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티의 영혼으로 통하는 평화로운 길 위에서

글·사진 이남석 서울 성동공고 교사

입력 : 2016.02.22 10:28

까자에서 한세로 가는 몽환적인 길… 일행 자전거 고장으로 위기 맞아


	라하울ㆍ스피티의 길에서 만난 아이들.
라하울ㆍ스피티의 길에서 만난 아이들. 맑고 평화로운 이곳의 분위기가 아이들의 표정에서도 묻어났다.

히말라야의 풍경이 경이롭고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땅이 솟구치며 산이 생겼고 또한 강이 만들어지는 이치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자전거 여행 내내 우리는 각자 새기고 있는 감흥을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미루어보건대 감화의 크기와 맛이 다를 뿐, 심장으로 느끼고 가슴으로 소화시킨 감흥은 비슷했을 것이다.

아름다운 고원의 마을 나코를 떠나면서 라하울·스피티는 척박하고 황량한 히말라야 고원으로 바뀌어갔다. 기이한 옷을 걸친 도도하고 아름다우며, 색정적이며 신선의 기품을 닮은 히말라야 고원의 경치에 취해 갔다.

길옆의 작은 사원을 발견할 때가 있는데 이것은 앞으로 진행할 길이 매우 위험하다는 뜻이다. 대부분 운전자들은 잠시 차에서 내려 사원에 경배하고 떠난다. 신께 안전 운행을 비는 것이다. 사원은 힌두사원과 불교사원이 있는데 불교사원에는 타르초가 걸려 있다.


	나코를 지나며 펼쳐지는 전형적인 히말라야 계곡과 산 풍경.
나코를 지나며 펼쳐지는 전형적인 히말라야 계곡과 산 풍경.

우리가 가는 길은 앞으로 만나게 될 가장 높은 고개인 쿤줌라(Kunzum La)를 중심으로 양쪽 계곡으로 흐르는 강을 따라 가는 길이다. 강을 따라간다고 해서 쉬운 길은 아니었다. 나코를 지나자 낮 기온이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공기는 건조하고 빛은 강렬했다. 달리면서 주변 경치에 몰입하다 보면 얼마나 달렸는지 감이 오지 않았는데, 끼니때마다 위장에서 보내는 신호만큼은 틀림없었다. 그러니 오직 그 신호로 시간을 가늠했다.

레콩피오에서 구한 지도를 의지해 달렸는데 다행히 지도에는 작은 마을 표시가 잘되어 있었다. 쉬거나 식사해야 할 경우에 요긴하게 쓰였다. 우리는 여행 내내 망고주스로 갈증을 해결했다. 인도는 망고 산지라서 그런지 망고주스의 순도가 높아 마시면 갈증을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높은 당도로 에너지까지 얻을 수 있었고, 달리는 내내 우리 자전거의 물통걸이에 이 주스가 빠지지 않았다.

일행들은 이미 히말라야 고원의 날씨와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육체가 이미 땅과 하늘에 밀착되어 완벽하게 적응된 상태였다. 출발할 때는 열을 이루어 일정한 간격으로 달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간격을 벌리고 혹 늘리면서 자유롭게 달렸다. 히말라야의 풍경은 어딜 가나 비슷한 것 같지만 또한 다른 점이 분명 있었다. 우리는 그걸 찾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고원의 온도와 습기, 빛과 하늘과 땅이 만들어내는 색 속으로 동화했다.


	따보를 출발하여 라하울ㆍ스피티의 중심도시인 까자를
따보를 출발하여 라하울ㆍ스피티의 중심도시인 까자를 향해 달리는 대원들.

	스피티의 곰파.
스피티의 곰파. 곰파란 사원이란 뜻이다.

강 양쪽으로 높게 치솟았다가 고원을 이루는 라하울·스피티의 경관은 소박하면서 깊고 산뜻했다. 김시우씨는 늘 선두에 섰으며 고인수씨와 조성현씨가 그 뒤를 따랐다.

