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거진천’… 강태공이 부럽다면 그럴지도

입력 : 2021.09.17 10:00

진천 초평호 일주

살기 좋다는 ‘생거진천’의 풍요는 초평호(옛 미호지)가 일익을 담당한다. 전국 최고의 붕어낚시터로도 알려져 있는 초평호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돌다리인 농다리와 연계해 산책로가 잘 나 있고 한반도지형 전망대가 조성되어 관광지로 각광받는다. 농다리에서 출발해 초평호를 한 바퀴 도는 호반길은 의외로 한적하고 자연스럽다. 한반도지형전망대의 힘든 업힐과 원시적인 임도 다운힐까지 다채로운 경관과 길도 기다린다.

	‘생거진천’… 강태공이 부럽다면 그럴지도
‘살기는 진천이 좋다’는 ‘생거진천(生居鎭川)’은 결국 풍요의 의미다.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거용인(死居龍仁)’과 대구를 이뤄 ‘살기 좋다’는 의미로 지자체가 적극 활용하고 있다.

용인은 서울과 가깝고 산이 많아 서울 사는 사대부들 입장에서 성묘하기에 편한 위치일 것이다. 왕릉이 여기까지는 내려오지 않으니 명당을 선점할 수도 있다. 안성을 사이에 두고 서울에서 한발 물러선 진천은 주요 교통로에서도 벗어나 있어 평민 입장에서는 사대부의 가렴주구와 난리법석을 피하기에 적절하다. 그런 의미라면 ‘생거진천 사거용인’이 그럴 듯해 보인다.

	한반도지형 전망대에서 바라본 초평호. 가운데가 한반도를 닮은 반도지형이고 그
옆으로 초평호가 용틀임처럼 굽이친다. 왼쪽으로 초평댐이 살짝 드러났고 멀리 산
너머로는 진천읍내가 희미하다. 수면에 점점이 떠있는 것은 수상좌대, 작은 사진은
용에 비유한 초평호
한반도지형 전망대에서 바라본 초평호. 가운데가 한반도를 닮은 반도지형이고 그 옆으로 초평호가 용틀임처럼 굽이친다. 왼쪽으로 초평댐이 살짝 드러났고 멀리 산 너머로는 진천읍내가 희미하다. 수면에 점점이 떠있는 것은 수상좌대, 작은 사진은 용에 비유한 초평호

서울의 근 70%에 달하는 면적 407㎢에 고작 8만5천의 인구이니 살기 좋다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지방의 군치고는 드물게 인구가 조금씩 늘고 있으니 ‘생거진천’ 캐치프레이즈가 영 무효한 것만은 아니다.

진천 너른 들에 물을 대서 풍요를 뒷받침하는 저수지는 서쪽은 진천읍의 백곡저수지, 동쪽은 초평면의 초평호다. 금강 지류인 미호천 상류의 저수지라고 해서 한때 ‘미호저수지’로 불리다 초평호로 개명했다. 중부고속도로에서 보이는 전통 돌다리인 ‘농다리’ 뒤편에 숨듯이 있는 산간 호수다.


	18개의 거대한 사이펀 도수관이 부설된 초평댐. 높이 19.4m, 길이 174m로 농업용 콘크리트댐으로는 국내최대다
18개의 거대한 사이펀 도수관이 부설된 초평댐. 높이 19.4m, 길이 174m로 농업용 콘크리트댐으로는 국내최대다


	호반도로에서 바라본 초평호. 폭 200m 남짓으로 좁고, 협곡을 지나 한층 깊고 맑아 보인다. 뒤편 산위의 정자는 농다리 바로 옆의 농암정
호반도로에서 바라본 초평호. 폭 200m 남짓으로 좁고, 협곡을 지나 한층 깊고 맑아 보인다. 뒤편 산위의 정자는 농다리 바로 옆의 농암정
농다리가 하필 여기에

농다리의 위치는 이상하다. 다리 이쪽저쪽에 마을도 없는데 그 옛날 큰 공역이 들어갈 이런 다리를 왜 여기에 만들었을까. 전설에는 고려초에 만들었다고 하며 길이가 93.6m나 된다. 엉성한 징검다리 같지만 물 흐름을 따라 28개의 교각을 유선형으로 설치하고 높이를 낮춰 1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숱한 홍수와 폭우도 유실되지 않은 것이 놀랍다. 노폭은 혼자 겨우 지날 정도로 좁고 28개의 교각은 3~6m로 넓어서 어딘가 지네를 닮기도 했다.

농다리가 왜 여기에 있는지는 초평호가 생기기 전인 옛 지도를 보고 이유를 알았다. 최초의 저수지는 1949년 축조된 구미호제로 인해 생겨났고, 저수용량을 늘리고 현대화하기 위해 1989년 현재의 초평댐을 완공해 만수면적 258ha(약 77만평)의 초평호가 생겨났다. 저수지가 생기기 전, 지금은 수몰된 지역에는 7개의 크고 작은 마을이 있었고 이 마을들에서 진천읍내로 가는 지름길이 바로 농다리였다. 농다리 동편의 작은 산줄기(살고개)만 넘으면 강줄기와 바로 연결되어 마을들을 이어주는 소로와 통했다. 지금은 살고개 일원에 미르숲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산책로와 하늘다리를 통해 근근이 옛길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다.

