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물결 일렁이고 억새 춤추는 가을에 눕다

바이크조선

입력 : 2020.11.11 10:00

깊어가는 가을, 돌변하는 산천의 풍경을 접하려고 들길로 나섰다. 벼는 고개를 숙이다 못해 떨궜고, 일부 논은 벌써 추수가 끝나 텅 빈 바닥과 짚가리가 가을의 을씨년스러움을 담고 있다. 둑길에는 억새가 하얗게 꽃을 피워 실바람에도 춤을 춘다. 오래된 마을은 연탄과 땔나무를 사재고 텃밭을 정리하면서 벌써 겨울나기 채비를 서두른다. 히든파워 브롬톤과 함께 계절과 풍경, 일상의 잔잔한 변화를 들여다보았다.

	추수를 기다리는 들판은 온통 황금빛이다.
추수를 기다리는 들판은 온통 황금빛이다.

가을은 숫자로 표시되는 날짜가 아니라 들판의 색깔에서 시작된다. 봄부터 여름까지 그렇게 푸르기만 하던 들판은 어느날 갑자기 탈색하기 시작해 문득 바라보면 어느새 갈색으로 훌쩍 변해있다. 계절과 시간을 의식하지 않고 살다가 생각이 나서 되돌아보면 시간이 한참이나 흘러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게 갑자기, 문득 깨달아서 돌아보는 시간은 점으로 흩어져 있는 실제 감각 사이의 괴리를 감지하지 못해 ‘시간(세월)이 너무 빨리 흘렀다’는 느낌으로 이어진다. 사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에서 보듯, 시간은 상대적이어서 빨리 갈 수도, 느리게 갈 수도 있다. 상대성원리는 시간의 변수로 관측자의 속도와 중력을 들지만, 일상에서도 우리는 같은 1시간을 지루하게 보내거나, 너무나 즐겁고 행복해서 총알처럼 빠르게 느끼기도 한다.

시간의 산책, 공간의 사색

도심에서는 시간의 변화, 특히 계절의 변화를 감각으로 느끼기 어렵다. 기껏해야 기온변화, 사람들의 옷차림으로 짐작할 뿐이다. 도심을 벗어나 들로 산으로 나서면, 예상치 못한 색깔의 변화에 깜짝 놀라는 것이다. 이런 감각적 시간지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도시와 실내에만 있지 말고 야외를 교차 경험해야 한다.

사무실이 서울 서쪽 끝에 치우친 덕분에 조금만 나가면 김포평야가 가깝다. 많이 도시화되었다고 하지만 그린벨트와 절대농지로 묶여서 김포평야에는 아직도 논이 지천이다. 개인적으로 특히 좋아하는 곳은 김포공항 활주로 서쪽에 펼쳐진 대장들판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부천에 속하지만 크게 보아 김포평야에 포함된다.


	황혼의 이륙. 김포공항 활주로를 막 떠오른 저 비행기는 어디로 가는 걸까.
황혼의 이륙. 김포공항 활주로를 막 떠오른 저 비행기는 어디로 가는 걸까.
벌써 수확이 끝나다니

“아니, 벌써!”

얼마 전에도 이곳을 다녀갔고 최근에는 남쪽 지방의 산과 들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이 가을로 치닫는 것을 보았지만, 들길에 들어서면서 바로 감탄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완전히 영근 벼는 고개를 숙인 정도가 아니라 역 U자로 허리를 접어버렸고, 일부 논은 벌써 추수가 끝나 있다. 언제 이렇게 되어버렸지 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나도 모르게 벼가 익고 세월이 지나간 것처럼 느껴지지만 나는 나대로 뭔가를 하며 시간을 채웠으니 이는 내 위주로만 생각하는 엉뚱한 착각이다.

우리는 시간을 현실과 동떨어져 절대적인 기준으로 과거에서 미래로만 흐르는 어떤 가장 원초적인 상수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그냥 세상의 변화를 기술하기 위해 인간이 도입한 개념일 뿐이다. 시간과 함께 쓰이는 공간 역시 ‘실체’를 표기하는 인간적 개념일 뿐이다. 시계 안에서 쉴 새 없이 바뀌는 숫자와 똑딱이는 초침의 운동도 우리가 만든 기술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고안해서 자연에 부여한 이러한 ‘질서’를 모두 제거하면 남는 그 무엇, 그것이 진정한 ‘자연’이다.

	둑길에 활짝 피어난 억새는 가을의 쓸쓸한 전령이다.
둑길에 활짝 피어난 억새는 가을의 쓸쓸한 전령이다.
들길 따라서

사람과 자동차로 붐비는 도시가 지척이지만 들판은 텅 비었다. 어쩌다 스쳐가는 바람만이 황금물결을 일으키며 찰나의 흔적을 남기고, 하늘에는 때 이른 철새가 공허를 가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녁 8시까지 환하던 하늘은 오후 4시가 넘어가면 벌써 햇살이 힘을 잃고 황혼을 준비한다. 이런 장소, 이런 시간, 이런 분위기에서는 생각의 초점이 잘 모아지고 그 폭도 깊어진다.

2500년 전 그 아득한 옛날에 성찰과 사색만으로 우주와 삶의 본질을 끝임 없이 변화하는 ‘무상(無常)’이라고 갈파한 고타마 싯다르타의 영감은 탁월하다. 몇 주일 전의 들판과 지금의 들판이 판이하듯,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도 다르다. 7년이면 인간의 몸을 이루는 세포 전체가 바뀌고 그런 세포의 활동을 총체적으로 주관하는 생명도 100년을 넘기기가 극히 어렵다.

연로한 어르신들은 어쨌든 삶을 먼저 경험한 ‘선배’이니 그들의 탄식을 잘 들으면 그나마 현실적인 답이 나온다.

“마음은 20~30대 청년 그대로인데 몸이 어느새 70~80이다, 인생은 짧다, 지금 못 가진 것에 불만을 갖지 말고 이미 가진 것에 감사해라, 결국은 혼자다, 싫은 일이나 미운 사람에 감정과 시간을 허비 말고 좋은 일과 좋은 사람에게 충실하라, 어떤 고난도 조금만 참으면 곧 지나간다….”

길가의 억새에 안겨 보고, 추수 직전의 논두렁에도 기대본다. 가을은 나의 감각을 거쳐 이윽고 금속으로 된 자전거에게까지 전해진다. 가을 들판에서 작은 두 바퀴는 더 느린 속도와 더 넓은 접지로 세상과 삶의 이면을 살며시 들춰준다. 힘이 덜 드니 황혼이 질 때까지 들길 여기저기를 방황하면서.

히든파워 : 02-548-8800 www.hiddenpower.co.kr

글·사진
김병훈(본지 발행인)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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