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최남단, ‘삼형제 반도’ 일주

바이크조선

입력 : 2015.08.10 09:23

바다와 산이 가장 열정적으로 만날 때

거제도는 해안선 전체가 복잡한 리아스식이지만 최남단에서는 더욱 많은 만과 반도를 빚어내면서 바다와 한결 강력하게, 극적으로, 끈끈하게 만난다. 남부면과 동부면에 걸쳐 연속되는 크고 작은 반도의 해변을 따라 가는 길은, 그래서 산과 바다의 비밀스런 합궁을 목도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그 짜릿하고 스릴 넘치면서 즐거운 경험을 산과 바다라는 거대한 스케일로 한껏 만끽한다.

	주민들만 안다는 홍포길 최남단 바위 전망대. 물 위에 솟은 금강산 같은 절경이 펼쳐진다. 가까이는 소병대도, 멀리는 병대도 군도다.
주민들만 안다는 홍포길 최남단 바위 전망대. 물 위에 솟은 금강산 같은 절경이 펼쳐진다. 가까이는 소병대도, 멀리는 병대도 군도다.

바다와 가장 깊고 끈끈하게 만나는 섬, 그곳은 바로 거제도다. 왜 그런가. 수많은 반도 때문이다. 음양의 이치에 비견하자면 거제도 해안선에 돌기한 그 많은 반도들은 대지의 남성미를 가득 품은 양(陽)을 상징하고, 그 힘찬 돌출을 형상에 맞춰 여유롭게 받아들이는 바다는 여성적인 포용성을 나타낸다. 이를테면 반도는 땅과 바다의 합궁 현장인 것이다.

이 땅 전체가 거대한 반도를 이뤄 대륙과 태평양이 교접하는 접점이다. 거제도는 한반도의 축소판으로 섬 전체를 반도로 가득 채운 채 마치 기어가 맞물리듯 바다와 깊고 드라마틱하게 만난다. 거제사람들은 거제도 해안선을 700리(약 280㎞)라고 하는데 과장이 아니다. 근 5배나 큰 제주도보다 해안선이 더 길게 느껴지는 것은 해변마다 돌출한 수많은 반도로 해변이 극도로 들쭉날쭉하기 때문이다.


	장장 5㎞의 업힐인 탑포고개를 오르는 도중 쉼터에서 바라본 저구마을. 오른쪽 아래로 장사도 여객선이 살짝 보인다. 왼쪽 멀리 뱀처럼 길게 뻗은 섬이 장사도이고 그 오른쪽은 통영의 죽도
장장 5㎞의 업힐인 탑포고개를 오르는 도중 쉼터에서 바라본 저구마을. 오른쪽 아래로 장사도 여객선이 살짝 보인다. 왼쪽 멀리 뱀처럼 길게 뻗은 섬이 장사도이고 그 오른쪽은 통영의 죽도

다대항을 기점으로 잡은 까닭

지도만 봐도 거제도는 돌출한 반도를 덕지덕지 붙여놓은 듯 반도 투성이다. 그런 거제도에서 반도가 가장 극적인 형태와 풍광을 만드는 곳은 최남단의 남부면 일대다. 거제도 중북부는 거대한 조선소와 공장, 도시, 관광객으로 번잡하지만 이곳만은 아직도 한가한 것도 이런 분위기에 부합한다.

반도 투성이 거제도가 바다와 합궁하는 진풍경을 돌아보려는 내 계획은 ‘우수 어촌체험마을’로 유명한 다대마을이 계기가 되었다. 다대마을 바로 옆 저구리에는 나의 지기인 이진우 시인이 살고 있다. 다대마을어촌계 신종수(50) 계장은 마침 이 시인의 지인이기도 해서 다대마을을 중심으로 자전거 여행 코스를 자문해 달라는 제안이 왔다. 탑포와 홍포를 도는 해안 절벽길은 이미 절경으로 알려져 있고 13년 전에도 자전거로 답사하고 본지에 소개한 적이 있다(2002년 8월호 ‘흙길’ 참조). 이 두 반도를 기본으로 북쪽의 함박반도를 포함한 세 반도를 차례로 도는 반도 순례 코스가 직감적으로 다가왔다.


