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고도’ 태백 귀네미마을과 까마득한 하늘길

바이크조선

입력 : 2014.11.20 09:33

환상적인 고랭지배추밭 풍경 2

전체가 고원지대인 태백의 최북단, 귀네미마을은 환선굴을 품은 덕항산(1071m) 북쪽 백두대간 깊은 골짜기 끝에 자리한다. 폭 1.2㎞의 거대한 고랭지 배추밭은 해발 920~1100m 사이에 펼쳐져 있다. 외곽에는 9기의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더욱 특별한 경관을 만들어준다.

.코스 : 삼척시 하장면사무 ~ 광동교 ~ 광동호 둘레길(광동안1길) ~ 조탄마을 ~ 하사미마을 ~
           귀네미마을입구 ~ 귀네미 고랭지채소단지 ~ 번천리 임도 ~ 번천 ~ 장군바위 ~
           숙암삼거리 ~ 하장면사무소

.총거리 : 32km(3시간 소요)

귀네미마을 서북쪽 비탈에서 바라본 배추단지의 목가적인 풍경. 오른쪽 풍력발전기 뒤쪽의 봉우리는  배추밭의 최고봉(1058m)으로 전망이 좋고, 물통이 놓여 있다.
귀네미마을 서북쪽 비탈에서 바라본 배추단지의 목가적인 풍경. 오른쪽 풍력발전기 뒤쪽의 봉우리는 배추밭의 최고봉(1058m)으로 전망이 좋고, 물통이 놓여 있다.

지인들과 울릉도 여행을 마치고 바로 찾아간 곳은 TV 프로그램 ‘1박2일’에 등장했던, 고랭지배추 단지로 유명한 태백의 귀네미마을이다. 풍력발전기와 귀네미마을의 고랭지배추밭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려면 8~9월이 제격이겠지만, 지난 겨울에도 귀네미마을 설경을 보고 싶어 한번 찾아왔던 곳이다. 이번에는 수확이 거의 끝났을 초가을 배추밭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보고 싶어 또다시 찾았다.

귀네미마을로 가는 방법은 태백시에서 35번 국도를 타고 삼수령을 넘어 가거나, 아니면 한강발원지인 검룡소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울릉도 자전거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는 묵호항에서 가까운 삼척시 하장면에서 출발했다. 태백역에서 귀네미마을까지는 22㎞, 검룡소에서는 18㎞이지만 하장면에서는 8㎞의 가까운 거리다.

고원의 아침

삼척시 하장면소재지를 출발해 광동호 남쪽 호반길(광동안1길)을 따라간다. 아침 물안개가 피어나는 호수가 고요하다.
삼척시 하장면소재지를 출발해 광동호 남쪽 호반길(광동안1길)을 따라간다. 아침 물안개가 피어나는 호수가 고요하다.

광동댐이 있는 하장면은 해발 650~810m의 산간지대로 삼척시내와는 기후차가 30일 가량 날 정도로 고지대에 위치한다. 깨끗한 물, 계곡, 청정 자연환경과 함께하는 하장면 고원지대는 대단위 고랭지채소 재배단지로 잘 알려져 있다.

‘고도가 높고(高) 기온이 낮은(冷) 지역’이라는 뜻의 고랭지(高冷地)는 해발 600m 이상의 땅을 말한다. 한반도의 등줄기를 이루는 백두대간에는 이러한 고랭지가 많은데, 태백은 지역 전체가 전형적인 고랭지다.

하장면사무소에서 출발해 골지천의 광동교를 건너면 광동호를 돌아 나가는 ‘광동안1길’이며, 이 길을 따라 광동호의 아름다운 풍경과 산간마을의 고랭지채소밭을 둘러보며 귀네미마을로 갈 수 있다. 1985년부터 87년까지 3년에 걸쳐 건설된 광동댐으로 토지가 수몰되어 이곳에 살던 30여 가구의 주민이 태백시 삼수동 귀네미마을로 이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9월말, 고도가 높은 하장면의 아침은 쌀쌀하다 못해 춥다. 해발 1071m의 덕항산 위로 아침햇살을 받은 광동호는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숙암리 자연부락인 광동안1길의 산촌마을은 길 양옆으로 고랭지채소밭이 즐비해 목가적이다.

