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영계곡을 돌아 공릉천과 석현천 자전거길을 따라가 본다

바이크조선

입력 : 2019.10.16 10:00

등잔 밑이 어두워지고 있다
너무 가까워서 외면 받는 절경

이제 일영과 송추는 추억 저편의 지명이 되었다. 구불구불한 산간을 느리게 달리던 교외선 철길이 폐선되는 대신 시속 300km로 KTX가 전국을 누비고 고속도로가 사방팔방으로 뚫렸으니 서울 지척의 산간절경은 ‘너무 가까워서’ 외면받는 이상한 부작용을 겪는다. 그래도 여전히 유원지의 명맥을 잇고 있는 일영계곡을 돌아 공릉천과 석현천 자전거길을 따라가 본다. 철지난 어느 평일 오후에

	서울 지척에서 만나는 완연한 시골풍경. 석현천 부근으로 맞은편에 노고산이 보인다.
서울 지척에서 만나는 완연한 시골풍경. 석현천 부근으로 맞은편에 노고산이 보인다.

교외선, 일영, 송추… 한때 청춘을 사로잡고 현실의 작은 도피처가 됐던 이 이름들은 이제 완연히 ‘한물갔다.’ 서울 북쪽 외곽을 돌던 교외선 철도는 2004년에 열차가 끊겼고, 젊은이들의 노래와 탄식이 교차하던 일영과 송추 유원지는 속절없이 퇴락 중이다. 교통이 발달하면서 서울과 너무 가까운 거리는 오히려 외면을 초래했다. 편리한 자동차가 있고 좋은 길도 있으니 이왕이면 더 멀리 가보자 하는 심리의 결과일 것이다.

일영과 송추는 둘 다 계곡인데 일영이 좀 더 특별하다. 송추계곡은 도봉산 서쪽으로 흘러내려 흔한 산속 계곡의 하나지만, 일영계곡은 노고산(487m)과 북한산 일영봉(444m) 줄기 사이를 큰 고도차 없이, 대신 극심한 만곡을 그리면서 흐른다. 산간을 흐르는 작은 강줄기랄까, 한강 최후의 지류인 공릉천의 상류이기도 하다.

일영계곡을 돌아볼 생각이 든 것은 여름의 끝을 붙들고 있는 안타까운 조락에 동병상련의 마음이 솟구쳐서다. 운동회가 끝난 교정, 축제가 끝난 광장, 철시한 시장… 들끓던 흥분과 열기, 설렘이 사라진 풍경에는 잔상의 공허가 있다.


	일영계곡 입구이자 석현천과 공릉천의 합수점에는 ‘싱싱바이크빌리지’라는 작은 자전거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나 불법주차로 명분을 잃고 있다.
일영계곡 입구이자 석현천과 공릉천의 합수점에는 ‘싱싱바이크빌리지’라는 작은 자전거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나 불법주차로 명분을 잃고 있다.


	서울 지척에서 드물게 보는 아름다운 계곡이지만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분수까지 만들어 자극을 더했다.
서울 지척에서 드물게 보는 아름다운 계곡이지만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분수까지 만들어 자극을 더했다.

태양이 그리운 계곡

일영계곡의 이름은 일영봉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도봉산 줄기 너머 떠오르는 태양을 맞는다는 뜻으로 일영봉(日迎峰)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그 아래에 깊이 패인 계곡은 햇빛 보기가 지난한 심심산골이다. 어쩌면 햇빛의 결핍을 토로하는 역설적 지명일 것이다.

사방으로 이뤄지고 있는 ‘거대 서울’의 확산은 북한산을 넘은 이곳도 예외가 아니다. 바로 옆의 고양시 덕양구는 삼송지구로 노고산 턱밑까지 시가지가 차올랐다. 북한산 너머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던 노고산도 이제는 1/3 가까이 시가지에 둘러싸였다. 이러니 일영은 북한산의 어느 계곡과 같은 입지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즈음의 일영은 어떻게 변했을까. 출발지는 삼송지구 오금공원이지만 사무실(서울 강서구 마곡동)에서 전기자전거로 출발해도 배터리 걱정이 없다. 오금공원을 출발해 일영계곡을 지나 공릉천의 지류인 석현천을 따라 남하하는 일주 코스다. 거리는 약 43km.


	일영계곡 초입에는 잠깐 천변 자전거길이 나 있다. 길가에는 낚시꾼들이 동상처럼 앉았다.
일영계곡 초입에는 잠깐 천변 자전거길이 나 있다. 길가에는 낚시꾼들이 동상처럼 앉았다.

