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사내들, 자전거만 믿고 히말라야 오지 속으로 뛰어들다

글·사진 이남석 서울 성동공고 교사

입력 : 2016.01.28 10:22

심라에서 출발해 라하울과 스피티 지역 지나 마날리까지 600km


	나코에서 야영한 후 다음 목표지를 향해 가고 있다.
나코에서 야영한 후 다음 목표지를 향해 가고 있다. 왼쪽부터 고인수, 김시우, 이홍섭, 조성현 대원. 이남석씨를 리더로 한 대원들은 여행객이 거의 없는 오지 중의 오지, 라하울과 스피티 지역을 자전거로 여행했다. 보통 두 지역을 묶어 ‘라하울 스피티’라 부른다.

인도 중북부의 라하울(Lahaul)과 스피티(Spiti)는 히말라야산맥과 얼굴을 맞댄 지역이다. 워낙 오지이다 보니 여행객 중에서 이곳을 찾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때문에 여행 내내 빈객으로서의 쓸쓸함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놀랍게도 히말라야가 시작되는 지역인 심라까지만 하더라도 아열대 기후와 몬순으로 매일 비가 내리지만, 산줄기 두어 개만 넘어 안으로 들어가면 건조하고 쾌청한 날씨로 바뀐다. 히말라야 경계지역 특유의 기상 변화인 것이다.

2015년 7월 22일, 인천공항에서 일행과 만났다. 문정고등학교에서 물리를 가르치는 이홍섭(58세) 대원, 체육을 가르치는 경동고등학교의 고인수(56세) 대원, 우리 팀에서 가장 젊은 조성현(41세) 대원, 원주 산꾼이며 <월간山> 산행기사에 자주 나오는 김시우(55세) 대원과 필자(55세), 이렇게 다섯 명이 팀을 이뤘다.


	절벽으로 난 길을 자전거로 달린다.
1 절벽으로 난 길을 자전거로 달린다. / 2 장례식장에 모인 마을의 여인들. / 3 제오리마을에서 야영터가 없어 고민하던 중 레스트하우스를 발견해 마당에 텐트를 쳤다.
인디라간디공항에 도착한 것은 밤늦은 시각이었다. 공항 로비에서 밤을 보냈다. 아침 일찍 캐시미어 게이트의 버스정거장에서 자전거 여행 출발지인 심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하루 종일 달려 도착한 심라는 고도가 2,000m에 달했다. 주변으로 아열대수림이 울창한 고지대의 큰 마을이었다. 인도양으로부터 몰려온 습한 공기가 처음으로 산맥에 부딪쳐 주기적으로 비를 뿌리는 몬순이 절정이었다. 다음날 버스를 타고 람푸르(Rampur)로 이동했다. 심라에서 람푸르까지의 지루한 아열대림 숲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일은 피하기로 한 것이다.

인도는 여러 종족과 다양한 종교가 녹아 끓어오르는 나라이다. 인구의 대부분이 신봉하는 힌두교를 비롯해 시크교와 이슬람교, 소수의 자이나교와 불교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신과 경전을 가슴에 품고 이에 맞는 종교적 신념과 윤리의 밭을 일구며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인도에 왔을 때 이런 다양하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나 생활환경에 부딪히며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람푸르에서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다. 습도가 높고 바람이 적어 다들 페달을 돌리면서도 숨을 헐떡이기에 바빴다. 김시우씨는 자전거를 오래 탄 베테랑인 데다가 노련한 산꾼이라 체력이 강성하고 대담했다. 내가 후미에서 대원들의 속도를 조율하는 동안 그는 언제나 선두에서 대원들을 이끌었다. 히말라야가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히말라야 특유의 황량하고 건조한 풍경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직 히말라야 깊숙이 들어서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라다크와 스피티의 산악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불교를 믿는다. 이들은 티베트의 영향을 받아 생활 방식이나 종교가 티베트와 같다. 라하울 스피티 지역이 오지였지만 일정한 간격으로 마을이 있어 식량을 구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제오리 야영지를 출발하여 내리막을
제오리 야영지를 출발하여 내리막을 달리는 대원들. 깎아지른 벼랑길이 대부분이었다.

