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과 수락 사이로, 갈꽃이 아름다운 서민들의 강

바이크조선

입력 : 2016.05.03 15:40


	도봉과 수락 사이로, 갈꽃이 아름다운 서민들의 강
중랑천은 익숙한 이름이다. 홍수가 나면 제일 먼저 차단되는 둔치, 도심으로 들고 나는 동부간선도로의 차량정체도 묵묵히 이겨내는 강, 이른 새벽 에어로빅으로 하루를 여는 서민들의 놀이터가 강 따라 마을마다 펼쳐져 있다. 일찍이 서울의 동부외곽은 모두가 양주 땅이었다. 오늘날 노원구의 전신은 양주군 노해면(蘆海面)이었다. 갈숲이 얼마나 넓었으면, 갈꽃이 얼마나 지천으로 눈부셨으면 갈대의 바다라 했을까. 중랑천이 있어 서울의 동쪽을 흐르는 물은 도봉, 수락, 불암 사이에 넉넉하게 안겨 한강으로 향한다.

	의정부가 접적지역에 가까운 전방이란 것은 대전차 용치(용이빨 모양의 장애물)에서 느껴진다.(의정부 장암)
의정부가 접적지역에 가까운 전방이란 것은 대전차 용치(용이빨 모양의 장애물)에서 느껴진다.(의정부 장암)

경원선 덕계역에서 남서쪽으로 보이는 불곡산(466m)은 한 눈에 보아도 예사롭지 않다. 양주의 진산이 될 충분한 자격이 있는 뒤태다. 자전거로 나서는 전철역 앞은 들판 길과 시냇물이 그야말로 휘 감돌아 나간다. 중랑천의 시발이 바로 불곡산 아래 찬우물개골 마을이다. 산북동으로 가는 3번 국도는 깎아대고 밀어내서 분수령조차 희미하다.

한북정맥이 흘러내리다 도봉과 북한산으로 이어지기 직전에 발끈 솟아올라 양주 땅을(옛 주내읍)을 내려다본다. 불곡산의 또 다른 이름이 상투봉을 품고 있는 불국산이다. 부처가 있는 골짜기라면 거기가 불국토 아니겠는가.


	도봉과 수락 사이로, 갈꽃이 아름다운 서민들의 강

중랑천, 양주 불곡산에서 출발하다

불곡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중랑천은 냇가에 들어선 집과 공장들로 어수선하다. 원래 중랑천은 대나무 잎이 나뭇가지에 부딪는 소리를 일러 ‘죽랑’ (竹浪)이라 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짧은 여정을 산북교에서 출발한다. 개천 둑으로 들어서자 언제 소란스러웠냐는 듯이 적막하다. 수도권 전철의 경원선 종점인 소요산으로 가는 열차가 정적을 가른다. 무리를 지어 자전거 길로 달리는 사람들의 이정표도 덕계, 덕정을 지나 동두천, 소요산까지다.

겨울 자전거타기의 가장 큰 적은 추위가 아니다. 얼어붙은 빙판이 주적(主敵)이다.


	중랑천은 불곡산 아래 산북교에서 본격적인 출발이다.(양주시 산북동)
중랑천은 불곡산 아래 산북교에서 본격적인 출발이다.(양주시 산북동)
추위쯤은 가벼운 복면 한 장이면 해결된다. 모두들 얼굴을 가렸다. 미라처럼 얼굴을 싸맨 사람들의 질주는 얼마 전 서울 한 복판에서 벌어진 복면시위와 오버랩 된다. 확신에 차 있으나 당당하지 못한 복면, 가면의 익명성에 숨은 고집은 폭력과 친한 오만이다. 당장 국회에서 야당에게 발목 잡힌 ‘복면금지법’은 무력하다. 이 겨울 자전거의 복면은 자연에 대한 방어이지만, 광화문의 복면은 세상에 대한 공격이다.

	구석말 좁은 골짜기에 들어선 주택과 가게들로 어수선한 중랑천(양주시 마전동)
구석말 좁은 골짜기에 들어선 주택과 가게들로 어수선한 중랑천(양주시 마전동)

부대찌개가 태어난 의정부

양주 백석 꾀꼬리봉에 내린 비는 서쪽으로 흐르면 공릉천으로, 동쪽으로 흐르면 어둔천을 따라 의정부 녹양지구에 못 미쳐 중랑천에 합류한다. 양주는 도봉의 웅장한 등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다.