	함박반도 남단을 돌아나가며. 뒤쪽 작은 포구는 함박구미, 왼쪽으로는 추봉도의 좁은 목 부분이 살짝 보인다.
함박반도 남단을 돌아나가며. 뒤쪽 작은 포구는 함박구미, 왼쪽으로는 추봉도의 좁은 목 부분이 살짝 보인다.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거제도 외딴 바닷가에 칩거한 지 15년이 넘는 이 시인은 이미 현지인이 다 되었다. 저구리는 시인이 신문 칼럼이나 책으로 소개해서 외부에 알려졌고, 지금은 소매물도와 장사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출항해서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일대의 주민들은 모두 이 시인을 알아볼 정도로 이미 지역 명사다.

1박2일 일정으로 혼자 저구리를 찾은 것은 무더위가 엄습하던 6월 초. 서쪽바다를 바라보는 언덕배기에 자리한 시인의 집은 민박과 게스트하우스를 겸한 ‘썬셋뷰’라는 작은 간판을 달고 있다. 손님이 오건말건 무심한 시인은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그것도 홀로 살고 있다. 도착하자 말자 시인은 친구들이 다대마을에서 기다린다면서 팔을 끈다. 저구리에서 고개 하나만 넘으면 다대마을인데, 선착장 앞의 다대횟집으로 가니 귀한(?) 손님 대접 준비로 횟감 마련이 한창이다. 아무래도 바닷가 선창이어서 생선회를 기대하긴 했지만 주민이 마음먹고 만들어주는 자연산 횟감은 격이 달랐다.


	함박에서 탑포로 가는 율포의 해안도로. 등대 왼쪽으로 두 번째 반도 길이 시작되는 쌍근마을과 가파른 임도 진입로가 보인다.
함박에서 탑포로 가는 율포의 해안도로. 등대 왼쪽으로 두 번째 반도 길이 시작되는 쌍근마을과 가파른 임도 진입로가 보인다.

신종수 어촌계장 외에도 근처에서 유스호스텔을 하는 임진강 씨, 펜션을 하는 김명종 씨도 함께 했다. 김명종 씨는 직접 잡은 산낙지를 가져왔는데, 그렇게 싱싱한 낙지는 처음이다. 다들 50줄인데도 마을에서는 가장 젊은 축에 들어서 지역발전에 발벗고 나선다. 애향심과 지역발전을 위한 고민이 대단해서 감동했다. 특히 신종수 계장은 다대마을에 폐교(명사초교 다대분교)를 숙박시설로 새단장한 것을 계기로 체험마을 홍보에 너무나 적극적이어서 다대항을 기점으로 자전거 코스를 잡기로 했다. 코스에 대해 대략 논의를 마치고 권커니 잣커니 술자리는 이어졌다. 오가는 어르신들에게 일일이 넉살 좋은 인사를 하며 한잔씩 권하는 모습은 예전 시골에서 흔히 보던 모습인데, 새삼 정겨우면서도 생경스럽다.

기막힌 생선회를 앞에 두고도 넋 놓고 마시지 못한 것은 전날 다른 자리에서 과음한데다 다음날 험한 코스를 라이딩 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권하는 인정에 ‘일배일배 부일배’로 화답하지 못한 점, 이 자리를 빌려 양해를 구한다.

그렇게 해변의 밤은 깊어갔다.


	1018번 지방도에서 탑포 해안도로로 내려가는 신나는 다운힐 구간
1018번 지방도에서 탑포 해안도로로 내려가는 신나는 다운힐 구간

첫 번째 반도, 함박

짧지만 입체적인 다도해 풍경

나는 자전거를 타고, 이진우 시인은 자동차를 타고 나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

일단 내륙을 지나는 1018번 지방도를 따라 북쪽의 첫 번째 반도인 함박까지 가야 한다. 다대항을 벗어나면 길은 거제도에서 가장 높은 가라산(580m) 허리춤으로 성큼 올라붙어 탑포고개를 넘어간다. 해수면에서 해발 220m까지 오르막이 장장 5㎞나 된다. 이번 코스에서 가장 큰 코비이자 장벽이지만 이것만 넘으면 그다지 힘든 곳은 없다. 높이에 비해 거리가 길어 경사도 심하지 않다. 왼쪽으로 남부면사무소와 시인의 집이 있는 저구리를 바라보며 고개를 넘어선다.


	해수면까지 내려선 탑포 해안도로. 뒤편의 작은 무인도는 죽도(통영 죽도와는 다름)이고, 그 뒤편으로 율포를 감싸고 있는 동망산(287m)이 우뚝하다.
해수면까지 내려선 탑포 해안도로. 뒤편의 작은 무인도는 죽도(통영 죽도와는 다름)이고, 그 뒤편으로 율포를 감싸고 있는 동망산(287m)이 우뚝하다.

