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없는 충북의 바다 충주호

바이크조선

입력 : 2014.10.15 13:16

바다가 없는 충북의 바다 충주호

거침없던 한강이 단양에서부턴 주춤거린다. 바다를 갈망하는 충청북도가 한강의 허리를 잘라 갖게 된 바다 같은 호수 충주호, 강물은 차례를 기다린다. 단양에서 충주는 물길로만도 100리가 훌쩍 넘는다. 길은 온통 수몰의 흔적과 물을 피해 다시 똬리를 튼 산촌들 곁을 멀미나게 넘나든다. “월악산 영봉이 물그림자로 비치면 태평성대가 오리라”던 전설은 현실이 되었고, 우리네 삶은 어쩌니 저쩌니 해도 이만큼 살게 되지 않았는가. 영험하기도한 조상님전에 다시 한 번 엎드린다

충주호의 느긋한 산허리 길도 그 수명을 다할 날이 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간다
충주호의 느긋한 산허리 길도 그 수명을 다할 날이 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간다
바다가 없는 충북의 바다 충주호

휴가철의 단양은 차를 타고서는 긴 꼬리를 물고 서 있어야 어디로든 갈 수 있다. 물론 고속도로나 우회국도로 휘익 지난다면 어디가 단양인지 이정표를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그저 강과 절벽 그리고 수풀 사이로 멀찌감치 내려다보이는 마을들의 조감이 전부인 듯 느껴진다. 충주댐이 건설되고 원래 단성면 상방, 하방, 북하리 일대에 있던 단양읍이 온통 밤나무 밭이던 상진리, 도전리 일대 32만평의 언덕배기로 새로 이주한 것이 1985년이다.


구단양, 신단양도 옛 이름 되어

단양은 물의 고장이다. 수려한 자연 덕에 늘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단양은 물의 고장이다. 수려한 자연 덕에 늘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삶이 바뀌었다. 그 시대에 시골 소읍에서 2500세대가 이주하면서 수세식변소와 상수도가 들어선 신도시가 건설된 셈이니 수몰의 안타까움은 새 삶의 기대와 범벅이 되었음직하다. 여정에서 수몰의 이야기와 그 편린들은 넘치고 넘칠 테니 접어두고 서둘러 길을 떠난다.

단양관광호텔과 상진대교를 끼고 접어드는 강섶 길은 옛 철도의 노반이자 흔적이다. 충주댐까지 엄밀해 말해 강둑은 어디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강물을 발아래 보면서 산허리에 걸린 길이니 오히려 산길이 맞다. 읍내가 통째로 이주하는데 철길이라고 제자리에 앉아있을 도리가 있었겠는가. 매포터널을 비롯한 두 개 터널은 아예 입구에서 신호를 자동검지하게 되어있다. 더러 시원찮은 터널은 잡초 우거진 폐광처럼 입을 벌리고 있고, 수양개 나루쯤에는 교각 하나가 서있어 옛 철길의 흔적을 말해 준다. 가을 양광이 따갑게 느껴져도 이끼터널에 들어서니 그 삽상한 바람은 아무데서나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다. 수양개마을 사람들이 물속에 잠기는 고향집의 위치를 오석에다 새겨 길섶에 세워 두었다. ‘이타관, 차봉근, 김중년, 주문상, 곽은종….’ 각성바지 들이 사이좋게 살았던 강나루 수양개는 서낭당 느티나무 두 그루와 함께 용궁의 영토가 되었으니 얼마나 그리우랴. 차량통행도 뜸한 길은 바퀴를 굴리는 무료함에 미리 읽어둔 단양의 옛이야기를 상상해 볼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옛 중앙선 철로의 흔적인 이끼터널은 사진촬영의 명소다<b>(왼쪽)</b> / 수몰로 고향이 사라진 수양개마을 사람들은 집의 위치를 비석으로나마 새겨 위로받는다<b>(오른쪽)</b>
옛 중앙선 철로의 흔적인 이끼터널은 사진촬영의 명소다(왼쪽) / 수몰로 고향이 사라진 수양개마을 사람들은 집의 위치를 비석으로나마 새겨 위로받는다(오른쪽)

