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자동차에 밀려나는 '자전거 王國'

베이징=이명진 특파원 mjlee@chosun.com 이

입력 : 2008.02.22 16:28 | 수정 : 2008.02.23 14:11

60년대 富의 상징에서 곳곳 '자전거 금지' 팻말
年 3000만대 과잉생산에 간판업체 '永久' 퇴출위기

마오쩌둥(毛澤東)의 초상이 걸려있는 톈안먼(天安門) 앞을 지나는 창안제(長安街)를 가득 메운 '자전거의 물결'은 1970~1980년대 중국을 소개하는 흑백필름에서 빠지지 않는 소재였다. 중국에서 1960년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자전거는 한때는 '부의 상징'으로, 그리고 '서민의 발'로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人民日報)의 지난 10일 보도에 따르면 베이징에서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인구의 비율은 2005년 30.3%로 5년 전인 2000년에 비해 8.2% 포인트 하락했고, 1995년에 비해선 절반 가량으로 떨어졌다. 상하이(上海)나 광저우(廣州) 같은 경제가 발달한 대도시에선 자전거 출퇴근 비율이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중국 베이징에서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10년 전에 비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른 아침 천안문 광장을 지나는 자전거의 물결이 장관을 이뤘다. 조선일보DB
중국 베이징에서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10년 전에 비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른 아침 천안문 광장을 지나는 자전거의 물결이 장관을 이뤘다. 조선일보DB
1960년대 중국에서 자전거는 재봉틀, 손목시계와 함께 중국인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3가지 물건(三大件)으로 꼽혔다. 특히 상하이에서 생산되던 영구(永久), 봉황(鳳凰) 등의 자전거 브랜드는 도시 근로자의 월급이 30위안 가량이던 당시 1대 가격이 150위안에서 650위안을 호가할 정도의 고가(高價) 명품이었다. 때문에 잘나가는 집안들은 딸이 결혼할 때 '혼수품'으로 빠뜨리지 않고 장만해 줬고, 도시 근로자들은 이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것을 '평생의 꿈'으로 삼을 정도였다.

1995년 무렵 수도 베이징(北京)의 직장인 절반 이상이 자전거로 출퇴근을 했을 정도로 서민의 발 역할을 톡톡히 했으며, 중국의 주요 도시들은 자전거 이용자를 위해 시내 도로 양쪽에 폭 2m 가량의 자전거 도로를 마련하고, 횡단보도에는 사람을 위한 신호등 위에다 자전거를 위한 신호등을 설치할 정도로 배려했다. 육교나 지하도에는 완만한 기울기의 자전거 이동로가 따로 마련됐고, 곳곳에 자전거 보관소와 수리점, 판매점이 즐비했다. 서민들은 자전거를 도난당하지 않기 위해 두세 개씩의 자물쇠를 채우는 것도 모자라 좁은 집안에 모셔 들일 정도로 애지중지했다.

하지만 중국 도로를 물결처럼 뒤덮으며 장관(壯觀)을 연출하던 자전거의 '전성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으며, 자전거 이용자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자전거 물결'은 이미 베이징에선 오래전에 사라진 장면이다.

이는 중국 경제의 급성장에 따라 자동차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올해 중국은 자동차 1000만 대가 생산 판매되는, 세계 2위의 자동차 시장으로 올라선다. 중국 자동차 시장은 매년 20% 넘게 성장을 거듭해 왔다.

베이징은 이미 2006년 말 자동차 수가 300만 대를 돌파해 서울보다 많아졌고, 매일 1000대씩 차량이 늘어날 정도다.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 수단도 계속 확충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교통카드를 사용할 경우 버스 요금을 1위안(약 130원)에서 0.4위안으로 대폭 깎아줬다. 갈수록 자전거가 설 땅은 좁아지고 있다. 상하이에선 아예 2010년부터 자전거의 도심 통행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자전거 이용자에 대한 '배려'는 갈수록 사라지는 추세다.

그뿐인가. 고급 자재들로 치장한 베이징의 상류층 아파트 단지들에는 '자전거 출입 금지' 팻말이 붙어있고,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이 단지에 들어가려면 입구에서 멀찍이 떨어진 자전거 보관소에 세우고 한참을 걸어야 한다. 시내 고층 건물이나 호텔에선 아예 보안(保安·사설경비원)들이 자전거의 근접 자체를 떡하니 막아선다. 요즘 어떤 중국 젊은이들은 때문에 집은 없어도 자동차부터 구입한다. 무시당하기 싫다는 것이다.

2006년 전 세계 176개국에 5600만 대를 수출한 '자전거 수출 대국' 중국의 자전거 산업도 진작부터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중국산 자전거 산업의 '간판스타'였던 영구(永久) 자전거주식회사는 지난 1998년 중국 내 상장회사로는 처음으로 노동자들이 임금체납에 항의하며 길거리로 나선 회사로 기록됐으며, 상당수 업체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업체들은 매년 1억 대 이상의 자전거를 생산하고 있지만, 이윤율은 4%에도 미치지 못하는 출혈 경쟁을 하고 있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중국 내 적절한 자전거 생산량을 7500만 대 정도로 본다. 매년 3000만 대 가량이 과잉 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광저우 상하이 등 대도시의 대형 매장들은 2000년 무렵부터 자전거 매장을 아예 퇴출시켰다.

이처럼 중국에서 자전거의 생존 공간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지만, '자전거의 시대'가 완전히 종언(終焉)을 고했다고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다. 쓰촨(四川)성 청두(成都) 등 경제가 비교적 낙후한 중부지역의 대도시들에선 아직도 백화점 앞에 수천 대의 자전거가 즐비하게 서있는 광경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2005년 통계에 따르면 중국은 아직도 도시지역은 100가구당 120대, 농촌지역은 100가구당 98.4대의 자전거를 보유한 세계 제1의 자전거 대국이다. 중국 전역에 있는 자전거는 약 4억7000만 대. 몇 년째 늘지도 줄지도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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