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강의 봄, 두물머리에서 머리 풀다

바이크조선

입력 : 2017.04.21 15:04

한강5(양평·남양주·하남·서울)


	북한강의 봄, 두물머리에서 머리 풀다
북한강과 남한강은 두물머리 ‘팔당호’에서 비로소 몸을 합친다. 물 기운 가득한 양평은 1981년 영하 32.8도라는 기록을 남겼다. 본시 양평은 땅뙈기 귀한 산촌이었다. 산협 언저리에 빼곡이 들어선, 서울 사람들의 별장과 은퇴주택은 배산임수의 가치를 나날이 더해간다. 하루면 마포나루까지 가던 뱃길이 끊어진지도 오래다. 그 길로 중앙선 기차가 수도 서울과 국토의 심장 사이 물류를 이어주느라 분주하다. 세월이 하수상해서 그런가. 이 봄볕에도 올림픽대교의 성화조형과 123층 롯데월드타워는 연무(煙霧) 속에 아득하기만 하다.

	아빠가 가리키는 저 강 건너에서 딸아이의 봄이 오고 있으리라. 사라졌다 다시 만들어진 당정섬 앞 모래톱과 여울이 푸근하다.(남양주 와부)
아빠가 가리키는 저 강 건너에서 딸아이의 봄이 오고 있으리라. 사라졌다 다시 만들어진 당정섬 앞 모래톱과 여울이 푸근하다.(남양주 와부)

양평대교에서 강둑으로 난 우회도로는 강바닥에서 보면 높다랗게 지나간다. 양근제방을 높이 쌓아올려 해마다 물난리를 겪던 읍내를 보호한 성벽이 강둑길이다. 천천히 안장에 오른다. 삼월 중순에도 자전거 장갑 손가락 사이로 새어드는 아침이 시리다. ‘시월에 언 물이 4월에 녹는다.’는 양평의 추위는 아직 조금은 유효하다. 양근(陽根)과 지평(砥平)을 합해 양평이 된 소읍은 여주마저 2013년 시로 승격해, 이제 경기 남부권에서 유일하게 남은 군(郡)이다. 경기도에서 가장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농토라고는 16%에 불과한 산촌이다. 동서로 길게 드러누워 있어 양수리 언저리와 지평일대에나 논이 조금 붙어있을 뿐이다. 개군면이라도 여주가 넘겨주지 않았더라면 논 구경하기 어려운 고장이었다.


	북한강의 봄, 두물머리에서 머리 풀다

유난히 춥던 소읍, 지금 양평은 따뜻하다

쌀로 돈을 가늠하던 시대가 바뀌고 보니 양평 몸값은 외려 솔솔 올랐다. 이 상승세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팔당댐을 막아 툭하면 물난리로 고생하고, 냉해를 입던 양평이 상수원보호구역, 수변구역과 특별제한1권역이라는 엄격한 개발제한의 잣대 속에 오히려 청정자연으로 다시 태어났다. 먹고 살만한 시대가 되면서, 어디 한곳 하소연조차 못하던 처지가 도리어 다투듯 살아가다 지친 서울사람들을 위로하는 공간으로 태어났다.

양근대교 모퉁이에서 만나는 양평군립미술관이 그 한 예다. 여느 시골 소읍에서라면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수준의 미술 기획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곳이 양평이다. 군 단위에서, 예총지부가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도 서울에서 한 발짝 떨어져 나와 수려한 물줄기 그 골짜기마다 둥지를 튼 예인(藝人)들에서 나온다.


	상습침수지역에 쌓은 양근제방 덕에 양평읍내는 해마다 무사했다. 멀리 양근대교다.(양평읍)
상습침수지역에 쌓은 양근제방 덕에 양평읍내는 해마다 무사했다. 멀리 양근대교다.(양평읍)

양평을 천천히 가는 법, 무조건 강가로

사람들은 팔당에서 자전거를 타면 중앙선 폐철도 부지 위에 만든 국토종주자전기길이 만나는 양평만 생각한다. 그런 30여㎞는 때로 너무 밋밋하다. 무조건 강변으로 붙어보라. 좁은 단선 철로 부지 위에 교행 하는 자전거길과 산책로까지 만들어 옹색한 주로(走路)를 벗어날 수 있다. 한적한 강변 풍경이 내안에 들어온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 후문 앞으로 난 자전거길은 큰솔노인요양병원을 지나 만나는 소공원에서 끝난다. 막 새로 낸 비포장 고갯길을 자전거를 끌고 오른다.

