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강 기나긴 물, 그 굽이굽이가 장수(長水)다

바이크조선

입력 : 2015.05.18 09:38


	비단강 기나긴 물, 그 굽이굽이가 장수(長水)다
4대강 가운데서도 금강 상류는 유난히 꼬불거리며 산천을 적셔 간다. 서해바다로 가려고 흘러내리다 막힌 곳에서 안간힘 쓰고, 다시 허리춤 풀어 놓고 흘러가는 천리 길, 그 시원도 조그만 샘, 뜬봉에서 시작이다. 장수가 긴 목숨(長壽)이 아니라, 긴 물(長水)을 뜻하니 긴 물이 아니면 어찌 목숨 또한 길게 갈 것인가. 남덕유산의 정기가 서(西)로 흘러내린 장수 땅에서 무주로 가는 강 언덕에 꽃비 내리는 봄이 더디 오고 있다.

	진안 죽도로 들어가는 갈대 숲길에는 봄물이 넘쳐흘러 산 아래 가뭄을 비웃 듯 한다.
진안 죽도로 들어가는 갈대 숲길에는 봄물이 넘쳐흘러 산 아래 가뭄을 비웃 듯 한다.

어김없이 물길은 산마루에서 결판이 난다. 뜬봉샘에서 흘러내리는 골짜기의 물도 고개를 넘지 못하고 북으로 고개를 돌린다. 수분령(480m)이다. 이름마저 물이 갈라진다는 판결이다. 고개 너머 남원으로 가는 요천은 섬진강물이 되고, 금강은 천리를 흘러 서해로 간다.

휴게소에 걸린 시 한편이 수분령의 옛 얘기 사설이다.


	비단강 기나긴 물, 그 굽이굽이가 장수(長水)다

바람도 오르다 쉬어 가고
구름도 내려서 자고 가는
정두고 가는 길손 안개 낀 수분령 고개
고개 마루 목로집 주모
섬진강 물줄기 따라 남해로 떠나가고
장돌뱅이 돌이 나그네 금장수 줄기따라
서해로 흘러간 마루터기
넘고 넘다 두고 간 간짓대귀 장끼타령
육자배기 남도 가락 상기도 올올창창
목 놓아 장단을 친다
( ‘수분령 고개’ - 고두영)


	장수읍 수분령고개에 있는 휴게소는 금강라이딩의 출발점이다.
장수읍 수분령고개에 있는 휴게소는 금강라이딩의 출발점이다.

10시가 다 되어가도 고원의 바람은 차다. 장수읍내까지 7㎞를 페달 한번 밟지 않아도 내려갈 수 있으니 몸 풀리기 전 느긋한 내리막이 고맙기 그지없다.

의기 논개는 장수의 자존

논개를 빼놓고 장수를 말할 수 없다. 갈 길이 멀어도 길섶에 붙어있는 논개 사당을 둘러보지 않고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두산저수지를 내려다보며 앉은 의암사(논개사당)의 봄풍경은 장수사람들의 자존심만큼이나 의연하다. 논개는 민족의 이름에 반열을 올리고 있으나 기실 진주 촉석루에서 왜 장을 끌어안고 순국했다는 것밖에 아는 게 없다. 전라도 장수 사람 논개가 어찌 경상도 진주 땅에서 죽었는지? 논개의 성이 주씨(朱氏)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주달문)를 일찍 여읜 논개는 어머니와 외삼촌댁에 살다가 부자집 첩이 될 뻔하다 당시 장수현감이던 최경회에게 억울한 사정이 알려져 어머니와 함께 종이 된다. 최경회가 진주병사로 부임하자 자라서 그의 첩이 된 논개도 따라가게 된다.


	금강의 최장발원지인 뜬봉샘(자료사진)
금강의 최장발원지인 뜬봉샘(자료사진)

임진왜란의 패전책임으로 최경회가 남강에 투신해 자결하자, 논개는 왜장의 승전 연회에 기생으로 가장해 술 취한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를 안고 남강의 고혼이 된다. 갑술(甲戌)년, 甲戌月 甲戌日, 술시(戌時)에 태어난 논개, 사람이 아니라 개의 운명으로 태어났다고 전한다. 비천한 기생이든, 첩이든 그의 운명은 이 민족에는 충절의 이름으로 만세에 남게 되었다. 이즈음 나온 어떤 책에는 최경회 장군의 아내 논개가 남편을 따라 죽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즈음 사람들에게 처(妻)와 첩(妾), 정실(正室)과 부실(副室)의 존재를 설명하기에는 무리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문경과 닮은 장수의 특산

