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의 샹그릴라’ 히스파르패스와 데오사이평원 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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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스파르패스를 넘기 전 ‘눈의 바다’를 스키로 이동하는 대원들. 77㎢ 넓이에 두께가 1.5km에 이르는 광대한 빙하다. 맨앞이 필자인 박정헌 대장.
카라코룸의 비아포빙하와 히스파르빙하는 오랜 세월 동안 마음의 샹그릴라로 자리하고 있었다. 하늘을 찌르는 돌기둥들 라톡산군, 바인타산군은 등반가들에게 매혹적인 산이기 때문이다.
3년 전 첫 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횡단에서 나는 힌두쿠시에서 치트랄산맥을 넘어 훈자에 도착했다. 이어서 히스파르빙하를 따라 카라코룸산맥으로 접근하려 했지만 도로 유실과 히스파르 사람들의 반대로 결국 후세계곡에서 카라코룸산맥으로 접근했다.
그래서 이번 두 번째 횡단에서는 들머리를 아스콜리마을로 잡고 비아포빙하를 거슬러 오르다가 스노레이크를 스키로 횡단해 히스파빙하로 하산한 다음, 실크로드를 따라 티베트로 접근하기로 했다.
이번 히말라야 횡단은 지난번 패러글라이딩 원정 때 하늘에서 내려다본 산길과 강줄기를 따라 바이크 라이딩, 카야킹, 스킹, 패러글라이딩, 트레킹으로 중간산간 히말라야와 강을 탐험하는 여정이다.
우선 카라코룸산맥을 지나 ‘야생화의 정원’으로 알려진 데오사이고원을 가로질러 히말라야의 시발점인 낭가파르바트(8,125m)로 접근한다. 이어 카라코룸 북면인 티베트 219번 도로를 따라 세상의 중심이라 말하는 카일라스까지 자전거로 달리면서 고행과 수행을 반복하고, 티베트고원에서 흘러내리는 무스탕계곡의 물줄기를 따라 간리간다키강과 트리슐리강을 건너 카트만두에서 접근한 다음 순쿠시강을 타고 카약으로 시킴까지 흘러들어 캉첸중가(8,586m) 기슭에서 두 번째 히말라야 횡단을 끝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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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아포빙하를 운행하는 대원들. 폭이 2~3km에 이르는 거대한 빙하는 얼음바닥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곳곳에 크레바스가 벌어져 있어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아스콜리 주민들에게 신발 300족 선물로 탐사 시작
원정대는 지프차로 스카르두에서 아스콜리마을로 접근한 다음 ‘눈의 바다’라 불리는 스노레이크(Snow Lake) 스키 횡단을 첫 목표로 잡았다. 아스콜리 마을에 도착해 한국에서 준비한 300족의 등산화와 신발을 나누어 주기 위해 마을 사람들과 포터들에게 다음날 아침 7시에 캠핑장에 집결하라고 알렸다. 캠핑장은 생각보다 분주했다. 중국인 트레커들이 이미 자리를 잡아 조금 소란한 상태였다.
다음날 아침 원정대는 신발 박스들을 캠핑장 가운데 두고 포터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집결 시간이 가까워 왔지만 우리 원정대가 고용한 포터 외에 마을 포터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아스콜리마을의 가난한 포터 명단을 작성해 신발을 지급하기로 한 상태였기에 걱정할 게 없었다.
그러나 7시 정각이 되자 아스콜리 주민들과 주변 마을의 포터들까지 모여들어 도저히 정상적인 방법으로 신발을 나누어 줄 수 없었다. 급기야 경찰이 동원되어 사태를 진정시켜 보지만 경찰관이 휘두르는 몽둥이보다 이들에게는 빙하 위에서 발의 자유를 얻는 일이 우선인지라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고 결국 몇 분 만에 박스는 공중분해되어 신발은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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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히스파르패스. 해발 5,151m 높이의 고갯마루지만 설원처럼 널찍하다. 2 침봉이 도열한 비아포빙하에서 잠시 쉬고 있는 대원들.
신발 문제로 출발이 생각보다 지연되어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5번째 이 황량한 발토로빙하를 걷고 있다. SBS 촬영팀 박준우 PD는 “형은 왜 이곳이 5번째나 되냐?”고 물으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박 PD가 경험한 네팔의 트레킹 환경과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박 PD는 베링해 원정과 고 고미영 대장의 ‘마지막 선물’ 등 다양한 탐험과 등반 다큐를 제작했고, 얼마 전 필자와 함께 드라마다큐 ‘촐라체, 하얀 블랙홀’을 제작했다. 이번 원정은 히말라야에서 처음으로 안재민 촬영감독과 4K(울트라HD)로 3편의 다큐를 만들고 있다.
2일 차. 넓은 얼음 위를 걷기 시작했다. 네팔은 대부분 해발 4,500m 정도까지 빙하가 내려오지만 여기는 3,500m까지 내려와 생각보다 트레킹이 힘들다. 파키스탄의 빙하가 히말라야 전체 빙하의 40% 정도를 차지한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빙하들이 있는지 이해가 간다. 특히 가장 긴 히스파르빙하는 150km 정도로 끝이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캠핑장은 빙하 위가 아닌 산의 언덕 밑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캠핑하려면 빙하를 건너 산 밑으로 들어서야 한다. 그런데 샤퐁으로 향하는 빙하 위에서 가이드가 길을 잃는 바람에 앞서간 포터들과 박 PD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극심한 탈진과 추위로 조난 상태가 되고 말았다. 비박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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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생물이라곤 단 하나도 살 수 없을 만큼 척박하고 거친 분위기의 히스파르빙하에 설치한 캠프. 2 샹그릴라를 찾아 달린다.