강 건너 스페인하우스의 청회색 물그림자를 감싸 안은 강 안개는 슬픈 침잠(沈潛)이다. 아득히 눈에 담고 갈수 있어 그 고요가 차라리 행복하다. 그것도 잠시다. 대심2리로 내려선다. 눈치 빠른 사람들이 양지바른 강변 땅을 그냥 두었을 리 없다. 집을 새로 짓거나 축대를 올려 쌓느라 새 봄이 분주하게 일어난다.


	국토종주자전거길에서 만난 장독대 조형. 공부하는 풍경은 예나 제나 다를 게 없다.(양평읍)
국토종주자전거길에서 만난 장독대 조형. 공부하는 풍경은 예나 제나 다를 게 없다.(양평읍)

익숙한 이름 ‘예마당’이 물가에 여전하다. 얼마나 많은 서울 아낙들이 경양식을 먹고, 차 한 잔 앞에서 수다를 떨며 통기타 반주 라이브를 즐겼던 명소인가.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하더니만 주인장 목소리도 영 예전만 못하다는 소문도 들린다. 큰길로 나오면 국수리다. 한자가 다르면 어떠랴. ‘국수리국수집’은 성업 중인지 모르겠다. 강 따라 절경을 선사하던 중앙선도 국수역에 다다르면 마을 안쪽으로 물러앉는다. 따뜻한 주말이면 색소폰 풍각쟁이들이 역 앞마당에다 ‘도롯도 한판’을 벌여 나들이 나온 사람들 신명을 불러 세운다.

양서초등학교에서 자전거전용로로 올라선다. 달리 선택할 여지가 없다. 신원역이다. 몽양 여운형 선생이 구한말 이곳에서 태어났다. 2011년 건립된 기념관의 운영주체를 두고 벌어진 생가마을 주민과 기념사업회 사이의 갈등은 플래카드를 내걸기에 이르렀다. 좌우합작을 주창했던 독립운동가의 큰 뜻을 생각한다면 분쟁은 볼썽사나운 소란이다.


	포장로를 지루하게 가다 이런 고갯마루를 만나면 너무 기쁘다.(양평 양서)
포장로를 지루하게 가다 이런 고갯마루를 만나면 너무 기쁘다.(양평 양서)

세미원은 두물머리의 여백

새우등을 한 채 지나가는 유선형 사이클 대열이 길다. 자전거의 질주 본능은 ‘빨리빨리 시대’와 잘 어울린다. 질주가 만든 바람소리에 놀라 노견으로 밀려난다. 이 절대의 자전거 공간에서 마저도 느린 자전거여행자는 약자다. 양수역에서 세미원으로 가는 흙길로 내려선다.

‘세미원’은 두물머리의 여백이다. 병탄(竝灘)으로 불리던 두물머리는 금강산에서 발원하는 북한강이 태백에서 장도에 오른 남한강과 머리를 풀어 첫날밤을 보내는, 삼개나루(마포)행 물산이 머무는 마지막 나루터다. 세미원은 팔당호가 거대한 호수로 변하면서 수면과 거의 평행을 이루는 물가에 세한도의 힘찬 기상과 연밭의 맑은 기운을 함께 엮어 놓았다. 연꽃이 피는 6월 하순도 좋고, 물안개의 서정에 젖을 수 있는 비 오는 날도 좋다. 굳이 편안하게 달릴 수 있는 북한강철교 자전거길을 마다하고 내려선 이유다.


