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투르 드 업힐’에서 시즌 첫 투어

바이크조선

입력 : 2015.04.22 09:40

서울 근교의 첩첩산중, 고개 넘어 또 고개길

봄을 기다리는 것이 너무 지루하고 답답해서 그냥 봄을 앞당기기로 했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2월 말의 시즌 첫 라이딩이었다. 이왕 하는 것, 힘든 코스를 골라 최대한 빨리 몸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고른 곳은 양평의 산악지대. 동호인들이 ‘투르 드 업힐’이라고 부르는 ‘고개 밀집지대’다.
양수역에서 출발해 벗고개 다음으로 만나는 서후고개를 넘으면 갑자기 강원도 같은 산간지대로 들어선다. 정배리의 문호천에서 섣부른 봄기운을 느껴본다.
양수역에서 출발해 벗고개 다음으로 만나는 서후고개를 넘으면 갑자기 강원도 같은 산간지대로 들어선다. 정배리의 문호천에서 섣부른 봄기운을 느껴본다.

“헉헉!” “끙끙!”

숨은 목에 차오르고, 한계에 이른 심장은 터질 듯이 고동친다. 다리 근육은 근력이 고갈되어 곧 주저앉기 직전이다. 얼굴은 고통과 체력의 한계로 잔뜩 일그러진다.

지금 우리는 경기도 양평의 ‘투르 드 업힐’ 코스의 첫 관문인 벗고개를 오르고 있다.

‘왜 자진해서 이 힘든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마치 하늘로 이어진 듯 눈앞으로 아득히 펼쳐진 오르막을 보면서 저절로 이런 자문을 하게 된다. 몸과 마음 모두 ‘더 이상은 안 돼!’ 비명을 지르며 고역에 겨워한다. 고갯길은 끝이 어딘지도 모른 채 급하게 치솟아 있고, 자전거는 걷는 속도와 진배없이 겨우 겨우 비틀대며 삐적삐적 나아간다.

양수리까지 와서 두물머리를 지나칠 수야 없다. 언제나 연인들의 성지, 호반에는 벌써 봄빛이 나른하다.
양수리까지 와서 두물머리를 지나칠 수야 없다. 언제나 연인들의 성지, 호반에는 벌써 봄빛이 나른하다.

시즌 첫 코스가 ‘투르 드 업힐’이라니

나쁜 상황은 이뿐만이 아니다. 겨우내 빈둥거리느라 체중은 더 늘었고, 격한 운동을 하지 않아 몸 컨디션은 지난 가을의 30% 수준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혼자가 아니다. 이번 시즌 첫 장거리 라이딩이기도 한 오늘, 일행은 나를 포함해서 넷.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의 박인철, 강혁 팀장 그리고 가장 젊은 김인호 대리(신세계아이앤씨)다. 두 팀장은 40대 중반, 김 대리는 40대 초반이다. 내 나이를 묻기에 갑자기 ‘쉰’이라는 답이 나오지 않아 스스로도 놀랐다. 쉰이 된 것도 처음이고, 쉰이라고 답한 것도 처음이어서 적응이 되지 않았나 보다.

나는 이번 투어의 코스 설정과 안내를 맡았고, 신세계의 세 세람은 자원해서 이 힘든 라이딩에 도전한, 용감하고 한편 무모한(?) 분들이다.

또 한 가지 다행스런 것은 초봄처럼 포근한 기온과 가을 같은 푸른 하늘이었다. 걱정했던 황사도 씻겨나가 대기는 투명했다. 이런 날, 이 한가로운 산길을 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하고 자유로운가! 하지만 업힐의 이 고역을 왜 나서서 즐기는가. 아니, 고통을 즐긴다는 역설이 가능한가? 가능하다! 자전거를 타고 오르는 고갯길에서만!

서후고개를 오르는 ‘신세계’ 소속 세 동호인. 이제 곧 화사한 벚꽃길로 변하면 꽃들의 응원 덕에 업힐이 덜 힘들까
서후고개를 오르는 ‘신세계’ 소속 세 동호인. 이제 곧 화사한 벚꽃길로 변하면 꽃들의 응원 덕에 업힐이 덜 힘들까

양평 ‘투르 드 업힐’

언제부터인가 일부 동호인들이 양평 일대의 고개를 연거푸 오르는 루트를 ‘투르 드 업힐(Tour de uphill)’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유명한 투르 드 프랑스에 빗댄 이름이다.

두물머리로 유명한 양수리에서 출발해 벗고개(벚고개라고도 함)~서후고개~명달고개~다락재~비솔고개~용문으로 이어지는, 5개의 고개를 넘어 90km 이상을 달리는 악몽 같은 코스다. 하지만 이들 고개는 대관령(832m), 운두령(1014m), 한계령(922m) 같은 강원도의 큰 고개에 비하면 훨씬 낮다. 해발기준으로 벗고개 237m, 서후고개 312m, 명달고개 341m, 다락재 270m, 비솔고개 390m에 불과하다. 그러나 고개는 해발고도가 아니라 초입에서 고갯마루까지의 실제 비고(比高)와 경사도, 길이가 중요하다. 1000m가 넘는 운두령도 평창 쪽에서 오르면 비고는 400m에 불과하고 경사도 역시 8% 내외, 길이도 4km 정도다.

