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서린 김제평야로 서진하는 강, 동진강

바이크조선

입력 : 2016.01.07 15:11


	한 서린 김제평야로 서진하는 강, 동진강
한때 동진(東津)을 서진(西進)의 대칭 개념이라 생각했었다. 서쪽으로 가는 강을 동진한다 한 것은 저항의 표기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김제평야의 언저리에서 태어난 시인, 소설가는 동진강의 한(恨)을 문학으로 풀어냈다. 소설 <아리랑>이 수탈과 민족의 고난을 대하(大河)처럼 그려 내기 전에도 개펄을 논으로 일구던 처절한 생존은 물꼬 하나마다 이미 새겨져 있었다. 섬진강의 물길을 돌려 칠보의 콧구멍으로 쏟아내는 물줄기, 그 아래 논배미 사이사이로 피 같은 물을 대 가면서 벼 한 포기를 키워낸 식민지 백성의 삶이야말로 동진강을 증언하는 역사다.

	동진강과 정읍천이 합류하는 만석대교 부근, 저문 강의 쓸쓸함이 실루엣으로 드러난다.
동진강과 정읍천이 합류하는 만석대교 부근, 저문 강의 쓸쓸함이 실루엣으로 드러난다.
가을 들판을 달리려면 1년을 기다려야한다. 황금을 닮은 빛깔의 풍요는 끝 간 데 없는 평야를 채색한다. 들판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넓다. 관청들, 이평들, 거산들, 신태인들, 도평들, 동진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평야다. 이 너른 벌을 거느린 동진강은 아비와 같은 격인 국가하천으로 정읍천, 고부천, 원평천을 아들(제1지류)로 두고, 고손자격인 제4지류하천과 5지류하천까지 무려 82개의 자손(지류하천)을 거느리고 있으니 작은 몸피(51㎞)에도 불구하고 다산의 왕이라 할 만한다.   동진강의 발원지인 정읍시 산외면 상두산 자락으로 간다. 마이산의 서쪽 지맥이 임실, 전주를 지나서 모악산을 만들고 또 한 갈래가 서남방으로 내달려 노령산맥을 이룬다고 <택리지>는 말한다.

	한 서린 김제평야로 서진하는 강, 동진강

콧구멍으로 물이 나와 불을 쓰리라

상두리 만병저수지에서 자전거는 출발한다. 강은 초입부터 목마르다. 길지 않은 강에 숱한 사연이 서글프게 새겨져 있어서일까 가을 산 삭정이처럼 말라 있다. 산외를 지나 칠보에 와야 동진강은 50m쯤 넓어져 개울티를 벗는다.

섬진강수력발전소의 도수로 파이프라인이 산록에 기대어 서 있다. 국민학교(나는 초등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사회책에 실린 흑백사진의 칠보수력발전소다. 동진강이 제구실을 하고, 호남평야의 남단이 늘 촉촉함을 잃지 않는 것은 순전히 노령산맥 허리를 뚫어 물길을 나눠준 섬진강 덕분이다. 그러나 섬진강의 가뭄으로 발전소는 방학이다.


	칠보에 있는 섬진강수력발전소의 도수로. 가뭄으로 발전을 중단한지 오래다.(정읍 칠보)
칠보에 있는 섬진강수력발전소의 도수로. 가뭄으로 발전을 중단한지 오래다.(정읍 칠보)
내력을 말하자면 길다. 호남평야의 쌀 창고로써 가치를 일찍이 알아챈 일인들이 ‘동진강농지개량조합’을 만들고 1928년에 섬진강에 운암제(雲岩堤)를 만들었다. 1929년에 6.2㎞의 도수로를 뚫어 칠보수력발전소도 만들었고, 1965년에는 섬진강댐을 축조했다. 섬진강을 막은 운암제(현 옥정호)의 표고가 200m이고, 칠보가 50m이니 낙차는 충분했다. 전라북도에서 탄생하여 꿋꿋하게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증산교의 교조 강일순이 예언했단다. “행단 앞산에 콧구멍이 2개 있으니 후일에 저 콧구멍으로 물이 나와 불을 쓰리라.”(증산도 도전5편 141장 9절). 구한말에 태어나 1909년 3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강증산이 1931년 완공한 칠보발전소를 보았을 리 없으니 그의 예언은 콧구멍이 3개(도수로가 3열4단이다)인걸 빼면 적중한 셈이다.

