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산맥이 기를 다해 주저앉는 어간에서 경안천은 출발한다. 와우정사에 드러누운 부처님이나, 물줄기의 정수리에 눌러 앉은 문수보살이나 해실 골짜기가 범상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계시리라. 세월이 가다보니 인구 100만을 넘긴 용인이나, 서울의 동남쪽 관문, 땅금 비싼 광주(廣州)나 어여쁘고 오래된 이름 김량(金良)과 경안(京安)을 잃어버리긴 매한가지다. 오염의 강을 털고 이제 수도권의 물 창고 팔당댐으로 가는 물 한 바가지라도 더 보태는 경안천, 이 겨울 강물이 얼지도 못하고 주저앉은 습원에 철새가 분주하다.
- 겨울 강으로 마실 나온 자전거. 잔챙이라도 잡을까하고 강가로 내려간 촌로는 그저 끌탕이다.
태국 스님도 추위 피해 떠난 와우정사
한 겨울의 골짜기가 춥지 않은 곳이 있을까만 곱등고개 아래는 장갑을 끼고 자전거를 잡은 손이 시렸다. 광주산맥이 맥이 빠질 때쯤 해서 문수봉이 솟아 있고, 바래산이 골짜기를 만든 해실리 골짜기에서 경안천은 시작된다.
- 문수산 아래 호랑이 골에서 경안천은 시작된다.(용인 처인)
- 와우정사는 산속의 절이 아니다. 열반종의 본산인 국제사찰이다.(조용연 자료사진)
- 와우정사의 누워계신 부처님. 인도에서 모셔 온향나무 목불이다.(조용연 자료사진)
- 도랑 수준이지만 강둑길은 친절하게도 잘 닦여져 있어 철을 가리지 않고 자전거 손님들이 찾는다.(용인 처인)
100만 도시 용인, 김량장이 그립다
페달질이 익을 때쯤 용인시내에 들어선다. 여전히 경안천은 조그만 냇가다. 둔치는 공들여 만든 조형물이 심심찮다. GS수퍼마켓 자리가 옛 김량장역 터다. 김량장은 경전철역으로 살아났으나 사어(死語)에 가까운 이름이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김령역참이 있었고, 김령장이 있었다 하니 김량이라는 사람이 처음 장(場)을 세웠다는 설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자전거길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용인 처인)
- 고희를 넘긴 노인들도 청년처럼 자전거를 타고 마실을 나왔다가 돌아간다.(용인 처인)
- 용인경전철이 막 지나가고 있다. 애물단지라고 어떡하겠는가. 철거할 수도 없으니 이제야 사랑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용인 동부)
- 경안천은 오염의 오명을 벗었다. 왜가리 떼가 무리지어 나르는 걸 보면(용인 포곡)
그런 생각 하다보면 우울해 지니 시시껄렁한 얘기나 하나 할까. 동네 이름이다. 용인시 유방동, 옛 용인읍 유방리, 지금 영동고속도로 용인IC가 있는 동네다. 지금 지나가는 곳이다. 버드나무 숲 유림(柳林)리와 방축(坊築)리가 합해진 거라고 해도 유방의 이름은 둥글게 솟아올라 눈앞을 어지럽힌다. 유림동으로 덮어보려 하지만 참 희한하게도 에로틱한 이미지의 지명은 숨이 질기다. 유방교에 흔적이 남아 있다. 동네 이름 개명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마을주민들이 서둘러 바꾸려들지는 않는다. 예천 지보면이 그렇고, 파주 발랑동이 그렇다. 한자의 뜻까지 갈 것도 없다.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 여체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건 동서고금이 마찬가지니까.
