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나라에서 왜건은 대중화되지 못했을까

바이크조선

입력 : 2019.03.08 10:00

라이프스타일 이야기(제3편)

자동차도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유럽은 승용차의 60%가 왜건인데, 왜 우리나라는 팔리지 않을까. 왜건은 세단과 같은 바닥면적에 실내공간을 최대한 키운 타입으로 공간 활용성에서 세단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실용성을 앞세운 유럽의 왜건 외에 미국의 픽업트럭도 한국에서는 비인기다. 한국인만의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에 그 이유가 있다.

	네덜란드 한 주택가에 주차된 차량. 80% 이상이 왜건이거나 소형 SUV이다.
네덜란드 한 주택가에 주차된 차량. 80% 이상이 왜건이거나 소형 SUV이다.
우리나라가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한 지 어언 60여년이 넘었다. 6·25 이후 미군 군용유를 담았던 드럼통을 두들겨 펴서 껍데기를 만들고 역시 미군 차량의 중고 부품을 끼워 만들었다던 시발(始發) 자동차를 박물관에서 본 적이 있다(아마도 당시에는 그 이름이 지금처럼 나쁜 어감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작되었다는 역사적인 이 차의 운전석을 보니 정말 버튼은커녕 수동식 레버도 거의 없는, 단촐하기 그지없는 디자인이다. 이에 비하면 최근의 차량은 거의 우주선 수준이랄까? 최근의 우리나라 경제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래도 박물관에서 이런 물건들을 보고 나면 짧은 시간에 참 많은 변화가 이 땅에 있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이달의 라이프스타일 이야기의 주제는 자동차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 특성이 이 땅의 자동차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한번 들여다보고자 한다.

유럽은 여전히 왜건이 대세

지금은 가정마다 자동차가 있지만, 한때 자동차는 부의 상징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잘 쓰이지 않는 자동차 관련 용어 중에 ‘자가용’ 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사전적 의미는 ‘기업의 영리 목적이 아닌 개인이 소유 및 사용하는 용도의 것’이다.

개인 소유의 물건이 어디 한둘이겠냐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가용’이라는 단어가 유독 자동차를 지칭하게 된 것을 보면 가정용 자동차가 차지하는 그 시절의 지위를 가늠할 수 있다(물론 최상류층은 자가용 비행기도 갖고 있다지만…). 그도 그럴 것이 대단한 부자들이나 자기 차를 소유하던 시절, 용도를 구별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이 단어가 어느덧 중요한 재산의 대명사가 되었던 것이다.

꽤 오래전 유럽을 처음 갔을 때 느꼈던 여러가지 신기한 기억 중 한가지가 자동차에도 있다. SUV라는 단어조차 없던 당시에 유럽에서 본 승용차들은 세단이 주류인 우리나라와 달리 온통 왜건 천지였다(지금도 유럽 승용차의 60%가 왜건 타입이라고 한다). 국내에서 보이는 벤츠, BMW 같은 고급차들은 하나같이 세단 또는 쿠페 타입인 반면, 여기서는 널리고 널린 것이 해치백이요 왜건이었다. 언제부터인가 SUV가 대세가 되어가는 요즘까지도 유럽에서는 여전히 왜건의 비중이 꽤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 국내에는 왜건이 그리 흔하지 않다. 일부에서는 우리나라를 ‘왜건의 무덤’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에서 왜건의 등장 시기는 꽤 오래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모델 자동차였던 포니에도 기본형인 세단에 뒤이어 픽업트럭과 왜건이 출시되었으니까 사실상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의 초창기부터 왜건이 있었다. 그 이후에도 간혹 자동차회사에서 큰 마음 먹고 엄청난 판촉과 함께 대대적인 캠페인을 하면서 왜건 차량을 출시하기도 했다. 국민소득의 성장과 더불어 지금쯤은 이런 차가 유행할 문화적 배경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추진한 일이겠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변함없이 비참했다(필자가 보기에 다시는 국내에서 왜건이 출시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유럽에서는 대세인데 국내에서는 왜건이 안 되는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세계 최초의 가솔린 내연기관 자동차(1886년, 독일 벤츠)
세계 최초의 가솔린 내연기관 자동차(1886년, 독일 벤츠)