단양이라는 이름의 원적은 단성이니 군청이 단성에 소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물 한 방울 흘러넘칠 데 없는 골짜기 한강의 물은 몇 년 만에 반복을 거듭하는 홍수에 시달렸다. 단성면 하방리에 있던 군청은 1972년 대홍수를 맞고 상방리로 고도를 높여 이사했지만 신단양 건설로 다시 이사를 해야 했다. “충주댐이 건설되면 도담삼봉 허리까지 물이 찬다.”는 말이 떠돌았지만 그건 장마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와서 보면 댐 수몰이 아니더라도 철도든 고속도로든 쌩쌩 달릴 수 있도록 까마득한 하늘에 교각으로 떠받치고 건설하는 터이니 신단양으로 이사한 것은 백번 잘한 일이다. 그나마 세월이 흐른 탓일까 신단양이란 이름은 어느새 그냥 단양이 되고 말았다. 새신랑이 어느새 주름진 중년이 되어 버리듯.


신라와 고구려의 싸움터

큰 강과 천길 벼랑이 곳곳에 있으니 단양이 천연의 요새였음은 당연하다. <단양신라적성비>라면 몰라도 국보(198호)라니 눈이 번쩍 뜨인다. 단양대교에서 올려다 보이는 곳, 좀 더 쉽게 말하면 중앙고속도로 단양상휴게소 뒤편에 있다. 1978년 단국대 학술조사팀이 발견했으니 그때까지는 등산객들이 쉬어가면서도 몰랐던 보배다. 신라 진흥왕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척경비다. 전체 430자 중 284자만 판독 가능하나 억지로 유추해도 305자에 그친다. 새로 이 지역을 개척한 지역유공자의 공적을 기리고 신라에 충성할 경우 포상하겠다는 선언비인 셈이다. 자전거 여행은 온전히 육신을 놀려야 하니 샛길로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 경우는 다음을 기약하자는 스스로의 유혹에 약하다는 게 맹점이다. 나 또한 거기는 전기자전거 시대의 먹거리로 남겨 놓고 지나친다.

적성대교는 한가해 차들의 위협을 피해 자전거여행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b>(왼쪽)</b> / 옥순대교를 건너면 금수산 연봉과 충주호의 경치에 지루할 틈이 없다<b>(오른쪽)</b>
적성대교는 한가해 차들의 위협을 피해 자전거여행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왼쪽) / 옥순대교를 건너면 금수산 연봉과 충주호의 경치에 지루할 틈이 없다(오른쪽)

단성면 소재지를 지나면 꼼짝없이 충주로 가는 36번국도 신세를 질 수 밖에 없다. 중방리 쑥고개와 외중방의 제비봉 비탈로 난 언덕을 오르는 제법 뻐근한 코스가 장회나루까지 이어진다. 자전거를 깔보는 자동차의 오만도 참고 견뎌야하니 제대로 산천 구경하는 건 접어두고 다리근육에 정신을 집중할 일이다.


충주호 유람의 종점, 장회나루

충주댐에서 출발하면 장회나루가 물길의 종점이다. 원래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신단양을 만들면서 유람선의 종점도 당연히 신단양이었다. 그러나 들쭉날쭉한 물 사정은 물이 풍부할 때를 빼고는 장회나루까지만 물길을 허락했다. 한때 단양-충주댐-월악산-수안보-화양계곡-속리산-대청댐-대전을 연결하는 충청내륙의 거대한 관광벨트 청사진 아래 신단양 사람들도 들떴으나 그건 기대일 뿐이었다. 소양호의 경우도 군축령 아래 인제선착장까지는 못가는 날이 더 많았고 신남선착장이 종점이 되고 말았던 것과도 흡사하다. 더구나 외중방리에 건설되고 있는 단양수중보 건설로 이제 단양읍내로 유람선이 들어올 일은 더더욱 없어졌다.

