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쿵 유발! 깨소금 볶는 '두두부부'의 오리사바 등반기!

글·사진 | 양희종(미국 PCT·CDT 완주 여행가)

입력 : 2017.03.16 10:37

멕시코 최고봉에 도전한 양희종·이하늘 부부의 좌충우돌 스토리


	[해외 등반기 | 멕시코 오리사바]
오리사바 정상으로 이어진 설사면. 5,636m로 멕시코 최고봉이며, 북미에서 세 번째로 높다.

“오리사바에 같이 오를래?”

미국의 대표적인 장거리 트레일인 PCT와 CDT를 걸을 때 만난 하이킹 친구 셰퍼드에게서 연락이 왔다. 40대 후반의 호주 경찰 출신인 셰퍼드는 조금 이른 은퇴 후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데, 나와 여행 스타일이 비슷해 CDT를 마친 후에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오리사바? 거기가 어딘데?”

“멕시코에서 제일 높은 산(5,636m)이고, 알래스카 데날리(Denali)와 캐나다 로건(Rogan) 다음으로 높은, 북미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이야.”

“위험하지 않을까? 우리가 갈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야? 자전거 여행 중이라 배낭이랑 장비도 없는데.”

비슷한 풍경이 계속되는 자전거 여행이 조금씩 지겨워지기 시작하던 참이라 셰퍼드의 제안이 귀에 솔깃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여행으로 바뀌었기에 즉흥적으로 계획을 변경할 순 없었다.

나는 2015년 PCT(Pacific Crest Trail, 4,300km)를 완주한 뒤 그전에 하고 있던 알래스카부터 캐나다까지 자전거 여행을 이어가기 위해 시애틀부터 자전거를 타고 멕시코 과달라하라까지 내려왔다. 2016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CDT(Continental Divide Trail, 5,000km)를 완주하고, 다시 멕시코 과달라하라로 넘어가 언제 도달할지 모를 남쪽 파타고니아를 향해 자전거 여행 중이다.

PCT와 멕시코 과달라하라까지의 자전거 여행은 혼자였지만, CDT를 걷는 도중 합류해 평생 여행친구(부부)가 되기로 약속한 여자친구(이하늘)와 함께 여행을 하고 있었다. 결국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기로 약속했기에 무리가 될 수 있는 오리사바산을 포기하고 자전거 여행을 계속했다.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와 메소아메리카 고대문명이 살아 숨쉬는 테오티우아칸을 지나 드디어 오리사바가 위치한 푸에블라주에 들어서게 되었다.


	[해외 등반기 | 멕시코 오리사바]
오리사바 등반 기점인 푸에블라 시티로 자전거를 타고 간다. 구름에 쌓인 설산이 오리사바산이다.
푸에블라 시티를 20km 정도 앞두고 도로를 달리는데 한 마을버스가 우리를 지나쳐 승객을 태우기 위해 앞쪽에 멈췄다. 멕시코에선 지정된 버스정류장이 없고 손을 들면 멈춰서 태우고 가는 경우가 많아 자전거 여행자의 입장에선 돌발상황이 잦았다. 앞서 가던 하늘이는 버스 뒤에 멈춰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렸고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는 중이었다. 얼마 후 버스가 출발했고 하늘이는 버스를 따라 페달을 밟았다. 그때였다.

앞으로 가던 버스가 갑자기 후진하기 시작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다. 하늘이는 자전거 방향을 틀어 피하려 했지만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는지 자전거를 버리고 도로변 수풀로 뛰어들었다.