	적산가옥의 형태로 지은 농가에 내걸린 태극기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정읍칠보)
적산가옥의 형태로 지은 농가에 내걸린 태극기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정읍칠보)

칠보사람, 칠보이야기

산이 깊다보니 6·25 전란의 상처도 깊다. 차일혁 총경은 지리산공비토벌의 전설적 영웅인 18전투 대대장이다. 1951년 1월, 50일간의 격전 끝에 칠보발전소를 점령한 빨치산 2000명을 75명의 차일혁부대로 섬멸한 전사는 오래 묻혀 있었다. 빨치산남부군사령관 이현상을 사살한 그가 경무관으로 추서된 것이 2011년의 일이니 말이다.


	동진강 둑길은 농기계들의 전용로로 이용되는 곳이 대부분이다.(정읍 태인)
동진강 둑길은 농기계들의 전용로로 이용되는 곳이 대부분이다.(정읍 태인)
회문산 가까운 산내면에서 옛 친구 임병찬의 밀고로 붙잡힌 동학지도자 김개남이 칠보면 출신이고, 동학군 녹두장군 전봉준이 부하접주 김경천의 밀고로 잡힌 곳도 산 너머 쌍치면이다. 또 한 사람, 자서전 <마이 네임 이즈 장연호>를 펴낸, 호남고등학교 前 교장 동광 장연호 선생이 생각난다. 칠보 벌수에서 태어나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했으니 수재임에 틀림없다. 내가 나이가 들고 보니 자식 자랑하는 아버지 마음은 십분 이해된다. 나와 사회부 기자로 만난 KBS 출신의 장남 기철이 아버지의 일대기를 만들어 팔순잔치 상에 올린 것은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것은 6·25가 나던 사흘 전부터 펜 끝으로 써내려간 65년의 일기장과 8순 할아버지인 동광선생의 할아버지인 장규수 참봉어른의 사진 속 형형한 눈빛이다. 초상화가 아니라 증조부의 누렇게 바랜 사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나무이발사’라고 자칭하는 녹색부국의 신념은 “동대구역 앞에 길게 늘어서 있던 히말라야시다 묘목은 내가 길러내 시집보낸 것이다”라는 자긍과 통한다. 나무 덕에 평생 영어선생을 하면서도 자식들 키워냈으니 서슬 퍼런 일제의 ‘이장금지령’을 무시하고 코끼리 머리를 닮은 상두산 자락에 조상님 묘를 몰래 옮긴 음덕이 발복한 게 아니겠는가.

	1 들판으로 나앉은 낙양리 마을정자.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바라보는 들판은 바라만 봐도 배가 부르지 않겠는가(정읍 태인) 2 들판을 바라보는 농심. 올해 벼농사는 풍작 축에 들지만 쌀 수매가가 어찌될지 걱정이다.(정읍 태인)
1 들판으로 나앉은 낙양리 마을정자.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바라보는 들판은 바라만 봐도 배가 부르지 않겠는가(정읍 태인) 2 들판을 바라보는 농심. 올해 벼농사는 풍작 축에 들지만 쌀 수매가가 어찌될지 걱정이다.(정읍 태인)

태인과 신태인의 엇갈린 운명

칠보를 벗어나면 거산들이다. 만경강을 끼고 양안 10리나 되는 논들이 이어 있으니 작은 들판이 아니다. 호남의 고읍 태인(泰仁)이다. 사적을 뒤적여 봐도 우금치 전투에 패한 동학군이 밀려 내려와 관군과 최후의 일전을 한 전투 공간이 태인전투라는 상처로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이 되어 정읍의 작은 면이 되고 말았다. 그 이전만 해도 감곡, 신태인. 용동, 산내, 산외, 칠보까지 아우르는 중심지였으나 그 기운도 호남선 철도가 지나가면서 신태인에게 빼앗기고 만다. 목포에서 출발하는 1번국도가 지나가지만 그 또한 호남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까지 뚫린 마당에 위세가 옛날 같지 않다.