타보에 도착하기 직전 날이 저물어 작은 마을에서 묵었다. 레스트하우스 지배인에게 차 대접을 받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말을 섞어 보니 그는 자기 자랑할 만하고 포부가 큰 사람이었다. 말을 이어가던 중 술 얘기가 나오자 김시우·이홍섭씨가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이런 오지에 술이 있을까 했는데 이곳 사람들은 여기서 나는 곡식을 이용해 술을 빚는다고 했다. 결국 지배인에게 부탁해 이 지방 토속주를 구입했다. 술 맛을 모르는 내가 김시우씨에게 어떤가 물으니 별다른 특색이 없다고 한다. 히말라야 여행 중 토속주를 마셔본 경험은 실로 처음이었다.


	조성현 대원의 자전거 허브축이 부러져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조성현 대원의 자전거 허브축이 부러져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고칠 방법이 없어 조 대원은 까자까지 차로 이동했다.

	자전거를 세워 잠깐 쉬는 동안 아이들이 신기한 듯 만지고 있다.
자전거를 세워 잠깐 쉬는 동안 아이들이 신기한 듯 만지고 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짐을 챙겨 따보로 출발했다. 날은 쾌청하고 공기는 식었지만 해가 뜨자 곧바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뜨겁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무더운 것이 아니라 ‘따끈따끈하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았다. 낮은 구름은 봉우리와 호응하고 검은 언덕은 그림자와 함께 산과 평원을 달렸다. 내 발은 페달 위에 있지만 달리는 곳은 땅이었다.

점심때가 조금 넘어서 따보에 도착했지만 더 진행하지 않고 하루 머물기로 했다. 마을 분위기가 아름답고 따뜻했으며 무엇보다도 라하울·스피티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따보사원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원의 외벽은 최근에 다시 흙을 바른 흔적이 있지만 기둥이나 내부의 벽화를 봤을 때 굉장히 오래 된 사원임을 알 수 있었다.

인도에서 온 고승들이 머물며 포교와 역경사업을 했던 곳으로 인도와 티베트의 중간 요지에 따보사원을 세운 것이다. 그러니 이 사원이 왜 그토록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일행들은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 따보사원을 순례했다.

늦게 숙소로 돌아와 쉬는데 밖에서 누가 우리 방문을 두드렸다. 따보사원의 승려였다. 그는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걸 확인한 후 물건 하나를 건네주었다. 김시우씨의 휴대전화였다. 바로 전 김 선생이 사원 마당의 벤치에서 휴식하던 중 놓고 온 것이다. 사원의 승려는 한국 사람의 휴대전화라는 걸 확인한 후 근처 게스트하우스를 모두 수소문해 마침내 김 선생을 찾은 것이다. 김 선생을 비롯해 우리 일행 모두는 따보로부터 작은 울림 한 올을 얻었다.


	까자에서 한세로 가는 길.
까자에서 한세로 가는 길. 이곳부터는 티베트 고원과 비슷한 기후와 풍경이다.

우리의 가장 큰 고민은 때가 되면 무엇으로 끼니를 때울까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각자 가져온 식량이 있어 대부분 그걸로 식사를 해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각자 가져 온 식량도 바닥나고 결국 현지에서 해결해야 했다.

오지 여행에서 가장 큰 고민은 뭘 먹고 어디서 자느냐다. 라하울·스피티 지역은 비록 오지이지만 마을이 촘촘히 있고 마을마다 가게와 레스트하우스, 또는 다바가 있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면이나 수프, 또는 라이스요리 같은 음식도 쉽게 사먹을 수 있다. 다바는 운전자나 여행자를 위한 간이 숙소다.

실질적으로 이 지역을 다스린 사람들은 티베트인들이었다. 때문에 전통을 숭상하고 물질적인 것을 멀리하려는 티베트인의 생활방식은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부질없는 생각은 길 위에 떨어지고, 설산은 저만치 있었으며 구름은 한가로웠다. 나는 페달을 돌리는 것이 즐거웠다.

