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숨 막히는 다큐멘터리를 어느 극장에서 볼 수 있겠는가!

글·사진 이남석 서울 성동공고 교사

입력 : 2016.03.16 13:27

4,335m 쿤줌라와 3,820m 로땅라 넘어 마침내 마날리 도착


	로땅라 고개를 넘어 30km가 넘는 긴 내리막을 달리는 대원들.
로땅라 고개를 넘어 30km가 넘는 긴 내리막을 달리는 대원들. 내리막이 끝나는 곳에 여행의 종착지인 마날리가 있다.

오후 빛이 강해질 즈음 한세에 도착했다. 마을은 참 쓸쓸하고 아름다웠다. 열 가구 내외가 사는 작은 마을임에도 오래된 전설이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우리는 여기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양치기가 머물렀을 법한 풀밭에 터를 잡았다. 대원들이 텐트를 치는 동안 저녁식사에 필요한 감자를 얻기 위해 농가를 찾았다. 주인을 부르자 한 늙은 농부가 나왔다. 농부가 내 말을 이해하는 데까지 어지간히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집 안으로 들어간 농부는 한참만에 나왔는데 나는 깜짝 놀랐다. 감자 서너 개만 달라고 했는데 어지간히 큰 자루에 감자를 가득 넣어 나온 것이다. 감자를 받아들고 나오면서 때 묻지 않은 히말라야 오지에서 사사로운 이익만 추구했던 내 마음이 절로 걸러지는 걸 느꼈다.

취사를 위해 버너를 동작시키던 김시우 대원이 갑자기 멈췄다. 10년 넘도록 고장이 없었다던 버너가 탈이 난 것이다. 추측컨대 여행 내내 정제가 제대로 되지 않은 휘발유를 쓰다 보니 노즐이 막힌 것이다. 다행히 다른 대원의 버너는 아직 온전했다.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건 허브가 부러진 조성현 대원의 자전거 뒷바퀴가 그런대로 잘 굴러간다는 점이었다.


	4,000m가 넘는 고개인 쿤줌라를 넘어 내리막길로 접어든 대원들.
4,000m가 넘는 고개인 쿤줌라를 넘어 내리막길로 접어든 대원들. 압도적인 히말라야의 풍광에 취해 긴 내리막에 몸을 맡긴다.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검은 구름이 다가왔다. 다행히 우리가 있는 곳은 해가 났지만 한 치 건너서는 비가 내렸다. 얼마 뒤 비가 멈추고 큰 무지개 두 개가 평원을 가로질렀다. 해가 지자 바위와 흙의 온도가 내려가고 바람은 방향을 알 수 없는 파도를 만들어 하늘의 기운을 온 땅에 흩뿌렸다. 시간은 텐트 밖에 있었지만 히말라야의 검은 밤에 파묻힌 우리는 깊은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출발 전 하늘이 무척 어두웠다. 구름은 두꺼웠으며 흙 색깔은 탁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쿤줌라를 오르는 날이었다. 우리는 무릎에 얹힌 바람의 기운과 심장의 고동으로 동력을 삼았으며, 뜨거운 기운으로 뇌를 구동해 히말라야의 고유한 숨소리와 노래를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

해가 정가운데에서 한 뼘 정도 기울었을 때 쿤줌라 정상에 도달했다. 고개를 오르는 동안 조성현 대원의 자전거가 말썽을 부렸지만 손을 본 뒤로는 아무 문제없이 올랐다. 구름이 두꺼웠지만 비는 내리지 않아 힘이 덜 들었다. 다들 감개무량하여 여행이 끝난 듯 즐거워했다.

특히 조성현 대원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부러진 허브를 오직 QR(Quick Release)로 버티며 여기까지 타고 왔으니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정상에는 힌두 사원과 불교식 스투파가 나란히 있었다. 타르초(부처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한 오색 깃발)는 한 방향으로 팔을 휘젓고 있었다.

각자 그동안 달려 온 길과 그 기억들을 심장에 저장하는 의식을 거행했다. 비록 그것이 누구나 할 수 있는 형식적인 것들에 불과하지만 도연명이 귀향하며 귀거래사를 읊듯 우리도 각자의 마음에 여행의 끝을 만끽하는 감격의 노래를 담았다. 이제 힘든 여정은 거의 마쳤다고 볼 수 있었다. 나는 모두에게 고맙고 또 고마울 뿐이었다.