	수트레즈(Sutlez) 강을 따라 달린다.
5 수트레즈(Sutlez) 강을 따라 달린다. 이 강은 쿤줌라 직전까지 이어져 있다. / 6 검문소에서 허가서를 검사 받고 멈춘 김에 기념사진을 남겼다.
 야영은 모두가 익숙했다. 다들 철저히 준비한 덕분이었다. 특히 취사는 전적으로 김시우씨가 도맡아 했다. 음식 솜씨가 좋은 데다가 야영지를 관리하는 방법이 기민하고 정확해 여행 내내 대원들이 편안하게 야영할 수 있었다.

라하울 스피티로 들어가는 길은 일부 고지대로 오르는 구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강을 따라가는 길이었다. 히말라야의 초입은 산세가 험하고 높다. 그러나 강수량이 많아 왕성한 초지가 있고 이를 개간해 사는 사람들의 마을이 자주 나타났다. 계단식밭에는 벼와 보리, 과수가 가득했고, 마을과 마을을 잇는 도로에는 이런 농산물들을 실어 나르는 트럭이 자주 들락거렸다.

제오리(Jeori)라는 작은 마을에 이르러서 날이 저물었다. 어디든 묵어야겠는데 주변을 살펴보니 마땅한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마을 자체가 급경사라 텐트 네 동을 칠 장소를 찾기가 어려웠다. 대안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다행히 경찰의 도움을 받아 국가가 운영하고 마을에서 관리를 하는 레스트 하우스(Rest House)를 찾았다. 방을 하나만 예약하고 나머지는 마당에서 야영을 했다.

다음날 계곡 바닥으로부터 올라온 안개가 빠른 속도로 능선과 산꼭대기로 내닫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빨랫줄 같은 바람을 곁에 차고 페달을 구르는 발은 내리막을 부드럽게 밀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산 아래로는 강이 굽이치고 계곡에서 일어난 안개는 바위를 보듬으며 키 작은 관목은 빛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듯 시인이 되어 그들만의 음유시를 중얼거렸다.

우리는 달리면서 말이 없었지만 아름답다고 느끼는 감정 하나만으로도 환희로울 뿐이었다. 김시우·고인수씨는 오직 달리고 쉴 뿐이었으며, 이홍섭·조성원씨는 소형 촬영장비로 틈나는 대로 경치를 담았다. 경관은 점점 명쾌해졌지만 산세는 높아지고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이곳 마을의 전형적인 풍경. 가파른 경사지에서 농사하며 사는 방식이었다.
이곳 마을의 전형적인 풍경. 가파른 경사지에서 농사하며 사는 방식이었다.

	인도 라하울 스피티 자전거 여행 루트
 출입 허가서를 발급받다

라하울 스피티 지역은 인도가 국경선 문제로 중국과 사이가 껄끄러운 지역이다. 덕분에 우리는 본 도로에서 5km 이상을 올라가 레콩피오(Rekongpio)라는 작은 도시에서 한 사람당 300루피를 주고 라하울 스피티 일주도로를 통과할 수 있는 허가서(Inline Permit)를 받아야 했다.

허가서는 주변에 있는 여행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다. 레콩피오는 해발 3,000m의 높은 언덕에 있는 도시인데 다른 작은 도시들과 달리 전문적인 상업지구와 시장이 있었다. 멀리 스피티로 이어진 산줄기가 줄줄이 포개져 있고 굵은 백송(白松)이 숲을 이뤄 풍광이 아름다웠다. 허가서는 점심때가 넘어서야 받았다.

레콩피오를 벗어났지만 산에는 푸른 기운이 남아 있었다. 봉우리 꼭대기에 내려앉은 눈은 빙하로 바뀌었다. 산은 예리해지고 골은 더욱 깊어졌다. 빙하 끝에서 녹아내린 빙하수가 강으로 내달았다.