마을은 단순하고도 소박했다. 사람들은 모여도 소란스럽지 않았으며 작은 시장이라 해도 풍속과 실상을 짐작할 수 있었다. 깊고 가벼운 하늘빛이 온 땅을 덮었지만 땅은 크고 넓어보였다.

자전거 고장으로 여행 중단 위기를 맞은 일행

우리는 달리는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길은 구부러졌다가 펴지기를 반복하며 높이 오르고 내려가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말은 생각을 전달하는 그릇이지만 너무 자주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여행에 방해가 되었다. 일행들은 무리하지 않고 체력을 조절하면서 자전거 페달을 돌렸다. 몸의 에너지를 분배하고 여행의 감흥을 거두어들이며 그 느낌을 보전하는 것은 일행들 각자의 몫이었다.

이제 일행들은 언덕을 오를 때도 가볍고 부드럽게 올라간다. 출발 당시와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모두 달리는 내내 주변 환경과 경치에 흠뻑 빠졌으며 지역과 마을의 풍속에 잘 동화되어 갔다. 연이어 펼쳐지는 산맥과 평원은 나무와 풀이 자라지 않는 황무지였다. 작은 마을이라도 나타나면 우리는 자전거를 세워놓고 가게부터 찾았다. 수통에 망고주스를 채우고 간식을 먹었다.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기도 했으며 혹 멀리 뵈는 길을 헤아리면서 우리가 앞으로 갈 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한세로 가는 길에 만난 마을.
한세로 가는 길에 만난 마을. 들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밭일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는 스피티의 여인들.
밭일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는 스피티의 여인들.

다섯 명의 자전거 바퀴는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쯤 갔을까, 갑자기 조성현씨가 브레이크를 잡더니 자전거의 페달이 역회전이 안 된다며 멈춰 섰다. 일상적인 변속기 장애라 생각해 자전거를 뒤집어놓고 조심스럽게 변속기를 정렬했다. 다시 동작을 시켜봤으나 허사였다. 결국 프레임에서 바퀴를 분리한 후 스프라켓을 점검할 요량으로 프리보디에서 스프라켓을 분리하자 깜짝 놀랐다. 프리보디가 허브 축에서 그대로 떨어져 나왔다. 말하자면 허브의 중심축이 부러진 것이었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다른 고장은 어떻게든 손을 써 볼 수 있겠지만 이건 손을 쓸 수 없다. 일행들 각자 의견이 분분했지만 팀의 정비사인 나로서도 아무 방법이 없었다. 어쨌거나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결국 까자까지 가서 거기서 해결하기로 했다. 까자에 도착하면 자전거 숍에 들러 바퀴를 구해서 달아 나머지 구간을 달리자고 했다.

궁여지책이었다. 실현 가능성도 희박했다. 이런 히말라야 오지에서 까자가 아무리 큰 도시라 해도 휠을 수리하거나 살 수 없는 것이 거의 확실했다. 거기서 일반용 휠이라도 구해 임시로 달고 나머지 구간을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지나가는 차를 세워 부서진 자전거를 실었다. 졸지에 자전거가 고장 나 중간에 여행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 처한 조성현씨는 망연자실했다. 사나흘 후 쿤줌라만 넘으면 여정을 마무리를 할 수 있는 상황인데 자전거 고장으로 중도 포기해야 하니 나 역시 리더로서 난감하고 힘들었다. 결국 까자에서 만나기로 하고 우리는 자전거로 그 뒤를 따랐다. 구름은 낙낙하고 빛은 평등했으며 사방은 개활과 협소를 반복했다.

꿈과 현실 뒤바뀌게 할 정도로 몽환적 분위기

까자에 도착하자 자전거 숍부터 찾았다. 중고 휠이라도 구해 볼 요량이었다. 기대는 허물어졌다. 이런 히말라야 외진 도시에 고급자전거에 들어갈 부품을 파는 가게가 있을 리 없었다. 낙담한 우리는 조 선생을 위로하며 일단 숙소를 결정하고 어떻게든 자전거가 굴러갈 수 있도록 손써보기로 했다.