	참 오래된 통기타 카페 ‘예마당’, 나이든 주인의 노래도 예전 같지 않지만 정겹다고(양평 양서)
참 오래된 통기타 카페 ‘예마당’, 나이든 주인의 노래도 예전 같지 않지만 정겹다고(양평 양서)

팔당역을 직선으로 이어주는 중앙선 복선은 예봉산 아래에 운길산역을 만들고 북한강에 새 다리를 놓았다. 철거가 고민거리 던 옛 철교가 전대미문의 자전거전용철교로 화려하게 부활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땀을 식혀주는 터널을 잇달아 빠져나와 강바람을 가로질러가는 자전거 행렬은 또 얼마나 장쾌한가. 해마다 이 길을 찾아온다는 일본 단체 라이딩 손님들의 끝없는 찬사는 결코 호들갑이 아니다. 그저 자전거만이 아니다. 풍경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운길산 수종사를 일부러 오르는 이유도 드넓은 팔당호에서 얼싸안는 두 한강의 정념과 그 품에 안겨있는 두물머리의 풍정(風情)을 함께 담기 위해서다. 낙조가 강물 위를 온통 물들이면 그 황금비늘은 멀리서 헤아릴 수 없는 주사선으로 변환되어 한 폭의 영상이 된다.


	막 불타버린 애견센터. 강아지들은 무사했을까. 할아버지 표정이 망연자실하다.(양평 양서)
막 불타버린 애견센터. 강아지들은 무사했을까. 할아버지 표정이 망연자실하다.(양평 양서)

자전거로 부활하는, 박제된 능내역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세상은 결코 아름답거나, 추한 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담담한 현실이 장악하고 있을 뿐이다. 양수대교를 건너기 직전, 어제 불이 난 화재현장을 지나간다. 애견센터다. 사랑받던 강아지들은 불길을 피했을까. 아니면 인간의 선택을 기다리다가 그대로 생을 마감했을까. 현장을 확인하는 소방관들이 질척거리는 잔해들 사이에서 부산하다.

울타리 하나를 하나 사이에 두고 보신탕집 간판이다. 먹을 수 있는 개와 먹을 수 없을 개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담장은 견고하다. 내가 보신탕을 먹지 않는 이유는 뜻밖에도 간명하다. “개가 어쩌면 전생에 너의 조상이었을지도 몰라.”라고 오래전 들었던 한 마디 때문이다. 인생이 축생(畜生)이 되고, 축생이 인생도 될 수도 있다는 이 연기(緣起)의 반전에 핏줄의 공포까지 가세하였으니 말이다.


	철거위기를 딛고 자전거전용다리로 재탄생한 ‘북한강철교’는 명물이다.(조용연 자료사진, 양평 양서)
철거위기를 딛고 자전거전용다리로 재탄생한 ‘북한강철교’는 명물이다.(조용연 자료사진, 양평 양서)

북한강을 건너서 진중사거리를 좌로 돌아 자전거전용로로 복귀한다. 긴 겨울로부터 용수철처럼 튕겨져 나온 자전거의 질주가 이어진다. 인간은 원래 군무를 좋아하는 걸까. 독주와 군무 사이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일까. 독주는 무반주의 자유이나 군무는 행진곡풍 결박이다. 스스로 결박한 우리가 되어, 결코 앞 설 수 없는 뒷바퀴의 힘으로 맞바람을 밀어낸다. 가창오리 떼만큼은 아니더라도 수 없는 군무의 바퀴는 봄을 일깨우고 지나간다.


	능내역 앞에서 쉬고 있는 자전거 세계일주 중인 남녀. 독일 뮌헨 출신의 그들은 21번째 국가로 한국의 국토종주자전거길을 부산에서 거슬러 올라오고 있다. 그저 부러울 뿐이다.(남양주 조안)
능내역 앞에서 쉬고 있는 자전거 세계일주 중인 남녀. 독일 뮌헨 출신의 그들은 21번째 국가로 한국의 국토종주자전거길을 부산에서 거슬러 올라오고 있다. 그저 부러울 뿐이다.(남양주 조안)

간이역 시절, 통근열차에나 두어 사람 타고 내리던 능내역은 이제 팔당~양수 간의 자전거 중간 기착지가 되어 붐빈다. 능내 역사는 박제되었고, 역전식당은 추억속에 생겨났다. 뻐근한 넓적다리를 위로하는 한잔을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다. 산 정상에서 파는 막걸리만큼이나 땀이 동반하는 술기운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헬멧을 벗고 마시는 한 잔 또 한 잔이 자전거를 가볍게 흔든다. 누가 썼을까. 목판에 새긴 시 한 수가 자전거와 인생을 동반자라 말한다.


