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물이 귀한 것도 아니지만 처음 본 사람은 도저히 음식을 먹을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지저분했다. 하지만 지금 내 몰골을 보면 더럽고 지저분하기로 따지면 여기 사람들보다 내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데 뭘 가리겠는가. 주인이 말하기를 길이 끊어지기 전만 하더라도 하루에 짜이를 100잔도 넘게 팔았는데 이제는 오직 마을 사람들만 이곳에 와서 짜이를 마신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위험한 길을 홀로 나선 자전거 여행자를 위해 틀림없이 신께서 보살펴 주실 거라 격려했다.

고개 꼭대기에 이르니 바람은 억세고 빛은 카랑카랑했다. 높은 봉우리들이 연이어 달리는 앞은 창창하고도 엄중해 과연 저기가 강고트리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좌우를 살피며 달려온 길을 계산해 보니 어림짐작으로 40여 km만 더 가면 강고트리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재의 한쪽은 수림이 빽빽하고 다른 쪽은 민둥산처럼 키 작은 풀만 무성했으며 드문드문 집들도 보였다. 아래로는 천 조각을 길게 늘어놓은 것처럼 갠지스가 느릿느릿 흐르고 있었다.

고개 꼭대기에서 등뼈에 고인 땀을 말린 후 지체하지 않고 내리막을 쐈다. 얼마 안 가서 강고트리 바로 직전 마을인 다랄리에 도착했다. 다랄리는 평평하고 넓었으며 마을도 어지간히 크고 번창한 편이었다. 물길이 있는 곳에는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민박이나 펜션쯤으로 보이는 집들이 보였는데 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문을 닫은 채 사람 그림자 하나 없이 적막했다.

다랄리에서 강고트리로 들어가는 입구까지는 평탄한 길이 이어졌으며 길가에는 군부대와 숲이 전부였다. 이제 조금만 가면 강고트리에 도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저절로 근육이 팽팽해지며 속도를 낼 수 있었다. 평탄한 길이 끝나고 오르막이 시작되는 삼거리에 이르니 마침내 강고트리 안내판이 보였다. 좌우로 순례자들이 쉬어갈 수 있는 편의시설들이 늘어서 있었다. 모든 상가와 음식점들이 문을 닫았으며 오직 길 옆의 간이음식점만 몇 군데 문을 열고 화덕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마지막 강고트리로 오르는 길은 비교적 완만한 오르막이지만 꽤 먼 길이었다. 산은 더 높고 계곡은 협소하면서도 골이 깊었으며 그 사이로 흐르는 갠지스는 수량은 적지만 소리만큼은 대단했다. 큰 바위 사이로는 조그만 움막들이 있고 문 앞에는 종을 매달았는데 그것은 힌두의 사제들이 수행하고 있는 곳이었다. 오후로 들어서면서 빛이 길어지고 청명한 바람이 사방에 가득하자 움막 안에서 명상하던 수행자들이 밖으로 나와 있다가 내가 지나가는 걸 보고는 잠깐 들어오라는 사람도 있고 손을 들어 보이는 이도 있었다.

몸에 걸친 단 한 장의 단출한 옷과 손에 든 가느다란 막대기와 또 다른 한 손에 든 음식을 담는 그릇, 그것이 이곳에서 만난 수행자들의 소유물 전체였다. 이제 그걸 봐도 옛날처럼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는 것은 본시 그것이 정신의 원래 자리였기 때문일까? 원래 정신과 감정은 서로 어울리면서 형성되기도 하고 또한 상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니 만약 힘들여 얻으려 하고 또한 전력으로 그것을 유지하려 한다고 해도 그것이 재물이든 지식이든 결국 확고하고 변함없는 내 친구는 될 수 없는 법이다. 깃발이 펄럭이는 수행자들의 명상처가 많아지면서 갠지스가 부르는 노래는 점점 깊고 평화로워지기 시작했다.

오후 늦게 마침내 목적지 강고트리에 도착했다. 그렇게 힘들여 도착한 곳은 애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고적하고 쓸쓸했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강고트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평시라면 인도 전역에서 찾아온 순례자들로 강고트리 전체가 발 디딜 틈이 없었을 것이다. 사람소리 대신 들리는 거라고는 히말라야 저쪽으로부터 바람이 내려오는 소리와 파도가 높이 일었다가 떨어지듯 소리를 지르는 갠지스의 목소리뿐이었다.

