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퀴로 다시 찾은, 갯벌의 추억

바이크조선

입력 : 2020.11.18 10:00

충남 서천

아들과 함께 갯벌에서 게를 채집하던 추억을 떠올리며 서천으로 향한다. 그때 처음 간 곳이 월하성갯벌이었다. 여전히 엽낭게들이 바삐 움직이고, 춘장대는 백사장이 단단해 라이딩도 즐겼다. 마량리 동백나무숲에는 손님을 반기듯 이 가을에 꽃을 활짝 피운 나무를 만났다. 30만평에 달하는 장항송림은 숲속에 들어서는 순간 아무 소음도 들리지 않는 궁극의 정적에 휩싸인다.

	춘장대해수욕장. 백사장이 단단해 라이딩이 가능하다.
춘장대해수욕장. 백사장이 단단해 라이딩이 가능하다.

아침저녁으로 날이 많이 쌀쌀해졌다. 아침 산책길에 보니 단풍나무에는 빨간색 단풍잎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벤치위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다. 계절은 진짜 어김없다. 여름이 끝도 없이 계속될 줄 알았는데 어느새 지나갔다. 문득 가을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놀러와 떠들썩했던 여름이 끝나고 조용해진 가을바다 풍경이 꽤나 운치 있을 것 같다.

어디가 좋을까? 지도를 펼쳐 놓고 잠시 고민을 했다. 아들이 어릴 때 주말마다 놀러 다니던 서천 바다가 생각났다. 당시 게 채집에 빠져서 둘이서 전국의 갯벌을 안다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찾아 다녔었다. 그때 처음 간 곳이 이름도 아름다운 서천 월하성갯벌이었다. 아이를 업고 발이 푹푹 빠지며 갯벌을 걸어 다녔던 추억이 떠올랐다. 그래, 서천 바다로 가는 거다!


	마량리 동백나무숲. 수령 500년의 동백나무 80여 그루가 자란다.
마량리 동백나무숲. 수령 500년의 동백나무 80여 그루가 자란다.

	물이 빠진 춘장대 모래갯벌에는 손톱보다 작은 엽낭게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열심히 모래를 먹고 팰릿을 뱉어내 작은 모래공들이 쌓여간다.
물이 빠진 춘장대 모래갯벌에는 손톱보다 작은 엽낭게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열심히 모래를 먹고 팰릿을 뱉어내 작은 모래공들이 쌓여간다.

	신기하게도 가을에 핀 동백꽃
신기하게도 가을에 핀 동백꽃
춘장대에서 백사장 라이딩

출발하면서 오늘의 동선을 짜보았다. 우선 춘장대 해수욕장으로 가는 게 편할 것 같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의외로 한산했다. 여름휴가 시즌도 끝났고 명절 연휴도 지나서 그런가 보다. 가는 내내 차들이 별로 없어 여유롭다.

춘장대 해수욕장에 도착해서 차문을 열자마자 시원한 바다냄새가 바람을 타고 콧속으로 들어온다. 마침 물때가 잘 맞아 아주 멀리까지 물이 빠져 모래사장과 갯벌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이곳은 뻘 앞에 모래사장이 아주 넓다. 혹시 모래사장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지 않을까?

	하얀 풍차가 목가풍을 더해주는 춘장대해수욕장
하얀 풍차가 목가풍을 더해주는 춘장대해수욕장
자전거로 진입해 보니 바닥이 단단해 타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자전거를 타고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천천히 달려보았다. 바닷가에는 가을의 아침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이 몇 명 와 있다. 내가 자전거 타는 모습을 쳐다본다. 어른이 모래사장에서 작은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신기한 모양이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이가 다가와 말을 건다. 네댓 살 정도 됐을까?

