갠지스가 부르는 깊고 평화로운 노래의 끝에 닿다

글·사진 이남석 서울 성동공고 교사

입력 : 2014.10.23 13:14

기록적인 폭우 탓에 강고트리에는 고요함만 가득해

한번은 이런 경우도 있었다. 긴 오르막을 올라 평지로 이어지는 길을 달리는 중 가게를 발견했다. 마침 망고주스도 거의 떨어진 상태라 주스도 사고 쉬기도 할 겸 자전거를 세웠다. 가게 안에는 여인이 혼자 있었는데 내가 가까이 갔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소리를 내어 인사를 하고 망고 주스를 찾는데도 여인은 엉뚱한 곳만 쳐다본 채 아무 응답이 없었다.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자세히 여인을 보니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었다. 거기다가 내가 얘기하는 소리도 듣지 못하는 걸 봐서는 귀도 먹은 것 같았다.

[해외여행 | 가르왈 히말라야 900km 자전거 여행 (마지막 회)]
강고트리로 가는 마지막 여정. 설악산 용아장성보다 더 화려한 암봉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탁자 앞에는 다른 사람들이 놓고 간 돈이 놓여 있는데 짐작컨대 물건을 고르고 난 후 값을 지불하고 간 것 같았다. 여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다. 나는 밖으로 나와 망망한 하늘을 쳐다봤다. 세상에 별 사람들이 다 있지만 저마다 한 생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서 온갖 문제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을 필연이라 생각하고 세상의 처음과 끝을 마무리한다면 그가 바로 수행자가 아닐까 한다.

숲이 하늘을 가려 방향조차 가늠하기 힘들었다. 길은 지루할 만큼 긴 오르막의 연속이었다. 마을 언저리를 지날 때도 사람 보기가 힘들었다. 이곳에 생활필수품을 공급하는 도시인 우타르카시로 가는 길이 모두 유실되고 차량이 다니지 못하니 사람들의 이동도 드물었다.

바트와리를 지나면서 강고트리로 가는 길은 순조로웠다. 일정한 간격으로 유실된 곳도 많았지만 우회도로를 낼 정도로 심하게 무너진 곳은 드물었다. 산이 깊어지니 마을은 드물어지고 골과 골을 이어주는 고개는 높아졌다. 우렁차게 들리던 갠지스강의 노래는 작은 소리로 변하고 숲을 꽉 채웠던 나무도 줄기 시작했다.

[해외여행 | 가르왈 히말라야 900km 자전거 여행 (마지막 회)]
1 하르실에서 다랄리 가는 길에 본 갠지스강과 가르왈 히말라야.

남은 거리를 계산해 보니 열심히 하루만 달리면 강고트리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꼭 그렇다는 확신이 아니라 느낌상 그렇다는 것이다. 흙을 두드리는 빛은 폭포수 같았으며 바위가 드러난 산비탈은 히말라야가 본색을 드러내는 듯 무겁고 장중했다. 자전거는 나와 함께 길고 험한 우회도로를 온 덕분에 온 몸이 상처였다. 계곡과 오르막 돌무더기에서 세 번이나 자전거와 함께 구르고 넘어진 까닭에 로터가 휘고 몸체 여기저기에 찍힌 자국이 뚜렷했다. 특히 브레이크 로터가 휘어지는 바람에 대충 펴기는 했지만 제대로 수평이 잡히질 않아 제동에 문제가 많았다. 그렇게 자전거와 나는 친구이자 동지가 되어 서로의 상처를 보듬은 채 마지막 도착지 강고트리로 달려가고 있었다.

장거리 자전거여행은 감정 조절이 중요해
강나닌은 우타르카시의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얘기한 것처럼 노천 온천이 있다는 곳인데 그 말이 틀림없었다. 강나닌으로 가는 길은 제법 높은 재 하나를 넘고 힘차게 내리막을 달려 막다른 계곡에서 다시 막 오르막이 시작되는 곳에 있었다. 물이 흐르는 곳은 물론이고 산비탈 이곳저곳이 뽀얀 수증기로 가득했다. 처음에 나는 그게 밤낮의 온도 차이로 일어난 안개려니 생각했는데 길 옆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을 마시려고 손을 댔는데 물이 차지 않고 뜨거워 깜짝 놀랐다.

[해외여행 | 가르왈 히말라야 900km 자전거 여행 (마지막 회)]
2 길에서 만난 힌두교 사제들. 3 바위와 충돌한 버스. 길 옆의 낭떠러지로 추락하지 않은 것도 다행이라 여겼다.