우리는 거의 수직에 가까운 절벽을 깎아 만든 길을 달렸다. 바로 익숙해졌지만 위험하고 아슬아슬했다. 바위는 낡고 헐은 이끼를 껴안고 있다. 절벽을 움켜쥔 늙은 백송의 뿌리는 뼈처럼 보였다. 흰 눈에 푸른 등을 가진 봉우리는 광주리를 인 여인처럼 하늘에 머리를 대고, 깊은 계곡은 쟁기로 갈아엎은 밭의 골처럼 깊고 가지런했다. 절벽은 누웠다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물이 내지르는 소리가 절벽에 부딪쳐 어느 때는 산꼭대기로 물길이 지나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코에 도착한 대원들. 왼쪽부터 이홍섭, 조성현, 김시우, 고인수 대원.
나코에 도착한 대원들. 왼쪽부터 이홍섭, 조성현, 김시우, 고인수 대원.
 다섯 명은 각자의 체력을 안배하면서 꾸준하게 달렸다. 레콩피오에서 10km를 지나 스피티 검문소에 도착했다. 여행 허가서와 여권 검사를 받았다. 비록 국경을 넘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다른 나라로 들어가기 전, 입국심사를 받는 기분이었다.

스피티로 들어서니 풍광부터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고산지대의 특징인 황량하고 거친 표토에 멀리 붉은 색깔의 산줄기 뒤로 설산이 뵈기 시작했다. 우리는 계속 2,000~2,500m에 이르는 고도를 오르락내리락 했다. 자전거 안장이 결코 편안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각자 느끼는 감정을 잘 다독이며 말없이 앞으로 달렸다.

마을을 만나면 식당이 있을 경우 그곳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그렇지 않으면 준비해 온 식량이나 한국에서 가져 온 멸치와 된장으로 국물을 내어 마을에서 구한 감자와 양파에 밀가루를 이용해 수제비나 면을 끓였다. 여인들의 옷차림은 이슬람식 같았지만 색깔을 보자면 라다크를 닮았으니 문물과 풍습이 섞였음을 알 수 있었다.

작은 지류는 재잘거렸으며 바위는 위태로우나 제 자리를 지켰다. 뾰족한 봉우리는 창대하나 그 기상을 뽐내지 않았으며, 지류가 모인 강은 온순한 듯 보이지만 그 거친 소리는 장군을 닮았다. 빛은 공정하여 땅 위 모든 것들을 비추었으며 새들은 끊임없이 욕구를 잠재우려는 듯 높이 날다가 언덕 너머로 사라졌다. 몸을 닦지 않아도 정신은 깔끔해지고 머리에 새로운 생각을 심지 않아도 바늘 끝 같은 화두는 늘 침착했다.

우리는 계속 강을 따라가다가 마침내 제법 긴 다리를 건넜다. 이제부터는 오르막이라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앞으로 3,000m 이상 고도를 끌어올려야 하므로 계속해서 오르막을 타야 했다. 때문에 서두르지 말고 호흡을 균일하고 깊게 해서 고소에 적응하도록 대원들에게 주문했다.

길의 경사도는 세지 않았지만 그 대가로 실제 거리보다 훨씬 길게 갈지자로 낸 길을 올라야 했다. 크게 힘이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거리가 길어 지루한 오르막을 올라야 했다. 가장 젊은 조성원 대원은 평지에서 자전거를 타던 방식으로 오르다가 낭패를 보았다. 워낙 다리근육이 좋고 순발력이 뛰어나 평소처럼 힘을 이용해 빠른 속도로 달리기를 즐겼는데, 여기서도 똑같이 하다가 오르막 중반에 지치고 말았다.

다소 무리하게 오르다 보니 체력손실이 많아 이날 저녁 야영을 하면서 몹시 힘들어 했다. 고지대 라이딩에서는 무리하지 않고 반드시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페달 스트로크를 효율적으로 해야만 한다.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린 물을 이용한 경작지.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린 물을 이용한 경작지.

