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김삿갓’ 생가에는 현대판 김삿갓이 살고 있다는데…

바이크조선

입력 : 2016.06.20 14:17

방랑시인 김삿갓의 생생한 흔적

강원도 영월에는 ‘김삿갓면’이 있다. 사람 이름을, 그것도 별명을 공식지명으로 삼은 곳은 국내에서 이곳이 유일할 것이다. ‘김삿갓’으로 알려진 방랑시인 김병연(1807~1863)이 은거했고 영면한 곳이 바로 여기다. 예로부터 전란을 피하기 좋다는 ‘십승지(十勝地)’에 들지만 그만큼 교통이 불편하고 세상과 동떨어진 산간오지이기도 하다. 깊은 산속에 숨은 듯 자리한 그의 무덤과 집터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방랑시인의 절망과 한계를 읽는다.

	김삿갓 묘비 앞에 선 '현대판 김삿갓'
김삿갓 묘비 앞에 선 '현대판 김삿갓'
이것은 차라리 출가다. 시골마저 번잡하다고 느껴 높은 산을 넘고 길고 긴 계곡을 거쳐야 겨우 당도하는 골짜기. 지금도 고개를 몇 개나 넘고 인적 드문 산악지대를 한참을 가야 겨우 닿을 수 있는 곳. 김삿갓이 은거한 곳은 너무나 깊고 멀다. 150년 전에는 그야말로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격오지였을 것이다. 여기서 산다는 것은 속세를 등지는 승려의 ‘출가’ 바로 그것이다. 아니, 훨씬 더 이상이다.

	김삿갓 묘 맞은편으로 보이는 골짜기를 따라 1.8km를 올라가야 생가가 나온다.
김삿갓 묘 맞은편으로 보이는 골짜기를 따라 1.8km를 올라가야 생가가 나온다.

저 아래 계곡까지 도로가 뚫리고 기념관과 식당들이 들어서면서 휴일이면 관광객들로 떠들썩하지만 협곡을 따라 1.8㎞나 더 올라온 해발 520m의 생가는 여전히 첩첩산중 적막강산이다. 이렇게 깊은 산속으로 숨어든 은둔생활로도 부족해 김삿갓은 스물둘에 아예 ‘가출’을 감행한다. 집을 나간 뒤에는 겨우 몇 번만 들렀을 뿐 결국에는 죽어서 돌아와 골짜기 입구에 묻혔다. 35년간의 방랑생활을 시작하고 마무리한 곳이 바로 여기다.

김삿갓이 10여년을 살았고 뼈를 묻은 이곳은 2009년 지명조차 영월군 하동면(下東面)에서 ‘김삿갓면’으로 바뀌었다. ‘김삿갓’은 이 산간오지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관광 브랜드로 재탄생한 것이다.


	김삿갓 묘 아래에 있는 조형물
김삿갓 묘 아래에 있는 조형물

150년 전 팔도를 누볐던 방랑시인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金炳淵)이다. 불과 15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인데 실존인물이라기보다 전설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워낙 많은 일화가 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병연은 1807년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평안도 선천부사를 지내던 그의 할아버지 김익순이 1811년에 일어난 홍경래난 때 중과부적으로 반란군에 투항한 죄로 1812년 처형된 사건은 그의 일생을 뒤흔들어 놓았다. 아버지는 남해로 귀양을 갔고 김삿갓 등은 노비의 도움으로 황해도 곡산으로 피신했다가 다행히 사면이 되어 경기도 가평에 잠시 살았다. 그러다 ‘역적 집안’이란 멸시를 피해 산간지대인 영월(영월읍 삼옥리)로 10살 때 옮겨온다. 지금의 와석리 골짜기로 더욱 은둔한 것은 17세에 결혼해서 분가하면서부터다.


	김삿갓 생가로 가는 길목의 성황당
김삿갓 생가로 가는 길목의 성황당

영월 관아에서 열린 백일장(정식 과거시험은 아님)에서 조부 김익순을 비판하는 내용의 글로 장원이 된 것은 꽤 알려진 일화다. 나중에야 어머니로부터 집안 내력을 듣고 조상을 욕되게 했다는 자책감에 빠진 김삿갓은 처자식을 깊은 산골짜기에 둔 채 홀로 방랑의 길을 나선다.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는 의미에서 삿갓을 쓰고 다녀 ‘김삿갓’이 별호처럼 되었다. 전국을 떠돌면서 수많은 일화와 시를 남겼는데, 그의 시는 기존 한시(漢詩)의 틀을 벗어난 파격적인 형식과 내용으로 대단한 반향을 불렀다.

김삿갓은 전남 화순의 ‘적벽’ 경치를 특히 좋아했는데, 전국을 떠돌다 마지막을 맞은 곳도 바로 그곳이었다. 1863년 화순 동복에서 김삿갓은 5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아들 김익균은 수소문 끝에 방랑중인 아버지를 몇 번 찾아낸 적이 있지만 번번이 집에 돌아가기를 거부해 혼자 귀가하곤 했다. 익균은 마침내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화순으로 내려가 영월까지 운구해 지금의 자리로 이장했다.

김삿갓은 그 자신이야 자유롭게 산천을 떠돌았을지 모르지만, 산골짜기의 손바닥만한 밭뙤기로 겨우 연명했을 처자식의 처지는 어땠을지, 참으로 무책임한 가장이었다.