	자전거 튜브에 붙은 여행국 국기, 다음에 마지막 국가로 일본이 붙을 예정이다.(남양주 조안)
자전거 튜브에 붙은 여행국 국기, 다음에 마지막 국가로 일본이 붙을 예정이다.(남양주 조안)

흔들흔들 아슬아슬 비틀거리며/ 함께한 시작이 아득하여라/
나의 몸에 그 기억근육이 쌓여/
익숙해지니 넌 언제고 나를 싣고/ 세상을 가르는 바람이구나/
밀어내며 함께한 시간 속에 생채기/
보듬고 견디어 내는 나의 물빛 자전거 (‘자전거’ 작자미상)


	‘세미원’의 봄 풍경. 멀리 두물머리가 보인다.(양평 양서)
‘세미원’의 봄 풍경. 멀리 두물머리가 보인다.(양평 양서)

이순신과 강감찬 만큼이나 역사책에서 자주 걸어 나오는 인물이 정약용이다. 다산을 입에 올리면 목민을 실천하는 것처럼 떠벌리는 관료와 정치인, 그들이 조상 다음으로 모셔야할 정약용의 생가와 묘소가 산 너머 마제고개 아래에 있다. 실학박물관도 거기에 있다. 18세기 천주학의 깊은 뿌리가 강상면의 안동 권씨 5인인 권철신, 일신, 제신, 득신, 익신 과 정약용, 약종, 약전 3형제에 박혀있다.


	‘터널 내에서는 선글라스를 벗으세요’,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는, 면피성 권고다. 차라리 ‘라이트를 켜세요’라고 하든지(남양주 조안)
‘터널 내에서는 선글라스를 벗으세요’,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는, 면피성 권고다. 차라리 ‘라이트를 켜세요’라고 하든지(남양주 조안)

능내역에서 느슨하게 당긴 활처럼 구부러져 터널로 들어가는 자전거길은 팔당~양평 구간의 백미다. 더구나 벚꽃이 활짝 필 때 천주교소 화묘원에 올라서 보면 외줄기 옛 철길은 팔당호반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남몰래 묘소에 올라와 꽃 한 다발을 바치고 통곡하는 서글픈 인생 그 단골 배경이 바로 여기다.


	예봉산과 검단산 사이로 한강이 흘러 팔당댐을 막기에 최적의 자리였으리라(남양주 와부읍)
예봉산과 검단산 사이로 한강이 흘러 팔당댐을 막기에 최적의 자리였으리라(남양주 와부읍)

자전거로 화색이 도는 팔당, 모래로 되살아난 당정섬

팔당댐이 물을 가둔 보람은 이만저만 아니다. 홍수 조절기능도 그러하지만 먹는 물을 광역상수의 이름으로 수도권에 공급하는 공은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처럼 흔전만전 물을 써대는 사람들도 없다. 예봉산과 검단산 사이 홈통 같은 골짜기를 지나가는 한강이기에 댐을 만들기엔 적지였다. 평소 댐 아래 강바닥은 수마된 암반이 앙상하게 드러나지만 팔당대교를 지나 당정섬에 이르면 물길이 넉넉해진다.

당정섬은 산곡천과 덕풍천이 한강으로 흘러들면서 만든 모래섬이다. 1986년 한강종합개발사업으로 골재를 파내 사라졌던 섬이 2002년부터 다시 생겨나기 시작했다. 자연의 퇴적이란 그런 것이다. 사라졌던 철새도 돌아왔다. 큰고니(천연기념물 201호)300여 마리와 참수리, 흰꼬리수리, 원앙, 비오리 등 40여종 5,000 여 마리가 해마다 겨울을 나러 몰려든다. 환경교육센터는 고니학교도 열고, 고니축제까지 여는 걸 보면 자연은 그렇게 상처입고 또 치유할 수 있는 위대한 힘을 분명히 지녔다.


