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는 무리지어 비상하고, 광야는 나 홀로 달리고

바이크조선

입력 : 2018.01.09 10:36

천수만 간월호ㆍ도비산ㆍ부남호

천수만은 인공의 대역사가 이뤄낸 국토확장의 현장이면서 국내최대의 철새도래지다. 방조제를 쌓아 생겨난 간월호와 부남호 주변에는 간척으로 개간된 광활한 농지가 펼쳐진다. 얕은 담수호와 낙곡이 있고 인가는 저 멀리 떨어져 있으니 천수만은 철새에게 최고의 보금자리다. 자전거는 인기척을 내지 않으려 애쓰면서 철새와의 동반 비상을 꿈꾸며 광야를 지난다.

	철새는 무리지어 비상하고, 광야는 나 홀로 달리고



	안개 자욱한 부남호의 아침. 조각배만 홀로 떠 있는 풍경이 흡사 몽환경이다.
안개 자욱한 부남호의 아침. 조각배만 홀로 떠 있는 풍경이 흡사 몽환경이다.

오랜만에 충남 천수만으로 홀로 떠난다. 천수만은 넓은 들녘과 호수가 있어 해마다 겨울이 되면 철새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충남 서해바다 내해에 접한 천수만은 태안군과 서산시, 그리고 홍성군과 보령시 사이에 있다.

이번엔 말친구도 없는 혼자 떠나는 여행이다 보니 왠지 쓸쓸함이 묻어난다. 과거엔 혼자서도 잘 다녔건만, 지금은 함께 할 동료가 없으면 재미가 없어 선뜻 나서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어찌 보면 남들의 시선에 비친 혼자만의 여행이 멋져 보일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그런 모습이 모두 허상이었음을 느낄 것이다.

‘그는 이제 나이도 들고 몸도 예전 같지 않으며, 고독과 쓸쓸함, 그리고 외로움에 지쳐있어 또다시 고독한 여행을 하는 것일 게다. 일상이 더 괴로우니 그나마 행복의 길로 떠나는 것이다.’ 라고….


	간월호 주변의 간척 농지는 철새들의 낙원이다. 조용히 지나가도 얼른 알아차리고 무리지어 비상해 한순간 하늘이 좁아 보인다.
간월호 주변의 간척 농지는 철새들의 낙원이다. 조용히 지나가도 얼른 알아차리고 무리지어 비상해 한순간 하늘이 좁아 보인다.

국토를 넓힌 대역사, 철새들의 보금자리로

천수만은 북쪽의 태안과 서산에서 남쪽의 안면도와 보령시 사이로 길게 늘어져 있고, 천수만 상단에는 방조제로 막힌 간월호와 부남호가 있다. 충남 태안군의 섬 아닌 섬 안면도 해안과 서산·홍성·보령 사이에 형성된 골 깊은 바다로, 그 형상이 마치 게의 엄지 집게발을 닮았다. 이번 여행은 간월호와 부남호를 비롯해 그 사이에 솟은 도비산이 주된 코스다.


	광활한 간월호 풍경. 멀리 도비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광활한 간월호 풍경. 멀리 도비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먼저 천수만의 내력을 살펴보자. 천수만은 수심이 얕고 조수간만의 차가 크며, 작은 섬들이 많아서 큰 선박이 항해하기에는 불편한 곳이었다. 수초가 무성하고 영양염류가 풍부해서 농어, 도미, 민어, 숭어 등 고급어종의 산란장이었고, 다양한 어류의 서식지이기도 했다.

80년대 들어 정부와 현대건설은 중동 경기의 침체를 대신하고 국토 확장을 통해 건설업의 부흥과 식량증산의 목적으로 천수만 간척사업을 시작했다. 1980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1982년 10월에 B지구방조제 최종 물막이 공사가 완료됐고, 1984년 3월에는 일명 ‘정주영 유조선공법’으로 A지구방조제 최종 물막이 공사가 끝났다. 그리하여 A·B방조제 안쪽으로 간월호와 부남호가 생겨났고 넓은 갯벌은 사라졌지만4700여만평에 이르는 광활한 간척지와 담수호가 새로 조성된 것이다. 방조제로 막은 간척지의 서산 A·B지구 내부 농경지는 1985년 4월에 착공되어 1986년부터 대규모 기계화 영농이 시작되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드넓은 평원에서 대책 없는 자전거는 그 자리에 편히 드러누웠다.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은 현대
서산농장의 거대한 저장고
나무 한 그루 없는 드넓은 평원에서 대책 없는 자전거는 그 자리에 편히 드러누웠다.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은 현대 서산농장의 거대한 저장고

간척사업으로 형성된 담수호와 과거 갯벌이었던 것이 대단위 농경지로 바뀌어 월동조류의 새로운 서식지로 부상하게 된다. 특히 철새의 이동경로에 위치한 병목지점으로 다양하고 많은 수의 철새를 관찰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간척사업으로 인해 도요새와 물떼새가 급감했다고 하지만, 반면에 오리와 기러기류가 많이 도래하고 있어 현재는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로 명성을 얻고 있다.