	갈대숲이 되어버린 강둑길도 때론 그냥 지나갈 수밖에 없다.(정읍 태인)
갈대숲이 되어버린 강둑길도 때론 그냥 지나갈 수밖에 없다.(정읍 태인)

동진강은 철도를 꿰어 찬 신태인읍을 북으로 두고 서북향으로 흘러간다. 태인읍지에 29개나 되는 저수지가 있었다는 기록이고 보면 넓은 벌에 동진강 물만으로는 턱도 없었던 게 틀림없다. 신태인교를 지나면 만석보 터가 나온다.

만석보가 유명한 것은 동학혁명의 발단이 된 곳이기 때문이다. 멀쩡한 보를 놔두고 1892년 고부군수 조병갑은 농민을 동원해 만석보를 쌓고 받지 않기로 했던 수세를 징수하자, 이태 뒤 농민들이 관아를 습격하고 만석보를 때려 부수어버렸다. 동학혁명과 조병갑의 얘기는 정읍천과 고부천을 찾아 다시 올 날 ‘죽일 놈의 개나리’ 이야기 거리로 남겨 놓는다.


	메기 양식장에 넉넉한 산소를 공급하기 위한 수차가 활기차게 돌아간다.(정읍태인)
메기 양식장에 넉넉한 산소를 공급하기 위한 수차가 활기차게 돌아간다.(정읍태인)
호남평야의 호남, 한 서린 땅이름의 근저, ‘호(湖)’란 대체 어디를 말하는 것인가. 몇 가지 설 가운데 중국 양쯔강(楊子江)을 기준으로 후난(湖南)과 후베이(湖北)가 갈라지는 것에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 땅에서 ‘호(湖)’는 금강(錦江)을 뜻 한다는 게 맞다. 산맥만 해도 금강을 기준으로 금남·금북으로 큰 산맥이 갈리는 걸 보면 그렇다. 호남평야도 강경 용안에서 시작해 옥구평야, 만경평야, 김제평야로 이어져 있으니 곡창이 아닐 수 없다.

	갈대의 사열을 받으며 달려가는 길은 심심하지만은 않다.(정읍 태인)
갈대의 사열을 받으며 달려가는 길은 심심하지만은 않다.(정읍 태인)

동진강의 문인들, 한을 토하다

그저 민초들의 눈물 반 땀 반이 섞인 동진강을 두고 문인들이 한을 대신 토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동진강 강물은/ 바다로 흘러가지만 바닷물이 아니었다/
엉어리 진 가슴을/ 강물에 씻지도 못하고/ 바닷물에 씻지도 못하고/
늘상 누르뎅뎅하게 흘려보내야 했던/ 그 많은 세월들
(김민성의 ‘동진강 강물’ 일부)


	1 저물어가는 들판을 바라보며 자전거도 잠시 숨을 돌린다.(정읍 신태인) 2 만석보 부근, 곧 별이 떠오를 하늘이 시리게 푸르다.(정읍 신태인)
1 저물어가는 들판을 바라보며 자전거도 잠시 숨을 돌린다.(정읍 신태인) 2 만석보 부근, 곧 별이 떠오를 하늘이 시리게 푸르다.(정읍 신태인)

시인 신석정은 <동진강>을, 시인 안도현은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소설가 유영국은 장편<만월까지>, 아동문학가 김용재는 <나루터 마을> 등 헤아릴 수가 없다.

동진강의 끝자락에서 합류하는 신평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만나는 백산저수지는 소설가 윤흥길의 <완장>의 무대다. 스스로 완장을 차고 저수지 관리인이 되어 행세하는 종술에게 퍼붓는 술집작부 부월이의 일갈은 시대의 죽비보다 강렬하다.