	전국에서 유일한 별명 지명인 '김삿갓면'
전국에서 유일한 별명 지명인 '김삿갓면'

‘현대판 김삿갓’의 비밀

김삿갓 생가가 있는 와석리는 조선시대 최고의 길지(吉地)로 꼽힌 십승지(十勝地)의 하나였다. <정감록> <택리지> 같은 비결서에 등장하는 십승지는 기본적으로 난리를 피하기 좋은, 다소 수동적인 피난처의 의미가 크다. 여기에 풍수지리적인 해석까지 덧붙는데, 전쟁 같은 난리가 미치지 못할 정도로 깊은 산골은 대개 지명에 ‘둔(屯)’자가 붙는다. 김삿갓 집터가 있는 골짜기도 어둔(於屯)이라고 한다.


	마대산 기슭 해발 520m 지점의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김삿갓 생가
마대산 기슭 해발 520m 지점의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김삿갓 생가

20년 전만 하더라도 폐허로 방치되어 있던 집터는 산뜻한 초가로 복원되었고 진입로는 시멘트로 포장되었다. 무덤 앞에는 김삿갓의 호를 딴 난고정(蘭皐亭)도 서 있다. 게다가 한복 차림에 수염을 기른 현대판 김삿갓이 생가에서 혼자 살고 있다. ‘현대판 김삿갓’은 낮에는 난고정에 머물며 무덤을 돌보고 참배객들에게 해설도 해준다.

난고정에서 만난 현대판 김삿갓은 흰 수염을 넉넉하게 길렀지만 피부가 하도 좋아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60대 초반 정도일까. 이미 언론에도 여러 번 등장해 영월에서는 유명인사다. 본명과 사연을 물었지만 커다란 너털웃음부터 웃는다. 명함에는 ‘최상의 樂으로 사는 산바보’ ‘현대판 김삿갓’이라고 적혀 있을 뿐이다.


	생가에 모셔진 김삿갓 초상화
생가에 모셔진 김삿갓 초상화

“전생의 인연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여긴 하늘이 보호하는 십승지야. 난 도력을 부리면 8천m 상공까지 올라갈 수 있어요.”

허풍과 넉살이 어딘가 유머러스하면서도 깊은 산속에 홀로 지내며 ‘현대판 김삿갓’을 자처하는 삶의 무게감만은 예사롭지 않다. 2005년 생가를 찾았다가 허물어졌지만 ‘이곳이 내집’이라는 운명적인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군청과 협의해서 집을 복원하고 무덤을 관리하고 있다. 관광객들에게는 김삿갓에 대한 해설을 해주고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주기도 한다.


	김삿갓문학관에 전시된 김삿갓의 친필
김삿갓문학관에 전시된 김삿갓의 친필

“내가 축지법도 써요. 충청도와 경상도를 순식간에 11번을 오가지.”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김삿갓묘에서 집까지 이어지는 계곡이 마침 강원도 영월과 충청도 단양의 경계선이어서 물길을 11번 건너가니 축지법 아니냐고 한다. 천연덕스런 너스레에도 좋은 정보가 들어있으니 흥미가 배가된다. 그에 따르면 옛날에는 산 아래의 김삿갓계곡에는 길이 거의 없었고 영월이나 단양에서는 집 뒤의 마대산(1052m)을 넘어 다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걸어다니던 시절에는 구불거리는 협곡보다는 좀 힘들긴 해도 산을 넘는 것이 더 가깝고 쉬웠을 것이다.

사진 포즈를 부탁하자 도포를 턱 걸치고 호리병과 짚신을 묶은 괴나리봇짐을 진 다음, 멋진 지팡이까지 손에 쥐었다. 현대판 김삿갓은 오히려 신선에 가까워 보인다.


	김삿갓문학관과 낙엽을 덕지덕지 묻힌 김삿갓 동상
김삿갓문학관과 낙엽을 덕지덕지 묻힌 김삿갓 동상

웃음은 과장될 정도로 크고 목소리에는 힘이 넘친다. 그럴수록 짙은 고독과 세상에 대한 통찰력도 은근하다. 명함 뒷장의 글씨가 세속에 찌든 머리와 가슴에 작은 충격파를 던진다.

“되면 좋고 안 되면 더 좋고”

<찾아가는 길>

서울에서 갈 경우 : 중앙고속도로 제천IC~영월 또는 북단양IC~영춘면 방면으로 진입하면 편하다. 김삿갓 생가로 올라가는 계곡 입구 언덕에 그의 무덤이 있다. 무덤에서 생가 까지는 1.8㎞ 거리.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으나 길이 좁아서 자동차 출입은 금지된다. 걸어서 25분 정도 걸린다. 생가 맞은편에는 버섯과 산나물 등을 재배하는 민가도 한 채있다. 무덤 주변의 개울가에 김삿갓문학관과 식당, 펜션 등이 다수 모여 있다.

라이딩을 할 경우 : 영월읍내에서 출발하면 왕복 50㎞ 정도 되어 하루 코스로 적당하다.

김삿갓 생가 주소 :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마대산길 160-15

글·사진 김병훈(자전거생활 발행인)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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