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히말라야의 거대한 협곡, 잔스카르 여행에 나서다!

글·사진 이남석 서울 성동공고 교사

입력 : 2016.12.23 10:56

고소증세 극복하고 싱골라(5,090m)고개를 넘다


	잔스카르산맥의 거대한 위용. 산 아래 완만한 비탈에 주민들의 경작지가 보인다.
잔스카르산맥의 거대한 위용. 산 아래 완만한 비탈에 주민들의 경작지가 보인다.

4년 전이었다. 당시 나는 자전거로 인도 마날리(Manali)를 출발해 5일간의 여정 끝에 라다크의 레(Leh)에 도착해 여독을 풀었다. 레를 떠난 나는 스리나가르(Srinagar)와 레의 중간에 위치한 카르길(Kargil)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대로 스리나가르로 갈 것인지, 아니면 잔스카르(Zanskar)의 파둠(Padum)으로 갈 것인지를 놓고 밤새 고민했다.

결국 체력적인 문제를 고려해 잔스카르의 파둠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스리나가르로 갔다. 귀국한 뒤 언젠가 꼭 잔스카르의 중심인 파둠으로 여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4년이 지난 올해 여름 그 결실을 맺었다. 나는 두 명의 동료와 인도 델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등반 능력이 탁월하고 체력이 강건한 김시우 대원(원주고 총동문산악회장)과, 체육교사이며 빼어난 라이딩 실력을 가진 조성원 대원이 동행했다.

잔스카르는 인도 북부 히말라야와 인접한 지역이다. 파키스탄·중국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민감한 땅이며, 티베트 불교의 원형과 생활방식이 잘 보전된 지역이다. 잔스카르는 잔스카르산맥과 히말라야산맥 사이의 협곡과 평원으로 된 독특한 지역이다. 외부인의 접근이 힘들어 레 같은 큰 도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1 해발고도 4,000m에 이르는 로탕라고개를 오르는 길. 구름이 길동무가 된다. 2 마날리 숙소를 출발하기 직전의 대원들. 왼쪽부터 조성원 대원, 필자, 김시우 대원.
1 해발고도 4,000m에 이르는 로탕라고개를 오르는 길. 구름이 길동무가 된다. 2 마날리 숙소를 출발하기 직전의 대원들. 왼쪽부터 조성원 대원, 필자, 김시우 대원.
다르차 경찰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행운 빌어줘

인도 델리 캐시미어게이트 버스터미널에서 마날리로 가는 버스를 탔다. 완행을 타고 17시간 이상을 달려 밤 12시에 마날리에 도착했다. 비행기에 시달리고 버스에서 고초를 겪은 덕분에 우리는 소금에 절인 숨죽은 배추가 되었으나, 다음날 아침 일찍 잔스카르계곡으로 가기 위해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여독이 남아 있어 피곤했지만, 아침 햇살과 함께 로탕라를 오르기 시작했다. 로탕라는 고도 4,000m에 이르는 고개다. 오르는 길이만 50km가 넘고, 계속 오르막이다. 첫 고비인 셈이다. 때문에 여기서 지치면 나머지 구간을 완주하기 어렵게 된다. 더구나 고소 적응 차원에서도 반드시 넘어야 할 고개였다.

몬순이 물러나고 해가 나자 자전거에 20kg 이상의 짐을 매달고 경사를 오르는 게 만만치 않았다. 이곳은 인도 히말라야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이기에 야영으로 해결해야 했다. 때문에 텐트와 취사도구 등 최소한의 장비만으로도 무게가 적지 않게 나갔다. 틈나는 대로 쉬고 물을 마셨지만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로탕라고개 정상을 20km 남기고 마리(Marih)라는 작은 마을에 텐트를 쳤다. 첫날부터 너무 힘을 빼는 것은 이롭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다음날 오전, 로탕라에 올랐는데 평소대로라면 안개에 덮여 있었겠지만 뜻밖에도 구름이 걷히고 상쾌한 하늘과 설산이 드러났다. 로탕라 정상에서 좌측으로는 우리가 가야 할 레와 잔스카르로 가는 계곡이었다. 우측으로 스피티(Spiti)계곡이 뻗어 있는데 끝을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깊었다. 잔스카르 숨도(Sumdo)와 파둠으로 갈라지는 다르차(Darcha)까지는 대체로 특정 구간을 제외하고는 포장도로였으며 먼지가 많이 나는 포장이 벗겨진 구간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이날 가장 긴 80km 이상을 달렸다.