1999년 5월에는 국내 유일의 ‘동아시아 국제 습지 기러기 & 오리 네트워크 사이트’(wetlands international east-asia anatidae site network)로 등록되어 국제적인 중요철새도래지로서 인정받았으며, 서산시는 2002년부터 매년 10월 중순부터 11월까지 ‘세계철새 기행전’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기발하게도 대형 유조선을 동원해 방조제 마지막 물막이 공사를 해낸 ‘정주영 공법’을
설명하는 안내판
기발하게도 대형 유조선을 동원해 방조제 마지막 물막이 공사를 해낸 ‘정주영 공법’을 설명하는 안내판

무리지어 비상하는 철새와의 고독한 동행

이번 여행은 겨울 철새들의 아름다운 비행을 보는 것이 목적이다. 전체코스는 약 90km로 하루만에 소화하기는 무리가 따른다. 아무래도 겨울이라 해가 짧고 여유롭게 철새를 관찰하려면 라이딩 거리를 최소화해야 하기에 1박2일 일정으로 잡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했기 때문에 코스는 서산버스터미널에서 시작해 간월호 양안과 도비산 임도, 그리고 부남호 양안을 돌아 태안버스터미널에서 마무리하는 여정이다. 자, 그럼 출발이다.

서산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해 홍성 방향의 29번 국도를 2.2km 달리면 청지천교를 만난다. 다리 입구에서 우측으로 진입해 청지천 제방길을 따라 가면 대교천이 나오고 이윽고 간월호 상류에 진입하게 된다.

청지천과 대교천 제방길을 거쳐 간월호에 이르기까지 농경지는 철새들이 인기척에 놀라 떼지어 날아가는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초겨울의 간월호는 시시각각 초자연적 대서사시가 펼쳐진다.

간월호 제방길은 길게 뻗은 직선의 연속이다. 네모반듯하게 구획 정리된, 끝도 없이 펼쳐진 농경지와 간월호 사잇길을 달리다 보면 종류를 알 수 없는 수백 수천마리의 철새가 한 방향을 향해 비상한다. 간월호의 얕은 소하천이나 못에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 위기종인 노랑부리저어 새, 황새, 큰고니, 흑두루미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간월호에는 가창오리, 원앙, 물떼새, 논병아리, 고방오리 등등이 유유히 떠다니며 물질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간월호 제방길은 남쪽으로 아득히 먼 간월도까지 이어지며, 간월도를 향해서 뻗은 길은 결코 지칠 줄 모르는 직선이다. 중간에 화장실은 물론이고 급수대나 쉼터도 없는 망망대해와 같은 간월호와 습지, 그리고 광활한 농경지만 펼쳐진다. 어찌 보면 무척 지루하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수많은 철새들의 화려한 군무를 보노라면 전혀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어느덧 홍성군 서부면 궁리에 이르면 방조제 길이만 해도 3.4km로 대단히 긴 ‘서산A방조제’가 서산군 부석면 간월도와 연결되어 있다. 서산A방조제 중간쯤에 이르면 간월호 철새탐조대가 나오고, 간월호를 배경으로 커다란 입갑판에는 ‘정주영 공법’이 소개되어 있다.

당시 제방을 잇는 물막이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남은 공사구간이 260m가 되었을 때 10톤이 넘는 바위도 밀려나가는 초속 8.2m의 유속이었다고 한다. 이때 고안된 공법이 세계 토목사상 유래가 없는, 유조선으로 방조제 사이를 가로막고 유조선 탱크에 바닷물을 넣어 바닥에 가라 앉혀 조수의 유입을 차단해서 방조제를 연결한 ‘유조선공법’이다. 고 정주영 회장이 고안한 공법이라 해서 일명 정주영공법이라고 한다.


	방조제에는 자전거도로가 잘 나 있다.
방조제에는 자전거도로가 잘 나 있다.

걸어서 갈 수 있게 된 간월도

간월도는 천수만 간척사업 덕분에 육지와 연결되었지만 원래는 바다 한 가운데 자리한 섬이었다. 간월도 남단의 작은 바위섬에 있는 간월암은 서산 여행의 기본 코스라 할 정도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나도 몇 번 발걸음을 했던 곳인데 오랜만에 왔더니 주변이 많이 변했다. 간월암을 향해 바닷가로 가는 통로가 조금 바뀌었고 벽에는 주렁주렁 시주 돈이 걸려있는 모습도 낯설다.


