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판 자전거는 왜 99%가 수입품일까

정병선 기자 bschung@chosun.com 이

입력 : 2009.08.01 03:34 | 수정 : 2009.08.01 15:55

국내업체 중국서 생산, 역수출 탓
중고가 첨단제품 생산해야 승산

정부가 '저(低) 탄소 녹색성장'의 핵심 아이콘으로 자전거를 꼽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서 시판되는 자전거의 99%가 수입품이다. 일례로 국내 대표적인 자전거 생산업체인 삼천리자전거의 국산화 부품비율이 10%대 미만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자전거 완제품 및 부품 수입은 2억 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완제품 규모가 1억5040만 달러, 중국과 대만에서 들여온 부품 수입이 6031만 달러였다.

자전거 부품은 완전 분해 시 볼트를 포함해 450~500개, 부분 분해를 하면 핸들 등 40~50개 부품으로 구분된다. 국내 부품업체들이 손에 꼽을 만큼이라 국산화 비율이 형편없는 것도 당연하다.

2007년 국내 생산 자전거는 고작 2만대였다. 그 해 국내서 판매된 자전거는 239만9000대였는데 중국산이 94.8%(184만대), 대만 4.4%, 미국 0.3%, 일본 0.2% 순이었다. 국산은 1%가 채 안 됐다.

광양제철 중고생들이 등·하교용으로 타고 다니는 자전거들이 운동장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 조선일보 DB
광양제철 중고생들이 등·하교용으로 타고 다니는 자전거들이 운동장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 조선일보 DB
올 4월까지 수입된 자전거는 58만1000대다. 삼천리자전거의 올 1분기 매출액은 168억원이다. 하지만 수입제품을 통한 매출이 무려 95%다. 이 회사의 연구개발 비용은 매출액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삼천리자전거를 비롯 참좋은레져, 알톤스포츠 등 국내 자전거를 출시해 판매하고 있는 업체의 제품과 부품은 중국과 대만산이 절대적이다. 국내 시판 제품의 99%가 수입, 이중 95%는 중국산이라는 사실이 이를 반영한다.

국내 자전거업체들이 생산기지를 중국으로 옮겨 현지 생산 제품을 국내로 역수출한 것도 이유다. 1944년 설립한 삼천리자전거도 IMF이후 국내자전거 생산공장을 폐쇄하고 중국에서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생산, 국내에 들여와 판매하고 있다.

결국 우리 업체들은 자전거를 많이 팔면 팔수록 기업의 이익은 가져올지 몰라도 중국과 대만의 회사들과 부품업체들에게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가고 있다. 우리 업체들은 자전거 헛바퀴만 돌리고 있는 셈이다.

삼천리자전거 관계자는 "자전거의 국산화율에 대한 논란은 최근 날카로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생산회사들이 중국으로 이전한 상태에서 국내 부품업체들이 존재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구조"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1965년 기아산업이 2000대의 자전거 첫 수출을 시작했으며, 1988년 연간 1억 달러의 수출을 달성하기도 했다. 1980년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치르며 연간 100만대 생산능력을 갖추기도 했지만 1990년대 외환위기로 부품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세계 자전거 시장규모는 550억 달러 규모이며 국내 자전거 시장 연평균 성장률도 10% 이상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급속한 자전거 수요 증가도 우리 업체가 국산 제품을 생산하지 않거나 부품을 국산화하지 않으면 경쟁력 제고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부는 지난 5월 자전거 부품 국산화 지원을 위해 60억원의 추경예산을 편성하는 등 자전거 산업 육성책을 발표했다. 지난달 삼천리자전거는 400억원을 투자해 경기도 의왕에 연간 10만대 생산 규모를 갖춘 공장 기공식을 가졌다.

이 회사는 부품의 국산화율을 5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수년 내 자전거 산업이 활성화될지 여부에 대해서는 누구도 쉽게 장담하지 못한다. 인건비와 부품비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정부의 주도적인 정책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내생산과 부품 국산화는 수년 내 가능할지 모르지만 브랜드 가치 구축에는 수년이 걸릴 것"이라며 "지금 자전거 산업은 도화지에다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말한다.

자전거 업체가 국내 생산을 재개하더라도 임금과 부품가격 경쟁력에서 중국산에 밀리면 끝장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때문에 10만~20만원대 중저가보다는 50만원 안팎의 중고가 제품이나 전기모터를 장착한 첨단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중심으로 생산해야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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