다. 항구를 내려다보는 유메타워(153m)가 우뚝하다
부관페리 일본 선적 배인 하마유 호가 시모노세키항에 접안하고 있다. 항구를 내려다보는 유메타워(153m)가 우뚝하다

새벽녘, 어스름한 여명에 눈을 떠보니 선창밖으로 벌써 큐슈 지역이 보인다. 

이번 일본행은 시모노세키가 속한 야마구치현(山口縣) 동쪽, 세토내해((瀨戶內海)에 떠 있는 오시마(大島) 일대에서 11월 9일 열리는 ‘서던세토 롱라이드’(Southern Seto Long Rode) 대회 코스를 답사하기 위해서다. 일본에서는 비경쟁 장거리 투어링인 ‘롱라이드’가 대유행이다.

서던세토는 ‘남쪽의 세토’라는 뜻으로, 대회가 열리는 야나이(柳井) 시와 오시마가 세토내해의 남단에 위치해서 붙인 이름이다. 코스가 지나는 여러 지역과 기관이 동참해서 별도의 대회실행위원회를 구성해 주최측을 이루지만, 실질적으로는 야나이상공회의소와 일본 최대의 여행사인 JTB가 진행을 맡는다. 취재팀은 나와 이윤기 이사 두 사람으로, JTB의 의뢰를 받아 대회의 해외 마케팅을 맡고 있는 오사카 소재 타비피아여행사의 초대를 받았다. 타비피아의 전민수 사장은 싹싹하고 기운 넘치는 여걸 타입의 재일교포여서 반가웠다.


	‘서던세토 롱라이드’ 코스의 출발점인 ‘야나이 웰니스파크’. 일종의 시민체육공원이다<b>(왼쪽)</b> / 대회의 실질적인 주최자인 후지마 이사오 야나이 상공회의소 회장<b>(오른쪽)</b>
‘서던세토 롱라이드’ 코스의 출발점인 ‘야나이 웰니스파크’. 일종의 시민체육공원이다(왼쪽) / 대회의 실질적인 주최자인 후지마 이사오 야나이 상공회의소 회장(오른쪽)

“설마 한국인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아침 8시, 시모노세키 부두에 내려 여객청사에서 잠시 기다렸다. 전민수 대표가 렌터카를 빌려 오느라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미리 알려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맴돌던 중년의 일본 신사가 한참 만에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혹시 한국의 자전거 잡지사에서 오신 분 맞으신지요? 야마구치 오시마 취재하러 오신…”

그렇다고 하니 이분은 파안대소를 한다. 대회의 실무책임자이기도 한 JTB여행사의 타무라 히데아키(田村秀昭) 국장으로, 설명을 듣고는 나도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는 분명히 한국인 남성 두 명이 온다고 들어서 여객청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우리를 찾았는데, 아무래도 이윤기 이사의 외모가 유럽인 같아 30분 동안이나 다른 곳을 배회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청사에 남은 중년남성은 우리뿐이어서 혹시나 하고 말을 걸었다는 것이다.

“한국인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정말 본토 한국인 맞나요?”

이 이사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네, 맞습니다. 토종 한국인입니다.”하며 인사를 하자 한층 더 놀라는 모습이다. 하기야 긴 장발에 텁수룩한 수염, 서구적인 이목구비의 이 이사와 다니다보면 이런 에피소드가 적지 않다. 국내에서도 가끔 “헬로!” 인사를 받는다.


	오시마쪽 이노야마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오시마대교(야나이 상공회의소 제공 사진)
오시마쪽 이노야마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오시마대교(야나이 상공회의소 제공 사진)

	맑은 날은 에메랄드 빛 바다가 곳곳에 드러난다
맑은 날은 에메랄드 빛 바다가 곳곳에 드러난다

시모노세키에서 야나이까지는 145㎞. 이번 대회는 야나이 시와 오시마 정(町) 지역을 주무대로 하고, 출발과 골인지점이 야나이에 있어 야나이상공회의소가 사실상의 주최자다. 먼저 야나이로 가서 후지마 이사오(藤麻 功) 상공회의소 회장(현지에서는 회두-會頭라고 함)을 만났다. 그는 친절하게도 자신이 운영하는 웨딩홀의 식당에서 후한 점심을 대접해 주었다. 우리나이로 85세인 후지마 회장은 대단히 건강해 보였는데, 비결을 묻자 “잠”이라고 즉답했다. 그 나이에도 스포츠카인 새하얀 마쓰다 로드스터(해외에서는 ‘미아타’로 알려짐)를 직접 운전하고 다닌다. 그는 “오시마는 해안 경치가 정말 아름답다”면서 자전거 타기에는 최고의 자연조건이라고 자랑했다.