다행히 약간의 상처만 있을 뿐 크게 다치진 않은 듯했다. 버스는 결국 자전거 앞바퀴를 밟은 뒤에야 멈췄다. 자전거의 앞부분은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었고 뒷부분도 심하게 휘어지고 찢어져 있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물론 하늘이가 크게 다치지 않아 불행 중 다행이었지만 말도 안 통하는 멕시코에서의 사고라니, 어떻게 해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표정으로 볼 때 버스기사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주변에서 사고를 목격한 멕시코 아저씨 덕분에 버스기사의 잘못이 밝혀졌고, 경찰이 와서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버스기사는 고쳐주겠다며 경찰과 함께 자전거 수리점으로 갔지만 우리의 예상대로 자전거는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의 상태였다. 결국 경찰서에 가서 구글 번역기를 통해 조서를 쓰게 되었다. 합의과정에서 버스기사와 작은 실랑이가 있었지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주었다. 보험사에서 자전거를 보상해 주기로 해서 사건 발생 5시간 만에 보상금을 받고 경찰서를 떠날 수 있었다. 다음날 푸에블라 시티에서 같은 모델의 자전거를 주문했고, 일주일 뒤 받기로 했다.

셰퍼드의 꼬드김에 시작된 오리사바 등반


	[해외 등반기 | 멕시코 오리사바]
등반의 베이스캠프인 ‘피에드라 그란데 산장’으로 이어진 길. 자전거 바퀴가 푹푹 빠지는 길이라 위기를 겪었다.
이때 우리와 비슷한 루트로 자전거 여행을 하던 셰퍼드가 푸에블라 시티에 도착했다. 장기 여행자들의 특징이라고 해야 할까? 셰퍼드는 오랜 여행에 지쳐 많이 외로운 듯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의 여행 계획을 설명하며 오리사바산에 함께 가자고 이야기했다.

“자전거를 타고 4,260m 산장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 원래 오리사바 밑에 있는 트라치추카란 마을에서 지프차를 타고 올라가는 게 일반적인데 차가 가는 길이니까 자전거도 갈 수 있을 거야. 등산 장비도 빌릴 수 있고 가이드 비용도 생각보다 저렴하대.”


	[해외 등반기 | 멕시코 오리사바]
푸에블라 시티의 숙소 앞에 선 호주 친구 셰퍼드와 필자(가운데), 아내인 이하늘.
결국 우리는 오리사바산을 오르기로 했다. 우리가 주문한 자전거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라말린체(4,461m)라는 화산에 올라 고소적응을 한 뒤 해발 2,600m에 위치한 트라치추카에서 만나기로 했다.

트라치추카에서 만난 가이드는 오리사바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었다. 건기인 크리스마스 시즌을 전후로 등반을 많이 하며 4,260m에 위치한 ‘피에드라 그란데 산장(Piedra Grande Hut)’까지 지프를 타고 이동해 그곳에서 하루 이틀 머물며 고산 적응을 한 뒤, 이른 새벽 산장을 떠나 5,000m에 위치한 하마파 글레이셔(Jamapa Glacier)를 통해 정상에 오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루트라고 설명해 주었다.


	[해외 등반기 | 멕시코 오리사바]
오르막 숲길을 자전거를 타고 오르고 있다.
지프는 1인당 150~200페소(약 1만2,000원)이고 산장에서 머무는 것은 무료라고 했다. 하지만 새벽에 올라야 하기에 길을 잃을 수 있고 하마파 글레이셔부터 정상까지는 급경사라 위험해 추가 비용이 들더라도 전문 가이드와 함께하는 것을 추천했다. 또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이중화나 삼중화, 등반용 피켈과 아이젠은 필수라고 일러주었다. 우리는 일단 가이드 없이 필요한 장비만 빌려 자전거에 싣고 산장까지 가기로 했다.


	[해외 등반기 | 멕시코 오리사바]
해발 4,260m에 위치한 산장의 내부. 우리나라 산장과 큰 차이는 없다.
우리는 아이젠과 피켈, 중등산화를 빌렸다. 그러나 나는 사이즈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는 것보다 익숙한 신발에 양말을 겹겹이 신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 중등산화를 빌리지 않았다. 예비일을 포함해 최대 6일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우리는 장비를 자전거에 싣고 등반에 필요한 행동식과 음료를 구입한 뒤 정상을 향해 조금은 무모할 수도 있는 여정을 시작했다.