철원에서 흘러내리던 한북정맥은 불곡산에서 한번 숨고르기를 하고, 사패산(552m)에서 뜀틀의 반동을 받아 단숨에 도봉(740m)에 올라탄다. 철원 김화 쪽에서 내려오던 포천 왕방산(737m) 줄기도 소흘읍을 지나면서는 300m대의 천보산맥을 이루어 의정부의 북쪽 능선이 된다. 축석고개서 별내면과 경계를 이루는 200m대의 이름조차 없는 산줄기 또한 의정부를 분지로 만드는 마침표다. 의정부 땅은 협소하다. 신도시가 송산, 민락지구로 동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망해버린 공장의 녹슨 잔해는 슬프다. 한세월을 떠받혔을 영광도 없다(양주시 산북동)
망해버린 공장의 녹슨 잔해는 슬프다. 한세월을 떠받혔을 영광도 없다(양주시 산북동)
이 땅에 부대찌개를 낳은 미군 기지들이 시내의 군데군데를 점하고 있다 보니 의정부는 이래저래 오밀조밀해졌다. 김치찌개에 넣을 소기름 한토막이라도 더 얻으려고 고깃간(정육점, 경상도 쪽에서는 꼭 식육점이라 한다)에 머리를 조아리던 시절 할로(미군)들이 먹다 버린 소시지와 햄 조각은 꿀꿀이죽 시대를 넘어 부대찌개가 되어 대중음식의 정점에 등극했다. 입맛이란 세월이 변해도 쉽게 변하는 게 아니어서 대를 이어 롱런하는 토속음식이 되어가고 있다. 의정부부대찌개골목을 들렀다 가기엔 시간이 어정쩡하다.

	해병전우회의 보금자리. 이 시대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조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양주시 산북동)
해병전우회의 보금자리. 이 시대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조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양주시 산북동)

갈대의 바다, 노해면이 그립다

중랑천을 “유장한 강물에 속삭이는 갈잎의 노래"라는 표제를 붙이고, "서울의 명산을 꿰고 흐르는 강북의 큰 물줄기”라고 쓴 김병훈 발행인의 묘사는 정확하다. 도봉과 북한산 연봉이 서쪽 하늘에 하얀 성채의 능선을 이루고 동쪽으로는 수락산 암벽이 노원벌을 옹위한다.


	이름 없는 잠수교에도 자전거 바퀴 홈통을 만들어 주었다. 친절은 고맙지만 오히려 방해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양주시 마전동)
이름 없는 잠수교에도 자전거 바퀴 홈통을 만들어 주었다. 친절은 고맙지만 오히려 방해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양주시 마전동)

중랑천은 그렇게 한강으로 가는 물길을 넓히면서 평균 150m의 강폭을 유지한다. 인공으로 조성된 것이긴 해도 이 갈대숲은 원적이 노해면(蘆海面)이다. 갈대 노(蘆)가 어근이다. 일제 강점기에 노원면과 해등촌면이 합쳐지면서 얻은 이름은 1963년 성북구에 편입되며 노해면이란 이름을 잃어버린다. 1988년엔 도봉구에서 떨어져 나와서 노원구가 되었다.

양주군 노해면 출신의 내 직장상사는 늘 갈대밭이 펼쳐진 중랑천 변을 그리워했다. 갈대밭에 서걱이는 갈꽃의 군무가 유년의 기억을 강하게 차지하고 있었다. 얼마나 장관이었으면 ‘갈대의 바다’라고 했을까, 그 아름다운 작명은 지금도 나마저 설레게 한다.