장수는 전라북도에서도 서리가 가장 먼저 내리는 곳이다. 평균고도가 430m나 되는 산간이다. 남덕유(南德裕) 산의 정기가 동으로는 장안산을, 서로는 팔공산을, 남으로는 대망산을, 북으로는 장등산을 만들었다. 무주로 넘어가자면 오조개 고개를, 함양으로 넘어가려면 육십령을, 임실로 가려면 비행기재를 넘어야했다. 70, 80년대 다섯 해의 인구감소율이 21%여서 전북 평균(7%)의 3배나 되었다. 먹고 살기 팍팍했던 건 말할 나위가 없었겠다.


	장수읍 두산저수지는 논개 사당인 의암사를 포근하게 안아준다.
장수읍 두산저수지는 논개 사당인 의암사를 포근하게 안아준다.

대전-통영 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장수-익산 고속도로가 만들어진 발전이 이 깊은 산골의 가치를 다시 찾아 주었다. 일교차가 큰 날씨는 장수사과를 명품 반열에 올려놓았다. 오미자가 그렇고, 한우가 그렇다. 장수의 새로운 특산 3종을 꼽으니 어딘가 닮은 마을이 있지 않는가. 문경이다. 문경사과, 문경오미자, 문경약돌한우, 산비알에 매달려 살았던 깡촌, 일교차가 유난히 심한 자연의 품새를 서로 닮은 것이다.

장수는 곱돌 또한 유명하다. 돌솥과 불고기판, 절구 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장수 특산이다. 질 좋은 각섬석편마암이 그 재료다. 장수읍 대성리 구암부락이 특히 유명하다. 일제 때부터 금광, 몰리브덴광, 운모, 석면광산까지 다양했다. 제법 흥청거리던 굴 속 경기는 돌가루를 마셔 폐가 굳어지는 ‘굴병’이라고 불리는 규폐증 환자들만 남긴 채 진작 사라졌다.

자전거 타이어 바람을 넣으려고 읍내에 하나밖에 없다는 자전거가게를 찾아도 휴일이라 잠겨있다. 문을 연 오토바이가게 주인의 인정이 아니었다면 초입부터 꼬일 뻔 했다.


	1 마음 따뜻한 오토바이 수리점 주인이 아니었더라면 낭패 볼 뻔 했다. 2 금강 상류 호안공사 현장. 이제 어도설치는 빼놓을 수 없는 공사다.
1 마음 따뜻한 오토바이 수리점 주인이 아니었더라면 낭패 볼 뻔 했다. 2 금강 상류 호안공사 현장. 이제 어도설치는 빼놓을 수 없는 공사다.

더디 오는 산촌의 봄, 쫓기지 않아 좋은 길

아직도 실개천을 벗어나지 못한 강이 천천면에 접어들자 제법 굵어진다. 농번기 시골엔 마을 사람의 그림자를 만나기 어렵다. 늙은이들마저 모두 논밭에 엎드려 있고, 마을회관에선 저녁이 되어서야 문을 나서는 꼬부랑 촌로들이 문을 꼭꼭 닫고 있어 말하나 걸기가 어렵다. 그저 밥값 하느라 악을 쓰고 짖어대는 개들의 텃세에 발길을 멈추는 게 고작이다.

양철 상여집을 만난다. 천천면 장판리다. 그 예전 마을마다 상여집은 서낭당 고개 언저리에 있었다. 대낮에도 어둑한 그늘에는 죽은 자의 혼령이 그림자처럼 맴돌았다. 이따금 세상을 하직하는 늙은이를 배웅하고 돌아온 상여는 곡두를 벗어놓고 단청을 칠한 몸체를 해체한 채 다음 순번을 기다렸다. 지붕은 낮았고, 담벼락엔 돌이끼가 검버섯처럼 끼었다. 이제 마을은 상여의 마른 송판을, 칠성판 위에 누인 말라빠진 몸피의 무게조차 감당할 힘이 없다. 상여 맬 젊은이가 없어 읍내 장례식장으로 죽음의 무게가 쏠렸다.