일주 150㎞, 환상의 바닷길 


	오시마 해안도로는 내내 경치가 탁 트인다
오시마 해안도로는 내내 경치가 탁 트인다

	1943년 2차 대전 당시 사고로 3㎞ 앞바다에서 침몰한 전함 무츠(陸奧) 호의 잔해. 3만9천130톤의 거함으로 승조원 1121명이 사망해 해변에 기념관을 만들어 놓았다
1943년 2차 대전 당시 사고로 3㎞ 앞바다에서 침몰한 전함 무츠(陸奧) 호의 잔해. 3만9천130톤의 거함으로 승조원 1121명이 사망해 해변에 기념관을 만들어 놓았다

코스의 출발점은 야나이 시 북서쪽 언덕 위에 자리한 ‘야나이 웰니스파크(wellness park).’ 우리식으로 하면 체육공원쯤 되겠다. 축구장, 수영장, 온천 등이 갖춰진 주민 복지시설이다. 운동장이 널찍해 대회 정원 1800명은 거뜬히 수용할 수 있어 보인다.

코스는 야니이 웰니스파크를 출발해 동쪽으로 잠시 내륙을 거쳤다가 오시마로 진입해서 섬을 일주한다. 그 다음 야나이 남부로 돌출한 무로츠(室津) 반도를 돌아 출발지로 골인한다. 거리는 길지만 고개는 높이 100m 남짓한 곳만 4~5개 정도여서 코스는 전반적으로 무난한 편이다. 도중에 4곳의 보급소가 마련되어 간식과 중식, 식수를 제공한다.

출발 후 동쪽으로 향하는데, 149번과 151번 도로를 지나는 구간은 전원풍경과 산간지대가 어울린 내륙지방이다. 지나칠 정도로 차분하고 정갈한 일본의 시골 풍경을 조용히 감상할 수 있는 구간이다. 대신 110m 정도의 고개를 넘어야 한다.

산간지대를 벗어나면 갑자기 바다가 펼쳐지고 그림 같은 오시마대교가 걸쳐있다. 우리의 다도해처럼 세토내해는 수많은 섬들이 흩뿌려져 있는 섬들의 보고이기도 하다.


	오렌지로드에 들어서면서 돌아본 유우(油宇) 항과 세토내해<b>(왼쪽)</b> / 바다를 향한 이츠쿠시마(嚴島) 신사의 도리이(카타조에가하마 해수욕장 남쪽)<b>(오른쪽)</b>
오렌지로드에 들어서면서 돌아본 유우(油宇) 항과 세토내해(왼쪽) / 바다를 향한 이츠쿠시마(嚴島) 신사의 도리이(카타조에가하마 해수욕장 남쪽)(오른쪽)

길이 1020m의 오시마대교를 건너면 코스의 백미인 오시마 일주가 시작된다. 좌측통행이라 자동차에 방해받지 않고 바다를 쉽게 볼 수 있도록 시계방향으로 일주한다. 그런데 오시마는 이름이 여러 가지다. 본래 이름은 야시로지마(屋代島)인데, 행정구역명이 스오오시마쵸(周防大島町)여서 줄여서 오시마라고 부른다. 스오(周防)는 이 지역의 에도시대 명칭이다. 나중에 일행을 도와준 JTB의 아리다 요시타카(有田義隆) 과장은 내가 일본어는 음독과 훈독이 뒤섞여 한자 읽기가 너무 어렵다고 하자, 일본인인 자신도 지명과 인명을 읽기가 쉽지 않다면서 특히 섬 이름이 어렵다고 말했다. 일본은 섬이 7천개나 되는 섬 천국으로, 자국민도 이름을 읽기 어려우면 어떡하나 싶었다. 오래 전 섬에 정착한 원주민이 붙인 이름을 한자화하면서 체계 없이 뒤죽박죽이 된 것 같다.

