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 부러져도 다시 페달 밟는 '업힐왕'

삼척=김수경 기자 cat@chosun.com 이

입력 : 2016.06.18 03:00 | 수정 : 2016.06.20 11:13

자전거 동호인의 '전설' 김팔용 씨
마흔에 처음 시작한 자전거… 싸구려 자전거 비웃음에도 3개월 연습한 첫 대회 1등
교통 사고로 1년 재활 뒤 다시 나간 대회도 금메달

평생 직장과 집밖에 모르던 40세 남성이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국내 자전거 대회에서 1위를 거머쥔다. 나가는 국내외 대회마다 메달을 휩쓸다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양 발목이 부러진다. 하지만 금세 털고 일어나 다시 자전거 대회 1등을 탈환하고 이제 280㎞의 장거리 대회를 정복하려 한다.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는 자전거 동호인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 인사인 김팔용(52)씨 실화다.

강원 삼척에 사는 그는 '업힐왕', '힐클라임(hill climb)의 전설'로 불린다. 국내외 각종 업힐(uphill·오르막)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는 자전거 선수도, 어릴 적부터 훈련을 해온 것도 아닌 평범한 동호인"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 2003년 처음 자전거 핸들을 잡았다. 20년 가까이 식당 조리사로 일하며 모은 8000여만원을 주식에 투자했다가 모두 날린 뒤였다. 집을 사려고 모아두었던 돈을 한꺼번에 날리고 나니 밥을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위경련이 생기고 하루하루 말라가던 그가 찾은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바로 자전거였다. 힘들게 허벅지 근육을 쥐어짜며 자전거로 산에 오르고 나면 걱정이 사라졌다고 했다. 자전거 동호회원이던 친구 말에 솔깃해 자전거포에 들른 그 날이 그가 난생처음 자전거 안장에 오른 날이었다.


	김팔용씨는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뒤엔 목표를 정해놓고
김팔용씨는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뒤엔 목표를 정해놓고 사는 삶이 정말 살아 있는 것이라 느낀다”고 말했다. / 삼척=조인원 기자
싸구려 자전거로 1위

그의 첫 자전거는 180만원짜리 국산 알루미늄 MTB였다. 40만원 정도면 괜찮은 자전거를 구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산에 타고 다니려면 이 정도는 돼야 안전하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 때문에 무리를 했다.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동호회에 나가보니 그의 자전거가 최저가였다. 다른 동호회원들의 자전거는 대부분 500만~800만원대 카본 자전거였다. 처음 타는 자전거라 그는 수시로 넘어지고 뒤처졌고 앞서가던 동호회원들이 숨을 몰아쉬며 쫓아오는 그를 기다리곤 했다. 몇몇 동호회원들은 "그런 싸구려를 가지고 무슨 자전거를 탄다고 하느냐"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장비가 아니라 실력과 체력이 관건'이라고 생각했던 김씨는 몇 달 뒤 있을 대관령 힐클라임대회 참가를 목표로 홀로 훈련을 시작했다.

한식당 주방장이었던 그는 오전 6시에 일어나 3시간쯤 자전거를 타고 10시에 출근했다. 밤 10시에 퇴근하고도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삼척대학교 근처 경사도 15%인 언덕을 수십 번씩 오르내렸고 매일같이 봉황산을 자전거로 올랐다. 대회 때문이 아니라 자전거를 타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김씨는 "자전거로 언덕을 올라갈 때면 허벅지 근육을 쥐어짜야 하고 땀 범벅이 되는 데다 숨도 가쁘지만 정상에 오르고 나면 기분이 아주 좋다"고 했다. 3개월 동안 쉬는 날 없이 연습한 뒤 참가한 제2회 대관령 힐클라임 대회에서 그는 만 39세로 30대 그룹 1등을 차지했다. "처음에 선두그룹 꽁무니에 붙어서 갔는데 이상하게 고개 하나씩 넘을 때마다 한두 명씩 제 뒤로 밀리더라고요." 매일 뒤처지기만 하던 그가 메달을 거머쥐니 동호회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장비가 싸구려"라던 조롱도 쏙 들어갔다.


	김팔용씨는 2007년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도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 장면을 설명한 사진이 인터넷에 돌면서 그는 ‘스타’가 됐다.
김팔용씨는 2007년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도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 장면을 설명한 사진이 인터넷에 돌면서 그는 ‘스타’가 됐다.

목표가 생기면 그 생각만 한다

이 대회 이후 4년간 그는 출전한 모든 자전거 대회에서 1위를 거머쥐었다. 금메달과 트로피만 30개가 넘는다. 2005년 오사카에서 열린 힐클라임 대회와 2007년 후지산 힐클라임 대회 등 외국에서 열린 대회에서도 우승을 했다. 하지만 그가 자전거 동호인들 사이에서 유명해진 건 2007년 열린 제5회 대관령 힐클라임 대회에서 찍힌 사진 한 장 때문이다. 물통도 장갑도 없고 페달에 발을 고정시키는 클릿슈즈도 없이 운동화를 신은 그가 일본 국가대표 선수를 한참 따돌린 사진이었다. 그는 "늦잠을 자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헬멧만 겨우 챙겨서 대회장에 도착했다"며 "산지 15일밖에 안 된 새 자전거라서 (언덕을 올라가면서) 기어를 내려야 하는데 기어 전환 버튼을 착각해 (기어를) 계속 올리는 바람에 중간에 체인이 빠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대회에서 10대와 20대 선수들을 모두 누르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김씨는 "그때쯤 자전거에 미쳐 산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이 듣기 좋았다"고 했다.

2009년 교통 사고가 났다. 자전거로 출근하던 날이었다. 1차선에서 달리던 그는 2차선에서 깜빡이를 켜지 않고 좌회전 하는 승용차와 부딪혔다. 양쪽 복숭아뼈가 산산조각났다. 발뒤꿈치로 바닥을 디딜 수 없어 1년 동안 병원에 누워 지내야 했다. 양쪽 다리가 짝짝이가 됐고 왼쪽 발목은 완전히 젖힐 수 없게 됐다. 장애 6급 판정을 받았다. 주변에선 그가 다시는 자전거를 탈 수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하지만 1년간의 재활이 끝날 때쯤 그는 또다시 자전거 대회에 나갔고 보란듯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저한테 타고났다고, 쉽게 1위 한다고 해요. 그런데 아니에요. 목표가 생기면 목표를 적은 종이를 벽에 붙여놓고 그 생각 하나만 합니다"라고 했다. 그는 25일부터 이틀 동안 강릉에서 열리는 '280랠리'에 참가한다. 36시간 내 백두대간 280㎞를 자전거로 완주해야 하는 대회다. 전체 참가자 중 완주를 하는 사람이 20% 안팎일 정도로 극한을 시험하는 대회다. 처음 참가하는 이 대회에서 완주하는 게 그의 올해 목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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