- 둔치도 들풀을 가꾸어 놓아 제법 운치가 있다.(용인 포곡)
- 쌍둥이처럼 와 달라는 친구의 주문에 어색한 싱크로나이즈를 했다.(용인 포곡)
- 동창 선치복의 익살은 쉴 새가 없다. 할아버지도 친구들끼리는 아이가 된다.(용인 포곡)
둔전역을 지나면서는 갈대를 심어놓은 둔치길이 자전거와 숨바꼭질을 한다. 전혀 지루할 틈이 없다. 심심하면 한 대씩 지나가는 경전철도 에버랜드역으로 가려고 강을 건넌다.
자연농원이 촌스러워 ‘에버랜드’로 바꾼 것은 시대가 그렇게 강요했기 때문이다. 포곡면 땅 1/3에 들어선 450만평의 땅이 자연농원이다. 산비알마다 밤나무를 심은 호암 이병철 회장이 에버랜드가 한류의 성지가 되리라고 생각이야 했겠는가마는 그 혜안은 참 우뚝 솟은 별이다. 포곡은 경안천에 창포가 워낙 많이 자라서 포곡(蒲谷)이라 했다는 설과, 경안천이 면의 한 가운데를 지나가기에 포곡(浦谷)이라 했다는 설이 있으나 지금이야 어디 창포가 있으랴.
- 모현은 현인을 흠모함이니, 우리는 누굴 우러러보며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용인 모현)
- 왕산교에서 바라본 경안천 풍경이 이름값을 제대로 한다. 아파트 넘어서 한참을 가야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묘소가 있다.
- 경안천도 모현을 지나면 강폭이 제법 된다. 물은 말라서 보를 만들어도 건천을 간신히 면할 정도다.
그리워할 선현이 있어 부럽다, 모현(慕賢)
왕산교에 이르면 모현면 소재지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가 들어선지 30년이 넘었으나 학교 앞 캠퍼스촌은 썰렁하다. 정부시책에 따라 몸피가 늘어난 서울 시내 대학들은 어쩔 수 없이 떠나야하는 운명 속에서 용인이 최적지였다. 엎어지면 코 닿는 수도의 자장(磁場圈)에 자리를 트는 것은 ‘지방화’라는 포장지만 뒤집어쓴 임시변통이었다. 이제는 도시의 한가운데가 되었지만 경희대가 그랬고, 경기대도 그랬다. 명지대도, 용인대도, 강남대도 40km 백리 반경을 절대 넘기지 않으려 애썼다. 골프장으로 가는 길 사이사이에 절묘하게도 들어섰다. 하기야 30년 전의 용인 하고도 이 후미진 모현은 시골도 그런 시골이 없었다. 지금이야 빨간색 급행버스가 광화문과 이 산골짝을 시점과 종점으로 이어준다. 서울의 확장이지 지방화는 더욱 아니었다.
- 왕산교를 지나 광주시내까지 들어가기 전이 가장 편안한 경안천 구간이다.(용인 모현)
- 멀리 경안대교가 보인다. 다리 하나에도 아름다움을 생각하리만치 여유가 생겼다. 그게 국력이고 문화다.(광주 광남)
전통시장과 동네로나마 남은 경안, 참 예쁜 이름
왕산교를 가로질러 북으로 가는 강둑길은 넓은 강폭만큼이나 시원스럽다. 광주시내로 들어간다. 낮이 되자 추위가 조금은 누그러진 때문인지 자전거들이 둔치로 놀러 나왔다. 광주라는 말을 입에 올릴 때마다 옛 이름 경안이 아깝다. 경안은 용인 시내 김량장처럼 아예 중앙동으로 개명해 버린 것은 아니다. 잔치국수가 맛있다는 경안시장에도, 경안동에도 ‘경안’ 그 이름이 남아있다. 그나마 중부고속도로 괄호안 경안요금소도 사라졌다. 전라도 광주와 구별하자고 ‘경기광주’ 사자성어가 되었다.
