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바퀴 굴리며 봄 바다로 풍덩!”

글·김기환 차장 이 사진·허재성 기자 이

입력 : 2012.04.05 14:51

트레일러에 짐 싣고 즐기는 자은도 자전거 여행

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푸릇푸릇한 마늘밭 옆을 달리고 있다.
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푸릇푸릇한 마늘밭 옆을 달리고 있다.

한반도의 봄은 남쪽 바다부터 시작된다. 중부지방에 찬바람이 몰아쳐도 남해의 섬들은 비교적 기후가 따스한 편이다. 위도가 낮아 대륙고기압의 영향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봄도 빨리 찾아온다. 이미 3월이면 꽃과 푸른 싹이 돋아나는 들판을 만날 수도 있다. 남쪽 바다의 섬들은 이른 봄 여행지로 최적의 입지를 갖춘 곳이다.

섬은 느긋하게 자전거 투어를 즐기기 좋은 장소다. 바다로 단절된 교통의 공백이 오히려 장점으로 부각되기 때문이다. 배를 타고 들어가는 대부부의 섬은 차량 통행이 뜸한 편이다. 배가 드나드는 시간만 피하면 거의 대부분 도로가 비어 있기 마련이다. 그곳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느긋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자전거 여행의 장점은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널 때도 차량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섬 구석구석을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차비가 전혀 들지 않는다. 물론 페달을 돌려야 바퀴가 돌아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체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속도 경쟁을 피하고 여유를 가진다면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이 자전거 투어다.

섬에서 자전거 투어를 하며 야영을 즐기려면 아무래도 짐이 많아진다. 텐트와 침낭 등 야영장비는 물론, 옷과 식량, 취사구 등 어느 하나 빠질 수 없는 물건들이다. 많은 짐을 수송하려면 자전거에 부착하는 가방이나 전용 트레일러를 사용하는 것이 편하다. 이번 투어에는 많은 짐을 한꺼번에 실을 수 있는 트레일러를 이용해 수고를 덜 수 있었다.

곧게 뻗은 자은도의 도로에서 속도를 내고 있는 임연택씨.
곧게 뻗은 자은도의 도로에서 속도를 내고 있는 임연택씨.

네 개의 섬이 다리로 연결
압해도 송공선착장에서 카페리에 올랐다. 섬으로 가는 배를 타는 순간 본격적인 자전거 여행이 시작됐다. 귓전을 맴도는 바람은 차갑지만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마음이 들떴다. 우리가 가야 할 섬에 넘어야 할 고갯마루가 얼마나 많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어디론가 떠난다는 자체가 즐거웠다. 잔뜩 기대를 안고 바다를 건넜다.

이번 달에 자전거 투어를 위해 찾아간 곳은 목포 앞바다에 있는 자은도다. 전남 신안군의 나주군도(羅州群島)에 있는 섬으로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자랑인 곳이다. 자은도는 바로 옆의 암태도, 팔금도, 안좌도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때문에 배를 이용하지 않고 자전거나 차로 네 섬을 모두 돌아볼 수 있다.

하지만 네 섬 가운데 가장 풍부한 볼거리를 지니고 있는 곳은 역시 자은도다. 나주군도 최고봉인 두봉산(363.8m)이 한가운데 솟았고 해안을 따라 길고 멋진 백사장이 형성되어 있다. 조석간만의 차를 이용한 전통 고기잡이 방식인 독살도 구경할 수 있다. 풍광이 수려해 백길해수욕장 근처에 리조트도 들어설 예정이다. 봄맞이 자전거 투어에 안성맞춤인 장소라 하겠다.

자은도 자전거 투어 개념도
자은도 자전거 투어 개념도

하늘이 내려앉아 흙빛 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구름이 많고 바람도 세, 그리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항구를 떠난 배가 25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이 애초에 생각했던 장소가 아니었다. 엉뚱한 곳에 첫 발을 내려놓은 것이다.

송공항에서 떠나는 배는 암태도 오도선착장과 팔금도 고산선착장 두 곳을 운항한다. 그런데 자전거에 짐을 실으며 늦어지는 바람에 암태도로 가는 배를 놓친 것이다. 차량이 있다면 어디에서 시작하든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거리 차가 10km 남짓으로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짐을 싣고 이동하는 자전거 투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다행히 현지의 지인과 연락이 닿아 트럭으로 자은면소재지까지 짐을 옮긴 뒤 투어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무거운 짐 매달고 언덕길 올라
자은도는 해안을 따라 만들어진 일주도로는 없다. 대신 마을 사이를 잇는 농로가 잘 발달되어 있다. 이를 이용해 해안에 최대한 가까운 코스를 잡아 투어를 진행했다. 하지만 정오가 지난 시각에 출발해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면사무소 뒤편의 농로를 따라 두봉산 자락 밑을 가로지르는 산길을 타고 섬 북쪽 해안만 돌아보기로 했다.

1 자전게어 트레일러를 매달고 분계해수욕장으로 향하고 있는 일행.
2 자은면소재지에서 두봉산 자락으로 연결된 비탈길을 오르고 있다.
1 자전게어 트레일러를 매달고 분계해수욕장으로 향하고 있는 일행. 2 자은면소재지에서 두봉산 자락으로 연결된 비탈길을 오르고 있다.

콘크리트 포장길이 구불거리며 가팔라졌다. 흐린 날씨에 약간 쌀쌀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가파른 오르막을 만나자 온몸에서 열이 났다. 무거운 트레일러를 끌기 위해 숨을 헐떡이며 페달을 돌리다보니 어느새 고갯마루에 섰다. 잠시 쉬고 있는데 산책 나온 자은도 주민들이 신기한 듯 우리를 쳐다보며 지나갔다.