	1 로탕라고개를 오르던 중 휴식을 취하며 빨래하는 여인들을 사진에 담았다. 2 팔라모마을을 지나 숨도마을을 향해 간다. 구름과 점점 가까워지는 만큼 경치가 화려해지며, 고소증세가 대원들을 압박해온다.
1 로탕라고개를 오르던 중 휴식을 취하며 빨래하는 여인들을 사진에 담았다. 2 팔라모마을을 지나 숨도마을을 향해 간다. 구름과 점점 가까워지는 만큼 경치가 화려해지며, 고소증세가 대원들을 압박해온다.
탠디(Tandy)에서 야영하면서 우리는 ‘크리스티안’과 ‘다이아나’ 두 명의 남녀 스위스 자전거 여행자들을 만났다. 공교롭게도 우리처럼 잔스카르로 가는 중이었다. 같은 곳을 여행 중인 데다가 크리스티안이란 남자는 파미르고원을 제외하고는 내가 여행한 히말라야 오지를 모두 자전거로 여행한 베테랑이었다. 이들과의 인연은 델리 공항에까지 이어졌다.

다르차까지는 그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반복했지만 다르차 이후로는 우리보다 스위스 팀이 앞서갔다. 다르차에 도착해서 여권 검사와 등록을 했다. 특히 레로 가는 여행자는 모두 신상 등록을 해야 하는데 우리가 레가 아닌 싱골라(Singol La)를 넘어 파둠으로 간다고 하자 경찰관은 잠깐 펜을 내려놓더니 나를 다시 한 번 쳐다봤다. 자전거를 타고 가느냐고 물어보기에 그렇다고 대답하자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곤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행운을 빈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대부분 여행객들은 레로 향하며 잔스카르로 간다는 것은 힘겹고 위험한 오지여행에 나선다는 의미였다. 한국인이 자전거로 이곳을 여행한 이가 있었냐고 묻자, 그는 “전혀 없다”고 했다.

싱골라를 넘고 잔스카르계곡을 통과해 파둠으로 가는 길에 관한 정보는 여행안내서 <론리플래닛>과 구글에서 얻은 것이 전부였다. 이곳을 여행한 자전거 여행자들의 기록과 위성지도를 참고해 확인한 트레킹 루트, 그리고 마을에 관한 정보 이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갈수록 초지는 황무지로 변하고 계곡의 물소리는 거칠어졌다. 해발 5,000m가 넘는 싱골라로 이어진 도로는 팔라모(Palamo)마을까지만 포장되어 있고 이후로는 비포장이었다.

팔라모마을을 지나며 완만한 경사가 계속되어 우리를 지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숨 가쁘게 변하는 계곡과 설산, 거칠고 현란한 색깔의 구릉과 풍화된 산줄기는 자전거를 끌면서 느끼는 신체적 고통을 단번에 압도했다.

숨도를 목전에 두고 조성원 대원이 점점 뒤처졌다. 김시우 대원은 거의 꾸준한 속도였지만, 조 대원은 아침에 기운을 회복했다가도 오후가 되면 급격히 체력이 떨어졌다. 다르차 이후 고도 4,000m에 육박하는 길이 이어지며 산소부족으로 인한 고소 증세 때문이었다. 숨도 직전에서 야영하기로 하고 일단 조 대원을 쉬게 했다. 문제는 선두에서 앞서 간 김시우 대원이었다. 별 수 없이 짐을 풀어놓고 빈 자전거로 김 대원을 좇아갔다. 얼마 후 그를 만났다. 조 대원이 뵈지 않자 그도 다시 내려오고 있었다.