	해발 175m의 미르전망대 북쪽 조망. 초평호는 오른쪽에 있으나 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고, 중부고속도로 저편으로 진천읍내와 들판이 펼쳐진다
해발 175m의 미르전망대 북쪽 조망. 초평호는 오른쪽에 있으나 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고, 중부고속도로 저편으로 진천읍내와 들판이 펼쳐진다


	길이 93.6m의 농다리. 어딘가 어설퍼 보이지만 1100년의 풍상을 견딘 국내 최고(最古) 최장의 돌다리다. 왼쪽 능선의 살고개를 넘으면 바로 초평호가 펼쳐진다.
오른쪽에 작게 보이는 입간판은 중부고속도로
길이 93.6m의 농다리. 어딘가 어설퍼 보이지만 1100년의 풍상을 견딘 국내 최고(最古) 최장의 돌다리다. 왼쪽 능선의 살고개를 넘으면 바로 초평호가 펼쳐진다. 오른쪽에 작게 보이는 입간판은 중부고속도로
오래된 고을, 진천

진천읍내 가는 길목에 농다리가 있다는 것은 1000년 전에도 진천읍이 일대의 중심지였다는 뜻이 된다. 이는 사실이다. 그보다 훨씬 전인 6세기 중엽 신라는 고구려 영역이던 이 땅을 차지하고 만노군(萬弩郡)을 설치했다. 당시의 치소(관청)는 읍내 서편에 있는 도당산성으로 추정된다. 백제와의 최전선이던 이곳에는 신라에 투항한 가야 왕족인 김서현을 태수로 보내 지키게 했는데, 그는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다. 김유신은 여기서 태어나 자랐고 그의 탄생지와 태를 묻은 태실이 상계리에 남아 있다. 우스개지만, 김유신은 우리 생각과 달리 경상도 사투리가 아니라 충청도 사투리를 썼을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6세기부터 진천읍은 일대의 중심지였으니 읍내로 향하는 최단거리 길목에 농다리가 들어선 것은 당연했다.

이제 농다리를 출발해 반시계방향으로 초평호를 일주한다. 길이 있다 없다 해서 꾸준한 호반길은 아니고, 전망대를 보기 위해 2곳의 산도 올라야 한다.

	초평호를 건너는 하늘다리. 길이 93m의 현수교로 절벽 산책로를 통해 농다리까지 이어진다(라이딩 불가)
초평호를 건너는 하늘다리. 길이 93m의 현수교로 절벽 산책로를 통해 농다리까지 이어진다(라이딩 불가)


	한반도지형 전망대에서 북쪽으로 내려가는 임도는 잡초에 많이 묻혀 원시적인 분위기마저 준다
한반도지형 전망대에서 북쪽으로 내려가는 임도는 잡초에 많이 묻혀 원시적인 분위기마저 준다
기묘한 용틀임

농다리를 출발해 미호천을 따라 남쪽으로 향한다. 통행이 적은 농로여서 곧 끊어질 듯 위태롭고 잡초가 무성하지만 그럭저럭 돌파할 수 있다. 바로 옆으로는 중부고속도가 지나서 자동차굉음이 요란하다.

초평교로 미호천을 건너 고속도로 아래를 지나면 왼쪽으로 미르숲 방면 임도가 나 있다. 미르숲 저지대는 농다리 관광객이나 산책객 등 보행자가 많아 라이딩이 어려워 산꼭대기에 있는 미르전망대만 보고 가기로 한다.

용(龍)의 순우리말인 ‘미르’ 이름을 붙인데는 이유가 있다. 하늘에서 보면 초평호가 꼭 용틀임처럼 극심하게 구비치기 때문이다.

미르전망대는 해발 175m의 산정에 있는데 이 업힐이 만만치가 않다. 특히 마지막 150m는 아주 가팔라서 eMTB로도 혼신의 힘을 짜내야 한다. 기대와는 달리 초평호는 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고 북쪽으로 진천읍내 방면만 여름 습기에 어슴푸레하다.

임도를 되돌아나와 초평천을 따라가면 거대한 도수관이 도열한 초평댐이 나타난다. 높이 19.4m, 길이 174m의 작은 댐으로 초평호 같은 거대 저수지를 만들어냈으니 대단히 효율적인 입지다. 18개의 도수관은 각각이 지름 3m의 대형으로 사이펀의 원리를 이용해 일정 수위를 넘을 경우 자연스럽게 물이 흘러넘치도록 한 장치다. 농업용 저수지로는 국내최대의 콘크리트댐이라고 한다.

