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 마시고 밟은 페달… 차 앞에서 '갈지자 주행'

이해인 기자 이 최원국 기자 wgchoi@chosun.com 이

입력 : 2017.11.11 03:10

[자라니의 위협] [下] 사고유발자 '음주 자전거'

'자전거 聖地'마다 낮술·반주
술 마시고 타면 불법이지만 처벌 조항 없어 단속 유명무실
'따릉이'로 귀가하는 취객도 늘어
獨선 벌금… 車 면허 취소하기도

지난달 29일 오후 1시쯤 서울 강동구 강동대교 인근 자전거길 옆의 한 식당으로 헬멧을 쓴 자전거 운전자들이 들어섰다. 이들은 식당에 앉자마자 "여기 국밥에 막걸리 한 병, 소주도 한 병"이라고 주문했다. 식당 내 테이블마다 막걸리와 맥주가 1~2병씩 놓여 있었다. 점심때가 끝난 오후 2시쯤 40대로 보이는 남성 3명은 막걸리 3병을 나눠 마시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비틀거리며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지난달 29일 서울 강동구 강동대교 인근 식당에서 자전거를 타고 온 50대 남성이 술을 마시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강동구 강동대교 인근 식당에서 자전거를 타고 온 50대 남성이 술을 마시고 있다. /박상훈 기자
지난달 27일 오후 8시쯤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에 있는 한 편의점 앞. 이 편의점은 자전거 동호인들 사이에서 '성지(聖地)'로 통한다. 이곳에서 라이딩을 출발하거나 마치는 모임이 많다. 이날 자전거를 끌고 온 남성 4명은 편의점 앞에서 막걸리 두 병과 맥주 한 캔을 나눠 마셨다. 이들은 술을 마시자마자 곧장 자전거를 다시 타고 떠났다. 자전거 운전자들의 음주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지난달 29일 오후 3시쯤에도 이 편의점 앞 테이블 7개 중 4개를 음주 자전거족이 점령했다. 30대로 보이는 운전자 2명 앞에 캔맥주(500mL) 3개가 놓여 있었다. 이날 아들(3)과 산책을 나온 이모(30)씨는 "아이가 음주 자전거에 부딪힐까 봐 이 근처를 지날 때는 손을 꼭 잡고 다닌다"고 말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리는 음주 자전거가 보행자와 차량을 위협하고 있다. 자전거 안전사고가 날로 늘어나는 데도 음주 라이딩에 대한 단속은 전무(全無)하다. 자전거 음주운전은 명백한 불법이다. 도로교통법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전거 운전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처벌 조항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경찰관이 현장에서 음주 자전거를 적발해도 처벌할 근거가 없다. 자전거 운전자가 많은 독일·네덜란드 등 선진국에서는 술을 마시고 자전거를 운전하다 적발되면 벌금을 부과하고 경우에 따라 자동차 운전면허까지 취소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음주 라이딩을 예사로 여기는 운전자들의 의식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많은 자전거 운전자들이 음주운전을 위험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5년째 자전거 동호회 활동을 하는 정모(28)씨는 "자전거를 타고나서 가볍게 맥주를 즐기면 매우 상쾌하다"며 "취할 정도로 마시는 것도 아닌데 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경기도 구리시에 사는 한모(52)씨는 "친구들과 한강변에서 한 잔 마시고 자전거로 귀가하면 피로가 풀린다"고 했다.


	심야시간 '따릉이' 대여 현황
술을 마시고 서울시 공공자전거인 따릉이를 이용하는 시민도 적지 않다. 주말이나 심야에 서울 광화문, 종로, 홍대 등에서 술을 마신 후 주변 따릉이를 타고 귀가하는 것이다. 지난달 28일 직장인 정모(27)씨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동료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오후 11시쯤 귀가하려던 정씨는 30여 분이 넘도록 택시를 잡지 못했다. 정씨는 녹사평역 앞에 있는 따릉이 정류소를 보고 쾌재를 불렀다. 소주 2병을 마신 그는 13㎞ 떨어진 관악구 신림동까지 따릉이를 타고 갔다. 정씨는 "음주 후라 걱정이 되기는 했으나, 택시가 안 잡히니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심야(오전 12시~6시) 시간대 따릉이 이용자 수는 지난달 한 달간 약 8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 심야시간대 따릉이 이용 대수는 하루 평균 1904대나 된다. 하지만 따릉이에는 술을 마신 운전자의 대여를 막는 장치가 없다. 따릉이에 '음주운전을 하지 마라'는 안전운행 수칙을 붙여두고 같은 내용의 안전 수칙을 휴대폰 문자로 이용자에게 보내는 정도다. 지난 6월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전거 음주운전을 자동차 음주운전과 같은 수준으로 처벌하는 내용의 '자전거 안전 패키지 법'(도로교통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도로교통공단의 정의석 교수는 "자전거 음주운전도 타인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자전거 음주운전이 늘어난다는 지적에 따라 행정안전부에 자전거 음주운전을 처벌하는 규정을 만들어달라고 건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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