단풍철의 구담봉과 옥순봉은 충주호반의 풍광 중 압권이다
단풍철의 구담봉과 옥순봉은 충주호반의 풍광 중 압권이다

장회나루는 천혜의 풍광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단양8경에 들어가는 구담봉(367m), 옥순봉(283m)이 받쳐준다. 유람선에 오른 관광객들은 거대한 기암절벽을 치켜다 보느라 고개가 아프다. 원대리에서 옥순대교로 건너는 이정표는 이제 다소 느긋한 강섶 길로 안내한다. 무엇보다 고만고만하게 유순한 길을 한동안 달려갈 수 있어 기쁘다. 홍시빛 트러스트교인 옥순대교는 암록의 물빛을 배경으로 더욱 빛난다. 충주호의 타는 가을 단풍이 코 앞으로 다가온다. 그 절경의 절정에 바로 옥순봉 풍광이 있다. 조선조 선조 때 이지번이라는 사람이 삭도를 설치하여 가마를 이동하였다는 얘기가 전설치고는 꽤 구체적으로 전해 내려온다. 아닌 게 아니라 옥순봉에서 건너편으로 가로질러 케이블카를 설치한다면 이번에는 아름다운 계곡의 물빛을 내려다보느라 코가 빠져도 모를 지경이겠다.

상천리 친환경 민속마을을 지나면 능강계곡 언저리에 능강솟대문화공간과 ES리조트가 잇달아 나타난다. 저마다 제몫을 하겠지만 금수산(1015m) 신선봉, 미인봉 아래 매달린 듯 자리 잡은 정방사는 충주호와 월악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빼어난 경치에 부처님도, 스님도 도를 닦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지경이다.

능강솟대문화공간은 여행자들에게 사랑받는 열린 쉼터이다
능강솟대문화공간은 여행자들에게 사랑받는 열린 쉼터이다
충주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절경의 정방사. 주지스님은 참배객들 사진을 손수 찍어주며 스스럼없이 대한다(2012년 촬영)
충주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절경의 정방사. 주지스님은 참배객들 사진을 손수 찍어주며 스스럼없이 대한다(2012년 촬영)

절집에서는 같은 스승을 모신 승려들을 도반(道伴)이라 부른다. 함께 구도의 길을 가는 동반자란 뜻이니 깊고도 깊은 뜻이다. 높다랗게 하늘가에 걸려 있는 절 얘기를 하는 것은 정방사 주지 상인스님이 어디 도반에야 비할까마는 세속의 인연으로 나와 30년이 넘는 우정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 서른도 안 된 그때, 김포로 가는 시외버스 뒷좌석에서 만나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나는 김포경찰서 경비과장, 그는 북녘 땅이 보이는 문수사 재무스님이었다. 김포에서 자신의 생가를 어린이 공부방으로 만들어 호기 있게 활동하던 한 친구(지금도 시민운동가로 활동)와 신부님, 목사님들이 의기투합하여 함께 종교의 벽을 넘어 교우했다. 1982년 겨울 크리스마스에는 교회에 나가 상인스님이 합장예불을 하며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설법을 하였으니 스님이나 목사님이나 정말 일찍 깨이신 분들이었다. 그 상인스님을 충주호 여정에 함께 하자고 불러냈다.


청풍명월의 원조, 청풍면

충주댐 건설로 5개면 61개 마을이 수몰되며 가장 유서 깊은 마을 청풍이 물에 잠겼다. ‘청풍명월의 고장, 충청도’의 판권이 있다면 바로 청풍의 몫이다. 1978년 충주다목적댐 공사가 시작되자 청풍부의 흔적을 이대로 수장시킬 수 없다는 판단은 옳았다. 청풍면 물태리 망월산성 아래에 문화재 이주단지를 서둘러 건설했다. 보물, 지방유형문화재, 미지정문화재 등 53점이 모였고, 생활유물 1900여점이 이 단지의 생명을 불어 넣었다.

청풍문화재단지 뒤로는 망월산성과 청풍호가 그림같이 펼쳐진다
청풍문화재단지 뒤로는 망월산성과 청풍호가 그림같이 펼쳐진다

청풍관아의 연회장인 한벽루, 청풍부 출입문이었던 금남루, 청풍부사의 집무실이었던 금병헌이 관청의 고건축이라면, 반가(班家)와 민가의 가옥도 옮겨졌고 영세불망 송덕비가 줄지어 옮겨 심어졌다. 물론 파사현정(破邪顯正)으로 선정을 베푼 나리님이었다면 모를까 이리저리 눈치 보며 없는 공덕을 억지로 끌어 모아 세운 송덕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씁쓸해 진다.

한강은 북쪽 금성, 송학, 봉양, 백운과 남쪽의 한수, 수산, 덕산을 거의 다른 세상처럼 갈라놓았다. 날씨만 해도 거의 한 절기가 차이 날 지경이었다. 주택 또한 북은 강원도의 영향을, 남은 경상도의 영향을 각각 받았다. 말씨도 강원도 말씨에 가깝게 특이한 억양이 살아 있다.

