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자전거 타며 '自閉(자폐)의 벽' 넘습니다

이옥진 기자 이 안지영 기자 이

입력 : 2013.09.16 00:16

[자폐인 가족 동호회 '불새']

10년째 매주 목요일 함께 운동… 산만하게 제각각이던 아이들 이젠 다른사람 안부 물을 정도
"질서 정연한 자전거 대열처럼 아이들, 세상과 잘 어울리길… 우린 빨리 가길 원하지 않아요"

12일 오전 9시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시립남부장애인종합복지관 앞마당에 푸른색 유니폼을 입은 17명의 '불새' 회원들이 자전거를 타고 모였다. 지적자폐성 장애(1급)를 가진 아이들과 가족 모임인 불새는 2003년 10월 어머니·자녀 5쌍이 결성한 이후 10년째 매주 목요일 오전에 모여 자전거를 탄다. 지금은 회원이 14쌍으로 늘었다. 자녀 회원의 나이는 16~27세로 다양했지만, 하나같이 어린 아이처럼 천진해 보였다. 맏형 김범중(27)씨는 돌아다니며 얼굴을 찡그렸다 웃기를 반복했고, 이준호(18)군은 뛰어다니며 "부부부" 소리를 냈다.

코스는 대개 복지관에서 시작해 선유도·여의도공원을 거쳐 다시 복지관으로 돌아오는 20㎞다. 노윤호(22)씨가 "다 좋아, 자전거 타서 다 좋아"라고 혼잣말을 되뇔 때쯤 불새 박효임(59) 회장이 회원들을 동그랗게 모이게 하고 구호를 외쳤다. "오늘도 안전! 불새 파이팅!" 34개의 발이 일제히 페달을 밟았다. 선두에 선 엄마들이 무전기를 들고 분주히 말했다. "준호야, 앞만 보고 타야지." "2, 1(2열 대형을 1열로 바꾸라는 의미)." 출발하기 전 산만하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 10년째 호흡을 맞추는 베테랑다웠다.

12일 오전 한강시민공원에서 자전거 동호회‘불새’회원들이 모여 환하게 웃고 있다.
12일 오전 한강시민공원에서 자전거 동호회‘불새’회원들이 모여 환하게 웃고 있다. 지적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그 가족들로 이뤄진‘불새’는 올해로 10년째 매주 목요일마다 만나 함께 자전거를 탄다. /채승우 기자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있던 아이들은 불새를 만나면서 서서히 변했다. 집 밖에선 아무것도 먹지 않던 윤정원(23)씨는 이제 밖에서도 골고루 잘 먹고, 말썽을 피우며 대열을 이탈하기 일쑤였던 '산만 왕(王)' 고진우(16)군은 이젠 '질서 왕'이 됐다. 자신 외엔 아무 관심이 없던 김아라(26)씨는 이제 오빠·동생들이 안 보이면 어디 갔느냐고 묻는다.

엄마들은 "불새를 만나고 나서 눈물과 한숨이었던 아이들이 안도와 행복으로 변했다"고 했다. 중학교 교사였던 오경자(56)씨는 아들 범중씨가 입학하면서 학교를 그만뒀다. 24시간 엄마가 붙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아들이 자폐 아동이란 사실을) 못 받아들이고 괴로워했는데, 불새를 시작하곤 사실을 받아들였어요. 범중이가 자전거를 타고서 혼자 처음 나갔을 때, '아, 나랑 얘랑 둘이서 못 할 게 없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정원씨의 엄마 서은숙(52)씨가 "내가 여든, 아흔이 돼 기력이 없어 페달을 못 밟으면, 모터라도 달고 자전거를 탈 것"이라 하자 엄마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 같이 웃었다. 뜻을 알아차렸는지 자녀들도 따라 웃고 소리를 질렀다. 서씨는 "불새는 비장애 아이들 엄마는 못 느끼는 우리만의 행복"이라며 "집에만 있는 다른 (자폐 장애아) 엄마들도 같이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불새 최초의 아빠 회원은 노광일(54) 국무총리 외교보좌관이다. 아내 오정화(52)씨와 아들 윤호씨가 2008년 참여했고, 그도 그해 자전거투어 때부터 함께했다. 그 뒤로 아빠 회원은 4명으로 늘었다. 불새 엄마들은 "윤호 아빠는 불새 안전요원"이라면서 "고위직에 있는 분들은 자녀 사정을 알리길 꺼리는데, 윤호네는 불새 활동에 누구보다 적극적"이라고 했다. 오씨는 "윤호에 대해 터놓고 알리는 게 아이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우리 부부는 생각한다"며 "윤호를 낳고 제일 잘한 일이 불새를 만난 일"이라고 했다.

엄마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평생 불새 활동을 하겠다"고 했다. 오후 1시 30분쯤 복지관으로 돌아가려고 대열을 맞추던 박 회장은 "우리는 남보다 빨리 가는 게 목표가 아니다"면서 "그저 질서정연한 자전거 대열처럼, 아이들이 사회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다시 한 번 "불새 파이팅!"이란 구호가 울렸다. 불새는 '어떤 고난에 빠져도 굴하지 않고 이겨낸다는 전설의 새'를 뜻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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