“눈에 뵈는 완장은 기중 벨 볼일 없는 핫바리들이나 차는 게여, 자기는 지서장이나 면장 군수가 완장 차는 꼴 봤어? 완장하고 다니는 사장님이나 교수님 봤어? 진짜배기 완장은 눈에 뵈지도 않어! 권력 중에서 아무 실속 없는 놈들이 뿌린 뿌시레기나 주워 먹는 핫질 중에 핫질이 바로 완장인게여! 진수성찬은 말짱 다 뒷전에 숨어서 눈에 뵈지도 않는 완장들 차지란 말여!”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의 상징이 된 만석보(정읍 신태인)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의 상징이 된 만석보(정읍 신태인)

동진강의 막내, 계화도 계화벌

부량면을 지나 서해안고속도로 부안IC 근처에 이르면 동진강의 하구도 멀지 않다. 호남평야의 역사는 간척의 역사라는 말이 실감난다. 동진면과 죽산면의 양안으로 펼쳐진 너른 벌이모두 간척한 땅이다. 원래 동진강 하구는 바다가 침식한 하구곡(河口谷)이다. 만경강하구보다는 덜해도 해발로 따지면 -10m로 하상이 파여져 있다. 바닷물은 신태인 근방까지 들고 났었으니 그 아래 땅은 개펄이 염생습지가 되었다가 육지화된 평야다. 태인과 신태인 부근엔 상류에서 떠내려 온 흙이 퇴적된 해발 3~10m의 충적평야가 조성되었고, 주변에 채 50m를 넘지 못하는 구릉지들은 붙여먹기 딱 좋은 침식평야가 된 것이다.


	동진대교에서 바다로 향하다보면 원평천 합류점에 이른다.(김제 죽산)
동진대교에서 바다로 향하다보면 원평천 합류점에 이른다.(김제 죽산)

일제는 진작 동진강 하구 뻘밭의 효용까지 알아 봤다. 1924년에 동진수리조합을 결성하고 이듬해 미곡증산계획을 세운다. 김제 진봉들에 내달아 간척한 땅들은 그 이름마저 넓디넓은 ‘광활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섬진강에 운암제를 만들고 칠보발전소를 만든 것도 부족한 물을 확보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던 셈이다.

그 결정판이 개화도간척사업이다. 1965년 제1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의 큰 목표는 식량증산이었고 그 해결책을 개화벌판에서 찾았다. 전국의 부랑아들을 끌어모아 ‘국토건설단’을 만들어 그들의 땀으로 소금기 가득한 뻘을 옥토로 만들었다.


	원평천을 건너 광활면 간척의 바다로 가는 길. 새로 만든 다리는 아직 이름도 없다.(김제 죽산)
원평천을 건너 광활면 간척의 바다로 가는 길. 새로 만든 다리는 아직 이름도 없다.(김제 죽산)

동진면 초입의 장등리에서 23번 국도 동진교를 건넌다. 서포제방길로 들어서면 동진강 여행은 끝나고 원평천으로 접어든다. 그 초입이 김제 죽산면이다. 소설가 조정래는 <아리랑>에서 홍산리 내촌마을을 일러 ‘들은 흔하고, 산이 귀한 마을’이라 했다.

“참말로 기가 차시, 재주는 곰이 넘고 돈언 왕서방이 다 묵드라고 요것이 무신 꼴이여, 우리가 그리 피땀 흘리고 골 빠지게 일해 갖고 결국 왜놈덜만 조리 존일시켰으니, 원퉁히서 못살것네.”

영구소작권을 받을 요량으로 간척사업에 뛰어들었던 한기팔의 넋두리는 조선사람의 신세 한탄이다.


	때마침 ‘지평선 축제’ 중이다. 역시 농악경연이 있어 농경을 기반으로 한 축제답다.(김제 부량)
때마침 ‘지평선 축제’ 중이다. 역시 농악경연이 있어 농경을 기반으로 한 축제답다.(김제 부량)

지평선축제에 지평선이 안 보인다

원평천 강둑길이 만나는 첫 번째가 벽골제(壁骨堤)다.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과 국립김제청소년 농업생명체험센터가 들어선 것도 벽골제가 있기 때문이다. 조정래의 ‘아리랑문학관’이 자리한 것 또한 단 한 뼘이라도 제 논밭 뙤기를 갖고 싶은 민초들의 곤궁한 삶, 그 현장이기 때문이다. 지평선축제는 올해로 4년 연속 한국의 대표축제로 선정될 것이라고 자랑하는 축제다. 축제의 애드벌룬이 하늘높이 올랐다. 간밤의 화려한 불꽃놀이와 지평을 울리던 노랫소리도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한 아침이다.