9km의 포장도로를 달려 첫 번째 마을인 ‘산 미겔 조아판’에 도착했다. 오르막이 힘들었지만 오리사바산이 가까워지는 것을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의 숙박지인 이달고까지는 7km밖에 되지 않았지만 비포장길의 떨림은 손목과 엉덩이를 부숴버릴 것만 같았다. 게다가 갑자기 나타나는 급경사에 허벅지는 터질 것 같았고, 화산재로 덮인 모래길은 바퀴가 푹푹 빠져 도저히 페달을 돌릴 수 없었다. 결국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시간이 늘어났고 마을을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지쳐가고 있었다.


	[해외 등반기 | 멕시코 오리사바]
진흙탕에 빠져 고비를 맞았을 때, 지나던 차량의 도움으로 ‘피에드라 그란데 산장’에 닿을 수 있었다.
해가 저물 즈음 겨우 이달고마을에 도착했다. 하지만 마을이라기에는 너무 작아 가구 수가 10 채도 되지 않았다. 다행히 작은 가게가 있어 물 2리터와 맥주 6캔을 살 수 있었다. 맥주는 오늘밤 하나씩 마시고 나머지 세 개는 오리사바 정상에서 마실 계획이었다. 우리는 적당한 곳에 텐트를 치고 야영했다.

다음날 아침, 셰퍼드의 상태가 이상했다. 속에 탈이 났는지 밤새 한숨도 못 자고 구토와 설사를 반복한 것이었다. 내려가서 쉬었다가 다시 오르자고 했지만 그는 하루 이틀에 나을 것 같지 않다며 우리 둘만 갈 것을 권했다. 그렇게 ‘두두부부’의 좌충우돌 오리사바산 등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두두부부’란 두 다리와 자전거의 두 바퀴로 세계여행을 하는 우리 부부의 별명이다.

셰퍼드와 헤어진 뒤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땅이 습해져 온통 진흙투성이에다 자전거는 짐의 무게 때문에 깊게 빠지기 일쑤였다. 설상가상으로 길을 잘못 들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고도계를 보니 해발 3,800m였다. 고민하고 있던 순간 뒤에서 차 소리가 들렸다. 사륜구동 픽업트럭이었다.

“오리사바 가는 거야? 우리도 올라가는데 태워 줄까?”


	[해외 등반기 | 멕시코 오리사바]
캠프 1 부근에서 본 ‘피에드라 그란데 산장’.
온통 진흙 범벅이 된 자전거를 트럭에 싣고 우리는 뒷좌석에 탔다. 우리를 태워준 두 멕시코인 젊은이는 어제 산장에서 고산 적응을 한 뒤 잠시 마을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중이라고 했다. 덕분에 우리는 위기에서 탈출해 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멕시코에서 처음 만나는 산장은 어떨까 기대를 했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허름한 산장이었다. 창고형 건물에 3층으로 구성된 침상이 놓여 있었다. 창문이 있는 복도 쪽에는 조리를 할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가이드나 쿡으로 보이는 멕시코인들이 커다란 버너를 설치해 두고 요리를 하고 있었다.

2016년 12월, 오리사바 등반시즌이라 산장 안은 꽤 붐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에서 온 관광객과 멕시코 가이드들이었다. 우리는 산장의 유일한 아시아인이었고 게다가 자전거를 가져왔기에 더욱 신기하게 보는 것 같았다. 4,260m 산장에서 바라본 분홍빛 노을과 발아래 넓게 펼쳐진 운해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정상 직전, 정상을 포기하다