완전한 어둠이 내린 9시쯤 산 위에서 불빛이 반짝인다. 와우~, 일행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포터들은 사방으로 우리를 찾아다녔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캠프지를 너무 멀리 생각하고 간 것이다. 이날 가이드는 모든 신용을 잃고 말았다. 모두들 그동안 살아온 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고 태어나서 가장 많이 걸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나 안전한 귀환은 모든 생각들을 잠재운다.
날씨 따라 수없이 많은 옷을 갈아입는 ‘눈의 바다’
아스콜리 출발 6일차, 우리는 칼포라(Kalfora)에서 눈의 바다를 향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날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해 포터들은 안자일렌 상태인데도 크레바스가 두려워 빙하 위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가끔 눈이 멈추면 다시 길을 잡았고 우리는 스키를 이용해 먼저 나아갈 수 있었다. 눈의 바다는 정말 태평양처럼 끝없는 대양이었다. 착시현상으로 사물이 가까이 보였지만 실제로는 아주 먼 거리었다.
해발 4,800m 고도의 캠프지에 도착하니 모두들 혼비백산이다. 카메라도 몸뚱이도 내 것이 아닌 양 뒹굴고 있다. 오랫동안 꿈꿔온 눈의 바다는 정말 끝없는 수평선을 만들고 우리의 캠프지는 혹성에 착륙한 우주선처럼 작은 존재로 인식되었다. 처음으로 히말라야의 만년설을 접하는 대원들과 촬영진은 모두 초주검이 되었지만 이 긴 빙하의 바다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 모두 들떴다.
눈의 바다는 변화하는 날씨에 따라 수없이 많은 옷을 갈아입으며 때로는 폭풍처럼 때로는 지중해의 조용한 바다처럼 짧은 기간에 자신의 모습을 우리에게 모두 보여 주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다행히 원정대는 포터들의 배려로 무려 3일간 눈의 바다에 머물면서 변화를 관찰하고 주변 봉우리에서 헬리 스키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일정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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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광활한 데오사이 평원을 가로지르는 대원들. 1993년 3,630㎢ 넓이의 고원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고산식물, 히말라야 갈색곰, 눈표범, 인도 늑대, 히말라야 아이벡스, 골든 마모트들이 산다고 한다. 2 데오사이평원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냇물을 따라 라이딩한다.
스노레이크를 출발하는 아침도 눈이 내려 포터들은 출발하지 못하고 눈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스노레이크 정상부가 나타나자 “파키스탄 진다발!(파키스탄의 승리)”을 외치며 한 동의 로프에 의지해 정상을 향해 갔고 나는 정상 중단부에서 박상현 대원과 스키 활강에 나섰다. 정상부 눈의 언덕에서 생 라면을 점심으로 하고 스키로 활강을 시작했지만 습설의 눈은 걷기보다 힘들었다. 간간이 경사가 심해지면 야호를 외치고 스피드를 즐기면서 만년설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원정대는 하산 4일 만에 히스파르마을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미 8월은 빙하가 녹는 시기라서 주트말을 출발해 비트말 전에 빙하와 산사면 사이가 녹아 하마터면 빙하를 빠져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뻔했지만 다행히 길을 찾아 히스파르마을에 무사히 내려섰다. 콜라와 음료를 팔러 나온 마을 꼬마들이 천사처럼 느껴졌다.
히스파르에서 훈자로 오는 길은 더욱 험난했다. 무려 100m 이상 길이 유실되어 지프가 갈 수 없었고 포터들은 이 구간에서 짐을 날라야 했다. 참 대단한 포터들이다. 이들에게 불가능한 길은 없는 듯했다. 삶의 길도 그러하길 바란다. 인샬라.
고통 없는 생각은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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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키스탄 히말라야는 어느 곳을 가든 밤이 되면 밤하늘에서는 별잔치가 벌어졌다. 그 별을 바라보노라면 한낮의 험난함은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데오사이 자전거 횡단은 스노레이크와 다른 느낌을 주었다. 신선한 바람과 목가적인 풍경은 모두를 즐겁게 했다. 박상현 대원은 “태어나 가장 아름다운 풍광이 스노레이크였다면, 두 번째로 아름다운 곳이 이곳 데오사이고원”이라며 대지를 향해 페달을 밟아 댔다.
50km의 능선에서는 붉고 노란 꽃을 피운 야생화들이 언제나 지친 마음을 위로했고 광활한 고원은 공허한 마음에 에너지를 가득 채워 주었다. 스카르두로 향하는 30km의 내리막은 그동안의 모든 고통을 잠재운 마약 같은 처방제다.
나는 오래도록 ‘나는 무엇을 찾아 떠돌고 있나?’ 자문해 왔다. 그 답을 파키스탄에서 찾았다. 바로 ‘마음의 샹그릴라’를 찾아 여기 온 것이다. 스노레이크와 데오사이평원은 내가 찾은 파키스탄 최고의 샹그릴라였다. 이제 다음 샹그릴라를 찾아 티베트로 향한다. 고통 없는 생각은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고통은 톡톡히 그 값을 한다. 이 말 뜻을 샹그릴라에서 찾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