까자는 아름답고 소박한 면이 있었다. 흥청거리는 것 같으나 고원 한편에 외롭게 서 있는 수행자를 닮은 도시였다. 며칠이고 머물고 싶은 도시였는데 파미르고원을 넘을 때 무르갑에 머물렀던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다감하여 인사말을 건네는 것으로 감정을 섞고, 눈을 부딪치는 것으로 교감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고도를 낮춰 강가를 따라 다음 마을인 따보로 가는 대원들.
고도를 낮춰 강가를 따라 다음 마을인 따보로 가는 대원들.

	까자로 가는 길 옆으로 성벽 같은 능선이 이어진다.
까자로 가는 길 옆으로 성벽 같은 능선이 이어진다.

대로변이 보이는 곳에 숙소를 정하고 다시 조 선생의 휠을 점검했다. 다른 자전거와는 조금 달라 단단하게 고정시켜 봤다. 그러자 프리보디가 휠 본체의 허브에 물리면서 평지에서만큼은 뒤로 페달을 돌리지 않는 이상 앞으로는 굴러갈 수 있었다. 비록 임시지만 자전거를 탈 수는 있으니 정말 불행 중 다행이었다.

까자를 출발하기 전 나는 스피티사원을 들를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지나칠 것인지를 일행들과 충분히 상의하지 못했다. 삼거리에 도착해서 결정하기로 했다. 마침내 산만한 물길이 모이는 입구에 이르자 스피티사원으로 가는 길과 쿤줌라로 가는 길이 갈라져 있었다. 결국 나와 이홍섭씨만 스피티사원을 들르기로 하고 나머지 일행은 한세에서 만나기로 기약했다.

스피티사원까지는 왕복 14km가 넘는 길이었다. 강을 따라 구릉의 중턱을 달리다가 곰파(사원)가 있는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길은 다시 한참을 위로 올라갔다. 스피티사원은 이 지역에서는 가장 큰 곰파고, 이 지역을 여행할 때 반드시 들러야 할 곳으로 여행서에 소개되어 있어 관광객도 제법 많았다. 대부분 유럽 사람들로, 동양인은 우리뿐이었다. 본당에 이르니 승려들이 학습 중이었는데 한 승려가 앉아서 공부하고 있는 승려들에게 차를 따르고 있었다. 각자의 얼굴 표정은 형용하기 힘들었으나 그 자세는 엄숙하고 반듯했다.

스피티 곰파를 내려오자 하늘을 채웠던 구름이 점점 엷어지기 시작했다. 고원은 평화로웠다. 히말라야의 노래가 어디서 발원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여기 어디쯤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스피티 곰파(사원)의 동자승들
스피티 곰파(사원)의 동자승들

	인도 라하울·스피티 자전거 여행 루트도

까자로부터 이어진 평원은 매우 넓었다. 평원은 5,000m급 산줄기 사이에 있지만 좌우가 워낙 넓어 마치 사방이 개활해 끝이 없는 것 같았다. 큰 산맥에 노을을 덮은 듯 봉우리와 구릉, 이어지는 산줄기의 색은 그 신묘함이 내게 어떤 형용도 허락하지 않았다.

까자로부터 한세로 가는 길은 ‘스피티의 영혼으로 통한다’고 말해도 결코 과한 표현이 아니었다. 더 이상 큰 계곡은 나타나지 않았으며 평균 고도가 3,700m로 가감 없이 고원의 특색 그대로 펼쳐졌다.

스피티 곰파에서 얻은 것이 아직도 두드리고 깨우는 바가 심했지만 점차로 평온해졌다. 원래 의문은 의문에서 일어났다가 의문으로 없어질 뿐이다. 바라고 원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주관의 언덕에 머무는 이상 그것은 아무 쓸모없는 것들이니 관념의 흥기와 침잠이 그 예다. 한세로 가는 길은 라하울·스피티 여행에서 가장 격렬하게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기억을 일깨우며 꿈과 현실을 뒤바뀌게 할 정도로 몽환적인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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