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주 1시간40분대 주파!

바이크조선

입력 : 2015.05.11 09:54

KTX 타고 반나절에 다녀오는 광주~나주 영산강 길

오송역에서 광주송정역까지 호남선 KTX가 개통되면서 수도권과 호남이 한층 가까워졌다. 서울 용산역에서 광주송정역까지 1시간40분대에 주파하니, 실로 반나절 생활권이다. 자전거를 가져가면 광주에서 나주까지 영산강을 따라 반나절 투어도 가능하다. 공주역에서 정읍역까지 광활한 평야지대를 직선으로 질주하는 쾌감도 특별하다.

	호남선 KTX 개통으로 수도권에서 광주~나주 반나절 라이딩도 가능해졌다. 나주역 플랫폼에서 서울행 KTX를 기다리며
호남선 KTX 개통으로 수도권에서 광주~나주 반나절 라이딩도 가능해졌다. 나주역 플랫폼에서 서울행 KTX를 기다리며

‘여기서는 시속 300㎞도 느리게 느껴지는구나!’

창밖으로 펼쳐진 광활한 벌판을 KTX는 시속 300㎞를 넘나들며 쾌속 질주했다. 하지만 너무나 넓은 평야는 이런 엄청난 고속에도 한동안 끝을 보여주지 않는다. 공주를 지나면서 시작된 평야지대는 정읍에 이르기까지 90㎞나 계속되어 시속 300㎞의 초고속으로도 통과하는데 30분 정도가 걸린다(익산역 정차 포함). 외국의 대평원을 끝없이 달리는 광활한 쾌감이 부러웠는데, 메울 수 없던 그 질시를 여기서 온전히 만회한다.

경부선을 비롯해 KTX의 다른 노선은 산악지대를 지나느라 터널과 커브가 많아 경치와 속도감을 제대로 느끼기가 쉽지 않다. 터널도 그냥 터널이 아니라 기나긴 장대 터널이 수두룩하다. 동대구~부산 간은 터널이 60%에 달하고, 금정터널은 길이가 무려 20.3㎞에 이르러 거의 지하철 느낌을 준다.


	작게 접히는 브롬톤은 KTX 짐칸에 쏙 들어간다.
작게 접히는 브롬톤은 KTX 짐칸에 쏙 들어간다.

반면 국내최대의 평야지대를 관통하는 호남선 KTX는 광활한 대지와 온전한 속도감을 그대로 만끽하게 해준다. 광대한 평면과 장대한 직선의 겹침은 곡선과 커브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사뭇 생경스럽다. 특히 공주역~정읍역 사이 90㎞ 구간에는 터널이 거의 없고 지평선이 아득한 평야가 펼쳐져 국토에 대한 괄목상대를 금할 수 없다.

광주에서 나주까지 영산강길 핵심 투어

광명역에서 오전 10시52분에 출발하는 KTX 513편에 올랐다. 호남선 전용 KTX 산천은 와인 레드 컬러가 아주 고급스럽고 중후한 느낌을 주지만, 내가 탄 열차는 일반 객차여서 경부선과 같은 회색과 파란색 조합 그대로다. 광주송정역에서 내려 영산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 나주역에서 3시32분발 KTX로 올라올 예정이다. 호남선 KTX 개통에 맞춰 반나절만에 광주~나주를 달려보고 오는 속성 투어가 가능한지  테스트해보기 위해서다. KTX 전용선은 광주송정역에서 끝나지만 대부분의 열차는 이후 일반 선로를 따라 나주를 거쳐 목포역까지 운행한다.


	광주의 새로운 관문이 된 광주송정역. 지하철 1호선이 지나고 공항도 가깝다.
광주의 새로운 관문이 된 광주송정역. 지하철 1호선이 지나고 공항도 가깝다.

광명역을 출발한 열차는 곧바로 속도를 올려 금방 시속 300㎞에 육박한다. 광명에서 광주송정역까지는 전체가 KTX 전용선로여서 역에 정차할 때 외에는 대부분 제속도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서울역~광명역 구간, 대전·대구 도심 구간은 일반 선로를 이용해서 시속 140㎞ 정도가 고작이다. 원래 계획은 서울~부산이 100분 주파였지만 무정차로도 2시간18분이나 걸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대전과 대구 도심 구간 전용선은 6월 개통 예정).