	장수의 특산이자 상징이 된 사과
장수의 특산이자 상징이 된 사과
천천면 소재지 고금3거리에서 초행은 자칫 26번 국도를 따라 진안으로 가기 쉽다. 13번 국도를 따라 북상하다 오연3거리에서 726번 지방도로 좌회전이다. 이내 연평리학생야영장에선 동향면 방향으로 우회전해야 한다. 금강 물은 가막유원지를 지나 죽도에 이르지만 길이 끊겨 있는 탓이다. 하는 수 없이 신전리를 경유해 재를 넘는다. 겨우내 얼어붙은 것은 산천뿐이 아니다. 섶밭들 산촌생태마을의 봄도 손님 맞을 채비를 하느라고 기지개를 켠다. 고갯길엔 지난 겨울 뿌린 제설용 모래가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자전거의 얇은 바퀴가 튕겨져 나가리만큼 미끄럽다.

	상여집의 흔적은 읍내의 장의사를 안내하고 있다.
상여집의 흔적은 읍내의 장의사를 안내하고 있다.

산 아래 마을로 접어든다. 쓰러져가는 십자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동향면 성산리 윗열원마을이다. 놀랍게도 천주교 공소다. 문짝이 뜯겨나간 공소, 인삼밭을 매던 아낙은 무심하게 말한다. “이젠 이 마을에 천주교 신자는 한 사람만 남았지. 다들 죽고 없잉게….” 사람이 없으니 천주의 처소도 옮겨 갈 수밖에 없었으리라. 도회의 요지에 빛나는 성채로 들어앉은 교회와 사찰의 광휘가 오버랩 된다. 세상은 결국 돈 따라 사람 따라 움직이는 게 이치다. 검은 비닐이 느티나무 가지에 걸려 만장처럼 펄럭인다. 죽어가는 생명에 대한 진혼처럼 검은 손짓을 한다.

하향교에선 무주 안성에서 흘러오는 대양천을 만나 좌회전한다. 헛갈리는 삼거리에서 열어 보는 휴대폰 속의 지도는 유용한 가이드다. 천반산과 죽도를 만날 채비를 하며 대양천을 따라 두어 구비 돈다.


	1 고갯길 내리막엔 지난 겨울 뿌린 제설용 모래로 미끄럽기 그지없다. 2 장계성당 소속이었던 공소. 이젠 신자도 떠나가고 폐가가 되었다.
1 고갯길 내리막엔 지난 겨울 뿌린 제설용 모래로 미끄럽기 그지없다. 2 장계성당 소속이었던 공소. 이젠 신자도 떠나가고 폐가가 되었다.

내륙의 섬 죽도, 영화가 되는 풍광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중년의 사내들, 인적이 드물다 보니 자전거를 타고 가면 이것저것 생각도 많아지고 참견할 일도 생기는 법이다. 한 사내가 길섶 수풀에 들어가 나무 하나를 캐서 들고 나왔다. 발길을 멈추고 말을 걸었다.

“무슨 나무예요? 산수유인가요?” “아뇨, 생강나무지요이. 얼핏 산수유 같기도 하지만….” 이 마을 원주민은 아니지만 펜션공사를 하고 있는데 커피 한 잔 하고 가라고 권한다. 느릿한 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7년 전 박봉기 씨는 우연히 들른 천반산 아래 이 강마을에 홀랑 반했다. 집장사의 이력을 살려 허가를 내고 그는 이 깊은 산골에 터전을 잡았다. 얼굴에 쓰인 세월이 예사롭지 않다고 하자, 그는 유도대학(용인대의 전신)을 나온 지난날을 털어 놓았다. 서울 북악파크호텔의 나이트클럽 지배인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의 세월도 밤낮이 바뀌었던 듯하다. 군산에 살고 있는 친구가 새벽같이 와서 펜션 만드는 작업을 도와주고 있어 이만저만 고마운 일이 아니라 했다.


	진안 죽도로 가는 잠수보. 4륜구동 차량들이 심심찮게 찾는다.
진안 죽도로 가는 잠수보. 4륜구동 차량들이 심심찮게 찾는다.