	시발(始發) 자동차의 운전석 내부 :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작된 자동차로 첫 출발이라는 뜻의
‘시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장난감보다 더 단출한 계기판이 인상적이다(1955~1962년)
시발(始發) 자동차의 운전석 내부 :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작된 자동차로 첫 출발이라는 뜻의 ‘시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장난감보다 더 단출한 계기판이 인상적이다(1955~1962년)
‘번거로운 것보다 무조건 편한 게 좋아’

필자는 그 첫번째 이유가 한국인 라이프스타일의 특징에서 비롯 되었다고 본다(본 칼럼의 주제가 라이프스타일이다 보니 매번 같은 이유를 대는 것 같아 조금 그렇긴 하다. 이제 이 키워드로 연재를 마칠 때가 되어가는 듯하다).

여행, 캠핑, 레저 문화가 발달하고 우리보다 근무여건이 좋고, 가족적인 문화가 일상화된 유럽에서 왜건은 세단보다 훨씬 실용적인 자동차였다. 똑같은 면적의 주차공간을 차지하면서도 물건은 훨씬 많이 실을 수 있는 이 차량은 바리바리 많은 짐을 싣고 여행을 가기에 편리할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중에 큰 물건을 옮겨야 하는 경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스스로 조립해서 만들어 쓰는 가구점인 이케아에서 큰 물건을 사더라도 왜건이라면 어려움 없이 싣고 올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왜건은 당연히 패밀리카로 분류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행을 가더라도 여러가지 손가는 일이 많은 진짜 캠핑보다는 콘도, 펜션 등을 통한 편안한 여행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약간의 돈만 더 내면 바비큐까지도 다 준비해 준다). 국토가 좁은 이유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보편적 관광 형태는 자연친화적인 액티비티를 직접 하기 보다는 목적지에서 관광을 하고, 현지 맛집에서 식사를 한 후 편한 곳에서 숙박하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많다. 또한 필자가 칼럼 시리즈의 초반에 언급했듯이, 빠른 경제 성장 시절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던 이 땅의 가장들은 집에서는 그리 많은 일을 하기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다(유교적 가부장 문화 때문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집안의 무엇인가를 고치는 일에 있어서도 스스로 손대기보다는 돈을 주면 누군가가 해주는 용역업을 발달시켰고, 이는 다시 DIY가 대중화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최근 가족 중심의 캠핑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고도 하고 근무 여건의 개선과 함께 여가활동이 늘 것이라는 전망도 있기는 하지만, 문화라는 것이 어디 한 순간에 급작스럽게 바뀔 수는 없지 않은가? 확실히 우리 문화 코드 중에는 편안한 럭셔리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유럽 젊은이들은 주로 저렴한 백패킹 여행을 선호하는데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어딜 가나 캐리어를 끌고 다닌다. 이들은 다음 세대 아닌가? 한 사회의 라이프스타일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왜건의 수요가 유럽보다 훨씬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라이프스타일의 차이로 인한 것이다.

픽업트럭과 소형차의 부재

글 초반에 언급했듯이 우리나라에서 자가용은 부의 상징이었다. 혹시 ‘마이카 시대’라는 말을 기억하는가? 전후 찢어지게 가난했던 우리나라가 점점 잘 살게 되면서 자가용이 대중화되는 시대를 맞은 적이 있다. 물론, 당연히, 자동차 업체들이 ‘마이카 시대’를 홍보하면서 전면에 내세운 차종은 소형차였지만, 뭐든지 한번 겪고 나면 더 좋아 보이는 것을 찾게 되는 법. 자가용은 편리한 이동수단이기도 했지만 성공의 상징이기도 했다.