- 길이 굽어 있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그대로 따라 간다는 복종의 뜻이다.(광주 경안)
- 새로 놓인 청석교는 잠수교다. 여름 한 철 두어 번은 물에 잠기리라(광주 경안)
광주(廣州)가 넓은 땅이긴 했다. 지금의 성남시 전역은 광주군 대왕면, 돌마면, 낙생면이었고, 서울 강남의 역삼동, 삼성동 코엑스 일대가 광주군 언주면이었다. 광진교 건너가기 전 천호동 일대도, 하남시가 된 동부읍도 모두 광주땅이었으나 이제 다 떼어주고 말았으니 넓은 벌 광주(廣州)라 하기도 뭣하다. 차라리 경안시로 했으면 얼마나 예쁘고 유서 깊은 이름이겠는가.
338번 지방도로 접어들어 쌍령교를 건너면 강둑길은 아예 없다. 강물이 발아래로 보인다. 초월읍이다. 초월면이 입에 밴 세월도 결국은 경부고속도로와 3번 국도를 중심으로 동네마다 빼곡이 들어찬 공장과 창고들 덕분에 늘어난 인구를 이기지는 못했다. 낭만적인 이름의 흔적을 찾으려 해봤자 소용이 없다.
- 마을 안내 간판치고는 재기가 넘친다.(광주 초월)
이름 석 자, 금자탑 학원의 추억
생뚱맞게 ‘000학원’ 간판이 가로 막는다. 이름 하여 기숙학원이다. 스스로 자유를 유보했거나아니면 부모의 강권으로 1년간 유폐된 생활이다. 그래도 흐르는 강물에 지친 눈도 식히고, 무심한 강물의 의미도 떠올리며 공부하라고 이리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를 잡은 건지도 모른다. 이들 학원들도 서울 4대문 안에서 학원을 모조리 쫓아낸 강제이주의 한 파편이다. 1970년대 초, 우리가 방학을 이용하여 서울 학원의 족집게 공부 맛을 좀 보려고 들락거리던 곳은 종로2가 뒷골목 공평동의 학원들이었다. 그때도 일류 학원들은 단과로 듣는 뜨내기손님은 사절이었다. 종로학원과 대성학원은 대학입시만큼 이나 선발고사가 까다로워 재수생도 거들먹거렸다. 1년 농사를 지어봤자 쭉정이가 될 부류들은 아예 ‘출입사절’이었다. 그래도 여름·겨울 방학 한 철에 등록하는 촌놈들을 받아주는 학원은 어김없이 이름이 석자였다. 금자탑학원과 상아탑학원의 단과반은 300~400명씩 때려 넣고 왕왕거리는 스피커를 통해 ‘성문종합영어’나, ‘수학의 정석’을 기초부터 초스피드로 몰아 붙였다. 여름과 겨울방학을 거의 다 투자했건만 모의고사는 별반 성적이 올라붙지 못했다. 후기대학이라도 간 게 천만다행이었다. 재수를 해봤자 ‘내 실력은 내가 안다’는 포기는 얼마나 현명했던가.
- 큰 길 옆인데도 한적한 배경이 돋보이는 것은 키 큰 갈대숲 덕이다.(광주 퇴촌)
벌써 무갑사거리다. 몇 해 전 우연히 길에서 손을 들기에 태워준 촌로는 대파를 6,000평씩 짓는 대농이었다. 토란을 3,000평씩 지어 추석 녘에 가락시장에 경매로 내다팔았다. 흙 묻은 장화를 신은 자신을 태워주었다고 그 고마움으로 계절이 바뀔 때면 채소 갖다 먹으라고 전화해 오는 이종일(77) 씨를 한번 보고가도 좋으련만 벌써 해가 기운다. 겨울 해는 도무지 쓸 데가 없다. 토마토축제가 열리는 정지리 일대는 긴 겨울잠을 잔다.
‘경안천습지생태공원’은 경안천에서 가장 넉넉한 자연친화 공간이다. 강둑에 세워진 조류관찰보호대 언저리는 사람들까지 겨울의 보호색과 완전히 닮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눈이 얼어붙은 데크로는 계절에 관계없이 찾는 이들이 끊이지 않으니 심심할 여가가 없다.