길은 율포리에서 해변으로 바짝 내려섰다가 가배리에서 다시 100m 정도의 고개를 넘어 오송리에서 해변과 만난다. 해안도로를 따라 좌회전하면 폭 50m 정도로 몇 삽만 파면 물길을 낼 수 있을 것 같은 좁은 목을 지나 함박반도로 접어든다. 1018번 지방도에서 출발해 일주해봐야 6㎞ 남짓한 작은 반도지만 지형이 복잡해서 체감은 더 크게 느껴진다.

한산도 일대의 다도해를 바라보는 언덕에는 펜션과 전원주택이 그림 같다. 이렇게 잠시 지나면서 보는 풍경은 자못 아름답지만 기약 없이 눌러 산다면 또 어떨까 생각해 본다. 수평선이 가로지르는 트인 바다가 주는 광막함 혹은 허망함이 아니라 섬들로 가득한 호수 같은 다도해 특유의 아늑함이랄까, 차분한 주거지로도 좋지 않을까 싶다.


	탑포~저구 구간에 있는 전망대. 아주 한적하고 조용해서 이진우 시인도 가끔 찾는다. 맞은편 안개속에 보이는 섬은 한산도 남쪽의 죽도
탑포~저구 구간에 있는 전망대. 아주 한적하고 조용해서 이진우 시인도 가끔 찾는다. 맞은편 안개속에 보이는 섬은 한산도 남쪽의 죽도

두 번째 반도, 탑포~저구 임도

해안절벽길, 탁 트인 바다 조망

함박반도를 돌아나와 1018번 도로를 되짚어 간다. 위압적인 가라산이 다시 눈앞을 가로막을 즈음, 왔던 길을 버리고 해변으로 붙어 쌍근 마을에 이르면 두 번째 반도 코스가 시작된다. 흔히 탑포~저구 해안길로 불리는데, 반도 중간에 솟은 왕조산(414m) 일주길이도 하다.

길은 좁은 임도지만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어 로드바이크도 그리 불편하지 않다. 하지만 해변에 자리한 쌍근에서 해발 110~150m 사이 등고선을 따라 나 있는 임도까지 진입하는 초반 1㎞ 구간은 상당히 가파르다. 일단 순환임도에 올라서면 코스의 기복은 그리 심하지 않다. 순환임도는 가라산과 왕조산 사이를 지나는 1018번 도로 탑포고개 정상에서 시작되며, 탑포고개~쌍근 삼거리간 2.9㎞는 비포장이다. 또 탑포고개를 다시 오르는 수고를 덜기 위해 쌍근에서 진입하는 것이 편하다. 임도에 진입하면 삼거리에서 저구 방면으로 우회전해야 한다(왼쪽 비포장 길은 탑포고개로 감).


	쌍근에서 1㎞ 가량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나오는 임도 삼거리. 왼쪽 비포장길은 1018번 도로 탑포고개로 이어지므로 오른쪽 저구 방면으로 가야 한다.
쌍근에서 1㎞ 가량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나오는 임도 삼거리. 왼쪽 비포장길은 1018번 도로 탑포고개로 이어지므로 오른쪽 저구 방면으로 가야 한다.

길은 가파른 해안절벽 위를 지나지만 숲 때문에 바다는 잘 보이지는 않는다. 앞서 쌍근 임도삼거리에서 2㎞ 가면 나무데크로 조성한 전망대가 나오면서 조망 갈증을 확 풀어준다. 높이 100m나 되는 절벽 위에 자리한 전망대의 조망은 대단히 시원하다. 죽도와 장사도 사이로 수평선이 아득하고, 무엇보다 한없이 고요하다. 문명의 소리가 완벽하게 단절되어 실바람과 잔잔한 파도 소리만이 귓전을 스치고, 내면의 소리마저 저절로 확대되어 말을 거는 것만 같다. 시인도 이곳을 특별히 좋아해서 간혹 찾아와 조용히 사색에 잠기거나 독서를 한단다. 집 가까이 이런 ‘비트’(비밀 아지트)를 가진 그가 부러웠다.

이 길은 거제시가 조성중인 걷기 코스 ‘섬&섬길’에 포함되어 있는데, ‘무지개길’이란 테마가 붙었다. 왜 무지개길인지는 조금 있다가 알게 된다.