그들의 대화엔 봄물처럼 희망이 넘쳤다. 커피 한 잔에 학창시절로 돌아간다. 전북대가 되어버린 이리농림고 농산물가공학과 동창생들의 이야기는 무용담이 된다. 박봉기 씨는 힘쓰는 일을 하게 되었고, 이종근 씨는 백화수복을 만드는 공장에 취직하여 나중에 오비씨그램이 된 술 회사에 평생을 바쳤다. 썸씽스페셜과 패스포트가 이 땅의 밤 문화에 윤활유 역할을 하던 시절, 생산과장으로 양주 맛을 지켜냈다. 강 언덕에 펜션을 대여섯 채나 짓는 동창생을 위해 여러 날을 새벽같이 군산에서 달려와 준 우정이 따뜻하다. 죽도의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단골 영화촬영지가 되어 때로는 스탭들 밥해 대느라고 분주하기도 하단다.

죽도는 내륙의 섬이다. 여행작가라는 말이 생기기 전 여행가 김인걸의 묘사는 더 구체적이다.


	동향면 성산리에서 만난 충렬사 사당
동향면 성산리에서 만난 충렬사 사당

얼른 들으면 섬 같지만 죽도는 섬이 아니다. 섬처럼 보인 다해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을 뿐이다.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면과 상전면 접경에 있는데, 남쪽인 장수에서 흘러 올라오는 장수천과 동쪽인 무주군 안성쪽에서 흘러오는 안성천이 ‘파(巴)’자 형으로 구비쳐 합류되는 지점 중간에 솟아 있어 멀리서보면 섬처럼…
(한국의 비경, 김인걸, 철도문화사)

죽도라는 이름은 근처에 산죽이 많아 죽도라 불렸고, 30년 전에  그 오목한 죽도의 목을 발파하여 직강으로 연결해 오늘날 죽도에 폭포가 생겨났다. 소반처럼 납작하다 해서 이름 붙은 천반산(天盤山, 647m)에는 풍광뿐이 아니라 역사의 흔적도 서려 있으니 정여립을 빼고는 이야기가 안 된다.


	용담호의 바닥이 드러나자 끊어진 옛길도 모습을 드러낸다.
용담호의 바닥이 드러나자 끊어진 옛길도 모습을 드러낸다.

금강 상류의 두 개 물줄기 만나는 곳, 갈증보다 심한 목마름으로 어두운 시대를 살아갔던 한 사내의 좌절된 꿈이 묻힌 곳, 미완의 혁명은 전설이 되고, 일화가 되고, 야담이 되어 풍편에 떠도는 곳이 죽도다.
(답사여행의 길잡이 13, 정여립, 기축옥사 그리고 죽도)

정여립(鄭汝立, 1546~1589)이 누구인가. 임진왜란 직전 어지러운 시절의 인물이다. 두 개의 극명한 평가가 그를 일으켜 세운다. ‘꿈꾸는 혁명가’인가. ‘왕조에 맞선 모반의 괴수’인가. 동인(東人)에게 글을 배워 서인(西人)에게 미움을 받고 출세를 포기한 강골, 같은 전라도 안에서도 전주에서는 왕권에 도전한 무엄한 역도(逆徒)였고, 김제에서는 대동계를 조직하여 반상(班常)이 같이 잘 살자고 한 영웅이었다.


	1 예비 배터리로 교체하자 전기자전거는 다시 싱싱해졌다. 2 물에 잠겼던 옛 길섶 갈대는 지난 가을부터 가뭄의 고초를 겪었나보다.
1 예비 배터리로 교체하자 전기자전거는 다시 싱싱해졌다. 2 물에 잠겼던 옛 길섶 갈대는 지난 가을부터 가뭄의 고초를 겪었나보다.

그는 기축옥사로 인해 1천여 명의 선비가 처형되고 호남이 역모(逆謀)의 고장이 되어 이후 중앙관직의 등용문이 막히게 된 장본인이 되었다. 그러나 서인(西人)인 율곡(栗谷) 이이조차 정여립을 ‘호남 제1의 인물’이라 평가했다. 죽도 천방굴에서 관군에 쫓겨 자결한 정여립을 시인 고은은 <만인보>에서 이렇게 안타까워한다. “상놈이 양반더러/먹쇠가 마님더러/야자 해도 되는 대동계”를 이끈 정여립이 아들과 함께 황소울음을 토하며 자결한 게 아니라 서인 관헌 암살패에게 처참히 죽었다고 믿고 있다.