국토가 넓은 미국에서는 자동차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 지역이 많다. 청바지, 햄버거 등 미국문화를 대변하는 여러가지 단어들이 있는데, 여기에는 ‘픽업트럭’도 들어 간다. 픽업트럭은 평야가 넓은 미국의 대다수 가정에서 아주 대중화된 차종의 하나이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는 재임시절 외국 정상과 회담할 때 텍사스의 자기 목장으로 초대해 자신이 운전하는 픽업트럭에 태우고 목장을 돌아보는 것을 통해 최고의 친근감을 표시하곤 했다. 한 국가의 최고 권력자를 대접하면서 픽업트럭에 태우고 좋아한다? 실용적이고 캐주얼한 미국문화를 대변하는 한 단면이다. 이처럼 미국에서 픽업트럭은 기능적으로도 매우 효율적인 차량인 동시에, 매우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느낌을 주는 자동차다.

도시와 건물 그 자체가 수백년이 넘은 문화유산인 유럽에서는 도시개발을 통해 도로를 넓히고 정비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당연히 차량의 도시 진입을 억제하는 정책을 쓸 수밖에 없었고 이는 자전거와 트램 같은 대중교통이 활성화되는 등 여러 모로 유익한 교통문화를 낳았다. 이렇 듯 유럽 역시 자동차가 실용성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유럽의 자동차에는 왜건이 많다는 것 말고도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이 있는데, 바로 소형차가 정말 많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픽업트럭을 본 적이 있는가(영업용 화물트럭과는 다르다). 우리보다 잘 사는 유럽이 소형차를 주로 타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대형차 사랑이 사뭇 남다른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이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필자가 보는 두 번째 이유가 바로 이것인데, 이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적 특징 중 하나이다.

자동차는 일종의 부의 상징이었다. 조금은 신중해야 할 표현인 듯하지만, 어떤 차를 타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신분과 지위가 표시되기도 하는 것이다. 언젠가 교황의 한국 방문시 소형차를 준비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소탈한 미담으로 회자되었던 것처럼, 중요한 손님에게는 가급적 비싼 차, 큰 차를 준비하는 것이 기본적인 상식으로 통한다.

	네덜란드의 어느 주차장. 주말에 쇼핑 나온 사람들의 차량으로 80%가 왜건이거나 소형 SUV 이다.
네덜란드의 어느 주차장. 주말에 쇼핑 나온 사람들의 차량으로 80%가 왜건이거나 소형 SUV 이다.

	중형 MPV. 자전거를 많이 타는 유럽에는 자전거를 적재할 수 있는 차량이 많다.
중형 MPV. 자전거를 많이 타는 유럽에는 자전거를 적재할 수 있는 차량이 많다.

	1982년 출시된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모델 자동차 포니. 픽업트럭과 왜건도 함께 출시되었다.
1982년 출시된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모델 자동차 포니. 픽업트럭과 왜건도 함께 출시되었다.

SUV 현상

자동차는 소유자의 개성을 대변하는 아이콘이다. 멋진 말인 듯하지만 이를 조금 완곡하게 표현해 보면 느낌이 다르다. 남의 눈을 많이 의식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조금은 애잔한 습성을 라이프스타일의 한 특징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자가용’이라는 단어의 대명사화에서 보았듯이, 길지 않은 우리나라의 근대사에서 자가용은 곧 부의 상징이었고, 이를 대변하는 것은 역시 커다란 검정색 세단이었다. 누군가의 말을 빌자면, 외국에는 관용차와 장의차 외에는 검정색 차가 없다고도 하면서 한국에서 느낀 첫 인상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이 또한 우리의 문화적 특징이다. 때론 짐차 같아 보인다는 왜건으로는 격이 낮아 보이는 이미지를 지우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럼 여기서 또 한가지 궁금증을 들 수가 있다. 요즈음 승용차 시장의 대세는 SUV라고 한다. 왜건과 SUV는 둘 다 해치백 형태의 차량이다. 한편으로는 둘 다 짐차 같아 보인다. 둘 다 짐을 많이 실을 수 있다. 어찌 보면 그다지 많이 다른 것 같지 않은데, 어찌하여 이 땅에서 왜건은 망하고 SUV는 그리 잘 나가는 것일까?