	[해외 등반기 | 멕시코 오리사바]
해발 약 5,000m 높이인 하마파 글레이셔에서 운해를 배경으로 선 양희종·이하늘 부부.
아침에 일어나자 편두통이 느껴졌다. 힘들 정도의 고통은 아니어서 두통약을 먹으면 금방 좋아질 듯했다. 다행히 하늘이는 몸에 큰 이상이 없었다. 우리는 고소 적응차 4,500m에 위치한 캠프 2까지 갔다 오기로 했다. 이곳을 출발하면 너덜지대 위의 캠프 1과 해발 4,500m 눈밭의 캠프 2, 해발 5,000m의 마지막 캠프까지 총 세 곳의 캠프가 있었다. 하지만 보통 산장에서 정상까지 하루 만에 왕복이 가능하기에 굳이 하이캠프를 거치는 이들은 많지 않은 듯했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캠프 1을 만날 수 있었다. 너덜지대와 모래에선 신발이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캠프 1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니 길이 꽁꽁 얼어 있어 무척 미끄러웠다. 경사가 급한 곳도 있었지만 큰 어려움 없이 캠프 2까지 3시간 만에 오를 수 있었다. 내려올 때는 여러 개의 갈림길이 보여 올라올 때 저장해 두었던 GPS 좌표를 참고해 내려갔다.

가이드가 있는 팀은 대부분 새벽 1시에 산장을 출발해, 동이 틀 무렵 하마파 글레이셔에 도착한다는 계획이었다. 우리는 새벽 2시에 일어나 가이드 팀들의 루트를 뒤따라가기로 했다. 산장 밖에 텐트를 치고 일찍 잠들었다.

새벽 2시 텐트 밖은 고요했다. 오리사바 쪽으로 멀리 헤드랜턴 불빛이 보였다. 옷과 양말을 단단히 껴입고 새벽 2시 45분 텐트를 나섰다. 캠프 1을 지나며 GPS를 확인해 보니 어제보다 페이스가 조금 좋았다. 곧 우리보다 앞선 한 팀을 만났다. 미국인 가족 3명(부부와 아들)과 멕시코인 가이드 2명으로 구성된 팀이었는데 그들을 타깃으로 삼아 따라가기로 했다. 우리는 5분 정도 간격을 두고 그들을 뒤따랐다. 올라가는 내내 조금 눈치가 보였지만 그들에게 최대한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천천히 따라갔다.

캠프 2에서 하마파 글레이셔까지 오르는 길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달랐다. 경사도 급해지고 꽁꽁 얼어붙은 얼음이 많아 피켈과 아이젠은 필수였다. 오를수록 기온이 떨어졌다. 눈과 얼음이 펼쳐져 정확한 길을 확인할 수 없었다. 가이드가 없다면 길을 잃을 것 같았다.

나는 앞서 가는 하늘이에게 계속 손발을 움직이라고 주문했다. 나 역시 점점 얼어가는 손과 발을 끊임없이 움직이며 동상에 걸리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얇고 가벼운 트레일 러닝화 속의 발가락은 얼어 가는 것 같았다.

나는 셰퍼드가 챙겨준 핫팩을 하늘이의 장갑과 양말 위에 붙여 주었다. 그렇게 추위와 맞서며 동이 터오를 무렵 하마파 글레이셔에 도착했다. 멀리 구름 밑으로 태양의 붉은빛이 꿈틀대는 것 같았지만, 그 빛이 나에게 오려면 아직은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가스와 버너를 이용해 차를 끓여 마시며 몸을 녹였다. 해발 5,000m 지점이었다. 이제 고도 600m만 높이면 정상이었지만 경사가 생각보다 심했다. 혼자라면 더 빠르게 정상에 다녀올 수 있겠지만 하늘이와 함께하는 행복을 포기하기 싫었다.


	[해외 등반기 | 멕시코 오리사바]
아쉽게도 정상 등정을 포기하고 내려오는 이하늘씨.
하늘이의 최고 고도는 2010년 한국 청소년 오지탐사대에서 다녀온 중국 캉션카의 4,772m 봉우리였다. 그 기록대로라면 이미 그녀는 최고 기록을 갱신하고도 남는 높이에 서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인근의 칼라파타르에 다녀온 적이 있어 5,000m대의 경험이 있었지만 그녀는 처음이었기에 걱정이 앞섰다.

아침 7시가 조금 안 된 시간, 태양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듯했다. 북서쪽 방향에서 오르기 때문에 태양의 따스함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다. 하늘이를 앞에 세우고 천천히 따라 갔지만 속도가 너무 늦었다. 아무래도 설산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서 피켈과 아이젠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시간을 더 지체하다간 발가락이 모두 얼어버릴 것 같았다.