바닥을 드러낸, 용담댐 사라진 옛 길로

봄의 가운데를 가르고 할리 오토바이 행렬이 지나간다. ‘퉁퉁 투둥퉁 퉁퉁….’ 누구는 말발굽의 약동을, 누구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를 연상한다 했던가. 사내들의 욕망이 소리를 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조금씩 말라가는 남성 호르몬의 틈을 비집고 질주하는 바퀴가 고갤 들이민다. 그들의 속도가 보지 못한 것을 나는 담는다.


	용담댐 근처에는 워낙 물주머니가 깊어 멋진 석양 풍광을 선사하기도 한다.
용담댐 근처에는 워낙 물주머니가 깊어 멋진 석양 풍광을 선사하기도 한다.
용담댐도 가뭄에서 예외는 아니다. 수몰되어 오래도록 용궁의 진입로였던 옛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제법 긴 길이다. 갈라진 호수의 바닥으로 내려선다. 옛 도로 위 차선의 흔적은 물에 잠긴 시간만큼 희미하다. 진안 사람들이 무주와 금산으로 가던 옛길, 10바리 제무시(GMC 트럭)도 목탄차도 달렸었겠지. 하동환자동차보다도 더 선배격인 팔금자동차가 미제 트럭을 불하받아 양철통을 두드려 만든 시외버스도 산촌의 장꾼들을 싣고 날랐겠지. 옛 길섶엔 갈대가 키보다 웃자라 이 별난 여행자를 감싸 안는다. 그건 잠시였다. 저수지의 허연 잇몸을 보여주는 가뭄의 공습이 더욱 실감난다. 4대강 사업을 환경파괴의 원흉쯤으로 몰아붙이는 비관적 환경론자들이 이 절대가뭄, 이 목마름을 어떻게 설명할지 자못 궁금하다.

	1 용담댐 수변공원은 쉬어가지 않을 수 없다. 2 용담댐 물 전시관 앞에 설치된 돈키호테 조각. 손자에게 업히는 할아버지의 행복한 표정도 눈에 들어온다. 3 용담댐을 금강의 발원지쯤으로 아는 사람들도 많다.
1 용담댐 수변공원은 쉬어가지 않을 수 없다. 2 용담댐 물 전시관 앞에 설치된 돈키호테 조각. 손자에게 업히는 할아버지의 행복한 표정도 눈에 들어온다. 3 용담댐을 금강의 발원지쯤으로 아는 사람들도 많다.

물에 잠긴 길 대신 산으로 올라붙은 30번 국도는 조급한 세상을 견뎌내지 못하고 길을 넓혀 속도를 허용했다. 월포대교 부근엔 활처럼 휘어진 새 길이 나고 늙지 않는 고갯길 ‘불노치’에는 터널이 뚫렸다. 싸리재를 넘어온 13번 국도와 다시 만나 안천면 소재지로 길을 이어가면 이내 용담댐이다.

짜장면 한 그릇, 그 힘으로 무주에

강물 따라 여정을 재촉하면서 잊었던 허기가 한꺼번에 밀려든다. 용담에서 만나는 짜장면집, 주방장 겸 주인은 한가하게 TV속 외화를 보고 있다가 반긴다. 제대로 된 음식을 찾다가는 시골길에서는 굶기 십상이다. 이럴 때 짜장면 한 그릇은 큰 위안이 된다. 빈속을 채우는 의무 이상이다. 굵은 면발을 후루룩거리며 물어본다. “해 떨어지기 전에 무주에 닿을 수 있을까요?” 지도에서는 이미 어느 정도 요량을 하고 있었지만 확인하듯 위로 받고 싶어진다. “그럼요. 재만 넘어가면 그냥 강 따라 가는 길이지요.”


	무주군 굴암리, 봄을 기다리는 4륜구동 모터바이크
무주군 굴암리, 봄을 기다리는 4륜구동 모터바이크

뒷뒤기재를 넘어서자 무주군 부남면이다. 래프팅 광고까지 있는 걸 보면 아주 갈수기가 아니면 그런대로 계류의 흐름에 맡겨도 될법한 골짜기다. 산모롱이 하나 돌 적마다 건너는 다리가 이리저리 몸부림치는 골짜기를 이어준다. 누에머리를 닮았다 해서 ‘잠두마을’이라 불리는 굴암리에서 37번 국도를 만나면 무주(茂州)라는 게 실감난다. 무주의 골짜기 풍광은 사람의 손을 탔다고는 해도 ‘반딧불이의 고장 청정 무주’의 이미지가 워낙 강하다. 옛 벼랑길로 가는 무주에서 제대로 물길을 따라가려면 적잖은 발품을 팔아야 할듯하다. 벌써 어둠이다.