	이곳 여인들의 전형적인 모습
4 이곳 여인들의 전형적인 모습. 인도 땅이지만 인도인과 다르며 라다크 인을 닮았다. / 5 나코로 이어진 협곡을 지난다.
 가장 힘든 날을 이겨내다

큰 산 허리를 넘어서 얼마간 앞으로 가자 이번에는 가파른 절벽을 절개해 만든 길이 나타났다. 먼 데서 보면 위태로워 보이겠지만 정작 자전거를 타는 우리는 오히려 평지를 달리는 것보다 재미있었다. 시야가 넓어지니 좌우로 뵈는 풍광 또한 계곡 밑에서 보는 것보다 장관이었다.

근경은 빛에 묻혀 꿈 속 같고, 원경은 거대한 땅덩어리가 하늘 중간에 붕 떠있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해가 기울어 하늘색이 단조롭고 은은했다. 거의 한 번도 쉬지 않고 자전거를 모느라 몸은 피곤하고 눈꺼풀은 감겼다. 하지만 낙조를 떠안은 산줄기의 장엄함과 이로 인한 감정의 황홀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홍섭·조성현 대원이 많이 지친 상태에서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더 가는 것은 무리여서 야영하려 했지만 물을 구할 수 없었다. 나와 김시우 대원이 물을 찾으려 계속 올라 큰 마을인 나코(Nako) 입구에 도착했다. 야영지와 물은 찾았으나 후미의 두 사람이 도착하지 않았다. 우리의 갈증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야영지를 정한 후 땅에서 솟는 빙하수를 떠서 김시우 대원에게 주었다.

마침내 이홍섭·조성현 대원이 야영지에 도착했다. 다들 몸은 지쳐 있었지만 만족한 얼굴들이었다. 특히 초반에 힘을 많이 쓴 조성원 대원은 체력이 거의 방전 일보직전이었지만 표정이 밝았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 텐트 안으로 들어가니 각자 텐트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서로들 아무 말이 없었다.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오늘이 가장 힘들었던 날로 기억될 것이다. 자전거 여행은 출발 후 3~4일째 되는 날이 가장 힘들기 때문이다. 이 기간만 잘 버티면 적응되어 이보다 더 힘든 구간도 수월하게 지나갈 수 있다.

다들 어떤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으며 또한 잠 속에서는 어떻게 사색과 망상의 바다를 항해했을까. 이따금 저마다의 텐트 안에서 들려오는 기침소리를 듣다가 잠이 들었는데 깨어 보니 어느새 밖이 번하였다.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 긴팔과 바람막이 재킷을 입어야 할 정도였다. 김시우 대원이 아침 준비를 하고 나는 대원들의 자전거를 살폈다.

체인에 기름칠을 하고 느슨해진 볼트는 단단하게 죄며 헐거워진 이음새는 충격이나 진동에도 유격이 없도록 렌치를 이용해 고정했다. 예상컨대 앞으로 가면 갈수록 노면 상태가 좋지 않을 게 뻔했다. 그러니 매일 출발하기 전 자전거와 짐을 세세하게 챙기고 점검하는 일은 필수적이었다. 또한 조성현 대원이 기력을 회복한 것이 다행이었다.

나코마을은 우아하고 질박한 동네였다. 큰 곰처럼 우뚝한 설산으로부터 흘러내린 맑은 물을 이용해 감자와 보리를 일구며 살아가고 있었다. 마을 한가운데는 물을 가두어놓은 호수가 있고 주변으로 고만고만한 크기의 집들이 골목과 골목을 만들며 앉아 있었다.

나코를 정점으로 내리막이 시작되었지만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대원들은 새 옷을 입은 아이처럼 날쌔게 달렸다. 나 역시 새로운 기분이었다. 정수리는 시원했고 뼈와 살은 상쾌했다. 정신이 급박하게 변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 우리가 다른 세계에서 새로운 경험을 맞이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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