일반 농촌의 배추밭은 평지의 밭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산촌의 고랭지채소밭은 산비탈을 개간해서 그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김치의 주재료인 배추는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 태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광동안1길’의 호젓한 산길을 돌아 나가면 골지천과 35번 국도를 만나고, 이어 태백시 조탄마을이 나온다. 남한강의 발원천인 골지천은 검룡소에서 시작해 삼척시 하장면을 흐르는 하천이다. 검룡소에서 흘러 광동호로 내려오는 골지천은 이곳 조탄마을 앞에서 물길이 사라진다. 그 이유는 본지 8월호에 게재된 ‘한국의 강둑길 16’을 읽어 보면 알 수 있는데, 물길은 여기서 지하로 스며들어 백두대간 줄기인 덕항산 아래의 대이리 오십천을 만나 동해로 흐른다고 한다. ‘그게 정말 사실일까?’ 라는 의구심에 확인차 둘러보았는데, 말 그대로 골지천은 800여m가 물길이 아닌 모래사장으로 뒤덮여 있고 이름 모를 풀과 야생화로 가득하다. 물론 강수량이 많은 홍수철에는 물길이 생겨나 광동호로 흘러갈 것이다.

‘배추고도’의 환상적인 풍경

귀네미마을 입구. 요즘은 관광객이 드물어 민박과 향토음식체험장은 운영하지 않는다.
귀네미마을 입구. 요즘은 관광객이 드물어 민박과 향토음식체험장은 운영하지 않는다.
Y자 골짜기를 따라 형성된 마을 중심에 자리한 귀네미 마을회관
Y자 골짜기를 따라 형성된 마을 중심에 자리한 귀네미 마을회관

조탄마을에서 국도를 따라 2.2㎞를 달리면 왼쪽으로 귀네미마을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중국의 ‘차마고도’에 빗대 ‘배추고도’라고도 불리는 귀네미마을은 ‘일출이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간판에서 보듯이 원래는 동해 해돋이로 소문난 곳이었다.

이정표가 있는 입구에서 귀네미 마을회관까지는 3.3㎞를 더 올라가야 한다. 마을로 올라가는 개울 주변으로 갓 수확을 마친 배추밭이 초록의 흔적을 남겼고, 짙푸른 산에는 노랗게 물들어 가는 자작나무가 하얀 속살을 환히 드러내놓았다. 활엽수는 이곳저곳에서 울긋불긋 색조화장을 시작했으니 이제 본격적인 가을의 문턱이다.

귀네미마을에 도착하면 산은 온통 고랭지배추밭으로 펼쳐져 있다. 배추밭으로 가득한 능선은 하늘과 맞닿아 있고, 북서쪽 능선의 거대한 풍력발전기는 하늘을 찌를 듯 “윙윙~” 괴이한 소리를 내며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9월 말의 고랭지배추밭은 갈색이지만, 중국 운남성에 있는 홍토지를 많이 닮았다. 이미 상당량 수확을 마친 상태여서 짙푸른 배추바다를 볼 수 없는 아쉬움이 남지만, 갈색의 민둥산 자락에는 그래도 간간이 남아있는 배추포기와 잎사귀로 그 느낌은 아직 살아 있다.