“아저씨, 이거 비싸요?”
“아니, 그렇게 비싸지 않아.”
“그럼 3만원이에요?”(이 아이는 물건의 가격이 3만원이라는 것밖에 모르는 것 같다. 음… 이거 뭐라고 말해야 하나?)
“그거보다는 조금 더 비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아이 아빠가 와서 인사를 한다.
“갯벌에서 이런 작은 자전거 타는 분은 처음 봐요.”
“네, 사실 저도 처음 타보는 거예요.”

유쾌한 사람들과 나눈 아침 첫 대화였다. 상쾌한 아침이다.

물이 빠진 모래갯벌에는 손톱보다 작은 엽낭게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열심히 모래를 먹고 팰릿을 뱉어내 작은 모래공들이 쌓여간다. 밀물에 대비해 벌써 굴을 열심히 파는 애들도 있다. 개미만한 애들도 있고 조금 큰 애들도 있다. 그중에 큰 녀석을 발견하고(엽낭게는 아무리 커야 겨우 1cm정도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신기하게도 멈춰 서서 포즈를 취해준다. 예전에는 보기만 해도 도망가기 바빴는데… 사진만 찍고 잡으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아는가보다.

사진을 다 찍고 나니 “그럼 이만! 저도 할일이 있어서요~” 하는 듯 제 갈 길을 바쁘게 간다. 그 녀석 참 재미있다. 가을날 아침바다는 쓸쓸하면서도 정겹다. 슬쓸함과 상쾌한 감정이 섞인 기분이 참 묘하다.

	동백정 아래에서 그림 같은 경치를 보며 시간을 잊었다.
동백정 아래에서 그림 같은 경치를 보며 시간을 잊었다.
가을에 핀 동백꽃

춘장대 해수욕장을 나와 인근의 마량리 동백나무숲으로 향했다. 마량리 동백나무숲은 천연기념물 제169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백나무는 겨울에도 낙엽이 지지 않고 늘 푸르름을 뽐내는 상록수다. 마량리 동백나무숲의 동백꽃은 이른 봄 3월 하순경에 꽃을 피운다. 동백나무숲은 바닷바람을 피할 수 있는 해발 30m 정도의 야트막한 동산의 동쪽 언덕에 있다. 이곳에는 수령 500년의 동백나무 80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동백꽃은 빨간색도 있고 분홍색도 있는데 활짝 피었을 때 보면 그 아름다움이 처연해 몸에 사무칠 정도다. 지금은 철이 지난 가을이라 꽃구경은 기대도 안했다. 비록 꽃은 없지만 무성하고 빤짝이는 동백나무의 이파리들을 관상하며 언덕을 올라갔다. 그런데 언덕위에 있는 동백나무 한 그루에 꽃이 만개해 있는 게 아닌가. 세상에 이럴 수가! 지금 시기에 동백꽃이 핀 것은 처음 본다. 아마도 멀리서 찾아온 손님을 위해 동백나무가 일부러 꽃을 피워준 것 같다.

“지금은 말이죠, 사실은 꽃을 피울 때는 아니에요. 하지만 먼 곳에서 일부러 이렇게 찾아오셨으니 내가 조금만 보여 줄게요”라고 하는 듯이 활짝 피어 있다. 혹시 동백나무들끼리 회의를 해서 자율적으로 순번을 정한 것이 아닐까? “이번에 너는 9월에 피고 너는 10월에 꽃을 피워”라고 말이다. 제철이 아닌 가을에 보는 분홍색 동백꽃이 너무나 아름답다. 동백꽃은 꽃이 질 때 서서히 시들지 않고 꽃송이가 단숨에 떨어진다. 이를 보고 사무치는 애처로움과 슬픔을 느낀다고 한다. 시인들은 아름다운 여인의 절개 같다고 표현한다.

동백나무숲 정상의 전망 좋은 곳에 2층 누각인 동백정이 있다. 동백정에 오르면 파도 하나 없이 잔잔한 서해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앞에 보이는 작은 섬은 오력도라는 무인도다. 바다 풍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동백정에서 바라보는 서해 일몰은 아름답기로 유명해서 일몰사진을 찍으려고 전국에서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아온단다. 동백정 아래 벤치에 앉아 은빛으로 빤짝이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모든 시름이 사라지는 것 같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하고 바다만 바라보고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한참을 쉬다가 마지못해 일어났다.