경사는 갈수록 급해졌고 속도는 더욱 느려지고 있었다. 둘 다 하네스를 착용하고 있지 않아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자리를 바꿔 조금 위험해도 내가 앞에서 경사면을 깎아내 하늘이가 밟고 오를 수 있는 스텝을 만들기로 했다. 한참을 그렇게 올라 고도계를 바라보니 5,500m를 가리키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오리사바 정상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더 커져가고 있었다. 경사가 더욱 심해졌고 체감상으로는 거의 직벽에 가까웠다. 뒤따라오는 하늘이의 자세가 불안정했고 겁먹은 표정이었다. 나의 계속된 설명에도 불구하고 하늘이의 자세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조금 무리를 해서 눈앞의 정상을 갈 것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내려갈 것인가. 지금의 속도라면 올라갈 수는 있겠지만 족히 한 시간은 더 걸릴 것 같았고, 체력 소모가 심해 하산 시 더 위험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는 자기 때문에 내가 못 올라가는 것이 너무 속상했는지 나만이라도 정상을 다녀오라고 했지만 하늘이를 혼자 두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이었다. 지금은 깨끗이 포기하고 함께 최대한 안전히 내려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천천히 하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경사가 심해 내려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추락하는 하늘이를 구사일생으로 구하다


	[해외 등반기 | 멕시코 오리사바]
오리사바 정상 인근에서 본 일대 풍경.
급경사 구간을 지난 뒤, 이제는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하늘이를 뒤로 한채 하마파 글레이셔 시작 지점까지 먼저 빠르게 내려왔다. 힘들어하는 하늘이에게 조금이라도 빨리 따뜻한 라면을 끓여 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다. 내 생애 가장 최악의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평평한 곳에 자리를 잡고 배낭을 내려놓은 뒤 라면을 꺼내는 찰나였다.

“저기! 누가 미끄러지고 있어!”

나보다 먼저 내려와 쉬고 있던 멕시코인 가이드가 소리쳤다. 바로 하늘이가 미끄러지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피켈을 들고 그녀가 미끄러져 오는 방향을 향해 곧장 달렸다.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추락 예상 지점에 미리 도착해 피켈을 꽂아 확보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그럴 시간이 없었다. 피켈을 옆으로 던지고 미끄러져 오는 그녀를 온 몸으로 막아냈다. 원심력을 이용해 옆으로 회전시켜 속도를 줄이려 했다. 그대로 멈춰 세우려 들면 두 사람 다 함께 추락할 것 같았다. 다행히 그녀는 내 품 안에서 멈춰 섰다.

그 순간 나는 정말 슈퍼맨이 된 듯했다.

“오빠 미안해. 흑흑. 미끄러져서 피켈로 멈추려 했는데 잘 안 됐어. 흑흑. 너무 미안해.”

하늘이는 내 품에서 흐느끼며 계속 미안하다고 했다. 내 부주의였고 내 잘못이었기에 내가 100번 사과해도 부족한 상황이었는데 그녀는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녀를 진정시킨 뒤  온몸을 살폈다. 다행히 오리사바의 산신이 우리가 그렇게 밉진 않았는지 약간의 찰과상과 타박상만 입었을 뿐 부러지거나 심하게 찢어진 곳은 없었다. 우리는 휴식을 취하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라면으로 체력을 보충한 뒤 천천히 하산했다.

산장에 내려와 비상약품을 구해 부족했던 응급처치를 마저 했다. 도저히 마을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 자신이 없어 가이드들에게 부탁해 트라치추카마을로 내려가는 차를 얻어 탔다. 트라치추카마을의 숙소에서 셰퍼드를 만났고, 그와 함께 멕시코 남부 와하까까지 여행하기로 했다.

비록 오리사바산 정상에 오르진 못했지만 훨씬 소중한 것을 얻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우리는 ‘두두부부’만의 오리사바 정상에 올랐다고 생각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다시 길 위에서 새로운 행복을 만나길 기대하며 우리는 오리사바와 작별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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