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년 역사 자랑하는 이탈리안 사이클 명가, 비앙키

바이크조선

입력 : 2015.01.16 16:49

우리가 흔히 명품(名品) 혹은 마스터피스(masterpiece)라 부르는 것들은 무척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물론 자전거에도 해당되는 것으로, 수많은 경주에서 우승하며 그 성능을 인정받았거나 역사성 혹은 예술적인 가치를 지닌 자전거라면 명품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명품 자전거를 만들어내는 브랜드를 자전거의 명가(名家)라 부른다. 그리고 비앙키는 이에 충분히 부합하는 명성을 지금도 세계 곳곳에 떨치고 있다


	130년 역사 자랑하는 이탈리안 사이클 명가, 비앙키

비앙키(F.I.V. Edoardo Bianchi S.P.A)는 현존하는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자전거 메이커다. 비앙키의 창립자 에두아르도 비앙키는 1885년 21세의 나이에 이탈리아 밀라노 니로네거리 7번지에 작은 자전거 공방을 차리는데, 이것이 비앙키 130년 역사의 시작이다.

살아있는 자전거의 역사

비앙키는 당시의 혁신적인 자전거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습득해 이탈리아의 유명 자전거 제조업체로 성장한다. 에두아르도 비앙키는 당시 유행하던 거대한 앞바퀴를 가진 하이휠(오디너리) 자전거 대신 1885년 영국에서 개발된 앞뒤 바퀴 크기가 비슷하고 체인으로 뒷바퀴를 구동하는 세이프티 방식 자전거에 주목했다. 1888년에는 던롭이 개발한 공기주입식 타이어를 접목한 자전거를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선보였다.

초창기 비앙키 자전거를 상징하는 컬러는 검정 바탕에 붉은 빛깔로 칠해진 Bianchi 로고였다. 그러나 이후 비앙키를 상징하는 컬러는 ‘체레스테’(celeste : sky blue)라는 터키석과 닮은 푸른 빛깔로 바뀌게 된다.

체레스테가 비앙키를 상징하게 된 이유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에두아르도 비앙키는 1895년 마르게리타 여왕을 위해 세계 최초의 여성용 자전거를 만들고 이탈리아 왕실을 방문해 여왕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게 되는데, 이때 여왕이 자신의 눈동자 색을 하사했고 비앙키는 이를 기념해 브랜드를 상징하는 색을 체레스테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밀라노의 하늘색을 보고 체레스테 컬러를 떠올렸다는 설이다. 어느 쪽을 믿건 독자 여러분의 몫이지만, 역시 여왕의 눈동자 컬러를 따왔다는 낭만적인 이야기에 끌리지 않는가?


	1953년 세계를 제패한 파우스토 코피의 자전거. 비앙키의 체레스테 색상이 아직도 남아있다
1953년 세계를 제패한 파우스토 코피의 자전거. 비앙키의 체레스테 색상이 아직도 남아있다

레이스에서 두각을 나타내다

과거에도 지금도 자전거 메이커의 이름을 가장 드높이는 방법은 레이스에서 우승하는 것이다. 비앙키가 레이스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1899년 파리 스프린트 그랑프리 경주에서 우승한 조반니 토마젤로를 후원하면서다. 이후 비앙키는 1935년 이탈리아 챔피언의 자리에 7번 오르고, 지로 디 이탈리아에서 2번이나 우승한 사이클 스타 콘스탄테 지라르뎅고를 후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앙키가 레이스 명가로 확실히 자리 잡게 된 계기는 무엇보다 안젤로 파우스토 코피의 역할이 가장 컸다. 파우스토 코피의 별명은 챔피언 중의 챔피언이라는 뜻의 ‘일 캄피오니시모’(Il campionissimo : Champion of champion)였다. 파우스토 코피는 1945~1955년, 그리고 1958년에 비앙키 사이클링 팀에서 활약했다. 이 기간 동안 세계선수권대회 우승(1953), 지로 디 이탈리아 4회 우승(1940, 1947, 1949, 1952, 1953), 뚜르 드 프랑스 2회 우승(1949, 1952), 이탈리아 챔피언십 3회 우승(1942, 1945, 1949, 1955), 파리-루베 우승(1950) 등의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사람들의 뇌리에 비앙키는 챔피언의 자전거로 그 이름을 각인했다.


	1998년 얀 율리히와 마르코 판타니의 대결 순간
1998년 얀 율리히와 마르코 판타니의 대결 순간

비앙키는 파우스토 코피를 위한 전용 자전거를 제작했다. 코피의 자전거는 당시 최신형 부품이던 캄파뇰로 파리-루베 디레일러 장착을 위해 톱니 모양의 전용 드롭아웃이 적용되었고, 캄파뇰로 허브와 니시 림으로 빌딩 된 휠세트, 피렐리 타이어, 레지나 4단 프리휠 스프라켓과 체인, 비앙키 스틸 핸들바와 스템 등이 장착되었다.