	강가에서 시켜먹는 짜장면과 탕수육 맛은 말해 무엇하랴. 철가방의 총알배달은 가히 세계 최고다.(남양주 지금)
강가에서 시켜먹는 짜장면과 탕수육 맛은 말해 무엇하랴. 철가방의 총알배달은 가히 세계 최고다.(남양주 지금)

1970~80년대를 풍미하던 미사리의 통기타 부대와 카페촌에 50여개나 되던 밤무대는 그야말로 멸종 직전이다. 세계금융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2009년 이종환의 ‘셸부르’가 문을 닫은 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오전 10시부터 다음날 새벽4시까지 날밤을 새우며 통금해제 시대를 만끽하던 젊은 날은 돌아올 가능성이 희박하다. 윤시내의 ‘열애’와 송창식의 ‘쏭아’가 고군분투하기에 애처롭지만 고맙다. 거기서 박강성과 같은 미사리 발(發) 스타를 다시 만날 가능성은 제로다. 당정섬처럼 복원된다면 오죽 좋으랴. 강둑길은 넓어졌다. 스타필드와 상업시설들이 들어서고, 먹자촌이 몸집을 불려가지만 비싼 임대료 속에 추억의 무대가 다시 돌아오기엔 통기타가 너무 늙어버렸다.

삼패지구는 한강을 남향으로 소유한 덕소의 아파트 정원처럼 잘 가꾸어졌다. 이제 코스모스 둔치로 수도권의 명소가 된 ‘구리 한강시민공원’도 한강종합개발이 아니었더라면 결코 얻어낼 수 없는 귀한 소득이다. 쓰레기소각장 굴뚝과 겸용으로 들판에 솟아 오른 구리타워야 말로 환경과 위락이 결코 적대적 관계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청춘도 단숨에 오르기 힘든 언덕, 짧은 구간이라 숨 고르기에는 제격이다.(남양주 수석)
청춘도 단숨에 오르기 힘든 언덕, 짧은 구간이라 숨 고르기에는 제격이다.(남양주 수석)

김대중 대통령이 사랑했던 워커힐 언덕

한강은 구리를 지나 아차산을 마주하면서 워커힐 언덕을 크게 감돈다. 1950년 6.25전란 중에 아차산에서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워커사령관을 애석해하면서 이승만 대통령이 붙여준 이름이다. 그 언덕은 호텔의 이름이 되었다.

2000년 쯤 기억의 한토막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워커힐 언덕을 유난히 사랑했다. 주말이면 워커힐 별장으로 남모르는 행차를 했다. 조선시대로 말하자면 별궁으로 납시는 행차였다. 하기야 청와대 경내에서 지내는 것이 얼마나 답답하였으랴. 관할경찰서장인 나 또한 아무도 모르는 비상대기를 해야 했다. 워커힐 언덕의 맨 꼭대기에 있는 그 별장은 최고의 명당이다. 누구나 그 자리에 서보면 바로 ‘아하!’ 소리가 절로 나온다. 서해로 흘러드는 한강수의 정기를 가슴으로 안는 형국인데다 아침 해가 바로 방안으로 들어오는 정동향이다. 대통령도 사람일진대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여백을 갖고 싶었으리라.


	한강이 크게 굽어드는 아차산 앞 아치울 삼거리, 1995년 워커힐이 지척이다.(조용연 자료사진, 구리 수택)
한강이 크게 굽어드는 아차산 앞 아치울 삼거리, 1995년 워커힐이 지척이다.(조용연 자료사진, 구리 수택)

사라진 ‘잠실섬’ 과 ‘뚝도’의 희미한 기억

광진교를 지나면 확실히 서울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충주를 경유하여 동래로 가던 길, 원주를 경유하여 동해로 가던 길, 발동기가 끄는 도선(渡船)이 아니라 조선에서 2번째로 긴 다리로 오늘 날 3번 국도가 이어진 것이 1936년이었다.

사장교인 올림픽대교의 성화모형과 멀리 잠실 롯데월드타워 123층이 연무 속 허공에 걸려 있다. 번영 한국의 상징이나 어쩐지 윤곽이 번져 보인다. 잠실은 섬이었다. 오래된 기억도 아니다. 1971년까지 그랬다. 그해 4월 잠실섬을 육지로 만들기 위해 풍납동 언저리에 물막이 공사를 하고, 남쪽이 본류였던 한강의 물줄기를 뚝섬쪽으로 돌리기 위해 지금의 동서울터미널 앞 잠실섬을 파헤치는 하천 절개공사를 해야 했다. 결국 신천, 잠실 두 마을에 100여 가구가 살던 200만평의 잠실섬은 육지가 되어 장미아파트가 되고, 롯데천지가 되었다. 그 남쪽 흔적이 석촌 호수다. 강폭이 워낙 넓다보니 갖다 메울 흙이 부족해 몽촌토성까지 헐어서 옮길 궁리를 했으나 백제의 유적이라는 것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때라 불발되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아직 춥지만 봄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린 윈드서핑 족. 멀리 보이는 123층 롯데월드타워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랜드마크다.
아직 춥지만 봄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린 윈드서핑 족. 멀리 보이는 123층 롯데월드타워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랜드마크다.