	축제의 밤 하이라이트는 역시 대중가요 공개방송과 불꽃놀이다.(자료사진,김제 부량)
축제의 밤 하이라이트는 역시 대중가요 공개방송과 불꽃놀이다.(자료사진,김제 부량)

제천 의림지, 상주 공검지(공갈못), 밀양 수산제가 천년도 더 된 수리시설이라는 점에서 벽골제도 그 형제인 것은 맞지만 저수지인가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통상 저수지는 골짜기에 만들어져야 저수량도 많고 축조도 수월한데 벽골제 위에 올라서 보면 호남선 열차가 지나가는 끄트머리까지 넓은 벌판이 지나치게 펑퍼짐하다는 점도 의문의 한 단초다. 그래서 벽골제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이를 차단하기 위한 방조제의 역할을 한 것이 벽골제라는 설도 전혀 턱없지는 않다.

지평선축제에 지평선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일망무제의 지평선은 문학적 수사일 뿐이다. 눈길이 가물가물한 지점에 이르기 전에 시야가 끊어진다. 고속도로든 KTX든 고가노반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까닭이다.


	호남선 KTX가 지나는 들판, 고가교의 위용에 지평선은 희생되었다.(김제 봉남)
호남선 KTX가 지나는 들판, 고가교의 위용에 지평선은 희생되었다.(김제 봉남)

생존 작가 한사람이 두 개의 문학관을 가진 예는 흔치 않다. <태백산맥>의 무대인 벌교와 <아리랑>의 무대인 김제에 조정래 문학관이 들어서 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조정래라는 한 작가의 진지한 글쓰기의 노고는 단순한 땀의 경지를 벗어난다. 치밀한 구상과 현장을 스케치한 노트는 경탄과 존경의 댓글을 달 수 밖에 없다. 징게맹겡 외에밋들(김제만경 너른들)의 의미를 이 땅에 두루 알린 공은 결코 작지 않다. 100쇄 330만부 판매라는 <아리랑>은 누가 억지로 읽으라고 떠밀어 기록한 수치인가. 지평선이 끝 간 데 없던 시대에 아득한 지평선 너머까지를 탐했던 제국의 권력과 그 하수인들의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라 대설(大說)이다.


	동진강에도 물을 나눠주는 섬진강댐. 심한 가뭄으로 목이 탄다.(자료사진, 임실 강진)
동진강에도 물을 나눠주는 섬진강댐. 심한 가뭄으로 목이 탄다.(자료사진, 임실 강진)
그의 사상적 경향을 갸웃거리며 지켜보던 내 마음이 움직인 것은 영일만의 신화, <위인 박태준 전기>를 읽고서다. 그것도 살아있는 사람을 손자를 위한 위인전의 주인공으로 골랐다는 것은 위인에 인색한 이 땅의 풍토에서는 이단이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를 외치던 시대, 제철보국의 영웅에 대한 헌사이기에 감동은 더 진하다.

	들판마을에서 만난 아이들이 반갑다. 선글라스로 한껏 멋도 냈다.(정읍 감곡)
들판마을에서 만난 아이들이 반갑다. 선글라스로 한껏 멋도 냈다.(정읍 감곡)

계룡산을 닮은 산 모악산, 금산사

봉남평야를 지나면 원평천은 점점 가늘어져 소하천수준으로 바뀐다. 원평천의 최장발원지는 금산사를 품고 있는 모악산(母岳山) 서사면(西斜面)이다. 모악산(794m)은 전주와 완주의 진산이기도 하지만 해발 100m만 넘으면 산 대접을 받는 김제에서 영검한 산이 아닐 수 없다.

모악산이라는 유래가 엄뫼(큰 산)에서 유래한 한자 이름이라고도 하고, 산 정상에 아기를 안은 엄마 형상을 한 바위가 있다는 설도 있다. 금산사를 비롯한 사찰들도 있지만 증산도를 중심으로 한 50여개의 종파가 몰려 있어 ‘모악산하종교’라는 신종교용어가 탄생할 정도이다.