귀네미마을은 조그만 시골마을이다.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Y자 골을 이루고 있는 마을은 30여 채의 한옥들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을 둘러싼 고랭지배추밭은 온통 거친 돌밭이다. 여타 지역의 좀 더 낮은 고랭지밭은 개간을 잘해 자갈이 적어서 다양한 작물을 심을 수 있지만, 해발 1000m에 위치한 이곳에서 심을 만한 작물은 척박한 자갈땅에서도 잘 자라는 배추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을이 배추밭으로 바뀐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87년 광동댐이 삼척시 하장면에 완공되면서 수몰지에 살던 37가구가 이곳 귀네미골로 터를 옮겼다. 귀네미는 ‘귀래미(貴來美)’에서 유래된 말로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 온다’는 뜻으로, 원래 전해져 내려오는 마을이름은 소 귀를 닮았다고 해서 우이곡(牛耳曲)이라고 전해진다.

해발 920~1100m에 걸쳐 펼쳐진 광활한 고랭지배추단지는 여러 대의 풍력발전기와 더불어 한 폭의 풍경화처럼 다가온다. 배추단지 사이로 꼬불꼬불 이어진 길이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 같아서 지난겨울에 왔을 때는 ‘어디로 해서 어떻게 가야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귀네미 고랭지배추밭을 제대로 돌아보려면 마을회관을 기점으로 시계방향으로 외곽으로 크게 돌아야 하는데, 중간에 풍력발전단지 임도를 갔다가 되돌아 나오는 것이 좋다. 다시 마을회관에서 중앙의 도로를 거슬러 올라 1박2일에 나왔던 ‘이승기나무’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 번천 임도로 들어서면 된다.

도대체 이 산비탈을 어떻게 개간했을까


귀네미마을을 내려다보는 비탈길. 배추단지 외곽능선 저 멀리 백두대간의 고산준령이 아스라이 흐른다.
귀네미마을을 내려다보는 비탈길. 배추단지 외곽능선 저 멀리 백두대간의 고산준령이 아스라이 흐른다.

마을회관 앞 삼거리에서 200m 올라가면 왼쪽으로 올라가는 비포장길이 나온다. 경사가 조금 심하지만 꼬불꼬불 굽이길이라 그리 힘들지 않다. 900m 정도 오르면 능선길이 나타나면서 고랭지배추밭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탁 트인 장소가 나타나고,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오게 된다.

능선에 서서 헐떡거리는 숨을 가다듬고 장쾌한 고랭지배추단지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에 젖어 본다. 배추밭 이전에는 가파른 산비탈이었을텐데…. 그 많은 나무를 어떻게 잘라내고 뿌리는 또 어떻게 캐내어 옮겼을까? 그리고 이 거대하고 척박한 밭을 어떻게 갈고 모종을 했는지? 다 자란 배추는 또 어떻게 옮겨 실어 날랐는지?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처음부터 배추를 목적으로 산비탈을 개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옥수수와 감자, 콩 그리고 약용식물도 심었으리라. 그러나 땅은 거친 돌밭이고 바람도 세차서, 서늘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배추 외에는 딱히 키울 작물이 없었을 듯하다. 그래서 귀네미마을은 이러한 악조건이 오히려 지금의 ‘배추고도’라는 유명세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

배추밭의 규모는 지난호에 소개한 강릉 안반데기보다 작지만, 좁고 길게 이어진 안반데기에 비해 골짜기에 폭 1.3㎞ 정도로 오롯이 모여 있어 광활하고 장쾌한 느낌을 준다.

지구를 살리는 수호신, 풍력발전단지로 가는 하늘길

배추단치를 에워싸고 있는 풍력발전단지 임도. 길을 따라 6대의 발전기가 설치되어 있다.
배추단치를 에워싸고 있는 풍력발전단지 임도. 길을 따라 6대의 발전기가 설치되어 있다.
새하얀 풍력발전기는 귀네미마을을 한층 더 특별한 곳으로 만들어주는 배경 겸 소품이 된다.
새하얀 풍력발전기는 귀네미마을을 한층 더 특별한 곳으로 만들어주는 배경 겸 소품이 된다.