	이번 자전거 여행에서 가장 높은 지점인 4,335m 쿤줌라 고개 정상에 선 대원들.
이번 자전거 여행에서 가장 높은 지점인 4,335m 쿤줌라 고개 정상에 선 대원들.

	한세마을 어귀에서 야영을 위해 텐트를 치고 있다.
한세마을 어귀에서 야영을 위해 텐트를 치고 있다.
날아간 그람푸에서의 편안한 밤

바로 내리막인데 그 정도가 심상치 않았다. 고개에서 바라보이는 산은 모두가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하늘 반쪽을 막아버릴 정도로 우람한 산줄기는 오직 눈높이에서 좌우로, 혹은 북에서 남으로 흘러내렸다. 길은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계곡은 강을 따라 뻗어나갔다. 달리는 내내 과연 이 길이 얼마나 가다 다시 위로 치솟을까 근심까지 들었다. 날은 이미 저물기 시작하고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했다.

히말라야에서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길은 모두 급경사를 갈지자로 파서 만든 것이다. 그래야만 사람과 차가 다닐 수 있는 경사가 되기 때문이다. 페달을 밟지 않았는데도 자전거는 중력의 힘으로 저절로 굴러가기 때문에 자칫 주변 경치에 취하여 앞을 보는 데 소홀히 할 경우 어디서든지 사고가 날 수 있으니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마침내 내리막을 다 내려와 강 건너 바탈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 트럭 운전수와 여행자를 위한 다바(휴게소)가 있었다. 석축을 쌓은 다바에서는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고 안에는 다른 여행자들도 있었다. 우리는 여행을 모두 끝낸 느낌이었다.

다바 앞에는 쿤줌라 주변으로부터 모인 물이 큰 강을 이루며 흘렀는데 물소리가 엄청났다. 먼저 도착한 유럽의 오토바이 여행자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다바 반대편에 있는 거대한 물탱크같이 생긴 원형 돔에 방을 정했다. 조 대원은 고장 난 자전거를 타고 여기까지 온 게 자랑스러운 듯 계속 화제를 바꾸며 분위기를 흥겹게 했다. 나는 조금 피곤했지만 하룻밤 야영하지 않고 푹 쉴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안했다.


	위 트럭 운전수와 여행자를 위한 숙소인 다바에서 만난 할머니와 손자.
위 트럭 운전수와 여행자를 위한 숙소인 다바에서 만난 할머니와 손자.
다바의 주인은 능숙한 솜씨로 음식을 만들고 차를 끓였다. 날씨는 점점 추워졌다. 자리에 누웠지만 한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문정고교 물리교사인 이홍섭 대원은 내일 그람푸에 도착하자마자 게스트하우스를 찾고 뜨끈한 물에 목욕부터 하자고 했다. 내가 먼저 하고픈 말이었다. 모두 오늘의 감동을 소중히 간직한 채 잠이 들었다. 밖에는 눈이 내리는지 사각사각 이상한 소리가 들렸지만 곧이어 바람소리에 묻혔다. 여행은 하나로부터 하나를 얻어내는 도구일 뿐이지만 나는 아직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아침식사 후 오늘 여정을 정했다. 스피티계곡을 지나서 로땅라로 오르는 길목에 있는 그람푸마을까지다. 그람푸에서는 게스트하우스나 레스트하우스, 아니면 다바에서 머물기로 했다. 모두 동의했다. 우리가 여행의 말미에 와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대오를 정비한 후 동시에 출발했다. 길은 개울을 따라 이어졌으며 우리는 그 길을 따라 내려갔다. 구름이 꽉 찬 하늘은 종일 파란 하늘을 보기가 힘들 것 같았다. 서서히 히말라야를 벗어나고 있다는 증거였다. 우리는 여행 말미의 느긋함과 축축한 몬순의 기운을 동시에 느끼며 페달을 밟았다. 조성현 대원은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자전거를 가혹하리만치 몰았다. 자전거 주인도 아닌 내가 걱정이 될 정도였다. 다들 힘들었지만 그 대가는 아름다웠다. 라하울·스피티는 힘들게 여행할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는 곳이었다.
풍경은 아름답고 단아하며 지루하지 않았다. 때로는 카라코룸의 검은 바위를 연상시키는 봉우리가 나타났다가 백마의 휘날리는 갈기를 연상케 하는 눈 덮인 봉우리가 연속적으로 나타났다. 구름을 등에 업은 푸른 하늘은 소화제처럼 갑갑한 시야를 뚫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이 시시로 변하고 화하니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시도 눈을 돌리지 못하게 했다. 이런 숨 막히는 다큐멘터리를 그 어느 극장에서 실감나게 볼 수 있겠는가.