- 경안천도 팔당호에 안기며 호수가 되었다. 석양이 되니 사진작가들의 손놀림도 분주하다.(광주 퇴촌)
붕어찜과 광주분원, 서울사람들 드라이브 코스
광동사거리에서 직진한다. 자연스러우려면 좌회전하여 광동교로 나가야 강물을 만날 수 있으나 이미 걸음을 멈춘 경안천은 팔당호의 일부가 되고 만 터다. 게다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남부의 상수원이다보니 호반으로도 길이 없다. 온통 삼면이 산이고 그나마 트여있던 강남·송파·강동의 벌판은 서울에 떼어먹힌 지 오래다. 경안천 언저리에 붙어있던 논밭전지도 팔당호에 죄다 수몰되고 보니, 남종면 분원 사람들 해먹고 살 일이라는 게 서울의 한가한 나들이객에게 붕어찜 해서 파는 것 밖에 더 있었겠냐는 말이 엄살은 아니다.
분원은 조선조 ‘사옹원 분원백자번조소’가 남종면에 있어서 유래된 이름이다. 6개면 30개리 340여개의 가마터가 조선왕실의 백자와 분청사기를 만들었으니 얼마나 큰 규모였는가. 이 또한 여주가 조선총독부 관요로서 주로 생활 자기를 생산했고, 이천 도자기가 청자를 중심으로 현대에 들어와 마케팅에 성공하여 이름을 먼저 날린 것에 비하면 젊잖게 뒤처진 감이 있다.
언덕길을 헐떡이며 올라온 것도 팔당호의 거대한 몸피를 보여주는 합수머리가 분원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둡다 벌써. 겨울 해 믿고 있다간 큰일 난다는 말도 엄살이 아니다.
참고자료
1. 한국의 발견, 한반도와 한국사람, 경기도편, 뿌리깊은 나무, 1989
2. 용인시 홈페이지, 세계최초 태교도시 용인
3. 의정부경전철 파산신청절차 돌입, 문화일보, 2017. 1. 1
4. 향토문화전자대전, 와우정사
5. 한국하천일람, 국토교통부, 2012
강둑길 동행
- 선치복(63)
필자와는 고교동창생이다. 그가 내게 언제 한번 같이 자전거를 타자고 제안을 해온 것은 전혀 뜻밖이었다. 골프가 싱글이란 소문은 들었지만 그가 자전거를 타다니. 제대로 꾸며 동생이 타던 XC용 자전거를 물려 받아 막 재미를 붙이고 있는 중이었다. 겨울 짧은 해 하루지만 입담에 관한한 선 선수도 내공이 만만찮은데 천하무적 애드립의 귀재인 동창 김용선까지 동행하니 개그프로그램은 절로 가라할 정도로 폭소무대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속사포에도 불구하고 그가 꾸려가고 있는(실은 부인 덕이라고 소문나 있다) 족발 보쌈집이 잘 되는 걸 보면 모두 그를 통해서 이 세상의 텁텁한 구석을 헹구어내는 카타르시스를 맛보고 있는 것 아닐까. 따뜻한 봄날 다시 한 번 자전거를 타자는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아무래도 초행길이 힘들었나보다.
여행 만들기
경안천 나들이는 계절을 가릴 것이 없다. 서울에서 접근하려면 분당선 전철을 이용해 이매역에서 경강선을 환승하고 경기광주역에 내리면 된다. 두 번쯤으로 나누어 한번은 경안천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와우정사에서 매듭을 짓고, 한번은 초월읍을 거쳐 퇴촌 남종방향으로 호반길을 따라 양평까지 가서 전철로 돌아오는 것도 좋다. 벚꽃이 피는 계절이면 팔당호반이 더욱 화사해 질게다.