그렇게 사라져버린 고양군 뚝도면 잠실섬은 흔적도 없는 송파장(松坡場)의 영예를 오늘날 롯데촌의 부활로 조금은 보상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뚝섬은 여전히 유원지로 북적거리고, 뚝도시장도, 뚝도우체국도 여전히 살아있으나 3류라 정겹던, 청춘 아베크의 명소 뚝도극장은 사라진지 40년이 다 되어간다.


	성수대교의 트러스트 철골 구조가 유난히 튼튼해 보인다. 붕괴된 다리, 추락한 국가의 자존을 보전해 주려는듯하다.(서울 성동)
성수대교의 트러스트 철골 구조가 유난히 튼튼해 보인다. 붕괴된 다리, 추락한 국가의 자존을 보전해 주려는듯하다.(서울 성동)

무너진 성수대교의 기억, 대한민국 튼튼하게

아직 쌉쌀한 봄날 오늘의 여정도 끝나간다. 철골 골조가 유난히 촘촘해 보이는 성수대교를 지난다. 성수대교는 삼풍백화점과 더불어 붕괴의 대명사다. 한강의 기적을 비웃기라도 하듯 건설 된지 15년 만에 상판이 무너져 내려 49명이 추락하고, 32명이 사망하였다.

하필 그날은 1994년 10월 21일 ‘경찰의 날’ 아침이었다. 무너져 내린 상판 위에 함께 추락한 버스에 타고 있던 전·의경은 전원 살아 구조 활동을 벌였다. 애꿎은 무학여고생 8명, 그 꽃다운 청춘이 허망하게 강물에서 져 버렸다. 아는 사람도 드문 위령비만 인터체인지에 갇힌 채 소음을 어쩔 수 없이 견디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에 대한 반성으로 대한민국이 더 튼튼해지기를 소원한다. 해 저문 두모포 그 언덕에 이내 노란 개나리가 진혼의 조화(弔花)로 피어나리라.


	석촌호수 상공에서 본 1995년의 한강. 멀리 건설 중인 청담대교와 그 뒤로 무너져 다시 세우고 있는 성수대교 교각이 보인다.(조용연 자료사진, 서울 잠실)
석촌호수 상공에서 본 1995년의 한강. 멀리 건설 중인 청담대교와 그 뒤로 무너져 다시 세우고 있는 성수대교 교각이 보인다.(조용연 자료사진, 서울 잠실)

참고자료

1. 한국의발견, 경기도 양평군, 뿌리깊은나무, 1989
2. 한강의 어제와 오늘,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1
3. 되살아난 팔당 당정섬, @우리동네, 중앙일보
4. 남한강 수운의 전통, 이정재 김준기 등, 한국학술정보, 2007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5. 한국하천일람, 국토교통부, 2012

기술·용품협찬 : 태능한성바이크(02-971-7206)
자전거협찬 : 알톤 전기자전거 STROLL

강둑길 동행


	플로리안(Florian, 35), 카타리나(Katharina, 32)
플로리안(Florian, 35), 카타리나(Katharina, 32)

능내역에서 만난 독일 친구들이다. 기후학을 전공한 연구원으로, 연구소를 1년간 휴직을 하고 자전거 세계일주 중이란다. 현재까지 유럽과 중앙아시아, 중국, 동남아시아 등 21개국을 돌아다녔다. 방콕에서 부산으로 들어와 국토종주자전거길을 7일째 여행 중이다. 이제 한국에서 3일을 더 묵고 일본으로 가서 큐슈와 시코쿠를 여행하고 귀국할 예정이라 했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 친절해요. 어제 여주에서 잤는데 자전거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저녁에 초대해 주어서 아주 즐거웠어요. 하지만 한국은 너무 추워요.” “파미르고원이 있는 타지키스탄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이번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기회가 된다면 다음엔 몽골여행을 하고 싶어요.” 둘은 부부사이냐고 물었더니 펄쩍 뛰면서 손사래를 친다. 그럼 결혼할 가능성이 있냐고 물었더니 둘 다 얼굴이 빨개지며 “Maybe…”란다. 참 쿨한 사람들이다.