불굴의 의지, 판타니

비교적 최근의 비앙키를 탄 사이클 영웅을 꼽자면 마르코 판타니(1998~2003, 메르카토네-우노)를 빼놓을 수 없다. 1970년생인 마르코 판타니는 11세에 파우스토 코피 유소년 사이클링 클럽에서 로드레이스에 입문했고, 1992년 카레라(Carrera) 팀을 통해 프로 레이서로 데뷔한다. 판타니는 데뷔 첫 해인 1993년에는 부상으로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러나 1994년, 두 번째 참가한 지로 디 이탈리아의 산악스테이지에서 두 번 연속 우승하는 등 클라이머로서의 특출난 재능을 보였다. 같은 해 처음 참가한 뚜르 드 프랑스에서는 종합성적 3위, 베스트 영 라이더 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선수로서의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1995년 세계선수권에서 자동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하고, 이로 인해 왼쪽 다리의 길이가 오른쪽보다 3㎝나 짧아지는, 사이클 선수로서는 치명적인 장애를 갖게 되었다. 모두가 마르코 판타니의 선수 생명은 끝난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고 판타니는 1996년까지 어떤 레이스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비앙키 본사에 전시되어 있는 마르코 판타니의 자전거들
비앙키 본사에 전시되어 있는 마르코 판타니의 자전거들

1996년 말 팀 스폰서였던 카레라 진(Carrera Jean Manufacturers)이 후원을 중단하면서 판타니가 속해있던 카레라 팀은 해체된다. 그러나 이탈리아 출신 사이클리스트 루치아노 페치가 카레라 팀 출신의 선수 10명을 ‘메르카토네-우노’ 팀에 영입하고 팀 리더로 마르코 판타니를 기용했다.

1997년 판타니는 지로 디 이탈리아에 복귀한다. 그러나 경기 초반 그의 자전거 앞에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뛰어들고, 이를 피하려다가 자전거에서 낙차하는 사고를 당한다. 그것도 하필이면 1995년 다친 다리를 또다시 다치게 되고, 이후 다리 근육의 통증은 그를 끊임없이 따라다니며 괴롭히게 된다. 판타니는 1997년 뚜르 드 프랑스의 알프스 산악 스테이지에서 두 번의 승리를 차지한다. 그 해의 뚜르 드 프랑스에서는 얀 율리히가 우승을 차지했고, 판타니는 3위에 올랐다.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 비앙키의 영웅 마르코 판타니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 비앙키의 영웅 마르코 판타니
판타니가 비앙키를 타기 시작한 것은 1998년이다. 그리고 1998년은 마르코 판타니에게 있어 기적과도 같은 승리의 해였다. 마르코 판타니는 이 해의 지로 디 이탈리아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하고, 이어 뚜르 드 프랑스에서도 종합우승을 차지한다. 판타니는 스테이지1의 개인타임트라이얼에서 189명의 선수 중 181등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냈다. 1위는 1997년 뚜르 드 프랑스 우승자 얀 율리히였다. 그러나 피레네 산악스테이지에 들어서면서 판타니는 페이스를 올렸고, 알프스로 들어서면서 율리히를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오는 갈리비에에서 판타니는 단독으로 어택을 시작한다. 마르코 판타니는 무려 48㎞를 팀 메이트의 도움 없이 단독으로 주파하는 놀라운 투혼을 보여주었고, 얀 율리히를 8분 차이로 따돌리고 피니시라인을 통과한다. 판타니는 율리히보다 전체 기록에서 3분을 뒤지고 있었으나, 이 갈리비에에서의 놀라운 어택으로 역전하여 6분을 앞서게 된다. 결국 마르코 판타니는 뚜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하며, 1998년의 지로 디 이탈리아와 뚜르 드 프랑스 동시 제패의 위업을 달성한다.

	이후 얀 율리히는 2003년 비앙키로 둥지를 옮겨 랜스 암스트롱과의 페어플레이 대결로 뚜르 드 프랑스에 또 하나의 전설을 남긴다
이후 얀 율리히는 2003년 비앙키로 둥지를 옮겨 랜스 암스트롱과의 페어플레이 대결로 뚜르 드 프랑스에 또 하나의 전설을 남긴다

판타니의 자전거

당시 갈리비에에서 마르코 판타니가 탔던 자전거는 비앙키 ‘메가프로 XL 레파르토 코르세’ 모델이다. 이 모델은 비앙키의 맞춤 제작 프레임 공방인 레파르토 코르세 워크숍에서 판타니 전용으로 제작했다.