437번 도로가 지나는 오시마 북쪽 해변은 흐리고 때때로 비까지 내리지만 질투가 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궂은 날에도 이렇게 놀라운데 맑은 날은 얼마나 멋질까. 타무라 국장은 맑은 날은 에메랄드 빛 바다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섬의 동단에 있는 이호다(伊保田) 항에서 코스는 산으로 올라선다. 해발 100m 남짓한 산기슭을 따라난 이 길은 해안도로와 별도로 ‘오렌지로드’라고 불리는데, 난대림 숲이 울창하고 가끔씩 시원한 조망이 트이는 멋진 스카이라인이다. 산속을 지나는 오렌지로드는 일행이 묵은 선샤인 사잔세토 호텔이 있는 카타조에가하마 해수욕장에서 해변으로 내려서면서 끝난다. 오렌지로드 구간은 약 10㎞.

취재팀은 비 때문에 북부 해안은 차로 돌아보고, 오렌지로드 직전부터 카타조에가마하마 해수욕장을 거쳐 잠시 라이딩을 해보았다. 주최측이 마련해준 자전거는 메리다와 캐논데일의 초중급 로드바이크. 우리 키에 맞춰 사이즈까지 배려한 세심함이 놀랍다.


	오시마 남쪽의 오키카무로 섬과 오키카무로 대교를 배경으로
오시마 남쪽의 오키카무로 섬과 오키카무로 대교를 배경으로

	조선통신사가 거쳐간 카미노세키 해협(야나이 상공회의소 제공 사진)
조선통신사가 거쳐간 카미노세키 해협(야나이 상공회의소 제공 사진)

카타조에가하마에서 오시마대교까지 오시마의 남부해안은 숨 돌릴 틈 없는 절경의 연속이다. 울릉도에 비견할 만큼 길은 입체적이고, 거대한 호수 같은 내해에 떠있는 섬들은 구름과 안개를 잡았다 흩었다 하면서 몽환경을 연출한다. 풍경을 감상하고, 감탄에 겨워 사진 찍는 데만 시간이 훌쩍 흐르니, 10시간 제한시간에 150㎞ 완주하기도 빠듯하겠다. 


가야와 백제, 조선통신사의 흔적     

이제 오시마 서쪽의 무로츠반도로 진입한다. 반도의 남단에는 카미노세키(上關)란 좁은 해협이 관문을 이룬다. 이 지명을 보고 왜 시모노세키가 하관(下關)인지를 깨달았다. 옛날 좁은 해협을 관문으로 쓰면서 교토와 도쿄가 가까운 이곳이 상관이 되고, 먼 시모노세키는 하관이 된 것이다.


	카미노세키의 향토사학자들이 조선통신사의 유래를 설명해주고 있다<b>(왼쪽)</b> / 조선통신사 자료관에 보존된 조선통신사 행렬도. 그림 뒤편에 카미노세키의 객관 건물이 보인다<b>(오른쪽)</b>
카미노세키의 향토사학자들이 조선통신사의 유래를 설명해주고 있다(왼쪽) / 조선통신사 자료관에 보존된 조선통신사 행렬도. 그림 뒤편에 카미노세키의 객관 건물이 보인다(오른쪽)

이 상관, 카미노세키에는 조선통신사의 유적이 있다. 우리에게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역사의 단편이지만 에도시대 일본에서 조선통신사는 대단한 의미가 있었다. 1429년 최초의 통신사가 파견되었지만 일반적으로는 임진왜란 이후 도쿠가와 막부와의 선린관계 속에서 이뤄진 통신사를 지칭한다. 도쿠가와 막부때만 해도 1607년에서 1811년까지 200년 간 12번 통신사가 파견됐다. 조선통신사 행렬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해서, 일행이 400~500명에 달했고, 이들을 접대하느라 일본은 국가 재정이 압박당할 정도였다. 부산을 떠난 조선통신사는 시모노세키를 지나 이 가미노세키를 거쳐 오사카에 상륙, 이후 도쿄(에도)까지 육로로 이동했다. 통신사의 왕래기간만 6개월~1년이 걸렸다니 일본으로서는 엄청난 손님맞이 이벤트였을 것이다.