	간월도와 30여m 간격을 두고 있는 간월암. 썰물 때 걸어 들어갈 수 있다
간월도와 30여m 간격을 두고 있는 간월암. 썰물 때 걸어 들어갈 수 있다

조수간만의 차로 바닷물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간월암은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데서 간월암(看月庵)이라 했다고 한다. 간월암은 간월도와 30여m 떨어진 작은 돌섬에 있어 하루에 2번 간조 때면 걸어서 갈 수 있다.


	간월도어리굴젓기념탑. 무학대사가 이성계에게 이곳 굴을 진상했다고 한다.
간월도어리굴젓기념탑. 무학대사가 이성계에게 이곳 굴을 진상했다고 한다.

간월도 앞에는 ‘간월도어리굴젓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무학대사가 이성계에게 보낸 어리굴젓이 궁중의 진상품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천수만에는 굴이 많이 잡혀 굴 풍년을 기원하는 ‘굴부르기 군왕제’가 매년 정월 보름날 만조시에 간월도어리굴젓기념탑 앞에서 벌어진다.

바닷길이 열리고 닫히는 간월암은 특히 고요한 바다 위의 낙조가 아름답다. 간조시에는 육지와 연결되고 만조시는 물위에 떠있는 섬이 되는 간월암은 관광객으로 북새통을 이뤄도 여전히 신비롭다.


	간월도의 명물인 영양굴밥
간월도의 명물인 영양굴밥

점심은 간월도의 유명한 향토음식인 영양굴밥으로 해결하고 다시 간월호 하단에서 상단으로 올라가는 서안 코스로 페달을 밟는다. 가을걷이가 끝난 지 한참 지났어도 논바닥엔 아직도 낙곡이 풍부한지 수백 수천의 철새들이 인기척에 놀라 호수를 가로질러 하늘로 날아오른다.

소리 없이 조용히 페달을 밟았건만 어떻게 알아챘을까? 아무래도 척후병 역할을 하는 철새가 있는 듯하다. 아무튼 철새들로서는 낙곡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꿈같은 보금자리일텐데 내가 침범한 것 같아 마치 죄인이 된 기분이다.

철새들은 어떻게 이곳을 알고 월동을 하는 걸까. 아마도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생겨난 결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넓은 갯벌은 농경지가 되고, 민가는 멀리 떨어져 있어 인적이 드물며, 새로 형성된 담수호에 다양한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는데다 중간 중간에 형성된 모래톱과 갈대밭은 천혜의 쉼터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간월호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제방길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농지를 지나간다. 간간이 놀라서 달아나는 고라니의 빠른 발걸음에 철새들이 무리지어 단계적으로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은 마치 경기장 관중들의 파도타기를 보는 듯 이채롭다.


	도비산 일출전망대에서 바라본 천수만 간척 농경지와 간월호. 인공으로 이처럼 거대한 국토확장을 해낸 기획력과 추진력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
도비산 일출전망대에서 바라본 천수만 간척 농경지와 간월호. 인공으로 이처럼 거대한 국토확장을 해낸 기획력과 추진력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천수만의 자연 전망대, 도비산

너른 들녘 저편으로는 우뚝 선 도비산(352m)이 보인다. 간월호와 부남호 사이의 도비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해발 10m의 농경지에서 솟아 표고차는 300m가 넘는다. 도비산에는 부석사와 딸린 암자들이 있다. 부석사는 신라 때 의상이 창건하고 무학이 중건했다고 전해지는 역사 깊은 절이다.

산중턱에는 순환 임도가 개설되어 있고, 동쪽 임도에는 서산A∙B지구 간척지의 드넓은 벌판과 천수만을 조망할 수 있는 일출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산 정상은 숲에 가려 조망이 시원하게 트이지 않아서 임도옆 일출전망대가 최고의 경관을 보여준다.

도비산 임도를 내려와 부석면 갈마리 농로를 지나면 이번에는 부남호다. 부남호 동안에는 ‘검은여’라는 돌산이 있다. 여(礖)는 바다 속에 있는 초미니 바위섬을 말하는데 지금은 간척으로 육지 한 가운데서 작은 언덕을 이룬다.

검은여는 신라 때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이 당나라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할 때, 의상을 흠모했던 당나라 선묘낭자가 결혼을 애원했으나 의상이 거절하고 배에 오르자 선묘낭자는 바다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애틋한 설화가 깃들어 있다. 검은여는 간척이 되기 전 밀물과 썰물 때 항상 같은 모양으로 물위에 떠 있어 부석(浮石)이라 불렸다. 아마도 부석면과 부석사의 지명이 검은여의 설화를 기반으로 생긴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의상과 선묘낭자와 관련된 전설은 같은 이름의 경북 영주 부석사에도 비슷하게 전해온다.