프레임은 7000번대 알루미늄 합금으로 더블 버티드 가공과 열처리를 거친 데다치아이의 튜빙을 사용했다. 당시에는 프레임의 탑튜브가 수평에 가까울수록 강성 면에서 유리하다고 여겼는데, 판타니의 키가 작았기 때문에 세미 슬로핑 지오메트리를 적용했다. 다운튜브는 헤드튜브 쪽 튜빙의 단면이 세로방향 타원을 이루고, BB쪽으로 갈수록 점점 가로방향의 타원형으로 변하는 비앙키의 ‘메가프로’ 디자인을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비앙키를 빛낸 미남 스타 마리오 치폴리니
비앙키를 빛낸 미남 스타 마리오 치폴리니

컴포넌트는 캄파뇰로 레코드 9단을 장착했고, 카세트 스프라켓은 경량화를 위해 티타늄으로 제작했다. 포크는 비앙키의 다른 알루미늄 모델과 똑같은 컬러로 칠해졌지만, 실은 프랑스의 타임이 제작한 카본 포크였으며, 클립리스 페달은 보디를 마그네슘으로 만들고 액슬은 티타늄으로 제작한 초경량 모델이었다.

당시의 레이스 바이크 프레임은 주로 알루미늄으로 제작되었고, 7.3㎏ 정도의 무게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메가프로 XL 레파르토 코르세 판타니 전용 모델은 페달과 물통케이지를 모두 포함해도 6.96kg에 불과했다. 알루미늄 프레임의 레이스 바이크로서는 거의 한계에 가까운 감량을 한 것이다.

게다가 기어는 54/42T 체인링과 11-23T 스프라켓을 장착했다. 힐클라임용으로 사용하기에는 굉장히 무거운 고속기어다. 그러나 마르코 판타니는 가벼운 체중의 이점을 살려 안장에서 일어나 끊임없이 댄싱을 하며 언덕을 오르는 라이딩 스타일을 고수했다. 엄청난 체력의 손실과 근육의 고통이 따르는 주행법이지만, 이를 견디며 달리는 마르코 판타니의 열정적인 힐클라임은 지금도 사이클링 팬 사이에서 ‘천사가 날아오르는 듯한’ 매혹적인 댄싱으로 기억되곤 한다.

비앙키를 빛낸 또 다른 영웅들

또 다른 비앙키의 에이스로는 얀 율리히(2003, 비앙키), 마리오 치폴리니(2005, 리퀴가스-비앙키) 등이 있다. 얀 율리히는 사실 2003년 한 해 동안만 비앙키 팀 소속으로 활약했으며, 텔레콤/T모바일 팀 등에서 활약한 기간이 더 긴 선수다. 그러나 2003년 뚜르 드 프랑스에서 랜스 암스트롱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중임에도 불구하고, 낙차 사고를 당한 랜스 암스트롱이 코스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정정당당한 대결을 펼친 그의 페어플레이 정신은 지금도 뚜르 드 프랑스의 명장면 중 하나로 기억된다. 이때 얀 율리히가 입고 있는 유니폼, 자전거에는 체레스테 컬러가 형형히 빛나고 있다.


	(왼쪽부터) 비앙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색, 체레스테의 불편한(?) 진실 / 레인보우 도색을 한 비앙키 C-4 프로젝트 TT 바이크
(왼쪽부터) 비앙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색, 체레스테의 불편한(?) 진실 / 레인보우 도색을 한 비앙키 C-4 프로젝트 TT 바이크

마리오 치폴리니 역시 비앙키를 탄 기간은 짧았지만, 월드챔피언 자리에 올랐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스프린터이자 모델을 겸할 정도의 미남 인기 사이클리스트답게 비앙키를 타고 많은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비앙키는 도로와 산악을 불문하고 수많은 레이스에 참가하며 자전거 명가의 이름에 어울리는 다양한 수상기록을 이어나가고 있다. 끝으로 비앙키가 지금까지 세운 주요 레이스의 성적표를 소개한다.

대진인터내셔널 1688-7449 www.daejinkr.com

■ 도로

· 지로 디 이탈리아 우승 12회
· 뚜르 드 프랑스 우승 3회
· 밀란-산레모 우승 19회
· 지로 디 롬바르디아 우승 16회
· 파리-루베 우승 7회
· 세계선수권 로드레이스 우승 4회
· 트랙 세계선수권, 속도기록 및 추발종목 우승 6회
· UCI 프로투어 우승 1회

MTB

· 2004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
· 세계선수권 우승 9회
· 세계선수권 XCO 우승 4회
· 세계선수권 XCM 우승 2회
· 유럽선수권 우승 10회

비앙키 제품, 어디서 만나볼 수 있을까?

현재 비앙키의 국내 유통은 대진인터내셔널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지난 2005년 처음 비앙키를 국내에 들여온 대진인터내셔널은 비앙키의 로드바이크 완성차와 프레임, MTB, 트랙, 트라이애슬론 등 다양한 모델을 선보인다.

장낙규 객원기자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14년 2월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외부 저작권자가 제공한 콘텐츠는 바이크조선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Copyrights ⓒ 자전거생활(www.bicyclelife.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