	조선통신사 자료관으로 쓰이는 시카이로(四階樓)는 1879년 지어진 일본식과 양식이 복합된 건물로,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b>(왼쪽)</b> / 야마구치현에서 가장 큰 시라토리 고분은 숲에 묻혀 방치된 상태이고, 봉분 위에는 신사가 들어서 있다<b>(오른쪽)</b>
조선통신사 자료관으로 쓰이는 시카이로(四階樓)는 1879년 지어진 일본식과 양식이 복합된 건물로,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왼쪽) / 야마구치현에서 가장 큰 시라토리 고분은 숲에 묻혀 방치된 상태이고, 봉분 위에는 신사가 들어서 있다(오른쪽)

카미노세키는 조선통신사가 잠시 묵어간 곳으로, 조선통신사만을 위해 객사 건물을 따로 지을 정도로 엄청난 투자를 했던 흔적이다. 객사 설계도를 보면, 통신사의 서열별로 머무는 장소, 동선 등이 면밀하게 표기되어 있어 당시도 일본인 특유의 치밀하고 섬세한 문화가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당시의 객사 건물은 모두 사라졌으나 경찰서 역할을 했던 고반쇼(御番所) 건물과 석축, 객사 부지는 아직도 남아 있다. 지금은 작은 어촌에 불과한 카미노세키지만 아담한 박물관까지 만들어 조선통신사의 흔적을 보존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일행을 안내해준 현지의 향토사학자들로, 일본 전국적으로 ‘조선통신사관계 지역사연구회’라는 역사연구 모임까지 결성되어 있는 사실이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동네 아저씨와 아주머니 같은데, 수백년 전 조선통신사의 일거수일투족을 마치 며칠 전 본 것처럼 실감나게 설명해 준다. 실로 놀라운 기록과 보존 정신. 일본의 저력 중 하나를 여기서도 본다.

카미노세키는 올해 대회에는 코스에서 빠졌지만 내년에는 한국인 참가자를 위해 코스에 넣을 계획이라고 타무라 국장이 말했다.


	진가야마 고분의 원형분 정상에 있는 석관과 발굴 두개골 사진<b>(왼쪽)</b> / 두개골을 바탕으로 복원한 진가야마 고분의 주인공 모습. 높이 6.3m의 거대한 석상으로 빚어 놓았다<b>(오른쪽)</b>
진가야마 고분의 원형분 정상에 있는 석관과 발굴 두개골 사진(왼쪽) / 두개골을 바탕으로 복원한 진가야마 고분의 주인공 모습. 높이 6.3m의 거대한 석상으로 빚어 놓았다(오른쪽)

무로츠반도를 서쪽으로 북상하면 이번에는 바닷가에 범상치 않은 고분 두 기나 나온다. 시라토리(白鳥) 고분과 진가야마(神花山) 고분이다. 둘 다 길이가 120m에 달하는 거대한 전방후원분이다. 전방후원분은 일본 특유의 고분형태로, 앞쪽은 각지고 뒤쪽은 둥근 봉분이 일체화되어 있는 형태다.

우리나라도 호남지역에서 일부 발견된다. 전방후원분은 4~7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규모로 보아 왕릉급으로 추정되지만 주인공이 누구인지,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든 것이 베일에 가린 일본 고대사의 미스터리이기도 하다. 가장 큰 오사카의 닌토쿠(仁德) 천황릉은 길이가 무려 468m에 달한다. 그런데 닌토쿠 천황릉에서 나온 환두대도와 청동거울은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것과 매우 흡사하다. 특히 청동거울은 NHK조차 같은 거푸집에서 찍어냈다고 발표할 정도다. 백제와 고대 일본의 관계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 관계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수준이었음이 분명하다. 