여행 만들기

자전거를 조금 타본 사람이라면 양평~중랑천 구간 한강은 라이딩에 너무 편해서 오히려 밋밋할 수 있다. 가급적이면 자전거전용로를 벗어나 천천히 강변풍경을 담으면서 달려보면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 능내의 다산유적지와 두물머리 세미원은 물론, 아세아연합대 후문과 대심2리 쪽 강변의 호젓한 길을 달려 양평까지 가면 하루가 꽉 차는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음식점

양수추어탕 031-773-5995


	우리곤드레밥·청국장(충주 앙성)
우리곤드레밥·청국장(충주 앙성)

양수리에 있는 추어탕집이다. 이미 양수리 맛집으로 소문이 나 있다. 3인 이상이면 솥에 끓여 내오는 추어탕이 천렵을 해서 먹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들깨가루가 듬뿍 들어간 국물은 끓으면 끓을수록 진해져서 맛이 깊이 우러나오는 보양식이다. 장어탕은 오래 끓여내야 하므로 예약이 필수다. 추어탕 9000원, 장어탕 1만3000원

진영관 031-774-8519


	진영관(양평읍)
진영관(양평읍)

양평읍내 경찰서 근처 강변골목에 있는 중국집이다. 이집 주인 부부는 화교다. 원래 성남시 에서 이름 날리던 집이다. 이 집 탕수육은 명불허전이다. 성남에서 있을 때는 토요일 점심때만 짜장면을 팔 정도로 요리에 자신감이 있다. 50년 경력의 아버지와 프레지덴트호텔 요리사였던 아들이 주방을 지키고 있다. 지금도 배달은 안한다. 짜장면 5000원, 짬봉 6000원, 탕수육 1만5000원

교통편

- 중앙선 전철, 옥수역 , 양평역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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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에 건네는 말(62) by 조용연

봄은 꿈나라


	뚝섬 청담대교 아래를 지나가다 마주한 핑크빛 자전거 한 쌍, 청춘들이 세워놓은 사랑의 시그널이다. ‘사랑한다’는 말로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내 앞의 그대를 사랑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른다. ‘사랑은 나비 인가봐’ 라고 노래하는 것은 사랑이 날아갈까봐 불안해서다. 부럽다. 부러우면 진다는데, 이미 졌다. 덤덤한 봄에게
뚝섬 청담대교 아래를 지나가다 마주한 핑크빛 자전거 한 쌍, 청춘들이 세워놓은 사랑의 시그널이다. ‘사랑한다’는 말로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내 앞의 그대를 사랑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른다. ‘사랑은 나비 인가봐’ 라고 노래하는 것은 사랑이 날아갈까봐 불안해서다. 부럽다. 부러우면 진다는데, 이미 졌다. 덤덤한 봄에게

그 기억이 연분홍 입술 끝에 머문다
두견화 빛 쑥스럽기도 할 나이이련만
설레는 이 빛깔은 바랠 줄도 모른다

손잡는 것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봄 봄
비로소 발갛게 솜털 뚫고 솟아나는 봄 봄
기어이 내 안에 숨죽여 울고 마는 설운 봄
흐드러지게 피고 주저앉아 버릴 미운 봄

세상 떠난 아버지가 부르시던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
그런 날 있었나 싶게 닮은 꿈나라 봄

철 없는 내가 또 불러보는 꿈, 그 속편
청춘마저 목 놓아 불러보는 목주름 같은 봄
여기 강둑에, 내 봄이 걸터앉아 있네


	북한강의 봄, 두물머리에서 머리 풀다

조용연
· 1954년 경북 문경 출생
·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졸업
· 경기 여주경찰서장, 서울 동부경찰서장(현 광진경찰서)
· 주중국대사관 참사관(북경)
· 경찰청 경무기획국장
· 충남지방경찰청장, 울산지방경찰청장 역임
· 전 에스원 상임감사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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