전망대에서 1㎞를 더 가면 이번에는 정자 전망대가 나온다. 지형적으로는 이곳이 반도의 끝자락, 곶(串) 또는 갑(岬)이 된다. 일본에서는 미사키(崎)라고 해서 돌출반도 끝단에 반드시 이름을 붙이는데 우리는 영일만의 장기곶 등 특별한 곳 외에는 곶 지명을 잘 붙이지 않는다. 여기도 단순히 전망대가 아니라 ‘저구곶’처럼 지명을 붙이면 더 좋지 않을까.


	왕조산 반도의 남서단에 조성된 정자 전망대. 건너편으로 다음에 가야할 망산(375m)과 대포항 일대가 보인다.
왕조산 반도의 남서단에 조성된 정자 전망대. 건너편으로 다음에 가야할 망산(375m)과 대포항 일대가 보인다.

정자 전망대에서는 남쪽으로 조망이 트여 저구리 일대가 훤히 보이고, 마지막 반도 코스인 망산(375m)의 뾰족한 실루엣과 망산 줄기에 안겨 있는 대포항도 선명하다.

정자 전망대를 지나 해발 150m선의 최고지점에 올라선 다음에는 저구까지 줄곧 내리막이 반겨준다. 산을 내려서면 바로 저구 마을이 나오면서 반도 일주는 끝나며, 코스 길이는 쌍근에서 8.7㎞다.

길은 시인의 ‘썬셋뷰’ 앞을 지나서 매물도 여객선터미널 방면으로 해안을 따라 간다. 요즘 뜨고 있는 장사도(長蛇島)는 이름처럼 긴 뱀 모양인데, 풍수적으로 뱀의 기운을 억누르기 위해 뱀을 잡아먹는 돼지가 아홉 마리나 된다는 ‘저구(猪九)’라는 마을이름을 얻었단다(仇자를 쓰기도 함). 장사도 덕분에 저구에도 관광객이 많이 찾으니 돼지와 뱀 모두 행복한 형국이다.

여객선터미널 2층 ‘터미널분식’에서 바다를 보면서 맛본 푸짐한 해물라면은 일품이었다.


	기복이 있는 편이지만 시멘트로 포장되어 로드바이크도 어렵지 않다. 정자 전망대에서 300m 지점에 있는 얼굴바위를 지나며
기복이 있는 편이지만 시멘트로 포장되어 로드바이크도 어렵지 않다. 정자 전망대에서 300m 지점에 있는 얼굴바위를 지나며

세 번째 반도, 망산 일주

대양을 마주하는 풍경의 클라이막스

저구에서 명사해수욕장을 지나면 길은 점점 오르막을 이루면서 마지막 반도인 망산 일주가 시작된다. 지역에서는 망산 일주보다는 산 아래 아름다운 마을인 홍포를 내세워 ‘홍포길’로 통칭된다. 코스의 길이와 분위기에서 여기가 이번 코스의 절정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미 절경으로 꽤 알려진 길이어서 중간중간 비포장 구간이 있는데도 찾는 사람이 적지 않다.

망망대해를 바라본다는 뜻 그대로를 이름으로 담은 망산(望山, 375m)은 알프스의 준봉처럼 첨봉으로 솟아 고도감이 대단하고 조망이 좋아 등산 코스로 유명하다.

홍포길은 작은 포구와 마을을 차례로 거쳐 가는 길이기도 하다. 명사해수욕장이 있는 명사를 지나면 길은 산쪽으로 붙어 오르고, 한 구비를 돌면 오른쪽으로 자그마한 근포마을이 저 아래로 보인다. 그 다음 대포는 지척이다.


	소나무 그늘이 그윽한 운치를 자아내는 명사해수욕장
소나무 그늘이 그윽한 운치를 자아내는 명사해수욕장

이 코스의 진면목은 대포를 지나면서 시작된다. 대포 뒤편으로 살짝 고개를 넘으면 작은 섬들 몇 개만이 서 있는 대양이 확 펼쳐지고 광활한 바다를 마주한 언덕에 홍포마을이 동화처럼 앉아 있다. 아참, 그러고 보니 홍포의 홍이 무지개 홍(虹)자를 쓴다. 탑포부터 여기까지 걷기 코스를 ‘무지개길’로 이름붙인 것도 홍포 때문이었던 것이다.

홍포에서 여차까지가 이 길의 백미이기는 하지만 경사가 심하고 비포장 구간도 있어서 로드바이크는 각오를 해야 한다. 나무데크로 잘 조성한 전망대에 도착하기 300m 전에 시인은 나를 세우더니 최고의 전망대는 여기 따로 있다고 이끈다. 지도상으로도 이곳이 최남단인데, 길가의 숲을 살짝 헤치고 나가자 작은 바위너덜이 나오면서 그야말로 환상적인 풍경을 펼쳐보인다.