	‘생거진천’… 강태공이 부럽다면 그럴지도

한반도지형 전망대

협곡을 따라 형성된 호수는 폭 200m 전후로 좁고 지형이 복잡해 전모를 알기 어렵다. 북쪽을 향해 긴 반도를 이룬 청소년수련원 방면으로 접어들면 호반이 한층 가까이 다가선다. 수련원 북단에는 현수교 출렁다리인 하늘다리가 연결되어 있어서 농다리 방면으로 갈 수 있다(라디딩 불가).

호수의 남단인 화산리는 ‘붕어마을’로 불릴 정도로 붕어낚시가 유명하다. 호수에는 수많은 수상좌대가 떠있고 붕어요리 식당도 여럿 성업중이다. 마을 뒷산 높직한 곳에는 한반도지형 전망대가 보인다. ‘초평붕어마을’ 표지석 옆으로 진입해 34번 국도 아래를 통과하면 본격적인 업힐이 시작된다. 길은 아스팔트로 포장되었지만 전망대 주차장이 해발 315m이고 업힐 거리도 2.1km나 되는 난구간이다. 이 폭염에 eMTB가 아니라면 엄두를 못 낼 곳이다.

나선형의 전망대는 최상층이 해발 340m 정도 된다. 이 산줄기는 증평읍 북쪽에 솟아 증평의 진산으로 불리는 두타산(598m)의 서쪽 가지능선에 해당하지만 두타산 최고봉과 전망대 일원은 진천에 속한다. 진천 두타산 혹은 증평 두타산 논란이 있는데, 지세는 증평읍의 주산격이 맞고, 최고봉은 진천에 속하니 애매하긴 하다.

가늘고 긴 산줄기는 위에서 보면 어떤 식으로든 한반도와 엮을 수 있어 전국적으로 이런 곳이 많다. 이 곳 역시 특별하지는 않으나 남한 부분은 꽤 닮았다. 호수는 과연, 용이 승천을 준비하듯 온 몸을 서린 모습이다. 한반도를 등에 업고 두타산 어딘가에 숨은 여의주를 찾아 승천하는 형상이란다. 그냥 재미로 이해하자. 역시 이곳에서도 호수면에 점점이 떠 있는 수상좌대가 특이하다. 전국적으로 이렇게 많은 수상좌대를 본 적이 없다. 용의 뱃속에 있는 붕어를 모조리 잡아 올릴 셈인가.


	‘생거진천’… 강태공이 부럽다면 그럴지도
숲길 다운힐 후에는 살가운 전원풍경

전망대에서 300m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임도가 시작된다. 호반의 사산마을까지 3km의 다운힐인데 관리를 하지 않아 잡초가 길을 뒤덮고 노면이 거칠어 원시적인 느낌을 준다.
     
이제 도로를 따라 호수 북쪽을 돌아간다. 용정리 지전마을에서는 호수가 아니라 초평천으로 이름도 규모도 졸아들어 있다. 초평농공단지를 거쳐 다시 미호천 방면으로 가는 도중에 ‘태화4년명 마애불입상’이 길가에 있다. ‘태화(泰和) 4년’은 백제왕이 왜왕에게 하사한 칠지도의 명문에도 나와서 혹시나 관련이 있을까 보았더니 시대가 영 다르다. 칠지도는 백제 전지왕 때인 408년으로 추정되고, 여기 마애불의 태화(太和) 4년은 통일신라기인 830년이다. 마애불과 명문은 육안으로 알아보기 힘들 만큼 마모되었다. 야트막한 고갯길에 자리한 마애불상의 입지 역시 당시에는 초평호 상류 산악지대에서 진천읍내로 통하는 길목이어서 행인을 보호하고 치성을 드리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마애불상을 지나 다운힐 하면 곧 미호천이 나오고 진천들판이 펼쳐진다. 미호천변의 둑길을 따라 3km여 가면 출발지인 농다리다.

코스는 겨우 29km, 그런데 생각할수록 희한하다. 농다리와 마애불상에서 보듯 신라 때부터 중시된 교통의 요지였고, 수더분해 보이는 산줄기 저편에는 거대한 용이 웅크리고 있다. 이번호 ‘잡학 천방지축’에서 필자 김종성 씨는 용의 유래를 바다악어로 고증하고 있는데, 남중국해의 바다악어가 여기 진천 땅까지 자리잡았으니 전설의 생명력이 대단하다.

강태공의 여유를 동경한다면, ‘생거진천’은 여전히 설득력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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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코스 도중에는 붕어마을 인근에만 식당과 편의점이 있다. 붕어마을에 있는 송애집(초평로 1061-5, 043-532-6228)은 붕어찜으로 알려져 있다(1인분 소 1만3000원). 농다리를 건너 미르숲으로 바로 진입하는 것은 보행자가 많이 자전거 출입이 제한된다. 미르전망대를 보려면 코스처럼 초평댐 근처에서 임도를 거쳐 올라야 한다. 한반도지형 전망대에서 내려올 때는 상황에 따라 임도와 도로 중 택하면 된다. 농다리 입에 무료주차장과 화장실이 있다.

※ 코스의 GPX 파일은 책 발행후 본지 네이버 밴드에서 다운로드 가능

글·사진 김병훈(본지 발행인)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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