	동백나무숲 언덕 정상에 있는 동백정
동백나무숲 언덕 정상에 있는 동백정



	동백정에서 바라본 서해와 오력도
동백정에서 바라본 서해와 오력도


	등대가 즐비한 방파제에 포근히 에워싸인 마량포구
등대가 즐비한 방파제에 포근히 에워싸인 마량포구


	마량포구 인근에 있는 성경최초전래공원. 1816년 이곳에 도착한 영국 배가 성경을 전해주었다. 사진은 당시의 영국 배를 복원한 모형
마량포구 인근에 있는 성경최초전래공원. 1816년 이곳에 도착한 영국 배가 성경을 전해주었다. 사진은 당시의 영국 배를 복원한 모형


	마량포구의 노랑등대. 등대에서 보기 드문 색깔이다.
마량포구의 노랑등대. 등대에서 보기 드문 색깔이다.
마량포구 방파제 라이딩

가을날의 작은 포구가 보고 싶어 동백나무숲에서 가까운 마량포구로 향한다. 풍경에 깊이 몰입하고 싶어 자전거를 꺼냈다. 포구에는 작은 고깃배들이 주인 없이 정박해 있고 물결에 흔들흔들 춤을 춘다. 포구 입구에는 방파제가 길게 이어져 있고 방파제 위에는 노란색, 하얀색. 빨간색의 작은 등대들도 있다. 등대까지는 500m 정도인데 차로는 갈 수가 없고 걷기에는 조금 멀다. 이때야말로 자전거가 진가를 발휘한다. 가기도 편할뿐더러 타는 기분도 최고다.

방파제 위를 바닷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나아간다. 마치 내가 영화속 주인공 같은 착각에 빠진다. 방파제 끝에는 노란색 등대가 있다. 멀리서 작은 배 몇 척이 뱃길을 따라 포구를 향해 열심히 들어오고 있다. 배가 묵직하고 의기양양한 모습이 아마 오늘은 고기를 많이 잡은 것 같다. 이곳 마량포구는 서해안인데도 해돋이와 해넘이를 같이 볼 수 있는 곳이다. 한해가 끝나는 12월 31일이면 사람들이 멋진 광경을 보려고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이곳에서 그해의 마지막 해넘이를 보고 한숨 자고 일어나 다음날에는 새해 첫 해돋이를 본다. 해넘이와 해돋이를 한 장소에서 보는 것도 특이한 경험일 것 같다. 올해 말에는 나도 한번 와봐야겠다.

마량포구 옆에는 아담한 규모의 성경최초전래공원이 있다. 200여 년 전인 1816년 9월 4일 영국의 함선 알세스트(Alceste) 호와 리라(Lyra) 호가 이곳 비인현 마량진 앞 갈곶에 도착했다. 두 배는 영국정부가 중국에 파견하는 사신 암허스트를 중국 광동에 내려놓고 대기하는 동안 조선의 서해안 일대를 탐험하면서 해도를 작성하는 중이었다. 이들 배가 마량진에 도착했을 때 마량진 첨사 조대복과 비인현감 이승렬이 조사차 두 배에 승선해서 몇 권의 책과 문서를 받았는데 그 중 한 권이 성경이었다고 한다. 이때 받은 성경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최초의 성경이다. 그 성경이 우리나라 기독교신앙의 씨앗이 되었는지 알려진 것은 없지만 최초로 성경이 전해졌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공원에는 실물 크기의 범선과 판옥선이 전시되어 있다. 공원을 걷다보니 바닥에 십계명을 새긴 비석이 나타났다. 한번 쭉 읽어보고 앞으로 더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장항송림 스카이워크. 공중에서 숲을 내려다볼 수 있다.
장항송림 스카이워크. 공중에서 숲을 내려다볼 수 있다.