청풍은 한강을 거슬러 올라온 물산과 젓갈 배의 주요한 거점이었다. 보부상들은 봇짐을 내려 체천, 영월, 주천, 평창으로 가는 장돌림을 시작했으니 이효석 소설의 무대 봉평, 대화장의 물건들도 상당수는 이 물길을 이용했다. 19세기 조선천주교 박해의 처절한 역사 속에서 대표적인 성지로 자리 잡은 곳이 제천의 배론 성지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땅과 배 모양으로 입구가 좁아 관군의 습격을 미리 알 수 있는 천연 요새였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관군의 추격을 피해 한나절이면 백운, 천등산(울고 넘는 박달재의 무대)을 넘어 청풍 북진나루 근처에서 배를 타고 피신할 수 있다는 것이 절묘하다. 하기야 사극은 그랬다. 말을 타고 쫓아오던 포졸도 이미 떠나가는 나룻배의 뒤꼭지를 망연히 바라보는 것으로 한 단락이 지어지곤 했으니까.

사계절 독특한 풍치를 보여주는 청풍대교는 한강으로 나뉜 제천의 남과 북을 이어준다(2012년 촬영)
사계절 독특한 풍치를 보여주는 청풍대교는 한강으로 나뉜 제천의 남과 북을 이어준다(2012년 촬영)

종합레저의 결정판, 청풍랜드 일원

청풍대교를 건너 금성면으로 향하는 길은 대형리조트와 청풍랜드 같은 놀이시설들이 자리하고 있다. 수상아트홀이 있고, 해마다 제천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어 한여름의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제천관광정보센터가 이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도 청풍이 제천관광의 메카역을 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잃어버린 청풍에 대한 안타까운 자부심 때문일까. 제천 사람들은 유독 이곳을 충주호라 하지 않고 ‘내륙의 바다 청풍호’라 부른다.

길을 확장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이제 얼마 뒤면 4차로가 교통체증을 뚫어줄 테지만 한나절씩 밀려서도 보러오던 청풍호반의 벚꽃길은 어떻게 될지 참 궁금하다. 

청풍랜드가 보이는 언덕. 코스모스가 활짝 피니 가을이다<b>(왼쪽)</b> / 차량교행이 어려운 임도에서는 경적을 울리면서 서로 양보해야 마음이 편하다<b>(오른쪽)</b>
청풍랜드가 보이는 언덕. 코스모스가 활짝 피니 가을이다(왼쪽) / 차량교행이 어려운 임도에서는 경적을 울리면서 서로 양보해야 마음이 편하다(오른쪽)

이제는 귀하디귀한 비포장 호반길

금성면 구룡삼거리에서 다시 호수로 바짝 붙어 오후의 여정을 나선다. 상인스님은 멀찌감치 뒤에서 차를 몰고 따라온다. 한 20년도 더 되었지 싶다. 지프로 이 호반길을 먼지를 날리면서 구절양장의 길을 휘감았다 풀기를 반나절 했던 기억이 새롭다. 초입은 포장이 되었고,  비포장 길도 산허리를 잘라가며 바르게 펴고 있는 중이다.

포장을 하더라도 이 구불거리는 길을 그대로 살리는 건 어떨까. 현지 주민들의 삶을 생각하지 않는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 모르지만 낭만이 돈이 되고 밥이 되는 시대가 이미 와 있다. 아무런 특징도 없이 그저 그렇고 그런 마을을 만들기보다는 비포장이든, 소로든 간간히 다니는 차량들만큼이나 서로 마주치는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는 길을 지켜야한다. 그 흔한 ‘힐링’ 찾아 헤매는 도시의 보헤미안들에게 복음의 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부산교부터는 인가도 띄엄띄엄 있고, 본격적인 비포장 길이다<b>(왼쪽)</b> / 충주호 호반길은 너무나 호젓하고, 비포장이라서 더욱 정감이 간다<b>(오른쪽)</b>
부산교부터는 인가도 띄엄띄엄 있고, 본격적인 비포장 길이다(왼쪽) / 충주호 호반길은 너무나 호젓하고, 비포장이라서 더욱 정감이 간다(오른쪽)

후산리까지는 이미 제천에서 포장길이 들어와 있고, 황석리는 도로공사로 산허리가 벌겋게 잘려나가고 있다. 참 반가운 자전거행렬, 두 쌍의 부부, 얼핏 보아도 중년을 넘긴 뒤태다. 스쳐가는 그들에게 인사나 나누며 가자고 소릴 질렀다. 황석리 정자에서 보잔다. 그들은 제천의 토박이여서 청풍 북진나루에서 황석나루로 오던, 수몰된 옛 신작로를 기억하고 있었다.