<여행 만들기>

금강 발원지인 장수로 가는 길은 자동차의 도움을 받는 편이 좋다. 서울에서 장수로 가는 버스 편은 하루 4편(09:20 첫차, 14:35 막차)에 불과하다. 물론 시간이 넉넉하다면야 장수 방화동휴양림에서 1박을 하면서 논개사당과 주변 백운면을 둘러보고 무주에서 버스편으로 상경해도 좋겠다.

<강둑길 동행>


	김용성(62)
김용성(62)

40년 전 나의 군대생활 후임병이다. 그때 말로 새까만 졸병이다. 금강 라이딩에 동행하게 된 것은 순전히 뜬봉샘에 두고 온 자동차를 다시 가지러 가는 역할에 동원된 것이다. 금산에서 비석 만드는 일을 하는 석재공장 대표인 그는 속초, 목포까지 완주한 라이더지만 4월은 일 년 중 대목이라 동행은 무리였다.

“군대 고참이 무섭네유. 하필 날을 이때루 잡아서 그랴유?”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는 그였지만 자전거에 대한 향수는 가득했다. 오랜 만에 나도 조병장으로 돌아갔다. 이그, 김일병도 꽤나 늙어버렸다.

<강둑에서 만난 사람>


	이종구(68)
이종구(68)

논개사당 의암사가 있는 두산저수지에서 만난 장수 주민이다. 원래 그는 여수사람이라 장수에 우연히 들렀다가 아예 눌러 앉아 버렸다. 그는 한 시절 건설의 역군이었다. 현대건설 소속으로 해외에도 있었고, 국내에는 포스코 1, 2, 4호기 건설, 평택화력 등 플랜트 건설현장에서 평생을 보낸 엔지니어다.

“장수는 참 좋은 곳입니다. 우선 지대가 높아서 4월에도 눈이 내리곤 하지요. 공기는 물론 상쾌하지요. 벚꽃 필 때면 지지계곡도 좋구요. 건너편 저 아파트도 1억이면 살 수 있다니까요. 오늘은 무주장날이라 집사람하고 거기나 슬슬 가 볼까 해요.”


	왼쪽부터 박봉기(64), 이종근(64)
왼쪽부터 박봉기(64), 이종근(64)

천반산 아래 강둑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이리농림고 동기동창이다. 박봉기 씨는 동창이지만 이종근 씨를 ‘회장님’이라고 부르면서 깍듯이 존대를 한다. 학교 시절부터 줄곧 학생회장인데다 모든 일에 철저한 친구라서 지금까지도 그렇게 부른다고. 강가의 돌로 만든 펜션의 이름을 ‘스톤 스토리’라고 지어준 것도 이종근 씨다. 더구나 그가 술 회사 생산과장시절 만들었던 ‘썸씽 스페셜’의 이니셜을 따서 “우리는 ‘SS그룹’이다.”라고 말하는 위트가 보통 아니다. “말만 잘하면 하룻밤 거저 재워줄 수도 있재…. 사는 게 뭐 별거다요?” 사나이들의 우정이 골짜기 깊이 울려 퍼지는 듯하다.

<장수·진안·무주 음식점>

용담각 (063-433-0345~6)


	왼쪽부터 용담각 입구, 용담각 짜장면
왼쪽부터 용담각 입구, 용담각 짜장면

용담댐 아래 용담면 소재지, 무주로 넘어가는 삼거리에 있는 중국음식집이다.

시골길에서는 짜장면 한 그릇 먹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길섶에서 만나는 짜장면집 치고는 맛도 수준급이다. 짜장면 4000원.

무주옥류관 (063-322-6910)


	무주 옥류관 백반
무주 옥류관 백반

이름만큼 대단치는 않지만 숙소인 덕화리버사이드모텔의 1층에 있는 음식점이다. 우선 아침식사가 되는 것이 장점이다.

가정식백반을 일반적으로 하는데 봄철에는 쑥국, 산나물 같은 제철 반찬도 내 놓는다. 가정식백반, 김치찌개 6000원.