자전거를 세우고 바닥에 앉았다. 잠깐 사색에 들었다. 하나를 얻으려 했던 것이 실패도 성공도 아닌 가장 평범한 상태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여행의 마지막에 수없이 얻었던 결론이며 감정이었다. 다만 조금 욕심이 있다면 고묵까지 트레킹을 하고 싶은 것이 전부였다.

우타르카시에 텐트 두고 왔기 때문에 방을 잡아야 했다. 하지만 강고트리의 그 많은 숙박시설 중 문을 연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나는 이곳저곳 문을 두드려 그 중 한 곳에 머물게 되었는데 집주인이 안내해 준 방으로 들어간 나는 적지 않게 놀랐다.

방이 너무 깨끗했기 때문이었는데 그것은 내가 처음 사용한 손님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주인에게 연유를 물으니 거의 내 생각과 일치했다. 여름 몬순이 시작되기 전 잠깐 순례객들이 몰려왔다가 곧이어 큰 물난리가 났는데 그의 말로는 이주일이 넘도록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엄청난 비가 내렸으며 지금껏 그토록 긴 기간 동안 그렇게 많이 내린 비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날 저녁 나는 은밀히 게스트하우스 주인과 만나 고묵 트레킹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그는 처음에는 그곳까지 가이드를 해주는데 1,000루피를 요구했다. 큰 액수였지만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가 혹시 정식 트레킹 루트가 아닌 그들만이 알고 있는 길로 안내를 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조금 후에 그는 입구를 지키는 경찰관에게 아무리 부탁을 했지만 워낙 길이 험하고 곳곳에 갠지스의 물살이 급해 불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서운하지 않았다. 자전거로 여기까지 온 것만도 신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조용히 히말라야 입구에서 만났던 물만 바라보면서 수행하던 힌두 사제를 떠올렸다.

다시 델리로 되돌아가는 먼 길
다음날 아침 일찍 나는 자전거를 게스트하우스에 맡기고 고묵과 난다반, 그리고 타포반으로 가는 트레킹 루트를 걷기 시작했다. 두 시간 남짓 걸어가자 체크포인트가 나타났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으며 멀리 고묵의 흰 설산이 보였다. 사진 몇 장을 찍고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수 분 동안 멍하니 그 광경만 바라보고 있는데 그곳 관리인과 경찰관이 나왔다. 나는 그곳에 갈 수 없냐고 묻지 않았다. 그냥 미소만 지었으며 그 둘 역시 내가 왜 웃음을 짓는지 아는 듯 가볍게 미소로 응답했다.

트레킹 루트가 복구되려면 얼마나 걸리겠냐고 묻자 알 수 없다고 했다. 더구나 고묵에 있는 힌두 사원에 상주하던 사람들이 모두 내려와 있기 때문에 누구도 그곳에 갈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눈 덮인 고묵의 봉우리를 한참동안 쳐다보다가 내려왔다.

나는 지금껏 왔던 길을 되돌아 왔다. 강고트리에서 다시 델리로 돌아오는 길도 만만치 않았지만 여행 뒤에 남는 긴 여운과 감동을 단단하게 해주는 길이었다. 수많은 순례자들과 도로를 달리다가 만난 휠체어를 몰고 가던 순례자, 갠지스에서 떠 온 물을 사원에 바치면서 경건하게 기도하던 노인에 이르기까지 그들에게 인생은 성스럽고 또한 유쾌한 것이다.

델리에 도착해서는 우연찮게 올드델리에 머물게 되었는데 바로 건너편이 모스크인 데다가 주변이 이슬람 생활권역이라 또한 이들이 사는 또 다른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다.
여행은 무엇일까? 인간이 저마다의 생각에 의지하기 때문에 해답을 바라면서 물어 본 것은 결코 아니다. 더구나 만약 내 안에 은근히 드러나지 않는 질문의 대답이 있었다면 그것은 또한 자기기만인 셈이다. 땀은 수고로움의 대가를 치르기에 충분했지만 나의 정신은 아직 거기에 미치지 않았다.

계속해서 삶은 고통이며 사는 것은 의문이며 죽음은 두려울 뿐이었다. 그러니 겉으로 태연한 나는 거짓 그 자체일 뿐이었으며 이런 여행으로 포장해 다시 세상에 내 놓기에는 참으로 부끄러웠다. 그런 내가 이런 여행에서 위안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강고트리는 조용하고 편안했으며 또한 경건한 신심을 일으키게 할 만한 곳이었다. 끝까지 주인을 지켜준 나의 자전거는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재 끝>

※ 다음 호부터는 이남석 선생의 유럽 남부 자전거 여행기가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