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도의 소박美,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바이크조선

입력 : 2014.11.05 10:12

섬진강 ~ 영산강 연결구간 27㎞

이름만으로도 남도의 정서와 서정이 물씬 느껴지는 섬진강과 영산강. 그 중에서도 더욱 적막하고 오지 분위기마저 남아 있는 최상류에 두 강을 연결하는 자전거길이 나 있다. 길가에는 명소도, 관광지도 없지만 오히려 그런 ‘아무것도 없음’이 잔잔하게 그러나 마음 깊이 잊지 못할 각인을 남긴다.

꼭 만나야 할 인연은 언젠가는 만나기 마련이다. 사람이든 그리고 심지어는 강이든.

남도를 적시는 두 젓줄, 영산강과 섬진강은 어쩌면 그 이름만으로도 이 땅에서 가장 정서적이고 서정적이다. 영산강이 나주평야 같은 곡창지대를 지나면서 ‘들’과 ‘농민’ 같은 전원의 일상을 상징한다면, 산간지대를 흐르는 섬진강은 ‘오지’와 ‘그림 같은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약간은 판이한 특성을 가진 두 강을 완주하고 보면, 목월이 시에서 그토록 강렬한 잔상을 남긴 ‘길은 남도 삼백리’의 멋과 맛을 조금이나마 실감하게 된다.


	극도의 소박美,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두 강의 하구는 전남의 동서 양단으로 뚝 떨어져 있지만 상류는 아주 가까이 접근한다. 담양과 순창 즈음에서 최근접 하는 두 강의 직선거리는 15㎞도 되지 않는다. 지난해 6월 마침내 두 강의 자전거길을 연결하는 새로운 자전거길이 열렸다.

언젠가는 가봐야지 하며 마음에 두고 있었으나 코스 길이가 27㎞로 짧고 특별한 명소나 경관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딱히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도 다른 지방으로 가는 길에 잠시 들렀다가, 뜻밖에 조용하지만 깊은 감명을 받았다. 우리가 찾고 있던 길이 바로 거기 있었다.

정적만이 흐르는 둑길

출발지는 순창쪽으로 잡았다. 유등면 외이리 유풍교에서 연결구간은 시작된다. 순창읍내에서 흘러내린 경천이 섬진강으로 합류하는 합수점 부근이다. 바로 옆은 유등면사무소가 있어 초등학교, 파출소, 보건소, 농협 등 주요기관이 모여 있지만 마을이 너무 작아 한가롭기 짝이 없다. 파출소앞 나무그늘에는 촌로들만 모여 세월을 잊고 담소를 나눈다.

유풍교를 출발하면 계속 경천을 따라가는 둑길이다. 지형에 따라 다리를 건너 개울의 이편저편을 오가는 정도다. 길은 순창읍내 직전에서 경천을 버리고 더 작은 사천으로 옮겨 타면서 읍내를 우회한다.

유풍교에서 7.7㎞ 가면 27번 국도 옆의 작은 강언덕에 자리한 반월쉼터에 닿는다. 그늘과 벤치는 있지만 화장실이 없어 다소 아쉽다. 급한 화장실 용무는 지나치는 동네의 마을회관을 이용하면 된다.


	1 영산강~섬진강 연결구간의 순창쪽(섬진강) 초입인 유풍교 갈림길. 담양 메타세쿼이어길까지 27㎞이다   2 27번 국도 옆 작은 강언덕에 자리한 반월쉼터. 지도와 안내판은 있지만 화장실이 없다  3 농민들의 자전거는 언제나 흙이 묻어 있고 짐이 실려 있다. 자전거도 꼭 촌로처럼 인자하고 푸근하게 느껴진다  
4 섬진강과 영산강의 분수령이자 담양과 순창, 전남북의 경계를 이루는 목동마을 고개
1 영산강~섬진강 연결구간의 순창쪽(섬진강) 초입인 유풍교 갈림길. 담양 메타세쿼이어길까지 27㎞이다 2 27번 국도 옆 작은 강언덕에 자리한 반월쉼터. 지도와 안내판은 있지만 화장실이 없다 3 농민들의 자전거는 언제나 흙이 묻어 있고 짐이 실려 있다. 자전거도 꼭 촌로처럼 인자하고 푸근하게 느껴진다 4 섬진강과 영산강의 분수령이자 담양과 순창, 전남북의 경계를 이루는 목동마을 고개