자전거 뒤에 매단 바퀴 하나짜리 트레일러는 노면이 거친 시골길에서도 부드럽게 움직였다. 육중한 짐을 싣고 있었지만 일단 굴러가기 시작하면 평지에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다. 오르막에서는 아무래도 무게가 느껴졌지만, 변속기어를 낮추면 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내리막에서 조심해야 했다. 무거운 짐이 뒤에서 밀기 때문에 속도가 조금 붙으면 자전거가 사시나무 떨 듯했다. 적절히 감속하며 조심스레 제어하는 요령이 필요했다.

아름다운 새소리가 울려 퍼지던 유천저수지를 쏜살같이 지나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유천마을 동쪽으로 넓은 갯벌이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직 겨울이라 바다인지 벌판인지 구분이 안 됐다. 작은 언덕을 넘어 진천들판을 가로지르는 1km 직선도로에서 경주를 했다. 대율리로 넘어갈 때까지 차를 한 대도 못 만났다. 2차선 도로는 완전히 자전거 세상이었다. 바로 이런 한적함이 섬에 서 즐기는 자전거 투어의 매력이라 하겠다.

대파를 수확하고 있는 자은도 주민들.
대파를 수확하고 있는 자은도 주민들.

북쪽 해변의 백사장이 장관
대율리를 지나 북쪽 해안으로 이동하니 풍광이 변했다. 멀리 해변의 송림 사이로 살짝살짝 바다가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둔장해변과 나란히 뻗은 도로를 달리다가 바닷가의 두모체육공원으로 방향을 돌렸다. 해변에 조성된 체육공원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아늑한 분위기였다. 잠시 자전거를 세워두고 바다 구경을 나갔다. 길고 깨끗한 해변에 성난 파도가 몰려드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안개가 뿌옇게 일어나며 시야가 좋지 않았다. 계절이 바뀌며 남쪽 바다도 물갈이가 한창인 듯했다.

소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잠시 자전거를 탔다. 하지만 가파른 계단이 연이어 나타나며 정상적인 주행이 어려웠다. 무거운 짐이 가득한 트레일러를 밀고 끌며 간신히 포장도로로 빠져나갔다. 다시 노면이 매끈한 도로를 만나 속도를 높였다. 해가 지기 전에 야영지인 분계해변으로 가려면 쉴 틈이 없었다.

1 백길해수욕장 소나무 숲에서 바다를 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일행들. 
2 분위기 있는 억새밭 옆의 제방도로를 달리고 있다.
1 백길해수욕장 소나무 숲에서 바다를 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일행들. 2 분위기 있는 억새밭 옆의 제방도로를 달리고 있다.

자은도 중심부의 넓은 평원을 쏜살같이 달렸다. 면소재지 서쪽에 펼쳐진 들판은 모래가 많아 물 빠짐이 좋다. 이곳에 파나 땅콩을 주로 심는다. 자은도 땅콩은 그 맛과 영양분이 전국 최고로 꼽는다. 고가인데다 출하량도 많지 않아 구하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자은도에는 야영을 할 만한 곳이 많다. 해수욕장으로 이용 가능한 백사장이 모두 9곳이나 된다. 백산리에 분계, 신성, 양산, 내치 4곳의 백사장이 있고, 유각리의 백길 해수욕장, 면전리의 면전 백사장, 고장리의 외기, 사월포 백사장, 송산리의 둔장 해수욕장 등이 자리하고 있다. 그 가운데 분계 해수욕장은 자은도에서 송림의 정취가 가장 뛰어난 곳이다. 해안 길이는 1km 정도로 비교적 작지만, 해변에 빼곡하게 들어찬 노거수가 일품이다.

분계해수욕장에 도착하니 이미 해변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도로 옆 야영지에 짐을 내리고 급히 텐트를 쳤다. 사실 자전거 투어는 여유 있게 운행 스케줄을 잡는 것이 원칙이다. 너무 늦게 야영지에 도착하면 휴식이 부족해 다음날 운행에 지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도시와 달리 대자연의 밤은 상당히 길다. 이날도 한숨 돌리고 자리에 누운 시각이 겨우(?) 저녁 9시였다. 이런 여유 또한 야영과 함께하는 자전거 투어의 재미다.

분계해수욕장의 야영지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있다.
분계해수욕장의 야영지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있다.

찾아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의 끝인 목포나들목을 나와 압해대교를 건너 우회전한 다음, 압해면사무소가 있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끝까지 가면 송공선착장이다. 송공항에서 암태도와 팔금도를 오가는 페리호가 있다. 편도 기준 승객은 3,000원, 승용차 1만5,000원이다. 자전거를 싣는 경우 3,000원의 요금을 더 받는다. 배는 오전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거의 한 시간에 한 대꼴로 다니며, 암태도나 팔금도까지 25분 정도 걸린다.

숙식(지역번호 061) 자은도 면소재지에 황금장여관(271- 8100), 고장리 사월포 마을에 사월포관광농원(271-3214) 등이 있다. 여름 휴가철에는 분계 해수욕장과 백길 해수욕장의 대부분의 민가에서 민박을 친다. 분계민박(246-3805), 춘월민박(275-7703) 등에 문의하면 된다.

식사는 면사무소 앞 새중앙식당(271-8761)은 연포탕과 정식이 전문이다. 한 상 가득 차려 나오는 전라도 특유의 정식도 괜찮다. 암태도로 넘어가는 은암대교 밑의 신진횟집(271- 0008)에서 자연산 회를 맛볼 수 있다. 고기가 없을 수도 있으니 전화 문의는 필수다. 4월에는 보리숭어가 제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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