배추단지의 서쪽 외곽능선을 따라 발아래의 풍경을 감상하며 달리다 보면, 풍력발전단지로 가는 임도가 나온다. 임도는 편도 1.3㎞로 길을 따라 6기의 풍력발전기가 힘차게 맴돌고 있다. 이 풍력발전단지 임도는 산의 정상부 능선을 달리는 ‘하늘길’로 오직 능선 위로 힘차게 돌아가는 풍력발전기와 푸른 하늘만 볼 수 있다. 고도는 1100m를 오르내린다.

고개를 90도 젖혀 풍력발전기 날개 위로 파란 하늘과 간간이 밀려오는 뭉게구름이 머물다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나마 힘들면 누워서 보는 여유도 가져본다.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긴 장대나 돌기둥 위에 앉혀 마을 어귀에 세우고 수호신으로 믿었던 우리나라 전통 상징물인 솟대문화가 아쉽게 사라지는 시점에서 이제는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풍력발전기가 현대적인 수호신(守護神)으로 생각되는 것은 왜일까? 하늘과 땅을 잇던 솟대처럼 세찬 바람을 받아 풍력발전기의 하얀 날개가 몸부림 칠 때의 모습은 마치 우리의 수호신이 새롭게 탄생한 것만 같은 영감을 준다. 그럴 수 있다. 무공해 에너지를 선사하는 풍력발전기는 분명 인간과 지구를 살리는 수호천사가 맞다.

새로운 수호천사로 받아들인 나를 비롯한 일행은 풍력발전기를 배경으로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셔터를 연신 눌러대기 바쁘다. 우리를 지켜주는 수호신은 아무 말 없이 푸른 하늘에 하얀 날개를 돌리고 있고, 우리는 수호신 손바닥에서 한없는 자유를 만끽한다.

꼬불꼬불 이어진 탁 트인 임도를 따라 어느덧 해발 1130m까지 올라가면 마직막 풍력발전기에 다다르고 임도는 끝난다. 이곳에서는 광동호를 비롯해 멀리 정선의 가리왕산(1561m)이 한 눈에 조망된다.

귀네미마을 최고봉에서 천하를 내려다보다

둔중한 산비탈을 따라 Y자 골짜기에 들어선 귀네미마을. 30여 가구가 산다.
둔중한 산비탈을 따라 Y자 골짜기에 들어선 귀네미마을. 30여 가구가 산다.
마을 북쪽 높직한 곳에 자리한 일명 ‘이승기나무’
마을 북쪽 높직한 곳에 자리한 일명 ‘이승기나무’

풍력발전단지 임도를 내려와 백두대간 북동쪽 능선길로 약 900m를 달리면, 왼쪽 산 정상부로 올라가는 흙길이 나온다. 흙길을 따라 300m를 오르면 넓은 공터에 물탱크 하나가 놓여있는데, 이곳이 고랭지배추밭의 최고봉(1058m)으로 사방을 둘러 볼 수 있다. 최고봉이라 해서 딱히 전망대 시설이 있는 건 아니지만, 동해를 비롯해 고랭지배추밭 전체와 사방이 확 트인 파노라마 풍경을 볼 수 있다.

‘일출이 아름다운 마을 귀네미’라는 표지석에서 알 수 있듯이 고랭지배추밭의 최고봉인 이곳 전망대는 하늘과 맞닿아 있으며, 동쪽을 내려다보면 동해의 푸른 바다가 바라보인다.

드넓은 고랭지배추밭 저 너머 ‘매봉산 바람의 언덕’ 풍력발전기가 그 웅장함을 뽐내고 있고, 그 뒤로는 아스라이 함백산(1573m)이 보인다. 하나, 둘, 셋, 넷… 열일곱. 매봉산 바람의 언덕에 있는 풍력발전기 숫자도 헤아려 본다.