반월쉼터를 지나서도 소담한 둑길은 계속된다. 4대강의 장대하고 곧은 둑길과 달리 이곳의 개울가 둑길은 내내 구불거리고 너무 낮아서 한결 정겹다. 길은 점점 상류로 접어들면서 수량은 잦아들고 고도는 알게 모르게 조금씩 높아간다. 이 한적한 개울길로 노선을 참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길이 심하게 만곡을 거리면서 거리는 길어졌지만 오롯이 보존된 전원 풍경 속에 깊숙이 빠져들어 잔잔한 감흥을 더해준다. 날이 더우면 아무 곳에서나 멈춰 개울에 발을 담가도 될 것 같고, 마을 입구 느티나무 그늘에서는 마냥 쉬어가며 촌로들의 애환을 들어보고도 싶다.

반월쉼터에서 6.4㎞ 가면 수양교 건너편 숲가에 수양쉼터가 나온다. 코스에서 살짝 벗어나 있어 급히 지나면 놓치기 쉬운데, 그늘이 시원하고 화장실도 마련되어 있다.

이제 둑길은 높이를 현저히 낮춰가고 개울은 거의 말라붙었다. 문득 길가에 선 느티나무 한 그루가 반갑다. 대개는 마을 입구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어야 할텐데 홀로 들판 가운데 선 것이 애처롭고, 한편 고독을 감당하는 기세가 당당하다. 남쪽으로는 설산(523m)이 동서로 길게 펼쳐져 병풍처럼 지역을 감싸고 있어 차분한 안정감을 보탠다.

섬진강과 영산강 분수령을 찾아서

수양쉼터에서 4㎞ 가량 더 올라간 남계리에서 길은 잠시 도로와 합류해서 목동마을까지 2.5㎞ 가량 이어진다. 도로라고는 해도 차량통행은 거의 없고, 고도를 점점 높여가서 오르막이 체감된다. 길가 언덕 위로는 확장공사 중인 88올림픽고속도로가 높직이 지난다.

섬진강 ~ 영산강 연결구간 27㎞

이제 사천은 흔적으로만 남았고, 비가 올 때 아니면 아예 물은 흐르지 않는다.

도로를 버리고 목동마을로 들어서면 지금까지의 농촌 분위기에서 갑자기 산촌(山村)으로 무드가 급변한다. 작은 산기슭에 안긴 20호 남짓한 마을은 좁은 골목과 다닥다닥 붙은 초라한 집들, 돌담 등에서 산간오지 분위기가 흘러넘친다.

길은 마을을 관통해서 뒤쪽 언덕을 넘어간다. 섬진강과 영산강의 분수령(分水嶺)이 어딜까 궁금했는데, 직감으로 이 언덕일 것 같다. 과연, 고갯마루에는 담양군 표지판이 서 있고, 이 능선은 섬진강과 영산강 유역을 가르는 길목이면서 전남북을 가르는 도계(道界)가 된다. 고갯마루 북쪽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영산강으로, 남쪽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것이다. 높이는 해발 150m. 출발지인 영풍교가 80m이니 22㎞를 오는 동안 겨우 70m를 올라섰다는 얘긴데, 거의 평지와 다름없는 느낌을 준 것은 당연했다.

고개를 넘어서면 계단식 논이 층을 이룬 인적 없는 골짜기가 길게 흘러내린다. 골짜기 중간쯤을 지나는 88올림픽고속도로의 높직한 교각만이 현대문명이 이곳에도 들어와 있음을 말해준다. 고속도로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대나무골테마공원과 고개 넘어 처음 만나는 비내동 마을이 나온다. 대나무골테마공원은 넓은 대숲에 야영장과 드라마(전설의 고향, 다모) 세트장이 들어서 있는데, 대밭의 규모는 담양읍내의 죽녹원 못지않다. 조용하게 산책하기에는 오히려 이곳이 낫겠다.