	원평천이 시작되는 화율저수지. 바닥이 드러난 김에 준설작업이 한창이다.(김제 금산)
원평천이 시작되는 화율저수지. 바닥이 드러난 김에 준설작업이 한창이다.(김제 금산)

강증산은 “신도안이 있는 계룡산이 수탉이라면, 모악산 계룡봉은 암탉이다.”고 했다. 금산사는 강증산과도 인연이 깊다. 민중의 구세주로 여기는 당래불(當來佛)인 미륵불이 있어 미륵신앙의 근거지 역할을 한다. 마흔도 못살고 스스로 생을 마친 강증산이 “나를 보고 싶으면 금산사 미륵불을 와서 보라.”고 했다니 말이다. 하류에서 거스르는 원평천 탐사여행은 모악산을 비켜 용호리를 지나 화율리 밤티재 아래에 올라서야 끝난다.

<참고자료>

1.<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한국의 지형산책2> 이우평, 푸른숲, 2007
3.<마이네임이즈 장연호> 장연호, 캣치리더스, 2013
4.<동진강, 천년의 물길에 깃든 삶과 이야기> 정읍시립박물관

<강둑길 동행>


	김용선(61)
김용선(61)

필자의 고교동창생이다. 그의 번뜩이는 기지와 유머에 웃다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대학시절부터 성우가 하고 싶어 문을 두드렸으나 기회가 오지 않은 채 사회로 나왔다. 두산에 근무하던 시절 크고 작은 행사의 사회는 그의 독무대였다. 카톡 하나에도 그의 문장은 재치와 웃음이 꽃등심의 기름처럼 행간에 녹아 있어 모두를 즐겁게 한다. 동진강 여행은 그가 운전까지 도와주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그도 이번 기회에 단 한 장의 사진이 탄생하기까지 어떤 노고가 담겨있는지 알았다고 했다. 정직한 자전거의 ‘페달 질’과 땀의 역학을 이해했을 것이다.

<강둑길에서 만난 사람>


	권형만(49)
권형만(49)
신태인에 낙향해 농사를 짓고 있는 회계학을 전공한 박사다. 정확히 말하면 고향에 농토를 지키고 있는 부모님을 외면할 수 없어 농사를 돕다보니 십 수년 세월이 흘렀다. 원가분석사 자격도 있어 소소한 일거리도 맡아 하니 반농인 셈이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장가도 들지 못했다. 독신이냐 물으니 펄쩍 뛴다. “올해는 마늘, 양파, 대파가 흉작여유. 그나마 오디, 복분자가 좋았고, 고구마 4만주가 잘 자라 다행이란게요. 들일을 하다가도 텍사스와 토론토의 대결에서 추신수가 안타를 쳤다고 환호할 수 있는 세상이니 참 좋아졌지요이.” 35만㎞를 달린 구형 그랜저가 아직도 쌩쌩하다고 자랑이다. 장가들 때나 새차를 뽑아야할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 줄도 안다.

	홍대용(40)
홍대용(40)

원평천 호남선 철교부근에서 만난 젊은이다. 김제시 양전동에 있는 전북 한우협동조합에서 사료공장일을 하고 있다. 휴일에는 한 번씩 원평천 강둑길을 타는데 오늘은 지평선축제장에 다녀오는 길이라 했다. ‘부탄의 왕자님’ 같다고 하니 환히 웃으며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가 있다고 자랑한다. “송아지 값이 너무 비싸단게요. 예전엔 150만원이면 샀는데 이젠 300만원이 넘으니께요. 그저 기업적으로 하는 사육농가나 가능할까.” 축산에 대한 걱정을 하는 모습이 사료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답다. “김제에 서지도 않는 KTX 때문에 지평선이 안보여 속상혀요. 서명도 받고 하드만 정읍이 가까워서 안된다네요.” 김제는 지평선을 먹고 사는 동네인데 아쉬운 표정이 역력하다.

<여행 만들기>

동진강과 원평천이 흐르는 호남평야의 서정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가을 황금들판을 달리는 것이 제격이다. 특히 매년 10월 초에는 벽골제 일원에서 ‘지평선 축제’가 열려 풍성한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호남선 김제역이나 신태인역을 이용할 수 있지만 차량지원조가 받쳐 준다면 편하다.