자리에 누워서도 앞길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조 대원이 빨리 회복되는 것이 중요했다. 밤은 더욱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그 기분을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시커먼 윤곽을 드러낸 산줄기 위로 빛나는 하늘의 별을 보는 것으로 위안 삼았다. 하지만 곧이어 알 수 없는 짐승들 소리와 계곡의 물소리에 마음이 무거워져 다시 잠자리로 돌아왔다.

곧 도착할 것만 같았던 싱골라 정상은 다음날 하루 종일 올라도 이르지 못했다. 산을 쪼갤 듯 떨어지는 만년설이 녹아내린 물, 능선에서 무너지고 흘러내린 너덜과 흙더미들은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정원이었다.


	1 스위스 자전거 여행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번 여행 내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했다. 2 힘겹게 오른 해발 5,090m 싱골라고개 정상에 선 대원들. 왼쪽부터 김시우 대원, 필자, 조성원 대원. 3 경전이 적혀 있는 깃발인 타르초 아래에서 안전하게 여행을 마치길 빌었다.
1 스위스 자전거 여행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번 여행 내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했다. 2 힘겹게 오른 해발 5,090m 싱골라고개 정상에 선 대원들. 왼쪽부터 김시우 대원, 필자, 조성원 대원. 3 경전이 적혀 있는 깃발인 타르초 아래에서 안전하게 여행을 마치길 빌었다.
싱골라 고개 정상에서의 감격

오후로 접어들며 조 대원이 다시 힘들어 했다. 싱골라 정상까지는 도저히 갈 수 없다고 판단한 우리는 적당한 곳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앞서간 두 스위스 친구가 유목민들이 임시로 거처했던 야영지에 머물고 있는 걸 발견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고소증세가 와 이동하지 않고 하루를 더 머물고 있는 중이라 했다.

텐트를 치는 중에 10필도 넘는 말에 배낭과 카고백을 싣고 가는 영국 트레킹 팀을 만났다. 길에 대한 정보도 얻을 겸 트레킹 팀 리더와 얘기를 나누던 중 우리 일행이 고소로 힘들어 한다고 하자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약을 나누어 줬다. 나는 고소에 대한 염려를 크게 하지 않아 일반적인 고소증 해소제인 빈혈약과 아스피린만을 준비했다.


	1 최난코스인 싱골라고개를 오르는 길. 계곡의 수량이 적지 않아 신발을 벗고 자전거를 여러 번 끌어야 했다. 2 싱골라고개를 6km 남긴 지점에서의 야영. 숙소가 무척 귀한 오지이기에 대부분은 텐트에서 야영했다.
1 최난코스인 싱골라고개를 오르는 길. 계곡의 수량이 적지 않아 신발을 벗고 자전거를 여러 번 끌어야 했다. 2 싱골라고개를 6km 남긴 지점에서의 야영. 숙소가 무척 귀한 오지이기에 대부분은 텐트에서 야영했다.
다음날 싱골라까지 마지막 6km를 오르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보통 고개를 오를 때 경험하는 전형적인 지그재그 형태의 길이 아니었다. 능선의 경사를 따라 계곡을 돌아나가는 오르막이었는데, 간간이 급경사와 급류를 건너야 하기에 쉽지 않았다. 싱골라 정상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제법 넓고 물살이 센 급류를 건넜는데 여기까지만 자동차가 올라올 수 있었다. 자전거에서 내려 신발을 벗은 채 도랑을 건넜다.

마침내 우리는 싱골라 정상에 도착했다. 마날리를 출발한 지  5일 만에 도착한 것이다. 정상에 선 표지판을 보는 순간 우리 모두 감격했다.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했지만 곧이어 서풍이 불고 순식간에 구름이 걷히며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작은 호수를 품은 고개와 주변 산세가 드러났다.