빙하와 눈이 녹아 계곡으로 치달은 물줄기는 쿤줌라로부터 달려온 큰 강과 합류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직공이 마음 가는대로 짠 천을 널어놓은 듯 자연스러웠다. 경치는 기묘하면서도 신비했으며 자연 그대로였다.

바탈에서 강을 따라 로땅라 직전까지 가는 길은 의외로 길었다. 물줄기를 바라보며 시를 읊조리기도 했으며, 문득 나타난 푸른 하늘 한 조각에 의지해 지나온 히말라야 깊은 고원을 떠올리기도 했다.

오르막이 시작되자 직감적으로 로땅라 입구에 왔다는 걸 알았다. 이제 이 고개가 우리 여행의 마지막 고개였다.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해 때를 분간하기가 힘들었지만 시계를 보니 오후 4시를 넘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람푸는 보이지 않았다. 서두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해가 지기 전 그람푸에 도착해 숙소를 정하고 싶었다.


	미소가 싱그러운 마날리의 여인들과 아이들.
미소가 싱그러운 마날리의 여인들과 아이들.
오르막은 다시 내 심장 근육을 강렬하게 이완시키고 수축시키기를 반복했다. 숨을 헐떡거리는 것이 불규칙했지만 대기 중의 산소를 먹어치우는 허파는 화산처럼 꿈틀거렸다. 이따금 빗방울이 비치기도 했지만 큰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람푸에 다가가면서 기대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따뜻한 방에서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고 여행을 편안하게 끝내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여유롭게 마날리로 입성하자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계곡을 빠져나오면서 반신반의했다. 이 지역을 자전거로 여행하면서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마을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는 희망을 품은 채 페달을 돌렸다.

오르막을 오르는데 앞에 가던 김시우 대원이 멈추더니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여기가 그람푸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레(Leh)로 이어지는 삼거리에서 기다리다가 도로작업을 하던 사람들에게 물으니 여기가 바로 그람푸라고 했다는 것이다. 주변은 도로 보수작업을 하는 인부들이 거처하는 임시 막사와 텐트, 자재를 넣어두는 창고가 전부였다.

사실 그람푸는 레 방향으로 더 내려가야 했다. 하지만 진이 빠진 대원들을 데리고 다시 내리막을 달리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게 되면 내일 아침 내려간 오르막을 다시 올라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야영을 결정했다.


	바탈에서 로땅라 입구까지 가는 길.
바탈에서 로땅라 입구까지 가는 길. 강을 따라 난 드넓은 길을 달린다.

성치 않은 자전거와 몸을 이끌고 로땅라를 넘다

다음날 우리는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점검한 후 로땅라를 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한세에서 밤에 다섯 번이나 일어나 설사를 했고, 그 이후로 몸 상태가 매우 열악했다. 아침에 일어났지만 몸은 큰 돌을 매단 듯 무거웠다. 속은 텅 비었지만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아침식사로 꿀물 한 컵이 전부였다. 오르막 1km 정도를 지나자 몸에서는 열이 나고 허파는 터질 것 같았으며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나를 움직이는 것은 과거의 힘이었다. 이보다 더한 상황에서도 페달을 돌린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아 뱃가죽은 이미 등에 붙어 있었다. 아마 여행 초반이거나 중간이었다면 어떻게 해서든 아침식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개만 넘으면 여행은 끝나기 때문에 꿀물만으로 버텼다.

2시간을 더 오르자 마침내 로땅라 정상에 올랐다. 김시우 대원과 내가 도착하고 뒤이어 나머지 대원들이 도착했다. 때마침 하늘을 덮었던 안개와 구름이 벗어지면서 고개 정상에 걸려 있는 오색의 타르초가 범선의 돛처럼 펄럭거렸다. 나는 타르초에 이마를 댄 후 안전하게 여행을 인도한 신께 기도를 드렸다.