	30만평에 달하는 장항송림. 1954년 장항농고 학생들이 방풍림으로 심은 묘목이 이렇게 자랐다.
30만평에 달하는 장항송림. 1954년 장항농고 학생들이 방풍림으로 심은 묘목이 이렇게 자랐다.

	금강하구언. 길이 1841m이며 1991년 완공되었다. 둑위에 자전거도로가 잘 나 있다.
금강하구언. 길이 1841m이며 1991년 완공되었다. 둑위에 자전거도로가 잘 나 있다.
장항송림의 내력

올해는 코로나라는 괴물 때문에 한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매일 두려워하고 걱정하면서 정상적이지 않은 생활을 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여행도 꺼려진다. 여행을 간다 해도 박물관, 전시관 등의 시설에는 들어가기가 어렵다. 문을 닫은 곳이 많고 스스로도 들어가기가 꺼려진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사방이 탁 트이고 공기가 좋은 산과 바다를 많이 찾게 된다.

서천 여행을 생각하면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바로 지금 가는 장항송림이다. 춘장대와 마량포구, 월하성갯벌은 알고 있었지만 장항송림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하긴 2017년에야 시민들에게 개방했으니 이제 3년밖에 안된 신선한 장소인 것이다. 장항송림은 30만평에 걸쳐 조성된 인공 숲이다. 6·25전쟁이 끝난 1년 후인 1954년에 장항농고 학생들이 학교와 주변마을을 바닷바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당시 2년생 소나무 묘묙 1만2,000본을 심었다고 한다. 그 나무들이 이렇게 무럭무럭 자라 70년이 지난 지금 너무나도 중요한 관광자원이 되었다. 게다가 지금 코로나로 지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잘 달래주고 있는 것이다.

그분들은 큰 덕을 쌓았다. 그때 나무를 직접 심은 학생들 중에는 아직도 생존해 계신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분들은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고 숲이 조금씩 조성되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 뿌듯했을까? 집에 돌아가면 나도 근처 산에 가서 나무를 몇 그루 심어야겠다.

안내판에서 그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에 잠겼다. 송림입구에 들어서서 잠시 걷는데 어떤 신사분이 와서 말을 건넨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오셨나요?”
이분은 왜 나에게 이런 것을 묻는 것일까, 속으로 의아했다.
“인터넷에서 알았어요. 제가 숲과 나무를 좋아해서요.”
“네, 그러시군요. 저는 이 숲을 관리하는 소장입니다. 책임자죠.”

숲 입구의 안내판을 찬찬히 읽어보는 나의 행동이 특이했는지 멀리서 보고 일부러 다가와 말을 건넨 것이다.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명함을 교환했다. 소장님의 안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숲을 둘러보았다. 직접 안으로 들어가 걸어본 숲은 아주 컸다. 바닷가 평지의 30만평은 정말 대단한 크기다. 당시 이곳에 한그루 한그루의 어린 나무를 심은 학생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때는 당연히 숲이 아니고 그냥 뙤약볕 아래였을텐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며칠이나 걸렸을까? 전쟁직후라 제대로 된 도구도 음식도 없었을텐데… 생각할수록 고맙다.

