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안장 위에서 만난 마케도니아와 그리스의 감동

글·사진 | 이남석 서울 성동공고 교사

입력 : 2014.12.24 10:52 | 수정 : 2015.11.17 16:53

올림포스산 넘어, 아테네로 가는 시골 길

베네치아에서 슬로베니아 국경까지는 한나절 정도 걸렸다. 운하를 건너고 들판을 따라 달린 길은 ‘비아 안니아(Via Annia)’라고 불리는 로마시대 때 건설된 도로였다. 사람이 만든 구조물이나 유적은 늘 한자리에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만이 태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오래 가리라 생각했던 견고한 유적들도 어느 순간에는 사멸하고 마니 그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로마시대의 길을 아내와 나의 자전거 두 대가 나란히 달렸다.


	[해외여행 | 막강 장딴지 부부의 유럽 자전거 여행기 (下)]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라냐의 유적 같이 고풍스런 성당을 지난다.

국경이 가까워지면서 우리는 슬로베니아를 거쳐 자그레브로 갈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국경도시인 트리에스테로 가서 크로아티아로 입국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결국 전자를 선택했다. 고리지아에서 슬로베니아 국경을 넘어 수도인 류블라냐까지는 하루에 가기에 힘든 여정이었다. 설상가상 국경에서 비를 만났다. 춥지 않은 날씨라지만 겨울인 데다 옷이 비에 젖어 이날은 야영 대신 호텔에서 몸을 녹여야 했다. 다행히 슬로베니아의 어느 마을을 지나다 작은 호텔을 잡을 수 있었다. 30유로의 저렴한 비용에 주인의 배려로 사우나까지 딸린 방에서 일박했다.


	[해외여행 | 막강 장딴지 부부의 유럽 자전거 여행기 (下)]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도심을 지난다. 우여곡절 끝에 슬로베니아에서 크로아티아로 입국할 수 있었다.

슬로베니아는 여러 면에서 이탈리아와 달랐다. 농업보다 축산업이 우세해 곳곳에 넓은 목초지가 있었다. 마을은 단정하고 사람들은 친절했다. 사는 모습이 간소하고 소박하며 산과 강은 깨끗했다. 유럽에서도 가장 친환경적인 국가라는 명성이 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농가도 이탈리아와 많이 달랐다. 지붕의 경사가 급하고 높이가 높다란 것을 봤을 때 우기에 강수량이 많음을 짐작케 했다.

인구밀도가 낮고 삼림이 무성해 농가 대부분은 연료로 장작을 사용했다. 농가마다 헛간이나 처마 밑에 높이 쌓은 장작더미가 있었다. 저녁이 되어 류블라냐에 도착할 수 있음에도 우리는 텐트를 치기 위해 근교 마을에 머물기로 했다. 시내로 들어갈 경우 야영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선술집을 운영하는 아주머니의 배려로 헛간에 텐트를 칠 수 있었다.

류블라냐는 정숙하고 한산하며 정돈된 도시였다. 건물은 중세와 현대가 어우러져 자연스러웠다. 뒤에는 높은 언덕과 그것을 둘러싼 성곽이 도시 전체를 굽어보고 있었다. 카페에는 젊은이들이 모여 차나 맥주를 즐기고, 중년들은 신문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의 행동은 정중했으며 표정은 신중하면서도 유쾌했다. 다가가 뭔가를 물어볼 때마다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우리가 자전거로 로마에서 출발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You are great!”라고 칭찬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다.


	[해외여행 | 막강 장딴지 부부의 유럽 자전거 여행기 (下)]
1 식사를 준비하는 아내. 우리는 직접 취사하고 야영하며, 최소한의 비용으로 자전거 여행을 했다. 2 슬로베니아의 평화로운 전원 풍경. 종 사이로 성당이 보인다.