검은여에서 부남호를 만나 남쪽의 서산B방조제로 내려가는 제방길 또한 끝없는 직선이다. 부남호는 태안과 서산의 경계를 이룬다.

부남호는 서산시 부석면과 태안군 남면에 걸쳐져 있는 인공호수로, 원래는 바다였다가 간월호처럼 서산B방조제 공사로 호수가 되었다. 부석면과 남면의 이름을 빌어 부남호(浮南湖)라고 했다.

서산B방조제는 길이 1.2km로 태안천, 상옥천, 홍인천이 합류해 담수호 상류로 유입되고 있다. 부남호는 지역이 광대하고 민가와 격리되어 있을 뿐 아니라 피리, 물새우, 붕어, 잉어, 미꾸라지, 뱀장어 등 많은 물고기와 조류가 좋아하는 조개류, 그리고 간척지구 내의 벼, 억새 등이 풍부해 철새 도래지로 적당하다.

어느덧 석양이 짙게 물들 무렵 서산B방조제가 있는 창리 선착장에 들어선다. 선착장 너머로 붉게 물든 태양이 뉘엿뉘엿 넘어가고 천수만도 붉게 물든다. 창리선착장 인근에 숙소를 잡고 하루를 마무리 한다.


	저지대에서 솟아 고도감과 전망이 탁월한 도비산 임도
저지대에서 솟아 고도감과 전망이 탁월한 도비산 임도

선계로 들어선 것만 같은 안개속 라이딩

서산B방조제 하단부의 창리선착장 인근에 서산버드랜드가 조성되어 있다. 서산버드랜드는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인 천수만을 체계적으로 보전·관리하고 체험교육중심의 생태관광에 주력하고 있는 생태문화공간이다. 철새의 종류와 생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철새박물관으로 둥지전망대, 4D영상관, 자생식물원, 철새박물관, 야외공연장 등이 있다.

버드랜드의 상징인 둥지전망대는 배를 형상화한 하부 구조물과 원형의 회오리 모양 상부 구조물로 이뤄진다. 전망대에 오르면 360도 서산의 간척지와 천수만 일대를 굽어 볼 수 있다.

바다였던 곳이 지금은 드넓은 농경지로 개간되어 여름과 가을엔 초록과 황금빛 들판이 펼쳐지고 추수가 끝난 자리에는 수많은 철새들의 군무를 볼 수 있으니 말그대로 상전벽해의 현장이다.

다음날은 안개가 짙게 끼었다. 서산버드랜드를 가야 하건만, 일찍 문을 열리도 없고 더군다나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안개에 전망대에 올라간들 무엇을 볼 수 있겠는가 싶어 바로 여정에 나선다.


	한때 바다 한가운데 있던 바위섬 검은여가 이제는 평야 속의 작은 언덕으로 남았다.
한때 바다 한가운데 있던 바위섬 검은여가 이제는 평야 속의 작은 언덕으로 남았다.

창리선착장에서 서산B방조제를 건너면 태안군 남면 당암포구다. 오늘은 부남호 서안을 거슬러 올라가 태안버스터미널까지 가면 모든 일정이 끝이다. 목적지까지 20km도 채 안되기 때문에 여유로운 라이딩을 계획한다.

짙은 안개를 뚫고 올라가는 부남호 제방길은 가시거리가 30m쯤 되는 것 같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도 아닌 것이 참으로 몽롱한 기운이 감돈다. 끝을 알 수 없는 희뿌연 안개 속을 헤쳐 나가는 길은 마치 선계를 넘나드는 듯 정령이라도 불쑥 나타날 것 같은 기운이 감돈다.


	저지대에서 솟아 고도감과 전망이 탁월한 도비산 임도
저지대에서 솟아 고도감과 전망이 탁월한 도비산 임도

해가 떴는지 부남호에는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안개가 아른거리고, 물가에 한가히 놀던 철새가 인기척에 놀라 푸드득 날아오르면 날개짓에 안개는 회오리를 그리며 춤을 춘다. 새도 놀라고 안개도 놀라고 그 바람에 내 가슴도 철렁거린다. 희뿌연 안개 속에 고요가 감도는 제방길을 달리다 보면 이렇듯 가끔 적막을 깨는 일들이 반복된다.

서서히 안개는 걷히고 부남호에는 작은 어선과 그물을 걷는 어부의 모습이 흡사 내 자신이 선계에 와 있는 듯하다.

어느덧 너른 들녘을 나오니 태안종합운동장이 나오고 태안 시내로 접어들었다. 이미 안개는 걷히고 파란하늘에는 햇살이 가득하다. 태안버스터미널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버스에 오르니 잠이 절로 온다.


	철새는 무리지어 비상하고, 광야는 나 홀로 달리고

글·사진 이윤기(본지 이사)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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