힘들게 올라온 고갯마루에서 잠깐의 휴식은 실로 꿀맛이다. 조금 전의 고역은 순식간에 추억이 된다.
힘들게 올라온 고갯마루에서 잠깐의 휴식은 실로 꿀맛이다. 조금 전의 고역은 순식간에 추억이 된다.

반면 양평의 고개들은 저지대에서 시작되어 비고가 200m 정도 되고, 오르막 길이는 2km 내외지만 경사도가 10%를 넘는 곳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 절대 만만한 곳이 아니다. 경사도를 나타내는 %는 수평으로 100m 갈 때 수직으로 몇 m가 높아지는지를 나타내며, 각도와는 다르다. 경사도 100%는 각도로 환산하면 45도가 되므로, 각도는 % 수치의 절반 정도라고 보면 된다. 일반적으로 8% 이상이면 상당한 경사가 느껴진다.

업힐은 자전거에게는 최악의 고역이다. 하지만 이 고역을 자진해서 즐기는 사람도 많다. 오르막만 오르는 힐클라임(Hill climb) 대회는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인기다.

정배리 문호천 주변의 산간풍경. 길가에는 예쁜 전원주택이 즐비해서 심심산골이 세련된 분위기를 풍긴다.
정배리 문호천 주변의 산간풍경. 길가에는 예쁜 전원주택이 즐비해서 심심산골이 세련된 분위기를 풍긴다.

자전거도, 대부분의 사람들도 꺼려하는 업힐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땀과 노력의 승리요, 몸과 정신력의 건재를 증명하는 희열이다. 고갯마루에 서서 힘겹게 올라온 길을 내려다볼 때의 성취감과 보람은 힘든 인생여정을 통과해서 되돌아보는 달관의 심정과도 비슷하다. ‘과연 내가 저 힘든 길을 올라왔단 말인가!’ 하는 스스로에 대한 감탄이 일고, 그런 경탄은 자신감과 자부심으로 승화되어 일상에 생동력을 더해주는 자양분이 된다.

“일단 원래 코스로 가보지요!”

양수역에 모여 출발하기 전 지도를 펴놓고 코스를 설명했을 때, 세 사람의 표정이 복잡했다. 나름대로 자전거 경력이 있는 분들이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겨우내 자전거를 제대로 타지 못해 컨디션이 최고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투르 드 업힐’ 코스를 조금 변형시켜 다락재만 넘고 북한강 쪽으로 빠질 계획이었다. 컨디션을 감안해서 도중에 서후고개를 제외하는 단축코스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양수역에서 북한강 변의 수입리까지 원래코스는 35km, 단축코스는 30km 정도다.

“일단 원래 계획대로 가보죠. 첫 번째 벗고개를 넘고 나서 컨디션을 보고 단축코스로 갈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산골의 정취가 물씬한 ‘정배리식당’. 닭백숙 전문이지만 떡만두국도 별미다.
산골의 정취가 물씬한 ‘정배리식당’. 닭백숙 전문이지만 떡만두국도 별미다.

강혁 팀장이 타협안을 내놓았다. 명달고개를 넘으면 나는 다락재를 넘어 동쪽으로 향하고, 세 사람은 서쪽으로 갔다가 북한강을 만나는 수입리에서 박인철, 강혁 팀장은 춘천으로, 김인호 대리는 양수로 가기로 했다. 고개 코스만 함께 타는 셈이다.

이렇게 해서 일행은 먼저 벗고개를 넘었다. 곧추선 것 같은 벗고개 업힐에서 다들 몸과 마음이 놀랐지만 희한하게도 어떤 고개도 넘는 순간 모든 고통을 바로 잊는다.

뿌듯한 성취감과 함께 신나는 다운힐이 보상해주기 때문이다. 벗고개를 내려선 다음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원래의 계획 코스로 향했다. 서후고개는 쉴 틈 없이 바로 들이닥쳤다. 벗고개를 넘어서면 강원도를 방불케 하는 첩첩산중이다. 하지만 길가에는 예쁜 전원주택과 펜션이 즐비해서 산뜻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이런 산골짜기까지 전원주택으로 가득하다니… 역시 산은 깊어도 서울 근교인가 보다.

서후고개는 벗고개보다 길고 높지만 경사도는 조금 덜하다. 서후고개를 넘어 정배리의 문호천 개울가에서 잠시 노니는 사이 시간은 오후 1시가 가깝다. 명달고개까지 넘고 점심식사를 하려던 계획을 바꿔야 했다. 식후 곧장 업힐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다들 시장한 표정이다. 오전 10시30분에 양수역에서 만나 두물머리를 거쳐 휴식과 사진촬영 등으로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명달고개가 가장 길고 가파르다. 전망도 곧잘 트여서 뭇 산들이 저 아래로 보인다.
명달고개가 가장 길고 가파르다. 전망도 곧잘 트여서 뭇 산들이 저 아래로 보인다.