나는 종종 히말라야를 바다에 비유하곤 했다. 평온과 격랑이 공존하며 굽이침과 끝없음이 동행했다. 사람의 근성을 개조하기도 하며 때로 유인하다가는 끝내 그 심장 안으로 밀어 넣기도 했다. 검은 밤을 집어삼키는 마력이 있으며 빛나는 태양과 창공을 아우르기도 했다. 엄숙한 신심을 내뿜기도 했으며 우주의 기운을 모아 단 한 번에 만물의 본성을 창조하거나 움직이게 했다. 그러니 나는 바다를 볼 때와 히말라야에 발을 담글 때는 그 성정의 흐름이 동일했다.

고개에서 레로 가는 자전거 여행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3년 전 갔던 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멋도 모르고 인도행 비행기를 탔던 것 같다. 여기서 레까지는 우리가 이번에 돈 코스의 배 이상을 가야 하며, 이번 여행에서 가장 높은 고개가 쿤줌라(4,335m)지만 레로 가는 길에서 해발 4,000m는 평지에 불과하다.

라하울·스피티는 나름대로 히말라야 고원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곳이었다. 오히려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지역이라 한적하고 고요했으며 현지인의 사는 모습 또한 질박하고 깨끗했다.

로땅라 정상에서 충분한 휴식을 하고 난 후 우리는 천천히 30km가 넘는 내리막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끝없는 내리막의 연속이었다. 예전에 내가 이 길을 자전거로 올라왔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얼마 안 가서 조 대원의 자전거 뒷바퀴에 또 이상이 발생했다.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자전거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급히 자전거를 세우고 살펴보니 뒷바퀴의 스포크(자전거 살) 한 개가 부러져 있었다.
위험할 수도 있었지만 마지막에 여행을 포기할 수 없으니 내가 뒤에서 바퀴를 관찰하면서 그대로 마날리까지 가기로 결정했다. 위태롭게 달리는 조 대원이 염려스럽기도 했지만 페달에 힘을 주지 않아도 그대로 달리는 내리막인데다가 스포크도 하나만 부러져 주행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이 다행 중 다행이었다.


	인도 라하울. 자전거 여행 루트도
여행은 이성과 감성을 녹여 ‘인생’이라는 천을 짜는 과정

마날리에는 비교적 일찍 도착했다. 해발 1,000m가 넘는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히말라야가 시작되는 곳이기에 몬순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인도 대륙으로부터 달려온 습한 공기가 비로 쏟아지다 보니 열대우림 속에 들어앉은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여행했던 라하울·스피티 지역과는 너무 달랐다.

우리는 그동안의 피로를 풀면서 이틀 정도를 머물다 버스로 다람살라를 들러 델리로 들어왔다. 여행은 이성과 감성의 전부를 녹여서 인생이라는 천을 더욱 화려하게, 때로는 담백하면서도 촘촘하게 짜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모두들 함께 감동하고 어려움을 넘었으며 그 흥분을 각자의 마음에 담았다. 대원들은 이번 여행 내내 각자 헌신적인 역할을 다했다.

어려운 코스에서 항상 앞에서 대원들을 이끌며 취사와 야영을 지휘한 김시우 대원, 많은 자전거 여행경험을 토대로 여행 일정을 조율한 이홍섭 대원, 묵묵히 모두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면서 조언을 아끼지 않은 고인수 대원과, 바퀴 축이 부러지고 스포크가 깨지는 등 거의 불가능한 라이딩을 의지와 슬기로 돌파한 조성현 대원 등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연재 끝>

라하울ㆍ스피티 자전거 여행 정보

A. 자전거와 짐받이, 페니어는 내구성 좋은 것으로 준비한다.
B. 자전거 공구 외에 자전거 각 부분에 들어가는 나사를 여분으로 준비한다.
C. 취사도구로 휘발유버너와 코펠을 준비한다.
D. 텐트와 침낭은 초겨울용으로 준비한다.
E. 가벼운 초겨울 방한복과 비상약(소화제, 지혈제, 지사제, 진통제)을 준비한다.
F. 출국할 때는 자전거를 분해해(바퀴, 프레임, 구동계) 박스로 포장한다.
G. 귀국할 때는 완전히 분해해 큰 가방에 넣는다.
H. 델리에서 캐시미어게이트 버스정거장으로 이동한다.
I.  심라로 가는 버스를 탄다. 볼보 버스를 타면 편하게 갈 수 있다.
J. 심라에서 자전거로 출발해 레콩피오에서 허가서(In Line Permit)를 발급받는다.
K. 마날리까지의 길은 외길임.
L. 마날리에서 델리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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