백두대간 능선 아래의 귀네미마을은 주변 산세가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형상이어서 겨울의 거센 바람도 피해갈 듯하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귀네미마을에서 하룻밤 묵고 새벽 일찍 올라와 일출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최고봉 전망대에서 내려와 백두대간 동남단으로 가는 비포장 임도는 참으로 멋진 풍경을 자랑한다. 발아래에 비탈진 배추밭 사이로 귀네미마을은 Y자 골짜기를 따라 30여 채의 한옥이 아담하게 들어 서 있다. 건너편 능선에는 6기의 풍력발전기가 배추밭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해 낸다.

귀네미 마을회관에 내려와 일행과 준비해 온 간식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귀네미마을 주변에는 이렇다 할 식당이나 편의시설이 전혀 없어 사전에 먹을 것을 준비하고 와야 한다. 과거에 민박과 향토음식 체험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다.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귀네미를 찾는 여행객은 전혀 볼 수 없다. 2008년 9월 1박2일 프로그램으로 널리 알려져 한때는 많은 여행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지만, 지금은 그 유명세가 시들해진 듯 찾는 이들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민박도 음식체험관도 휴업 상태다. 다만 배추가 파랗게 익어가는 7~8월에만 여행객이 반짝 몰릴 뿐이다.

마을회관에 들어가 노인들에게 물 좀 보충하겠다고 양해를 구하니 어서 들어오란다. 물을 받으면서 노인들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본다. 올해 배추농사가 잘 되었냐고 여쭤보니, 올해는 전국적으로 작황이 좋아서 좋은 가격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마을에는 20여 가구만 남았는데 농사일이 고되다고 했다. 7~8월인 여름 한철 배추밭 풍경을 보겠다고 사람들이 몰려와 농사일이 여간 불편하지 않다며 짜증 섞인 말씀을 하시며, 그 외에는 사람들 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배추 농사는 4월부터 시작해 하우스에서 씨앗을 틔워 한 달 정도 모종을 키우고, 5월 중순부터 모종을 고랭지밭에 심는데 이렇게 심은 모종은 2개월이면 거의 자라 수확할 수 있다. 배추 출하시기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이 마을은 8월 말~9월 초에 집중된다. 따라서 이 시기를 놓치면 ‘초록의 바다’를 보기 위해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화려한 꽃밭길을 달리는 번천리 임도

이국적인 자작나무가 도열한 번천리 임도
이국적인 자작나무가 도열한 번천리 임도
번천리 임도는 길에까지 온갖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나 있다.
번천리 임도는 길에까지 온갖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나 있다.

노인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단지내 중앙길로 올라간다. 이번엔 단지내 중앙길을 가로질러 번천리 임도를 달린다. 마을회관 삼거리에서 시작하는 단지내 중앙길은 대체로 완만하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들과 아주머니들이 얼마 남지 않은 배추 수확을 위해 힘겹게 배추밭 사잇길을 따라 올라가는 모습이 애처롭다.

마을회관에서 중앙로를 따라 끝까지 올라가면 아까 지나왔던 능선길을 다시 만난다. 여기서 우측으로 100m 정도 가면 왼쪽 산쪽을 바라보면 한 그루의 나무가 외로이 서 있다. 한때는 ‘왕따나무’ 또는 ‘고독나무’라고 불렸으나 ‘1박2일’ 프로그램에서 이승기가 이 나무를 배경으로 깃발을 꽂은 곳이라고 해서 ‘이승기나무’가 되었다. ‘이승기나무’가 있는 장소가 백두대간 줄기이며, 왼쪽으로 임도가 보인다. 이승기나무에서 북쪽 방향으로 번천리 임도가 4.7㎞ 개설되어 있어 낭만적인 라이딩을 기대해도 좋다.

이승기나무에서 300m 가량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면 ‘백두대간 등산안내도’와 ‘번천 국유임도’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여기서부터 임도가 끝나는 지점까지 계속 내리막이다.