높이는 해발 90m 정도일까. 발밑으로는 급준한 해식애가 아찔하고, 대소 병대도 주변의 크고 작은 바위섬들이 바다 속의 금강산을 빚고 있다. 그 뒤로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매물도를 끝으로 시야에는 더 이상 섬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다.


	명사를 지나면 노란 금계국이 화사하게 핀 오르막이 시작된다. 고개를 넘으면 근포와 대포항이다.
명사를 지나면 노란 금계국이 화사하게 핀 오르막이 시작된다. 고개를 넘으면 근포와 대포항이다.

자주 왔다는 시인도 “야, 경치 좋고 모델 좋고!” 하면서 감탄한다. ‘모델 좋다’는 말에 괜한 칭찬인 줄 알면서도 ‘진짠가?’ 싶어 슬쩍 으슥해진다. 사진을 위해 바위 끝에 자전거를 들고 서니 위태롭기는 해도 천하를 다 얻은 듯 뿌듯한 격정이 솟는다.

길은 데크 전망대를 지나 꾸준히 올라가서 해발 140m 정도에서 정점을 찍고 여차마을까지 긴 내리막이 이어진다. 비포장 구간이 많아 로드바이크로는 적이 불안하지만 라이딩이 어려울 정도는 아니다.

몽돌해변으로 유명한 여차는 좁은 골짜기가 온통 펜션으로 가득 할 정도로 관광마을이 되었다. 해변에는 돌미역 건조가 한창이다. 시인 말로는 여기 주민들은 두 달 돌미역을 따서 팔아 1년을 편히 보낸단다. 마을 뒤편 언덕위의 집은 염소 농장인데, 시인은 집에서 보는 풍경이 기가 막힌다면서 잠시 쉬어가잔다. 대문은 열렸지만 사람은 없고, 우리는 어디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그림엽서 같은 전망이 펼쳐진 마당 벤치에 앉아 경치를 감상했다. 잠시 후 돌아온 주인은 시인과 친하게 인사를 주고받는다. 나와 얘기할 때는 표준말을 쓰다가 주민들과 대화할 때는 어설픈 사투리로 돌아가는데, 지역에 동화되면서도 한발은 살며시 떼고 있는 시인의 미묘한 정체성이 언뜻 엿보인다.


	여차로 내려가는 길은 군데군데 비포장이다. 자갈길이지만 라이딩이 어렵지는 않다.
여차로 내려가는 길은 군데군데 비포장이다. 자갈길이지만 라이딩이 어렵지는 않다.

시인이 “저 고개 정말 자전거 타고 오를 수 있겠냐?”며 걱정할 정도로 가파른 여차고개를 댄싱으로 넘어서고, 평지를 시속 60㎞로 질주하니 “우리나라에 너보다 자전거 잘 타는 사람 있니?”하면서 놀란다. 로드바이크의 진면목을 처음 본 모양이다.

명사에서 여차까지는 8.5㎞ 정도로 쌍근~저구 간과 비슷하다. 이제 다포항까지는 시원한 내리막이고, 다포 안쪽의 내만을 조금만 돌아가면 출발지인 다대항이다. 다대항 유람선터미널을 기점으로 전체 코스 길이는 54㎞ 밖에 되지 않지만 체감으로는 100㎞쯤 달린 것 같다. 크고 작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속되고 긴 산악구간과 해안도로, 임도, 비포장 산길 등등 온갖 길을 다 경험한데다 아름답고 다채로운 경관을 너무 많이 접해서일 것이다.


	여차 고개를 넘어서 바라본 다대항. 뒤편으로 가라산 줄기가 아늑하게 감싸고 있다.
여차 고개를 넘어서 바라본 다대항. 뒤편으로 가라산 줄기가 아늑하게 감싸고 있다.

다대항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신종수 계장과 다대어촌체험마을을 관리하는 윤길정 대표는 시원한 맥주를 건네며 한마디 총평을 기대하는 눈치다. 과장할 필요도 없이 솔직하게 표현해도 좀 모자란다는 느낌이었데, 내 말주변이 그렇다. 나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최곱니다! 경치, 코스, 전망, 분위기 모두 전국 최고의 해변길이라고 할 만합니다!”

“내 말 맞지예? 그 보라니까. 자전거 타는 도시 사람들에게 먹힌다고!”