	적자 논란 속에서도 경전철은 시간 맞춰 궤도를 달려 중랑천을 건넌다.(의정부시 신곡동)
적자 논란 속에서도 경전철은 시간 맞춰 궤도를 달려 중랑천을 건넌다.(의정부시 신곡동)

창동, 방학동 언저리에 이르면 중랑천은 한내(한천)라는 이름을 갖는다. 그건 어릴 적 이름, 아명(兒名) 갖은 것이기도 하다. 아명은 없을 수도 있고, 여러 개일 수도 있던 시절이 있었다. 새끼의 목숨을 칠성님께 빌고, 시렁 위 성주님께 올릴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아비와 어미는 홍역이나 견뎌야 그저 산목숨 제 자식이라 여겼었다. 새끼가 수명 장수할 수 있다면야 뭐든 못할까. 집에서 부르는 이름 따로 호적이름 따로였다. 제 태어난 날보다 1~2년이 늦게 호적에 올라있는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이즘 아이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하기야 호적이란 이름도 가족관계부란 이름으로 한참 전에 바뀐 세상이니.


	1 중랑천의 아이콘은 갈대다. 겨울 한때 포근한 날씨에 자전거 타는 아이들을 앞세운 여인들의 발걸음이 넉넉하다. 2 의정부IC 근처, 중랑천은 갑자기 한가로워지고 멀리 도봉산이 병풍을 이룬다.(의정부 장암)
1 중랑천의 아이콘은 갈대다. 겨울 한때 포근한 날씨에 자전거 타는 아이들을 앞세운 여인들의 발걸음이 넉넉하다. 2 의정부IC 근처, 중랑천은 갑자기 한가로워지고 멀리 도봉산이 병풍을 이룬다.(의정부 장암)

서민들이 만든 노원, 이제 변두리가 아니다

한 시절, 그다지 주변머리 없는 공무원들은 주소가 모두 노원구였다. 공무원아파트를 대량으로 공급하고 입주를 주선한 정부 시책의 은전(恩典)이었다. 더러는 수단을 발휘하여 좀 더 4대문 가까운 곳으로 이주했지만 한강을 건너 강남사람이 되는데 성공한 이는 드물었다.

X자로 뻗어간 지하철 4호선의 종점이 당고개인 것은 서울의 숱한 지하철역 이름 가운데서도 유난이 촌스럽다. 좋게 말하면 토속적이고 서정적이다. 당산이 있고, 당집이 있던 양주 별내면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였다.


	1 그라피티가 흉물이라지만 교각에 친구를 수없이 부르며 스프레이 칠을 했을 그는 누구일까(서울 도봉) 2 중랑천은 짧지만 당당한 국가하천이다.(서울 도봉)
1 그라피티가 흉물이라지만 교각에 친구를 수없이 부르며 스프레이 칠을 했을 그는 누구일까(서울 도봉) 2 중랑천은 짧지만 당당한 국가하천이다.(서울 도봉)

상계동은 도심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고단한 삶의 대명사처럼 불렸다. 민중을 말하는 정치인들이 쉬이 넘보기 좋은 큰 골짜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계동과 하계동은 강남을 제외하면 내로라하는 학군들도 무색하게 공부 잘하는 마을로 꼽힌다. 공무원을 비롯하여 내 자식에게만은 못 배운 설움을 물려줄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가 이곳을 강북의 사교육 메카로 만들었다. 아파트값도 학군과 학원에 따라 춤춘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창동지하철기지가 들어서고, 도봉면허시험장이 생기던 시절, 거긴 노해면이란 이름처럼 갈대밭이었다. 이제 금싸라기 땅으로 변한 거대한 공간은 도시발전의 걸림돌이라는 이유로 이전 압력을 받고 있다. 압력은 별내로 진접으로 밀려난 서울사람들의 연결고리를 위해 수락산에 4호선 지하철의 연장선 터널을 뚫기에 이르렀다.