번천리 임도의 특징은 순도 98%의 내리막과 임도 주변에 다양한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환상의 꽃밭길이라는데 있다. 때마침 야생화와 구절초가 지천으로 피어 있어 라이딩 내내 어쩔 수 없이 꽃밭을 밟고 가야해 꽃들에게 상당히 미안했다. 자작나무 군락지도 있어 가을 단풍이 물들 즈음에는 야생화와 더불어 화려한 색상에 둘러싸이는 몽환적인 라이딩 코스가 될 것 같다.

길게 이어진 내리막길. 라이더는 본능적으로 질주하고픈 습성이 있다. 그러나 이 야생화 꽃밭길은 질주를 허락하지 않는다. 꽃들은 자신을 예쁘게 바라봐주고 살포시 즈려밟고 가달라는 뜻으로 바람에 몸을 맡겨 흔들어 댄다. 그 답례로 야생화도 감상하며 느긋하고 여유있게 지나야 한다.

환상의 임도 다운힐을 마치고 나면 개울이 앞을 가로 막는다. 이 개울은 하장면 번천리에서 내려오는 번천으로 검룡소에서 흘러나오는 골지천과 광동호에서 만나 남한강으로 흘러가는 한강의 최상류이다.

개울가 끝에서 아무리 좌우를 살펴봐도 수풀만 우거져 있고 마땅히 우회하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환상적인 꽃밭길을 꿈꾸듯 취해서 달려 왔건만, 꿈이 확 달아나는 순간이다. 어쩔 수 없어 신발과 양말을 벗고 자전거를 둘러메고 도하를 강행한다. 문제는 여름 장마철이다. 물이 불어나면 다시 되돌아가거나 다리가 있는 마을까지 좌우 산기슭으로 돌아나가는 수밖에 없다.

지난겨울에 찾았던 귀네미마을. 눈 덮인 겨울 풍경도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
지난겨울에 찾았던 귀네미마을. 눈 덮인 겨울 풍경도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

번천을 건너면 외딴집 한 채가 나오는데, 이곳을 통과하면 28번 지방도가 바로 있다. 하류방향으로 좌회전해서 약 7㎞를 달리면 출발지인 하장면사무소가 나오고 32㎞의 짧은 라이딩은 끝난다. 하장면에는 식당이 여럿 있고 모텔도 있다. 이곳에서 숙박과 식사를 해결하면 된다.

강원도 산간지역을 다니다 보면 산자락 높은 곳에 조각보처럼 펼쳐진 밭을 종종 본다. 조각 밭들이 모여 이룬 고랭지 경작지다. 태백에는 이름난 고랭지배추밭이 두 곳 있는데, 가장 이름난 곳은 역시 매봉산(1303m)이다. 매봉산 능선에는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흔히 ‘바람의 언덕’이라 불린다. 또 하나는 귀네미마을 고랭지배추단지다. 해마다 8월 전후로 새파란 배추밭과 9대의 풍력발전기가 장관을 이룬다.

매봉산 바람의 언덕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지만, 귀네미마을은 그나마 이름값이 덜한 덕에 한결 여유 있게 돌아볼 수 있다. 일부러 배추밭 유람에 나서는 건 자연과 인공이 빚어낸 빼어난 조화미를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태백의 이 두 곳과 평창의 대관령 고랭지채소밭이나 강릉 안반데기는 한여름 자전거여행지로 더 없이 좋다. 올해가 늦었다면 내년을 꼭 기약하길 바란다.

태백 귀네미마을 (32km)
태백 귀네미마을 (32km)

코스 주변 숙식 정보

.숙박 : 광동파크장(033-552-0811), 소나무펜션(010-4365-3736)

.식당 : 고하네식당(033-553-5215), 우리식당(033-552-7671)
         동원식당(033-553-5969), 광동식당(033-552-0227)
         광동민물매운탕(033-553-2107)

‘배추고도’ 태백 귀네미마을과 까마득한 하늘길

글·사진 이윤기(자전거생활 여행사업부 이사)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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