“거제도에서 가장 조용하고 경치 좋은 다대로 오세요!”
다대마을 토박이 겸 지킴이

“경치 정말 좋지요? 우리 같은 초보는 힘들어도 동호인이라면 자전거 타고 돌기에 딱 아입니까.”

신종수 다대어촌계 계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향자랑으로 일관했다. 놀라운 애정과 열정이다.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얼굴이 건강해 보이는 신 계장은 활기찬 성격으로, 그의 고향자랑은 그칠줄을 모른다.


	윤길정(왼쪽) 다대자율관리공동체 대표와 신종수 어촌계 계장
윤길정(왼쪽) 다대자율관리공동체 대표와 신종수 어촌계 계장

“보시듯이 우리 마을은 가라산과 망산에 둘러싸여 아늑한 느낌을 줍니다. 풍부한 먹거리와 다양한 체험거리도 있으니 가족과 함께 오시면 더 좋습니다.” 

그의 말이 과장이 아닌 것이, 폐교된 초등학교를 단체용 숙소로 개조했고, 마을에는 유스호스텔, 펜션, 민박, 식당, 유람선 등을 다 갖추고 있다. 다대마을이 특히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것은 어촌체험마을. 전국적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체험마을로 이미 명성이 높다. 체험마을의 아이디어를 내고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윤길정 대표는 “다대마을은 거제도에서 유일하게 갯벌 체험을 할 수 있다”면서 포구 안쪽으로 펼쳐진 갯벌을 가리켰다. 다대갯벌은 서해갯벌과 달리 절척하지 않아 걷기에 한층 가뿐하다고.

“수상레저도 즐길 수 있고, 기업체와 단체, 학생 수련활동을 위한 다목적홀도 갖추고 있습니다. 100톤급 2층 유람선으로는 해안절경을 돌아볼 수 있고요.”

두 사람은 고향에 대한 막연한 애정이나 자부심이 아니라 직접 나서서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하면서 애향심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흔히 생각하는 ‘늙고 맥 빠진 농어촌’이 아니라 발랄하고 희망찬 농어촌의 가능성을 보여줘 ‘저렇게 고향에 살면서 봉사하는 것도 참 보람있겠다’는 부러움마저 들었다.

여행만들기


	거제유스호스텔
거제유스호스텔

코스의 출발점인 다대마을은 거제도에서도 최남단인 남부면 남단에 자리하고 있어 어디서 가건 거제도를 관통해야 한다. 거제시내(고현)나 장승포에서도 자동차로 30~40분 걸려 대중교통보다는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부산 방면에서 접근하면 거가대교를 건널 경우 김해공항에서 1시간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남부지방에서는 일찍 서둘면 당일 코스도 가능하나 중부지방은 1박2일은 잡는 것이 좋다. 거제의 명소인 해금강과 외도, 바람의 언덕, 장사도, 매물도 등이 가까이 있어 함께 둘러보면 좋다.

참고로 서울(경부)~거제 간 고속버스는 30~4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등대지기 펜션&식당
등대지기 펜션&식당

●다대어촌체험마을 : 경남 거제시 남부면 다대리 458-1. 055-633-1064, 010-4858-1085 www.dadaeri.co.kr

숙식 안내

●다대마을기업휴양관(단체 숙박) : 폐교를 활용해 공간이 넉넉하고, 넓은 운동장을 갖추고 있다. 갯벌에서도 가깝다. 055-633-8119, 010-8525-1095

●거제유스호스텔 : 다대마을과 해금강 사이 전망 좋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저렴하게 단체 숙박이 가능하다. 남부면 다대리 246-8. 055-632-7977


	폐교를 개조한 다대마을기업휴양관
폐교를 개조한 다대마을기업휴양관

●등대지기 펜션&식당 : 다대항을 내려다보는 바닷가 언덕에 있어 전망이 좋다. 주인이 직접 잡은 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남부면 다대리 465-1. 055-632-3538

●다대횟집 : 유람선 터미널 바로 앞에 있다. 싱싱한 횟감을 푸짐하게 내놓는다. 남부면 다대리 461-5. 055-632-5883


	게와 오징어, 조개를 듬뿍 넣은 저구리 터미널분식집의 해물라면
게와 오징어, 조개를 듬뿍 넣은 저구리 터미널분식집의 해물라면

●터미널분식 : 다대마을 옆 동네인 저구리 매물도 여객선터미널 2층에 있다. 해산물을 듬뿍 넣은 해물라면이 별미. 남부면 저구리 216-11. 055-633-0051

김병훈(자전거생활 발행인)
사진 이진우(시인)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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