싱골라 정상에 세워진 안내판을 읽으며 비로소 싱골라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싱골라는 남쪽의 라하울 스피티계곡과 북쪽의 잔스카르계곡을 연결하는 고개였다. 이렇듯 싱골라는 쿤줌라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던, 말하자면 교통의 요지였다. 이 길과 고개를 통해 종교와 문물이 인도와 티베트 고원을 거쳐 라하울 스피티를 지나 잔스카르로 이동했던 것이다.

눈이 쌓이고 굳어진 후 다시 주변 침식에 의해 자갈로 덮인 빙하가 고개 양 옆으로 뻗어 있었다. 이 견고하고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천천히 녹아 잔스카르계곡과 라하울 스피티계곡 양쪽으로 마르지 않는 물을 공급했다. 낮은 바람은 호수에 그림자를 지웠으며, 스피티계곡으로부터 달려 온 산줄기는 숨을 고르며 마지막 바통을 잔스카르계곡에 넘겨줬다. 오색의 타르초(경전이 적혀 있는 깃발)는 고개를 넘던 사람들의 원을 담아 하늘에 입을 맞추었으며, 밤마다 별빛을 품었던 설산은 평온한 용모로 낮은 언덕과 계곡을 아우르고 있었다.

어제 먹은 고소약이 효력이 있었던지 우리는 별다른 고통 없이 잔스카르계곡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늘은 흰 구름 몇 조각이 눈부실 정도였으며 지금까지 봤던 풍광과는 전혀 다른 라다크 특유의 색깔을 드러냈다. 내리막이지만 자전거를 타고 내려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길 자체가 폭탄 파편같이 끝이 잘려나간 예리한 자갈들로 가득한 데다가 경사도 급했다. 자전거를 끌고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자전거를 달릴수록 길은 점점 험해졌지만, 풍경에 취해 즐거움도 배가되었다.
자전거를 달릴수록 길은 점점 험해졌지만, 풍경에 취해 즐거움도 배가되었다.
길은 험해지고 비탈져도 행복감 넘쳐

8부능선에 도착할 무렵 맞은편에서 올라오는 자전거 여행자와 만났다. 프랑스 친구로 또 다른 프랑스 트레커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올라오는 중이었다. 오지를 여행하다가 만나는 자전거 여행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친밀감과 동지애를 느끼게 된다. 서로 국적을 묻고 지나 온 길에 대한 정보를 나누며 기념사진을 찍은 후 이메일 주소를 교환하는 일은 자전거 여행자들 사이에 정해진 순서나 마찬가지였다.

우리보다 먼저 간 크리스티안과 다이아나 두 스위스 친구들에 관해 묻자 바로 앞에서 만났다고 했다. 그들이 우리보다 일찍 출발했지만 많이 앞질러 가지는 못했던 것이다. 나는 김 대원과 조 대원을 앞에 세운 채 뒤에서 천천히 이동했다. 잔스카르 자전거여행은 이제 시작이었다. 길은 험하고 비탈져 자전거로 가기에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행복했다.


	[그래픽] 인도 잔스카르 자전거여행 루트도
싱골라에서 멀어질수록 경치는 화려해졌다. 해가 기울며 갖가지 색으로 채색한 라다크 특유의 빛깔이 계곡 속으로 쏟아졌다. 길이 희미한 곳에서는 말똥이 있는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트레커들의 짐을 실은 말들이 이동하는 길에는 언제나 말똥이 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친구가 알려준 다바(식당 겸 숙소)에서 하루 쉴 계획으로 꾸준히 이동했지만 좀처럼 평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해가 기울어 갈 때쯤 강바닥까지 내려왔지만, 다바가 없었다. 더 이상 이동하기 힘들어 야영을 결정했지만 이번에는 식수를 구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식수가 있는 야영지나 다바까지 가려면 강을 건너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두 사람과 상의한 끝에 강을 건너 반대편으로 이동한 후 물길을 따라 더 내려가 보기로 했다. 해는 이미 내려앉아 주변은 어둑해지기 시작했으며 길도 희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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