시골로 갈수록 옛 기록이 살아 있는 유적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과거 십자군의 영웅담이 새겨진 비석, 이슬람의 침략으로부터 성당을 지킨 전사들의 얘기를 빼곡히 적은 시골성당의 기념비, 농민들이 일어나 외적을 물리친 흔적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유명한 관광지보다 시골이 더 정답고 풍성한 얘깃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로 가는 길은 조그만 지방도로였다. 점점 더 고도를 올려 산으로 꼬불꼬불한 길이 이어졌다. 숲은 어둡고 깊었으며 길은 그 가운데로 달렸다. 드문드문 마을이 있었는데 겨울이라 그런지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마을마다 그 중심에는 성당이 있었다. 성당은 겉으로 보기에도 오래된 건물이었으며 저마다 다른 특색을 갖추고 있었다.

시골 아낙에게 길을 물어보다가 수다를 떨면서 수분을 허비하기도 했고, 제법 긴 오르막 산길을 만나면 고갯마루에서 한숨 돌리기도 했다. 흙빛과 풀색의 대비가 뚜렷한 목초지에서는 햇빛이 비치기만을 기다리기도 했으며, 작은 산촌 입구에서는 헛간에 매달린 옥수수와 옛 건물을 살펴보며 중세 이곳 사람들이 살던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긴 산악구간이 끝나자 이내 평원지대로 들어섰다. 슬로베니아의 서부도시 세브니카(Sevnica)에서 크로아티아와 국경을 접한 도시인 도보바(Dobova)까지는 평원이었다. 다정한 물길을 품은 마을은 오래된 성당을 안은 채 평화로웠다. 노인들은 창문에 기댄 채 독서를 하고 농부들은 경사진 밭에서 거름을 펴기도 했다. 소도시에서 다음 소도시로 이어진 거리가 짧았는데 우리나라 작은 읍이나 면소재지 크기에 불과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기도 했다.


	[해외여행 | 막강 장딴지 부부의 유럽 자전거 여행기 (下)]
1 올림포스 산간 지역의 마케도니아 호텔에서 하룻밤 묵었다. 2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교외의 거리 연주자.

사람들은 인심 좋고 모두 근면했다. 잘 다듬어진 농로를 따라 마을로 들어가면 어느 곳이라 해도 잠자고 먹을 걱정 없었다. 어느 마을에서는 아주 작고 예쁜 성당을 만났다. 사람의 정신을 압도하는 큰 도시의 엄청난 성당과 분명 차이가 있었다. 인간이 신에게 다가갈 때 사실 주변 환경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해외여행 | 막강 장딴지 부부의 유럽 자전거 여행기 (下)]
슬로베니아의 그림 같은 전원 풍경 속을 아내와 함께 달린다.

우여곡절 끝에 크로아티아 입국

국경 도시 도보바에 도착했다. 나는 자전거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국경을 넘어 자그레브(Zagreb)로 갈 수 있는지 수없이 물어봤다. 이곳 사람들의 대답은 모두 “Yes!”였다. 그러나 국경 체크포인트에서 실망하고 말았다. 우리는 국경 검문소에 있는 크로아티아 경찰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계속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 국경도 아무런 제재 없이 통과했으므로 여기도 그와 같을 거라 생각하고 왔다. 그들은 계속 머리만 가로저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유럽연합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런 지역 국경선을 넘을 수 없다고 한다. 정해진 검문소를 통해서만 국경을 통과할 수 있었다. 결국 도보바로 돌아가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자그레브로 갈 수 있었다. 기차 안에서 크로아티아 보안경찰들이 여권에 입경 스탬프를 찍는 것으로 마침내 크로아티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자그레브에는 저녁 늦게 도착했다. 숙소를 찾다가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유스호스텔을 찾을 수 있었다. 한 사람당 1만 원 정도만 있으면 숙박을 해결할 수 있는 일종의 게스트하우스였다. 최소한의 경비로 여행하는 우리 부부에겐 정말 운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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