<음식점>

아, 옛날(김제 금산) 063-542-0199


	아, 옛날(김제 금산)
아, 옛날(김제 금산)

금산사로 들어가는 금산면 외곽에 있다. 오리주물럭 메뉴로 이 지역에서는 소문난 음식점이다. 김제가 오리사육의 주산지답게 생오리를 잘 양념해 풍미를 낸다. 홍어 몇 조각이 나오는 호남밥상의 여유도 함께 맛볼 수 있다. (오리주물럭 1마리 4만원, 3명이 넉넉하게 먹을 수 있다)

부안기사식당(부안읍) 063-584-3315


	부안기사식당(부안읍)
부안기사식당(부안읍)

부안읍 초입에 있는 기사식당이다. 아침 6시 반에 문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새벽일 가는 일꾼들이 속을 채우고 간다. 시골에서 일찍 문을 여는 음식점 찾기는 쉽지 않다. 가정식이란 말답게 누룽지까지 한 대접을 끓여내 헛헛한 속을 위로해 준다. 가정식백반 6000원

<숙박>

오페라모텔(부안) 063-581-6581~2


	오페라모텔(부안)
오페라모텔(부안)

부안읍내 초입에 있다. 동진강 여행을 위해서는 오히려 부안이 가깝다. 신축건물은 아니지만 특히 자전거여행자에게는 온돌에서 뜨끈하게 지지고 나면 피로가 싹 풀린다. ‘세탁기를 언제든지 이용하세요’라는 안내표지가 주인의 인심을 말해준다. 온돌방 4만원, 1인 추가 1만원

<교통편>

- 용산역 → 신태인역 무궁화1일12편(06:30분 첫차, 23:10 막차) 새마을2편(14:40, 18:37)
- 신태인역 → 용산역 무궁화1일12편(00:05분 첫차, 21:05 막차) 새마을2편(16:03, 20:05)
※무궁화호와 새마을호의 소요시간 차이는 20분에 불과
※기차예매 1544-7788

풍경에 건네는 말(44)   by 조용연

강둑길, 깨를 털며


	동진강 강둑길에서 자전거를 만났다. 나란히 세워진 자전거 2대, 하나는 세발자전거다. 더 이상 할머니도 자전거 뒷자리가 아니다. 두발 자전거로 장보러가던 할아버지도 더 이상 외롭지 않다. 깨는 소소한 행복의 상징물이다. 두발과 세발의 동행 앞에 무슨 수식어가 필요하겠는가.
동진강 강둑길에서 자전거를 만났다. 나란히 세워진 자전거 2대, 하나는 세발자전거다. 더 이상 할머니도 자전거 뒷자리가 아니다. 두발 자전거로 장보러가던 할아버지도 더 이상 외롭지 않다. 깨는 소소한 행복의 상징물이다. 두발과 세발의 동행 앞에 무슨 수식어가 필요하겠는가.

바람이 쉬엄쉬엄
오가다 넘겨 볼 뿐
우리 두 늙은이 뿐
이 강둑, 우린 정차 중

강둑이 흘러내린 날선 깨밭
우리 산 세월만큼 급한 비탈
바람 한 줌에도 견디기 힘든
마른 대궁으로 서서
마악 출산 대기 중

참깨 볶듯 살진 못했지만
참기름 숱해 짜고 만든 깨소금
깨 한 톨 젖은 땅에 떨어질라
남의 기름 한 방울 섞여들라
새끼들 입에 향이 될 어매 맛
거길 누가 넘볼 수 있다여

두발로 걸어온 길,
세발로 다가온 길,
이녁 옆에 세워두고 감빛 석양 맞으니
하나도 서럽지 않아 긴 그림자도
들기름 행세하는 세월까지
이제 보고 가는 판에


	한 서린 김제평야로 서진하는 강, 동진강

글·사진 조용연(여행작가, 前 울산지방경찰청장)
·1954년 경북 문경 출생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졸업
·경기 여주경찰서장, 서울 동부경찰서장(현 광진경찰서)
·경찰청 기획과장, 주중국대사관 참사관(북경)
·서울청 교통지도부장, 경찰청 경무기획국장
·충남지방경찰청장, 울산지방경찰청장
·현 에스원 감사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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