스치는 바람과 내 숨소리뿐

천천히 걷는 소나무숲은 정말 좋다. 도시의 소음이 없으니 적막할 정도다. 도시라면 어느 곳이나 있는 공사 소음, 자동차 경적소리, 요즘 특히 많아진 배달 오토바이의 배기음, 구급차의 급박한 사이렌소리, 거기다 비행기 소리까지. 이곳에는 그런 게 하나도 없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솔잎 사이로 부는 시원한 바람소리뿐. 심지어는 내 숨소리가 들릴 정도다. 조용한 게 너무 좋다. 깊숙이 심호흡을 해본다.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소나무 아래에는 맥문동이 무성하게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꽃이 져서 이파리만 무성한데 보라색 꽃이 핀 7, 8월에는 장관이라고 한다. 생각만 해도 멋있을 것 같다. 원래 소나무숲에는 다른 식물들이 잘 자라지 못하는데 맥문동만은 잘 자란다고 한다. 소나무의 기가 워낙 강해서 그런가보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는 그 귀찮은 모기도 없다. 그래서 소나무숲을 치유의 숲이라고 하나보다. 나도 요 며칠간 원인을 알 수 없는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고생했는데 이곳 소나무숲에 다녀오고 갑자기 상태가 좋아졌다. 재채기도 사라지고 콧물도 없어졌다. 글을 쓰는 있는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완전히 나았다. 나을 때가 되어서 나은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곳 소나무숲에서 좋은 영향을 받은 것만은 확실하다.

소장님의 안내로 스카이워크도 보았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들어가지는 못한다. 스카이워크는 나무위로 길이 250m의 공중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아래서 보는 나무와 위에서 보는 나무는 느낌이 또 다를 것이다. 캐나다 밴쿠버에 여행을 갔을 때 그곳 수목원을 가본 적이 있다. 그곳도 나무위로 긴 스카이워크가 설치되어 있어 공중을 걸으며 숲의 기운을 만끽했었다. 이곳의 스카이워크도 그런 느낌일 것 같다. 빨리 코로나가 끝나서 다시 이 길을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

소나무는 사철 푸르른 상록수라 언제든지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여름에는 멋지게 핀 맥문동과 푸르른 소나무의 앙상블을 즐길 수 있고 겨울에는 하얀 눈 위에 우뚝 솟아 푸르름을 뽐내는 멋진 풍경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하며 천천히 걷다보니 바닷가가 나왔다. 함께 걸으며 안내해준 소장님과 나무데크에 기대서서 따뜻한 커피를 한잔 마셨다. 소나무 숲속에서 마시는 커피는 맛이 아주 좋았다. 잠깐 사이에 소나무향이 커피에 녹아들었나 보다. 커피를 마시며 지난 세월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분은 나랑 동갑이었다. 올해 7월에 이곳에 부임했다는데 아주 열심이다. 나무에 대한 지식도 해박하다. 동생분은 내가 다녔던 회사에 지금 부장으로 근무한다고 한다. 이것도 인연인가보다. 친절한 설명을 잘 듣고 굳은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그럼, 건강하세요!”

	강변에 펼쳐진 갈대밭은 10만평이 넘는다.
강변에 펼쳐진 갈대밭은 10만평이 넘는다.



	금강하구에 가까운 신성리갈대밭
금강하구에 가까운 신성리갈대밭
신성리 갈대밭 속으로

서천의 또 다른 명소 신성리 갈대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금강하구언이 멋있어 잠시 들러보았다. 하구언의 왼쪽은 강이고 오른쪽은 바다다. 이렇게 강과 바다가 확연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도 재미있다. 하구언에는 자전거도로가 잘 나 있다. 잘 타는 분들은 서울에서 이곳까지 하루만에도 온다고 한다. 오늘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꽤 있다.

금강하구언에서 차로 20분 정도 가면 신성리 갈대밭이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꽤 많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자전거를 꺼냈다. 제방도로에 올라서니 드넓은 갈대밭이 내려다보인다. 신성리 갈대밭은 금강 하구에 펼쳐져 있는 길이 1.5km, 너비 200m, 면적 10만여 평의 갈대밭으로 규모가 엄청나다. 예전에는 곰개나루터가 있었고 고려말 최초로 화약을 이용해 왜구를 소탕한 진포해전이 있었던 곳이다. 지역적으로 금강 하류에 위치한 까닭에 퇴적물이 쉽게 쌓이고 범람의 우려로 인해 강변 습지에서 농사를 짓지 않아 무성한 갈대밭이 생겨났다. 한국의 4대 갈대밭으로 꼽히는 동시에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갈대 7선에 속한다. 각종 교육기관의 자연학습장은 물론 사진작가들의 촬영장소로 인기가 높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촬영장소로도 유명하다.