호남선 KTX는 금강 자전거길과 새재 자전거길을 연결하는 오천길의 미호천 옆에 있는 청주 오송역에서 경부선과 나뉜다. 미호천을 건너 정남쪽으로 방향을 튼 열차는 순식간에 금강을 건너고 계룡산을 비껴서 공주역으로 들어섰다. 공주역을 지나면 본격적인 들판지대가 시작된다. 산은 멀찍이 물러나고 들은 점점 넓어져 눈과 가슴이 후련해지고, 열차는 최고속도를 한동안 유지한다.


	광주송정역 남쪽의 장록교에서 황룡강 자전거길을 따라 나주까지 영산강 투어를 시작한다.
광주송정역 남쪽의 장록교에서 황룡강 자전거길을 따라 나주까지 영산강 투어를 시작한다.

익산을 거쳐 정읍에 이르면 오랜만에 산간지대가 나오면서 전남북을 나누는 노령터널로 들어선다. 노령터널 주변의 방장산(743m)과 입암산(626m)은 실제 높이보다 훨씬 웅장하고 까마득하다. 대평원 끝자락에 돌연 솟아 있기 때문이다.

노령터널을 지나면 터널과 들판이 연속되는 구릉지를 잠시 달리다왼쪽으로 무등산의 듬직한 봉우리가 보이면서 광주로 접어든다. 광주송정역 12시26분 도착. 광명역에서 1시간34분 걸렸다. 빨라서 편하기야 하지만 이 좁은 땅이 더 좁아지는 것 같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살짝 두렵기까지 하다. KTX는 전국 어디든 3시간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으니 비싼 돈 내고 타서 빨리 쫓겨나는 것 같은 허망한 느낌마저 든다.


	황룡강과 영산강 합수점 근처에서는 광주공항을 이륙하는 전투기를 가까이 볼 수 있다.
황룡강과 영산강 합수점 근처에서는 광주공항을 이륙하는 전투기를 가까이 볼 수 있다.

광주 황룡강에서 나주 영산포까지

광주 서쪽 외곽에 자리한 광주송정역은 광주의 새로운 관문이 되었다. 지하철이 지나고 공항도 가까워 앞으로 광주의 교통중심이 이쪽으로 옮겨올 것 같다. 평일임에도 역사가 붐비고 주변의 상가도 활기를 띤다.

역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신덕지하차도가 있다. 지하차도를 지나면 영산강의 지류인 황룡강이다. 장록교를 건너 강 서편 둔치에 자전거길이 나 있다. 여기서 나주까지의 중간지점인 승촌보까지는 8㎞. 나주에서 3시32분 열차이니 여유를 부려도 되겠다(총 주행거리는 26㎞).


	그윽한 운치가 감도는 호가정. 전망도 좋다.
그윽한 운치가 감도는 호가정. 전망도 좋다.

갈대가 가득한 둔치 길은 한가롭다. 도시에서는 점점 멀어지지만 갑자기 엄청난 굉음이 하늘을 울린다. 바로 옆 도산동에 자리한 광주비행장에서 전투기들이 이륙하는 소리다. 광주송정역에서 4㎞ 가량 내려오면 활주로와 직선을 이루는 위치가 되어 하늘로 비상하는 전투기들을 바로 볼 수 있다. 잠시 멈춰 작은 에어쇼를 감상한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는 속도와 굉음에 눈과 귀가 멍하다. KTX 300㎞, 전투기 1000㎞, 그런데 나는 15㎞이니 이 터무니없는 불균형에 몸과 정신이 얼른 적응되지 않을 법도 하다.

황룡강이 영산강과 합류하면서 물줄기는 한층 도도해졌다. 조금 더 내려가면 오른쪽 강언덕 위에 멋진 정자가 서 있다. 영산강6경으로 꼽히는 호가정(浩歌亭)이다. 잠시 정자에 올라 풍경을 감상한다. 영산강과 무등산 사이에 펼쳐진 광주는 대도시임에도 상당히 쾌적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강과 산, 들판이 어우러진 후광 덕분 아닐까 싶다. 서울 한강보다 더 자연스럽고 장대한 영산강 둔치공원은 도시의 잿빛을 한결 누그러뜨려 준다.