원래 SUV의 원조는 지프나 랜드로버 같은, 세계대전 당시 군용 차량으로 납품되던 모델의 변형이 그 원조이다. 해치백 구조에 탄탄한 서스펜션, 그리고 오프로드 주행이 가능한 파워풀한 차량이다. 도시화가 많이 진행된 우리나라에서, 그것도 왜건조차 정착하지 못한 보수적인 우리나라의 자동차 시장에서 이런 오프로드 차량이 대세다? 약간 비논리적인 듯해 보이지만, 이는 최근 대부분의 SUV가 원조와 달리 도시에 최적화된 2륜구동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왜건이 환대받지 못하는 우리나라에서 일부러 왜건을 타는 것은 일반 대중에게는 그리 일반적인 결정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고차 가격에도 민감한 편인데 대중적이지 못한 모델일수록 중고차 시세가 많이 떨어진다. 또 대세의 그룹에 끼지 못한다는 일종의 소외 의식은, 웬만큼 확고한 성향을 갖지 않는 한 무시하기 어렵다. 그래서 필자는 어쩌다가 도로에서 수입산 왜건 차량을 보면, 아마도 외국인이 몰거나, 유럽에서 살다 온 사람이 현지에서 쓰다가 갖고 들어온 차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쓰던 차이니 바꾸기 아까워서 계속 쓰는 것이기도 하겠으나, 서구사회라는 일종의 실용적 선진문화를 경험한 사람이라는 우월감(?)으로도 작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SUV는 왜건과 달리 새로운 카테고리로 인식되었고, 짐차로 격하되었던 왜건의 불우한 운명과 달리 사회가 젊고 다양화되는, 다소 운이 따랐던 시대적 변화 속에 스포티한 신선함으로 조명을 받고 등장하게 되었다. 요즘은 미니밴으로 통칭되는 MUV와의 경계선도 모호해지고 있고, 크로스오버 차량이라고도 불리는 ‘퓨전’ 카테고리 속에서도 선전을 거듭하고 있는 듯 보인다.

주행 성능이라는 자동차의 고유 기능은 이제 어느덧 많이 비슷해진 느낌이다. 물론 고급차일수록 성능의 차이는 분명 있겠지만, 어느 정도의 상향평준화는 이뤄졌다. 자동차도 이제는 이동수단을 넘어 패션이자 사용자의 정신세계를 대변하는 자산이 된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라이프스타일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고, 편의사양은 점차 업그레이드되겠지만 카테고리별로 특징화되는 고유의 기능은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것이다.

SUV는 말그대로 아웃도어 용도에 특화된 차량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스로 다 해야 하는 액티비티에 약하지 않은가? 이제 자동차는 패션에 한발 더 다가선 느낌이다.

혹자는 올해 초소형 전기차가 대세가 될 것이라고 한다. 또한 자전거업계에서는 올해 전기자전거에 사활을 걸었다고도 한다. 사실 언론은 언제나 향후의 향방에 대해 과장되게 말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그렇게 되도록 유도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당장 올해 얼마나 그리 될지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우리만의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의 차이에 따라 선진국의 행보와 다르게 갔거나 그로 인해 명멸했던 과거의 많은 기업 사례를 보았듯이 말이다.

정말로 초소형 전기차가 모빌리티 수요를 어느 정도 충족하게 된다면, 어쩌면 단순 레저용이 아닌 이동수단으로서의 자전거나 전기 모빌리티의 역할은 줄어들 수도 있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이제야 비로소 올해 시즌이 시작되었으니…. 또 한해를 두고 봐야 알 일이다.

글·사진 김지영(진야드 코퍼레이션 대표)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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