“청풍에서 황석과 후산으로는 강가로 아주 평평한 길이 나있었지요. 정말 강나루길 풍경이 눈에 선하구먼요.”

군데군데 도로 확·포장 공사가 한창이다. 포장이 불가피하겠지만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b>(왼쪽)</b> / 충주호반길 200리는 어디서나 호수와 동행해서 넉넉하다<b>(오른쪽)</b>
군데군데 도로 확·포장 공사가 한창이다. 포장이 불가피하겠지만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왼쪽) / 충주호반길 200리는 어디서나 호수와 동행해서 넉넉하다(오른쪽)

오늘 이 길도 멸종되고 있는 비포장 길의 한 구간이 되고 말 것이다. 부산리에서는 다시 한 번 호수가로 길을 꺾어 단돈리, 방흥리, 오산리로 긴 비포장 언덕길이 계속된다. 힘들어도 즐겁다. 멸종되어가고 있는 길에서의 추억을 고스란히 몸으로 간직할 수 있어 언덕길의 숨은 희열로 헐떡인다. 이제 싫든 좋든 간에 접어든 나의 60고개는 산으로 가야하는 여정에서는 초조함을 부른다. 언제 다시 이 길을 자전거를 타고 넘을 수 있을 것인지. 돌부리를 피해가고 요철의 반작용을 용수철처럼 이용해야하는 비포장 다운힐의 긴장, 오래전 전용헬멧마저 후배에게 주어버린 내겐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온다.


월악 영봉이 물그림자로 비치면

충주리조트 아래 하천교를 지나 동량면으로 빠지면 쉽게 목행을 지나 탄금대에 이르는 남한강 길을 탈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강둑길 여행자라면 산악경기 코스를 방불케 하는 물길 옆을 택해야 한다. 주봉산을 한 바퀴 감아서 충주나루로 가는 길이다. 사과밭과 인삼밭이 비탈에 늘어서 있는 언덕은 이름도 예쁜 미라실에서 시작된다. 마을마다 서있는 유래비는 저마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산봉우리, 옥녀의 젖가슴을 전설의 주역으로 내세우지만 결코 밉지 않다. 경운기라도 만나면 꼼짝없이 비켜야하는 외길로 수리재를 오르면 넓은 호수 건너 푸른 연무 속에 살미면이 잠겨있다. 그 너머가 월악 영봉(1092m)이다.

충주댐전망대서 본 댐 전경
충주댐전망대서 본 댐 전경

또 전설이다. “언젠가 후대에 월악산 영봉이 바다같이 넓은 물 위에 제 그림자를 비추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비로소 이 나라에  태평성대가 올 것이다.”는 말에 모두들 황당하였으리라. 바다 같은 충주호에 비로소 월악 영봉의 물그림자가 비춰졌으니 얼마나 영험한 예언인가. 반만년 역사에 가난을 벗어던지고 풍요의 그림자를 고민하는 시대를 맞이한 것은 그나마 참 다행한 일이다. 반쪽짜리 한반도에서 이룬 기적을 이제 통일로 완성해야하는 미완의 대업이 전설처럼 렇게 뜬금없게라도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으랴.

호운리 죽방치 고개로 가는 임도를 택해야 물가에 더 가까이 가는 것이련만 그 험로는 또 다음 기회로 미뤄둔다. 수리재 고개에서 서운리로 내려오는 경사는 급하지만 포탄리, 희암리를 지나 충주나루로 오는 호반 길은 오히려 사람의 인적이 반갑다.

맞은편 계명산(775m)의 물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하니 석양이다. 세세연년 괴롭히던 홍수와 범람을 잡아주고 있는 ‘내륙의 바다 충주호’의 든든한 파수꾼 충주댐까지 질주한다. 