	입구에만 가도 시큼한 내음이 감도는 영산포 ‘홍어의 거리.’ 홍어 식당이 즐비하다.
입구에만 가도 시큼한 내음이 감도는 영산포 ‘홍어의 거리.’ 홍어 식당이 즐비하다.

둑길을 조금 가면 저 멀리 승촌보가 보인다. 영산강에는 승촌보와 나주 하류의 죽산보 두 개의 보가 있다. 승촌보 주변의 공원은 대단히 정갈하고 다채롭다. 축구장부터 고인돌공원, 오토캠핑장, 영산강문화관, 산책로, 잔디밭이 조성된 직경 1㎞ 남짓한 섬 모양의 공원과 전망대 등의 시설은 이미 명소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승촌보를 건너 영산강 서안길을 따라 남하하면, 왼쪽 강 건너로 광주전남혁신도시(빛가람도시)가 신기루처럼 보인다. 서울 삼성동에 있던 한국전력 본사가 신도시의 중심에 우뚝하다.

이제 곧 나주다. 한때 전주와 함께 호남 최대의 도시였던 나주는 작은 전원도시로 축소되었지만 혁신도시와 KTX를 품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한다. 강변대로(영산강변로)는 대도시의 외곽을 연상케 하고, 빛가람도시로 이어지는 다리와 길이 시원시원하다. 영산대교 아래는 유채꽃이 한창이다. 며칠 뒤부터 시작하는 유채꽃 축제를 앞두고 벌써부터 사람들로 붐비고, 흥겨운 음악이 흐른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음악은 남도의 분위기가 물씬한 타령조다. 축제 마당에서조차 어딘가 구성진 느낌이 드는 것은 이 애조 띤 가락 때문일 것이다.


	승촌보 주변은 다채로운 공원으로 꾸며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승촌보 주변은 다채로운 공원으로 꾸며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70년대까지 홍어를 실은 어선이 드나들었던 영산포는 불 꺼진 내륙의 등대가 옛시절을 말해줄 뿐이다. 홍어의 거리는 초입에 들어서면 벌써 시큼한 냄새가 감돈다. 홍탁을 좋아하지만 오늘은 때가 아니구나.

어영부영 하다 보니 목적지로 삼은 백호임제기념관까지 가기는 틀렸다. 영산포에서 북안 길을 따라 4㎞ 정도 더 가야하는데, 남은 시간은 30분 정도이니 도리가 없다. 임제(林悌, 1549~1587)가 마음에 끌린 것은 그가 벼슬길을 마다하고 방랑한 풍류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조선 중기의 명기(名妓) 황진이(생몰년 미상) 무덤 앞에서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는다/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하고 읊었던 그 낭만파 시인이다. 하지만 황진이 무덤 앞에서 슬퍼한 그도 이미 백골이 된 지 수백년, 임제의 무덤 앞에서 그의 죽음을 슬퍼할 나를, 또 수백년 뒤 누군가가 슬퍼해줄까. 인생은 결국 이리도 짧고 무한 반복인 것을.


	나주 영산대교 아래 둔치는 유채밭이 질펀하다. 매년 4월 중순에는 유채꽃 축제도 열린다.
나주 영산대교 아래 둔치는 유채밭이 질펀하다. 매년 4월 중순에는 유채꽃 축제도 열린다.

나주역에서 계획대로 오후 3시32분발 KTX 518편을 탔다. 5시18분 광명역 도착. 오전 10시52분에 출발했으니 6시간26분만에 광주~나주 투어를 마치고 온 셈이다. 하루도 아니고 말 그대로 반나절이다. 아침에 출근했다가 일을 보고 나왔는데, 돌아와서도 아직 업무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니 다시 사무실로 가봐야겠다. 세상 참, 정신없이 빨라지고 좁아진다.

호남선 KTX
* 운행구간 : 용산-광명-천안아산-오송-공주-익산-정읍-광주송정-나주-목포.
※ 인천공항과 행신역 출발 또는 종착 편도 있음. 열차에 따라 정차역은 상이함
※ 용산~광주송정 거리 304㎞, 평균 1시간47분 소요.
* 운행회수 : 평일 64회, 주말 68회
* 요금 : 용산~광주송정 4만6800원(성인, 일반실 기준)

글·사진 김병훈(자전거생활 발행인)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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