심심산골 정배리에는 조촐한 식당이 한 곳뿐이었다(정배리식당). 선택의 여지없이 들어갔는데, 추위를 막기 위해 'ㅁ'자 형태로 지은 옛날 슬레이트집 안마당에는 밝은 햇살이 내리쬐어 정겹기 짝이 없다. 실내를 마다하고 마당에 둘러 앉아 푸짐한 떡만두국과 시골 냄새 물씬한 야채 반찬으로 허기를 달랬다. 땀 흘린 후의 막걸리 한 잔은 기가 막혔고, 이런저런 얘기로 점심시간도 훌쩍 늘어졌다.

명달고개의 위엄 그리고 이별

드디어 마지막 업힐, 그러나 최난 구간인 명달고개다. 초입부터 산기슭을 감고 오르는 고갯길이 아득한 것이, 어디 유명한 큰 고개 같다. 비고 240m, 길이가 3.5km이니 서울의 대표적인 업힐코스인 남산이나 북악산을 능가한다. 경사도는 8~10% 정도인데, 일부 커브 구간은 15%를 넘는다. 하지만 이미 벗고개와 서후고개를 넘은 가닥이 붙은 몸. 천천히, 차근차근 오르면 결국 오르지 못할 고개는 없다. 벗고개와 서후고개를 오르면서 몸도 풀렸다. 가장 힘들어한 박인철 팀장도 내리지 않고 완주했다. 힘들지만 다들 해냈다는 성취감에 환한 얼굴이다.

다락재는 고갯마루가 긴 등고선을 이뤄 어디가 제일 높은지 가늠하기 어렵다. 첫 번째 고지는 양평과 가평의 경계를 이룬다. 고개를 넘으면 청평호반까지 기나긴 다운힐이다.
다락재는 고갯마루가 긴 등고선을 이뤄 어디가 제일 높은지 가늠하기 어렵다. 첫 번째 고지는 양평과 가평의 경계를 이룬다. 고개를 넘으면 청평호반까지 기나긴 다운힐이다.

명달고개는 오르기 힘든 만큼 길고 짜릿한 내리막이 반겨준다. 노문리까지 거의 6km에 달하는 다운힐이 기다린다. 뺨을 스치는 바람은 더 이상 차갑지 않다. 우리는 쾌속으로 내달려 명달계곡 6km를 순식간에 지나쳤다. 고속으로 질주하느라 경치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겨우내 답답했던 몸과 마음이 확 풀리는 느낌이다.

서울춘천고속도로가 지나는 노문삼거리는 다락재의 기점이기도 하다. 이제 산악구간이 끝났을 뿐이지만 헤어질 시간이다. 나는 다락재를 넘어 청평댐~북한강길을 거쳐 양수역까지 40km 이상을 혼자 가야 한다. 가장 젊고 패기와 실력이 넘치는 김인호 대리는 곧장 양수역으로 돌아간다. 걱정되는 것은 춘천까지 가서 인천행 마지막 버스를 탈 계획인 박인철, 강혁 팀장 두 사람. 아직 춘천까지는 50km 이상을 더 가야 한다. 오후 3시30분, 시간 여유는 있지만 산골의 해는 기우뚱 내려앉았고 구름도 천천히 밀려들고 있다. 헤어지는 여행자는 서로 걱정은 하되, 책임질 수는 없는 법. 그들의 안녕을 빌며 나는 텅 빈 다락재를 댄싱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양수역으로 돌아오는 도중의 북한강 자전거길은 2월의 평일 오후여서 텅 비었다.
양수역으로 돌아오는 도중의 북한강 자전거길은 2월의 평일 오후여서 텅 비었다.

청평호 거쳐 북한강 자전거길로 복귀

이후 나는 화야산과 뾰루봉을 북쪽으로 돌아 청평호반~신청평대교를 거쳐 북한강 자전거길에 진입했다. 출발지인 양수역까지는 이제 강변만 쭉 따라가면 되었다. 하지만 미처 손보지 못한 뒷바퀴의 스포크가 풀려 속도를 내지 못한데다 오후 늦게는 비까지 흩뿌려 혼자 달리는 강변길은 못내 쓸쓸했다. 나선 김에 마석 방면의 자전거길도 일부 가보느라 주행거리는 80km에 달했다(순환코스는 73km).

춘천까지 가는 두 팀장이 걱정되었는데, 뒤에 듣기로 두 사람은 결국 춘천까지 못가고 가평에서 일정을 마쳤다고 한다. 김 대리는 양수역까지 무사히 복귀했다고.

겨울 끝에 고개 4개를 연거푸 넘어 힘겨웠지만 그만큼 즐겁고 강렬한 추억으로 남은 2015년 첫 투어, 쉰 넘어서의 첫 장거리였다.

글·사진 김병훈(자전거생활 발행인)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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