<참고자료>
1.
남한강 수운의 전통(이정재외 3인), 2007년, 한국학술정보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6, 한국정신문화연구원
3. 한국의 발견 ‘충청북도’편, 1989년, 뿌리깊은나무


여행 만들기

단양에서 충주댐까지는 거대한 호수를 따라 호반길을 여행하게 된다. 그러나 때론 국도를 질주하는 차량 곁도 지나야하므로 최대한 호젓한 길을 택해야한다. 차들이 그리운 길은 제법 험하고 길어서 체력소모를 감안해야 한다. 청풍의 명소를 즐기려면 청풍에서 하루 자는 게 좋다. 가수 홍 민 씨가 청풍호반을 지키고 있는 카페 아오호에서 커피를 한 잔하는 여유도 좋다. 청량리발 무궁화호를 타고 단양에서 내려 여행을 하고, 충주에서 고속버스로 상경하면 된다.


길섶에서 만난 사람

바다가 없는 충북의 바다 충주호

상인스님(64)

대한불교조계종 정방사의 주지다. 30년이 넘는 우정으로 교분을 맺어와 틈틈이 만나는 사이다. 그가 부전스님으로 절 살이를 하던 때부터 찾아 머물렀던 절은 영암 월출산 도갑사, 정읍 태인 옥천사, 군위 인각사까지 곳곳에 있다. 스님은 도인인체 하지 않아서 좋다. 템플스테이처럼 불교의 예법을 압박하지도 않는다. 그냥 산사의 고요와 부처님에 대한 경배의 마음이면 족하다. “일연스님은 호국의 정신에서 삼국유사를 썼던 것이지요. 그 책을 집필한 절 인각사의 주지를 했으니 보통 인연이 아니지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는데….” 산사음악회를 주관하고, 산악자전거까지 타던 신세대감각이 그 안에서 꿈틀거린다. 그래서 스님이 좋다.

바다가 없는 충북의 바다 충주호

홍 민(64, 우측)

“남쪽나라 바다 멀리 물새가 나아~르고”

‘고향초’를 부르는 그를 생각하는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훈훈해 진다. 그는 우리들 70~80 세대들의 우상이었다. 통기타를 들고 저음이 어루만지는 그의 노래에는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은 서정이 전편에 흐른다. 그가 청풍호반에 자리 잡도록 권유한 제천은 선견지명이 있다. 예순을 훨씬 넘긴 그는 더욱 편안한 얼굴이 되어 우릴 맞는다. 노래에 맞게 제2의 인생을 호반에서 설계한 그의 자존이 부럽다. 청풍호반 길에 날리는 벚꽃을 보면서 그가 어떤 노래를 다시 부를지 궁금하다.

바다가 없는 충북의 바다 충주호

박흥삼(58), 서무원(59),
이정미(55), 이정애(56)
<왼쪽부터>

충주호 황석리 근처에서 만난 자전거 부부 라이더들이다. “옛날  황석리 강가에 먼지를 날리면서 다니던 트럭들이 그립네요.” 호젓한 비포장 길을 터덜거리면서 페달을 젓는 모습에서 건강한 중년의 모델을 발견한다. 제천에서 자영업을 하는 박흥삼 씨는 “아내 손에 이끌려 700만 원짜리 자전거를 사주긴 했지만 속는 기분이었지요. 이젠 고지혈약도 끊었으니 보통 남는 장사가 아니지요.” 주 3회씩이나 타는 여성들의 자전거모임 ‘두륜회’ 활동을 적극 성원한다고 자랑이다.


단양, 청풍, 충주 음식점

청풍명월횟집 043-643-4458

청풍명월횟집(청풍면)
청풍명월횟집(청풍면)

청풍면 소재지인 물태리 골목에 있다. 치안센터와 소방파출소 직원들이 단골이라면 맛은 이미 평가받은 셈. 특히 우렁을 프라이팬에 볶아서 내는 쌈밥이 가격대비 실속 있다. 우렁쌈밥 8000원, 잡고기매운탕(4인기준) 5만원도 좋다.

아오호 043-651-2300

아오호 카페(청풍면)
아오호 카페(청풍면)

청풍랜드 제천관광정보센터 2층에 있다. 가수 홍 민이 운영하는 카페다. ‘아름다운 오늘 호숫가에서’의 약자가 ‘아오호’다. 노을이 지는 청풍호반에서 커피 생각이 나거든 들려보시라. 은은한 커피 향과 홍 민 씨의 나직한 목소리가 반겨줄 것이다.