이전에는 단순히 무성한 갈대숲이었으나 자연훼손을 막기 위해 전체 갈대밭의 2~3% 정도만 ‘갈대공원'으로 조성해 개방하고 나머지는 보존하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제방도로를 따라 가면서 강변에 길게 펼쳐진 갈대밭을 감상했다. 이제 갈대밭으로 내려가 보았다. 이곳의 갈대는 키가 2m도 넘는 것 같다. 그동안 갈대라고 하면 노랗게 물든 갈대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푸른 갈대밭에 오니 조금 생소하다. 그래도 좋다. 뭐랄까? 쭉쭉 뻗은 녹색의 갈대는 생기가 넘친다고 할까? 힘찬 기운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갈대밭 가운데에는 2층짜리 멋진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 올라가면 갈대밭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갈대는 9월에 자주색 꽃이 핀다. 이 꽃이 시간이 지나면서 노랗거나 갈색으로 변한다. 며칠 전 자전거를 타는데 앞서 가는 사람들이 갈대와 억새가 어떻게 다른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게 생각났다. 억새와 갈대는 모두 벼과 식물이다. 둘을 함께 놓고 보면 구분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억새는 산이나 능선 위에서 자라고 갈대는 반드시 물가에서 자란다. 자라는 장소가 이렇게 아예 다르니 둘을 애써 구분할 필요가 없다. 그래도 조금 다른 점은 억새는 꽃이 한 방향으로 피어있어 바람이 불면 한 방향으로 물결치듯 움직이는데 반해 갈대는 개체마다 방향이 각기 다르고 바람이 불어도 별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바람에는 갈대보다 억새가 더 잘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데 왜 여자의 마음은 억새 같다고 하지 않고 갈대 같다고 했을까? 억새 같다고 하면 어감이 이상해서 그랬을까?

	여정을 마무리하며 바라본 서해의 일몰
여정을 마무리하며 바라본 서해의 일몰
뭔가 다른 서해의 일몰

서해의 일몰을 보러 다시 바닷가로 간다. 저녁에 지는 해는 떨어지는 속도가 워낙에 빨라 멋진 일몰을 오랜 시간 감상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짧은 시간에 멋진 사진을 찍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오늘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멋진 일몰을 볼 수 있었다. 지는 해가 하늘에 비쳐 구름과 바다가 빨갛게 물든 모습은 일품이다. 그렇게 해가 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어둠이 아주 빠르게 내려왔다. 이제 가야겠다.

오늘은 아주 알찬 힐링여행을 했다. 가을바다의 쓸쓸함을 만끽했고 갯벌에서 처음으로 자전거도 타보았다. 마량리의 동백나무숲과 장항의 송림 그리고 넓은 갈대밭도 보았다. 가슴이 탁 트인다. 역시 자연은 참 좋다. 서천에는 이곳 말고도 볼만한 곳이 아주 많다. 특히 가족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너무나도 많다. 오늘 가지는 못했지만 국립생태원도 좋고 장항송림 옆에 있는 해양박물관과 조류생태원 그리고 한산모시기념관 등 아이들에게 유익하고 도움이 될 만한 곳이 굉장히 많다. 서울에서 2시간 거리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나의 여행기를 보고 후배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글을 읽어보니 우리나라에 좋은 곳이 참 많네요. 오히려 발리나 보라카이보다 100배는 좋은 것 같아요.”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나? 아이러니하게 그 지긋지긋한 코로나 사태가 이렇게 숨어있는 진주들을 발견하게 해주었다. 다음에는 또 어디에 숨어있는 진주를 발견할까? 미니밸로 여행은 늘 즐겁다.

	두 바퀴로 다시 찾은, 갯벌의 추억

글·사진
조기중(전 삼성전자 상무)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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