	진가야마 고분 바로 옆에 있는 백제부신사
진가야마 고분 바로 옆에 있는 백제부신사

	야나이 시내에는 19세기 에도시대 말의 전통건물이 그대로 보존된 마을이 있다. 하얀 벽을 사용해서 시라카배(白壁) 마을이라고 한다
야나이 시내에는 19세기 에도시대 말의 전통건물이 그대로 보존된 마을이 있다. 하얀 벽을 사용해서 시라카배(白壁) 마을이라고 한다

시라토리 고분은 거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그냥 동네 뒷산처럼 숲에 묻혀 봉분 형태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방치되어 있다. 하지만 출토된 파형동기와 청동거울은 가야, 백제와의 친연성을 보여준다. 

시라토리 고분에서 북쪽으로 3㎞ 가량 떨어진 진가야마고분은 특이하게 바닷가 언덕 위에 있는데, 두개골이 발굴되어 얼굴을 복원해 거대한 동상까지 세워놓았다. 피장자는 20대 중반 나이에 미모의 여성으로 당시 이 지역을 지배한 수장이었을 것이다. 전방후원분에서 여성 인골이 발굴된 것은 매우 드물고 그것도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라니 부쩍 호기심이 인다.


	시라카배 마을에서 기념촬영한 일행. 왼쪽부터 이윤기 이사, 타무라 히데아키 JTB 국장, 전민수 타비피아 대표
시라카배 마을에서 기념촬영한 일행. 왼쪽부터 이윤기 이사, 타무라 히데아키 JTB 국장, 전민수 타비피아 대표

	취재팀이 묵은 카타조에가하마 해수욕장의 선샤인 사잔세토 호텔. 하와이풍의 아름답고 고급스런 리조트다(야나이 상공회의소 제공 사진)
취재팀이 묵은 카타조에가하마 해수욕장의 선샤인 사잔세토 호텔. 하와이풍의 아름답고 고급스런 리조트다(야나이 상공회의소 제공 사진)

그런데 이 진가야마 고분에서 600m 떨어진 바닷가 작은 섬에 놀랍게도 백제부신사(百濟部神社)가 있다. 일본의 신사는 대개 남향을 하고 있고, 신사 입구를 알리는 도리이(鳥居)도 남향을 하는데, 유독 이 백제부신사는 백제 쪽인 서향을 하고 있다. 신사에서 모신 신은 바다를 지키는 수호신이라는 정도의 설명뿐이지만, 백제 도래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전방후원분도 대개 남북으로 축조되지만 진가야마고분은 신사와 마찬가지로 동서 방향이다. 순간적으로 무덤의 주인은 백제에서 건너온 왕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한국팀이 참가하면 묵게 될 타치바나 윈드파크. 숙소와 실내 체육관을 함께 갖추고 있다
한국팀이 참가하면 묵게 될 타치바나 윈드파크. 숙소와 실내 체육관을 함께 갖추고 있다

진가야마고분 바로 옆에는 2차 대전 말기, 전세가 불리해진 일본군이 최후 방어책으로 도입한 자폭공격 전투기 카미카제(神風)와 유사한 인간어뢰 카이텐(回天)의 훈련기지가 있었다. 지금은 작은 기념비와 카이텐의 모형만이 당시를 말해줄 뿐이다.     


	타치바나 윈드파크의 일본식 방<b>(왼쪽)</b> / 세토내해의 조개요리(야나이 상공회의소 제공 사진)<b>(오른쪽)</b>
타치바나 윈드파크의 일본식 방(왼쪽) / 세토내해의 조개요리(야나이 상공회의소 제공 사진)(오른쪽)

	야나이는 밀감이 유명해서 밀감전골 요리도 있다(야나이 상공회의소 제공 사진)
야나이는 밀감이 유명해서 밀감전골 요리도 있다(야나이 상공회의소 제공 사진)

진가야먀고분을 지나면 미나미슈호(南周防) 대교가 우아한 만곡을 그리며 만을 넘는다. 이제 골인지점까지는 약 10㎞. 전원지대와 크고 작은 마을을 지나면 다시 야나이 시로 진입하면서 150㎞의 대장정이 끝난다.

기막힌 세토내해의 절경은 물론,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도 너무 많아 하루에 완주하기에는 참으로 아쉽겠다.  

서던세토 롱라이드 www.southernseto-longride.jp


	일본 야마구치현 오시마(大島) 일주

글·사진 김병훈(자전거생활 발행인)
모델 이윤기(자전거생활 여행사업부 이사)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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