아침 해가 높아질 즈음 마침내 강나닌에 도착했다. 절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온천에 인접한 게스트하우스들은 텅텅 비어 있었다. 길가에 열 지어 있는 가게는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여기서 용감한 일본인 여자 배낭 여행자를 만났다. 그녀는 오히려 날 보고 놀랐다. 돌아가는 교통편을 구하지 못해 걸어서 우타르카시로 가고 있는 그녀는 오히려 편안해 보였다. 자전거로 길이 끊어진 구역을 통과해서 여기까지 왔다는 얘기를 듣자 그녀는 혹시 길이 복구된 게 아니냐고 반문할 정도였다.

온천에서 새어나온 하얀 수중기가 안개처럼 산등성이로 내려앉고 푸른 잎을 매단 나무들은 숲을 가득 채웠다. 아직 점심도 되지 않았지만 이참에 여기서 하루 묵으며 피로와 상처로 너덜너덜해진 몸을 뜨거운 온천에 담그고 싶었다.

강고트리는 힌두 최고의 성지다. 힌두를 믿는 사람들은 육신은 태어나 성장하고 왕성한 시기를 달린 후 마침내 쇠하여 종내 땅 밑에 묻히지만 영혼은 인과의 법칙에 의해 순환된다고 생각한다.

강나닌을 벗어날 때는 사람들이 모두 이사를 가 텅 빈 집만 남은 화전민 마을을 보는 것 같았다. 무거운 짐을 지거나 아니면 맨발로, 모든 희로애락을 짊어진 채 그 무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인도인들이 이 길을 통해 강고트리를 방문했을 것이다.

비록 길이 무너진 곳은 없었지만 위태로운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길은 대부분 금이 가거나 기우뚱 누워 언제라도 무너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계곡은 더욱 깊어지고 설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직 오늘내로 강고트리에 도착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강나닌에서 하르실로 가는 길에는 큰 재가 하나 있는데 넘기가 만만치 않았다. 절벽은 마치 높은 망루처럼 아슬아슬하고 능선 꼭대기에 매달린 바위는 위태로웠다. 하지만 그것이 두려워 어찌 나아가는 걸 소홀히 하겠는가. 오히려 높이 오를수록 경치는 훌륭해지고 계곡은 아득하여 꿈같았다. 위험한 구간을 지나고 있으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은 어느새 사라졌다. 숨은 불규칙하고 맥박은 요동쳤으며 등은 익은 고기처럼 벌게지기 시작했는데 오직 눈만 반짝거릴 뿐이었다.

하르실마을을 얼마 남겨놓지 않았을 때, 큰 절벽 아래를 달리는 중이었다. 내리막 경사가 제법 급해 올라올 때 힘들었던 것을 보상받겠다는 심정으로 마음껏 달렸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기에 오히려 더 조심조심 달렸다. 장거리 자전거 여행에서는 자기의 감정을 잘 조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그것을 소홀히 하거나 놓치면 사고를 피하기 어렵다.

아찔한 절벽 서너 개를 지나 내리막의 반 정도를 통과하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급브레이크를 잡았다. 승합차가 바위와 충돌해 있었다. 순간적으로 방금 사고가 난 줄 알았다. 하지만 주변에 사람은 없고 오직 차만 바위틈에 박혀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오래 전에 있었던 사고 같았다. 길옆은 아득한 낭떠러지인데 그 밑으로 떨어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물살이 거친 내 하나를 건넌 후 조그만 마을에 들었다. 숙박시설이 있는 걸 봐서는 순례자들이 묵어갈 만한 곳인 것 같았다. 멀리 설산이 우뚝하고 뒤로는 높은 재가 앉아 있었으며 좌우로는 경사가 급하고 골이 아득한 능선이 빙빙 둘러가면서 울타리를 만들었다. 시장기가 올라 잠시 자전거를 세운 후 버너에 불을 지피고 감자와 밀가루를 꺼내 수제비를 만들어 요기를 했다. 육체를 온전하게 하고 힘을 쓰려면 음식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강고트리까지 가는 동안 나는 음식의 맛을 구하기보다는 오직 내 몸을 움직이는 데 쓰기 위해 구했다.

하르실에서 점심을 해결한 후 다시 높은 재를 오르기 시작했다. 이전 고개보다 훨씬 경사가 셌는데 대신 주변으로 연이어 드러나는 산세와 빛깔은 훨씬 육중하고 아름다웠다. 하늘을 채웠던 구름이 물러나자 말 그대로 바다를 들어다 놓은 것 같은 파랑이 나타났다. 이따금 자전거를 세워 하늘을 쳐다보면 내 머리가 망망한 바다 한가운데 닿은 것 같았다. 워낙 오르막이 길어 뭐라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마을사람이 차려놓은 간이식당이 있어 자전거를 세웠다. 식당이라고 해봤자 이곳을 지나는 순례자나 운전사들이 잠깐 멈춰 짜이 한 잔을 시키거나 아니면 짜파티로 요기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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