<숙박>

덕화리버사이드모텔 (063-322-6900~2)

무주읍내 초입에 있는 모텔이다. 우선 목욕탕이 1층에 있어서 따뜻한 물을 넉넉하게 쓸 수 있어 좋다. 더구나 관리인 아주머니의 인심이 요즈음 보기 드물다. 주방에서 아들 주려고 김밥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며, 자전거를 끌고 온 지친 나그네에게 김밥 한 접시를 대접하는 마음씨면 다른 건 물어볼 필요도 없다. 1박 4만원.

스톤스토리 (010-7562-5784)


	스톤스토리
스톤스토리

용담댐 상류 진안의 명소, 죽도 입구에 있다. 사람 좋은 박봉기 씨가 운영하고 있어 자전거 여행객들에게는 호감을 가지고 있다. 강가에 바로 붙어 있어서 여울물 소리를 실컷 들을 수 있어 마음이 청량해진다. 여름 피서철 한 달 정도만 피하면 깜짝 놀랄 가격에 재워주겠다고. 단체 라이딩팀도 숙박 가능하니 미리 전화를 하시라.

 

<참고자료>
1. 한국의 발견, 전라북도/ 장수군 편/ 뿌리깊은 나무/ 1992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장수군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 정여립 이야기의 전승양상과 문화적 의미/ 김월덕/ 한국구비문학연구 제22집/2006
4. 답사여행의 길잡이13, 가야산과 덕유산/ 돌베개/ 2000

풍경에 건네는 말(38)   by 조용연

사라진 길, 돌아 온 길


	진안군 용담댐에 이르자, 호수의 바닥은 거대한 들판을 이루었다. 유난한 가뭄이 자주 기습해 왔다. 수몰되었던 옛길과 다리가 새삼 모습을 드러내면서 향수를 자극한다. 호수 바닥으로 내려서 옛길을 갈 데까지 가본다. 갈대숲이 힘없이 환영한다. 한참을 달리자, 자갈과 모래가 더 이상 못 간다고 길을 막아선다. 물을 가두고 물에 업혀 살아야하는 사람들의 마른 목젖으로 촉촉이 젖은 봄비가 스며들기를 소망한다.
진안군 용담댐에 이르자, 호수의 바닥은 거대한 들판을 이루었다. 유난한 가뭄이 자주 기습해 왔다. 수몰되었던 옛길과 다리가 새삼 모습을 드러내면서 향수를 자극한다. 호수 바닥으로 내려서 옛길을 갈 데까지 가본다. 갈대숲이 힘없이 환영한다. 한참을 달리자, 자갈과 모래가 더 이상 못 간다고 길을 막아선다. 물을 가두고 물에 업혀 살아야하는 사람들의 마른 목젖으로 촉촉이 젖은 봄비가 스며들기를 소망한다.

큰 못이 생기려고 용담(龍潭)이라 했것지
비단강 안고 돌다 제풀에 어혈져
이 산, 저 골 감돌다 터 잡았것지
하늘한테 밉보이면 용빼는 재주 없지
봉답 논뙈기도, 마실 돌담길도,
진안 장꾼 따라 간 신작로도
용궁 정원 옆에 서러운 몸 풀었겄지

해마다 얼비치던 검은 하늘
장독 속 고요
수 삼 년엔 자주자주 잃어버렸다.
헐떡이다 잊어버렸다.
목말라 가슴 풀어 헤치고
시루떡 두께로 벗어 내리던 속살
누런 잎새 풀죽은 갈숲
먼지 풀석 마실 길에 귀향 동무

울 너머 참견하던 뾰족돌 조무래기도
사방치기 조약돌 닮아 심심하다
길도 아닌 물 속 마른 길로
아롱아롱 먼 데 봄물이 적셔 온다 해도
용들도 더 갈 곳 없어
머루 빛 그늘로 숨었는가도 몰라


	비단강 기나긴 물, 그 굽이굽이가 장수(長水)다

글·사진 조용연
·1954년 경북 문경 출생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졸업
·경기 여주경찰서장, 서울 동부경찰서장(현 광진경찰서)
·경찰청 기획과장, 주중국대사관 참사관(북경)
·서울청 교통지도부장, 경찰청 경무기획국장
·충남지방경찰청장, 울산지방경찰청장
·현 에스원 감사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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