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직후 공포의 도가니 히말라야를 탈출하다

글·사진 |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이

입력 : 2015.06.30 13:07

블랙야크 MTB팀, 안나푸르나 라운딩 중 대지진 겪어

두두두! 두두두두! 어디서 헬기가 다가오고 있나?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갑자기 로지 창문이 심하게 떨린다. 한데 창밖의 빨래는 미동도 없지 않은가. 순간 앞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던 서양인과 눈이 마주쳤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건물 밖으로 뛰었다. 지진이었다. 2층에서 내려가 1층 로비를 지나는데 건물 천장에서 콘크리트 가루가 떨어졌다. 거리에는 진동에 놀라 건물 밖으로 뛰쳐나온 시민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놀라 소리를 질렀다. 언덕에서는 트랙터가 굴러 내려오고 있다.


	[익스트림 MTB | 네팔 안나푸르나]
지진이 일어나기 전 MTB로 안나푸르나 토롱라(5,416m)를 넘은 블랙야크 대원들. 대원들 뒤로 거대한 안나푸르나3봉(7,555m)이 보인다.

좀솜(Jom Som·2,720m)공항 마을 뒤편에선 산이 무너지면서 굉음이 울렸다. 흙먼지가 마을을 뒤덮었다. 한 아이가 더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흙먼지를 피해 뛰어간다. 어른은 아이를 안고 높은 산으로 뛰었다. 마을 지형을 모르는 우리 일행은 그들을 지켜볼 뿐 두 발이 굳어버린 채 공황상태가 됐다. 안나푸르나 인근 좀솜마을에서 4월 25일 벌어진 일이다.


	[익스트림 MTB | 네팔 안나푸르나]
1 마낭을 지나 토롱패디로 가는 길.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지진 전 우리의 일정은 순조로웠다. 모든 일정을 마쳤기 때문에 좀솜공항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포카라로 이동하기 위해 편안한 마음으로 대기 중이었다.

네팔에는 지난 4월 17일 들어왔다. MTB(산악자전거)를 타고 해발 5,416m의 안나푸르나 토롱라(Thorong-La) 패스를 넘는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우리가 계획한 코스는 일명 안나푸르나 서킷(241km)으로 불린다.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 코스 중 가장 높은 고개인 토롱라를 개인적으로 MTB를 타고 넘은 사람은 여럿 있다. 하지만 전문서적과 매스컴엔 국내에서 팀을 결성해 이곳을 넘었다는 기록은 없었다. 산악인과 트레커들이 많이 찾지만 고도가 높아 고산병 증세가 심해 등반이 쉽지만은 않다. 전문가와의 동행이 꼭 필요한 곳이다. 


	[익스트림 MTB | 네팔 안나푸르나]
2 보기만 해도 아찔한 절벽을 타고 간다. 바위를 깎아 길을 냈다.

대원은 나를 포함해 최난익(52), 전철종(48), 박운범(44) 4명. 국내 등산아웃도어브랜드 블랙야크에서 활동하는 셰르파들로 대단한 체력을 자랑하는 라이더들이다. 하지만 고산등반이 처음인 대원들이라 고산등반 경험이 많은 내가 취재 겸 가이드를 맡았다.

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고산 적응도 좋았다. 18일 카트만두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해 베시샤하르(820m)에서 다시 지프로 갈아타고 11시간을 달려 참체(1,385m)에 도착했다. 중간에 지프로 갈아탄 것은 길이 좁고 험하기 때문이었다. 30km 속도를 넘지 않는 지프. 가파른 언덕과 불규칙한 돌길을 덜컹덜컹 달리고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지난다. 달렸다기보다 거친 길을 돌파했다는 게 맞을 것이다.


	[익스트림 MTB | 네팔 안나푸르나]
3 하이캠프를 오르는 박운범 대원. 자전거를 짊어지고 올라야 할 정도로 가파른 고개다. 4 흐르는 강 옆으로 보이는 아담한 마을이 대원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숨 가쁘게 끌고, 메고, 달리고
둘째 날, 참체부터는 MTB로 운행했다. 본격적인 히말라야 첫 라이딩이다. 다나큐(2,450m)를 지나 차메(2,710m)까지는 넓은 임도다. 약간의 오르막길을 가벼운 속도로 올랐다. 간혹 짧은 거리의 내리막길도 나와 MTB 타는 맛이 났다.

고산병 증상이 적은 고도 3,000m를 넘지 않은 선에서 적당히 힘을 써도 된다고 했더니 최난익 대원은 오르막도 쉬지 않고 넘었다. 나머지 대원들도 이에 질세라 따라가느라 헐떡였다. 하루 만에 고도 1,325m를 높이고 27km를 8시간이 걸려서 왔다.


	[익스트림 MTB | 네팔 안나푸르나]
5 대원들이 보기만 해도 시원한 폭포를 지난다.

차메를 출발, 어퍼피상(3,310m)까지는 고도 600m의 차이를 보인다. 드디어 3,000m 이상에서 라이딩이다.

“여기서부터는 페달을 가볍게 돌리고 천천히 달려야 해요. 어제처럼 달리다간 고산병 걸려 하산할 수 있습니다.”

출발에 앞서 우리의 가이드 밍마 셰르파가 경고했다. 어제와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 길이다. 좀 다른 것이 있다면 언덕을 넘을 때마다 심장이 터질 것같이 맥박수가 빨라져 머리가 욱신댄다는 것.

“어~우, 심장이 이상해! 머리도 이상해!”

“운범아 그러게 천천히 좀 가, 저기 안나푸르나2봉을 좀 보라고.”

전철종 대원이 달리던 자전거를 멈춰 세운다. 머리에 만년설을 얹은 안나푸르나2봉과 그 밑으로 깎아지른 절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내일 아침도 6, 7, 8입니다.”

어퍼피상에 도착해 밍마 셰르파가 기상과 밥을 먹고 출발하는 시간을 알린다. 그러면서 “늦으면 밥 없다!”고 농을 던진다. ‘6, 7, 8’은 6시 기상, 7시 식사, 8시 출발이란 의미다.

에베레스트 트레킹의 고소적응을 위한 중간기지격인 남체바자르가 있듯, 안나푸르나 트레킹에는 마낭(3,540m)마을이 있다. 보통 이곳에서 하루를 더 묵으며 고소적응을 한다. 블랙야크 MTB팀 대원들은 첫 히말라야 원정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밝은 표정과 컨디션을 보였다. 대원들은 쉬는 날 없이 다음날도 운행을 이어가 레다르(4,200m)에 닿았다.

그러나 계획에 없던 문제가 발생했다. 네팔 요리에 들어가는 향신료 ‘마살라’가 문제였다. 마살라향에 거부감을 느낀 박운범 대원은 음식을 전혀 먹지 못했다. 그러면서 한국요리를 찾아대는데, 다행히 가이드 밍마 셰르파가 그의 구세주로 등장했다. 다행히 그가 권하는 피자는 먹는 것이었다. 끼니마다 한국인에게 적합한 음식을 권했다. 하지만 대원들은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변비에 걸린 것. 거기에 난생처음 찾아온 불면증까지. 그동안 마시던 맥주를 거부하다니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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