충주댐가든 043-853-7774

충주댐가든(충주시)
충주댐가든(충주시)

충주댐 아래 다리목에 있는 음식점이다. 자전거 손님들이 지칠 즈음에 만나는 음식점이니 아예 자전거스탠드까지 설치해 놓았다. 갈비탕(8000원)부터 송어회덮밥(1만원), 향어회덮밥(8000원)까지 메뉴는 다양하다.


숙박

(단양) 한국전통견지협회 연수원(가곡헌)  02-2281-0424
견지애호가를 위한 협회 숙소이나 자전거여행자를 위해서도 개방한다. 최근 리모델링을 해서 청결하다. 한국(민속)전통견지협회 홈페이지에서 예약필수

· 1층 7~8인용 단체룸(3실) 7만원 / 2층 5~6인용 가족룸(2실) 5만원 / 단독 여행객 1박 1만5000원
· 샤워실, 세탁실, 바비큐시설, 취사시설 / 사용가능기간 4월 중순부터 10월말까지
· 맑은 공기와 밤하늘의 별,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의 대화, 조성욱 회장 내외가 내오는 커피 한 잔. 그저 편안하게 쉬었다 가기에는 그만이다.

(단양) 모텔베니스 043-421-4400
방이 비교적 넓고 저렴한 편. 단체숙박도 가능하다.

(청풍)청풍리조트 043-642-7000

월드모텔 043-642-0446, 부르밍데이즈 043-642-4600


교통편

· 동서울터미널 1577-5844
동서울→구인사(단양경유) 1일 8회(3시간 소요), 1만6900원

· 청량리역 1544-7788
청량리→단양 무궁화 1일 7편(06:40~21:13) 2시간 소요

· 단양시외버스터미널 043-421-8800
단양→동서울(무정차) 1일 12회

· 충주시외버스종합터미널 043-853-0114
충주→동서울(20분 간격), 충주→강남(30분 간격) 23:00에 심야버스 운행

풍경에 건네는 말 by 조용연

꽃 단풍 건너 저 편으로

이태 전, 단양으로 견지낚시를 가면서 만난 충주호의 아침, 게으르게 피어오르는 안개 사이로 아침 그물을 걷는 어부의 모습은 경건한 의식 같았다. 맑은 물에 사는 갈겨니는 토종물고기다. 제 수명이 다해 갈 즈음에 무지개 빛 혼인색으로 화장을 하고 짝을 짓고 세상을 떠난다. 하필 단풍은 왜 그리 물길 백리 골짜기를 불태우고 있었는지.
이태 전, 단양으로 견지낚시를 가면서 만난 충주호의 아침, 게으르게 피어오르는 안개 사이로 아침 그물을 걷는 어부의 모습은 경건한 의식 같았다. 맑은 물에 사는 갈겨니는 토종물고기다. 제 수명이 다해 갈 즈음에 무지개 빛 혼인색으로 화장을 하고 짝을 짓고 세상을 떠난다. 하필 단풍은 왜 그리 물길 백리 골짜기를 불태우고 있었는지.

새벽을 안고 있던 안개가 흔들린다
고요위에 수만 갈래로 야지랑거린다
그물을 당긴다
침묵의 파문(破門)이다
살자고 소리쳐도 몸짓뿐
철렁 두엇, 파문(波文)에 새긴 안간힘이다

은회색 안개
은회색 비늘
은회색이 헤엄치던 내 우주의 절멸

나의 궁전
그 빛나던 시대 
갈겨니 혼인색(婚姻色) 닮은 꿈
이제야 눈을 뜬다
하늘이 내 고향하고 참도 닮았다

맑아서 시린 아침 사립문 앞
동무해 가자고
하마 채근하던 가을 꽃단풍

바다가 없는 충북의 바다 충주호

글·사진 조용연(여행작가, 前 울산지방경찰청장)
• 1954년 경북 문경 출생
•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졸업
• 경기 여주경찰서장, 서울 동부경찰서장(현 광진경찰서)
• 경찰청 기획과장, 주중국대사관 참사관(북경)
• 서울청 교통지도부장, 경찰청 경무기획국장
• 충남지방경찰청장, 울산지방경찰청장
• 현 에스원 감사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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