	섬진강과 영산강 분수령 바로 아래에 있는 목동마을. 예스런 돌담이 외진 산촌 느낌을 진하게 풍긴다.
섬진강과 영산강 분수령 바로 아래에 있는 목동마을. 예스런 돌담이 외진 산촌 느낌을 진하게 풍긴다.

비내동을 지나면 드디어 들판이 나오면서 산을 벗어나고 영산강 줄기인 금성천에 들어선다. 와룡마을에서 금성천은 영산강 본류와 합류하고, 길은 영산강 동안을 따라 내려간다. 영산강 자전거길은 맞은편 서안으로 나 있다. 와룡마을에서 2㎞만 가면 영산강 자전거길과 만나는 금월교이고, 바로 옆으로 담양의 명물인 메타세쿼이어길이 펼쳐진다. 메타세쿼이어길 초입에 자전거길 인증센터와 화장실, 주차장 등이 있다. 사실상 이 인증센터가 연결구간의 종점이 된다.

아쉽게도 메타세쿼이어길은 자전거가 출입금지다. 끌고도 갈 수 없다니 좀 지나친 규제 같다.

같은 길, 다른 느낌

순창 유풍교에서 메타세쿼이어길 인증센터까지는 27㎞. 왕복해도 54㎞ 밖에 되지 않는다. 어차피 이 길은 속도는 천천히, 마음은 차분하게 달려야 할 곳이라서 왕복해도 또 많은 것을 발견하고 느끼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한번 갔던 길을 되돌아오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람의 시야는 120도 남짓에 불과하고, 여기에 속도까지 가미되면 주위의 많은 것을 놓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열차여행을 예로 들어보자. 서울~부산 간은 오갈 때 보는 풍경이 다르고, 좌우 자리 위치에 따라서도 또 다르니 적어도 2번은 왕복해야 주위 경치를 다 볼 수 있다. 시인은 말했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코스의 종점은 담양의 명소인 메타세쿼이어 길이다. 자전거는 출입할 수 없어 저 예쁜 길을 멀뚱히 바라만 볼 수밖에
코스의 종점은 담양의 명소인 메타세쿼이어 길이다. 자전거는 출입할 수 없어 저 예쁜 길을 멀뚱히 바라만 볼 수밖에

INFORMATION

맛집

풍경소리 : 코스 도중에 있는 유일한 식당이다. 전통차와 떡갈비, 죽순새싹 비빔밥을 내놓는다. 담양쪽 대나무골테마공원 입구. 061-381-1728

연다라전통순대(순창) : 순창읍내 순창종합시장에 있으며, 순대국과 순대로 유명하다. 순창읍 남계로 58. 063-653-3432

떡갈비본가(담양) : 담양은 떡갈비와 국수로 유명하다. 읍내 한가운데 있다. 담양읍 중앙로 91. 061-383-6692

숙박

Q모텔(순창) : 순창읍내에서 가깝고 경천을 끼고 있어 자전거도로 접근이 쉽다. 063-653-7800

죽림원펜션(담양) : 죽림원과 관방제림, 메타세쿼이어길과 가깝고 시설이 깨끗하다. 061-383-4530

교통편

버스

- 서울(반포)→담양 하루 4편. 첫차 08:10, 막차 17:10, 3시간45분 소요.
   담양→서울 첫차 09:00, 막차 17:00

- 서울(반포)→순창 하루 5편. 첫차 09:30, 막차 16:10, 4시간 소요. 
   순창→서울 하루 5편. 첫차 08:10, 막차 15:30, 4시간 소요.

담양~순창 간 시외버스는 30분 내외 간격으로 다수 있다.

여행 만들기

담양이나 순창 읍내에서 출발하더라도 왕복 60㎞ 정도여서 수도권에서도 당일 코스로 가능하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순창은 유등면사무소에, 담양은 메타세쿼이어길 인증센터에 주차하면 된다. 이왕 가는 길이라면 순창에서 1박하며 섬진강 상류 구간을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글·사진 김병훈(자전거생활 발행인)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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