	일영계곡을 벗어나면 석현천에 연한 ‘누리길’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일영계곡을 벗어나면 석현천에 연한 ‘누리길’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망가진 출렁다리가 일영계곡의 오늘을 아프게 말해준다.
망가진 출렁다리가 일영계곡의 오늘을 아프게 말해준다.
퇴색해가는 계곡 마을

노고산의 남서쪽에 길게 패인 계곡에 오금공원이 있는데 주변도 곧 주거지로 바뀔 모양이다. 예전에 노고산 등산을 갔다가 산기슭의 군 사격장이 훈련 중이라 능선에는 군인들이 지키고 섰고, 혹시 유탄이 날아들까 긴장하며 지난 기억이 있지만 머잖아 도시의 뒷산이 될 것이다.

오금공원에서 시원하게 뚫린 371번 지방도를 따라 매내미고개를 넘어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아래를 지나면 곧 일영계곡 입구다. 계곡 입구는 나중에 돌아 나올 석현천이 합류해 합수점을 이룬다. 일영계곡이 공릉천의 본류인 셈이다.

일영봉과 노고산 사이를 흐르는 일영계곡은 직선거리는 2.7km인데 길이는 7km나 될 정도로 극심한 곡류로 구불거린다. 상하류 고도차가 크지 않고 골짜기를 깊이 파고들어 지리학적으로는 전형적인 감입곡류(嵌入曲流) 하천이다.

계곡가 평지는 어디 한곳 빈 데가 없다. 펜션 아니면 캠핑장, 식당이다. 피서철이 지나 다들 떠나서일까, 왁자한 함성이나 웃음도, 아이들의 깔깔거림도 없다. 어쩌다 보이는 지각 피서객이 그늘 아래 조용히 쉬고 있을 뿐. 새로 만든 펜션 말고 개울가 건물은 10년 전과 변함이 없는 것 같다. 하염없이 퇴색하고 있는 페인트가 조락을 말해준다.

숲은 울창한데 시원한 쾌적함보다는 울적한 어두움으로 느껴지고 잠시만 머물러도 모기떼가 사정없이 달려든다. 가만히 풍경을 감상하고픈 마음보다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페달링이 바빠진다.

	고양시 선유동의 공릉천 다리 위에서 본 북한산
고양시 선유동의 공릉천 다리 위에서 본 북한산

	일영계곡 입구를 지나면 산뜻한 데크길이 반긴다.
일영계곡 입구를 지나면 산뜻한 데크길이 반긴다.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지만 찾는 이는 드문 고양시 삼송지구 오금공원. 이번 여정의 기점이다.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지만 찾는 이는 드문 고양시 삼송지구 오금공원. 이번 여정의 기점이다.

간만의 전원풍경

일영계곡을 벗어나면 지금은 흔적만 남은 교외선 철길과 온릉역 자리다. 맞은편 산자락에 있는 온릉(溫陵)은 중종이 등극하면서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7일만에 쫓겨난 단경왕후의 무덤이다. 아버지 신수근이 연산군의 처남으로 중종반정을 반대한 것이 이유였다. 죽은 후에야 복위되어 이 자리에 모셨다. 고작 7일만에 파혼을 맞았으니 중종의 따뜻한 손길을 그리워 한다는 뜻에서 따뜻할 온(溫) 자를 썼을까.

옛 장흥역 쪽으로 내려가 선현천을 따라 남하한다. 좁은 계곡길에서 벗어나니 그나마 개울가의 작은 들판에도 개방감이 든다. 석현천을 따라서는 경기도의 걷기 코스인 평화누리길이 조성되어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

근교의 농촌은 이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농가 마을과 휴양시설이 뒤섞여 어수선하지만 지저분하지는 않아 마음은 가볍다. 앞서 통과한 일영계곡 입구의 공릉천 합수점을 지나면 생뚱맞은 북부순환 자전거길 표지판을 따라 계속 공릉천을 내려간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지그재기로 지나면 삼송지구의 오금공원 입구로 다시 나오게 된다(신원마을 1단지 우남퍼스트빌 아파트 앞). 여기서 출발지인 오금공원까지는 골짜기를 따라 1.5km 올라가면 된다. 개울가로 예쁜 자전거길이 잘 나 있고 공원은 한산하다.

>> 코스 개요


	일영계곡을 돌아 공릉천과 석현천 자전거길을 따라가 본다
Tip

삼송지구 오금공원은 서울 한강자전거길에서도 접근이 가능하다. 방화대교 북단에서 시작되는 창릉천 자전거길을 따라 전철 3호선 삼송역 옆의 지축차량기지앞 교차로에서 북쪽으로 작은 고개를 넘으면 바로 오금공원이다. 오금공원에는 주차공간이 충분하며, 전철을 이용할 때는 3호선 삼송역이나 지축역에서 내리면 된다. 석현천을 따라 식당이 여럿 있다. 옛날양평해장국(장흥면 일영로 737, 031-879-8313) 추천.

글·사진 김병훈(본지 발행인)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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