음식점
김가네숯불고기 031-764-9922
- 김가네숯불고기(경기 광주시)
광주시내에서 초월읍으로 가는 강둑에 있는 음식점이다. 이미 광주에서는 맛집으로 소문이 나있다. 10여 가지의 반찬이 사기그릇에 정갈하게 나온다. 서울식 불고기라 옛맛을 느낄 수도 있다. 창가에 앉으면 강물이 내려다보여 가족식사에도 적합하다. 무엇보다도 주인과 종업원들의 환한 미소가 밥맛을 더한다. 소고기보신탕도 다음에는 꼭 한번 먹어보고 싶다. 옛날불고기 1만5000원, 소숯불고기 정식 1만5000원, 고추장숯불제육정식 1만3000원, 소고기보신탕 2만8000원(2~3인분)
강촌 매운탕 031-767-9055
- 강촌 매운탕(광주 남종)
분원붕어의 원조라고 자랑한다. 1976년부터라는 간판에다 블루리본서베이의 3년 연속 등재가 맛의 검증을 거쳤다고 봐도 무방하다. 붕어찜은 가시가 억세므로 비린내를 최대한 줄이면서 양념의 배합이 관건이다. 시래기를 척척 건져 쌀밥에 얹어 먹는 붕어찜은 군침이 돌게 한다. 붕어찜(2인분) 3만5000원, 잡고기탕(2인분) 3만원
교통편
-분당선 전철, 이매역 / 경강선 전철, 경기광주역
-중앙선 전철, 양평역 이용
풍경에 건네는 말(60) by 조용연
잘 가세, 또 보세
- 경안천이 팔당호에 안기기 직전에 ‘경안천습지생태공원’을 만난다. 이 고장이 낳은 시인 구중서의 시 한편 ‘안으로 들어가기’가 한 줄기 복음이자, 경책이다. 온통 색깔이 배제된 겨울 깊은 골에 시인은 겨울 속으로 들어가야 봄이 보인다고 말한다. 눈이 멀어 쪽문도 못 찾는 내게 시인이 손짓해도 소용없었다. 내가 시인인 체하다 아마 봄을 맞고 말지도 모르겠다. 봄 쑥이나 냉이만도 못한 제 목숨 그냥 절멸하거나, 절뚝거리며 이 강둑에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겨울을 내다보니 뿌옇다
잔망스런 한숨이 가린 시야다
겨울이 눈동자를 얼려서도 아니다
너나 없이 없는 색에 눈이 풀려서다
일렬의 동행이 그랬다
혼자의 호주머니가 그랬다
나목들이 저마다 키득거리는 게 그랬다
없는 색 검정만으로 우리는 하나 되었다
시인 구중서의 ‘안’으로 들어가 보면
겨울 ‘밖’으로 가는 길이 보일까 하여
쪽문을 기웃거려도 겨울조차 잠겼다
봄이 와서야 시인이 ‘안’에서 손짓할까
없는 색 다 털고 오라할까
없는 색 다 입고 오라할까
끝나기 오 분 전 열어젖힌 영화관 검정 속에
시인은 그 ‘안’에 여즉 있기나 한 걸까
겨울 문을 못 찾아 내가 시인이라고 했다
이미 ‘겨울 안’을 깨고 나온 시인이라 했다
육촌만도 못한 내 시는 봄 쑥 한 자 옆에나 서 볼라나
손등이 터진 채로 얼어 바스라 질지도 모르지
없는 색 검정을 닮은 채로
혼자 웅크려 곱사등이로
조용연
· 1954년 경북 문경 출생
·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졸업
· 경기 여주경찰서장, 서울 동부경찰서장(현 광진경찰서)
· 경찰청 기획과장, 주중국대사관 참사관(북경)
· 서울청 교통지도부장, 경찰청 경무기획국장
· 충남지방경찰청장, 울산지방경찰청장 역임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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