	아파트 군락과 갈대숲의 조화 속에 자전거는 좋은 소도구가 된다.(의정부시 신곡동)
아파트 군락과 갈대숲의 조화 속에 자전거는 좋은 소도구가 된다.(의정부시 신곡동)

경춘선과 중앙선 철길의 흔적

월릉교는 중랑천의 중요한 분기점이다. 본격적으로 둔치가 넓어지면서 자치구들은 앞 다투어 운동기구를 설치했다. 중랑천변은 사람들로 늘 북적거린다. 아직 어둠도 걷히기 전에 아낙들은 서둘러 에어로빅의 율동을 위해 모여든다. 하루하루 먹을 것을 고민하던 시대는 옛말이다. 아줌마들은 늘어나는 뱃살을 어떡하던 줄여보겠다는 일념으로 아침잠을 줄인다. 대강대강 동작만 흉내 내는 할머니들이야 그렇다 쳐도 아줌마들은 참 궁금하다. 그 시간 아침밥을 먹고 집을 나서야하는 남편과 아이들 뒤치다꺼리는 누가 한단 말인가. “세월 바뀐 것 모르누먼. 요즘 세상에 아침밥 일일이 다 챙겨 먹고 다니는 사람 몇이나 되냐고….” 아줌마들이 그렇게 답할 것만 같다.


	경춘선 폐철도 부지를 공원화하고 있다는 안내. 자전거가 어떤 대접을 받을지 궁금하다.(서울 노원)
경춘선 폐철도 부지를 공원화하고 있다는 안내. 자전거가 어떤 대접을 받을지 궁금하다.(서울 노원)

성북역(현 광운대역)에서 분기하여 화랑대역을 지나던 경춘선 옛 철로는 레일을 모두 뜯긴 채 시민공원산책로가 되어 가고 있다. 검붉게 녹슬어 있는 철교의 잔해만이 기적소리가 배어 있었던 시절을 말해 준다. 그러나 중랑교 못 미쳐 있는 중앙선철교는 당당한 현역이다. 거의 와인색으로 변해버린 철교에 세워진 전철용 철골이 고맙기까지 하다.

장평교 근처 동쪽으로 보이는 용마산(348m) 아래에는 용마폭포공원이 있다. 우리나라의 폭포라는 것이 아무리 산골짝에 있다 해도 수량이 부족해서 여름 한철이 아니면 쫄쫄 흐르는 수준이다. 대단한 묘사를 듣고 찾아가면 실망하기 쉬운데 용마폭포공원은 인공폭포지만 한마디로 감탄이 절로 나온다. 채석장의 변신이다. 물론 이 겨울은 그 폭포도 방학이겠지만. 인간이 자연의 유산인 화강석을 캐어먹는 것을 보는 눈은 곱지 않다. 그러고도 인간은 미려한 대리석이나 화강석의 단단한 석질을 원하는 이중의 잣대를 지니고 산다. 인간이 아름다움을 위한 호사의 대가를 치를 준비만 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수탈을 넘어선다. 아예 채석의 단계에서부터 인간이 고갱이를 빼먹은 자리에 채울 꽃을 준비한다면 우린 그 청사진을 믿고 발파의 위험도, 날리는 분진도 참아낼 용의가 있다.


	중랑천 둔치에서 게이트볼을 즐기는 건강한 노인들(서울 성북)
중랑천 둔치에서 게이트볼을 즐기는 건강한 노인들(서울 성북)
한때 면목동과 중곡동 일대는 봉제업의 최말단 기지였다. 집집마다 재봉틀 돌리는 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지루함을 달래려는 라디오의 트로트 음악이 반지하방에 가득하던 때도 있었다. 아직도 43번 국도와 3번 국도가 겹치는 동이로 주변에는 그런 흔적들이 낡은 건물들에 남아있다. 원단을 쌓아놓아 가로막힌 유리창은 바람조차 들어갈 틈 없이 갑갑하다. 자전거 바퀴가 천천히 굴러갈수록 생각은 웬만한 집 한 채 값이 500만원을 간신히 넘던 1970년대 초의 풍경에 머문다.

	청계천과 중랑천이 합류하는 하류에는 도시고속도로의 곡선미가 새롭다.(서울 성동)
청계천과 중랑천이 합류하는 하류에는 도시고속도로의 곡선미가 새롭다.(서울 성동)

장안평인가 장한평인가

어느새 자전거는 군자교를 지난다. 40㎞에도 못 미치는 중랑천 여정은 아끼듯이 걷는 느린 걸음이 제격이다.

용답동에 관한 기억이다. 어느 날 ‘장한평’이라는 낯선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지하철5호선을 개통하며 장안평에 장한평역을 만들었다. 서울시 지명위원회가 친절하게 찾아준 장안평의 본명이란다. 원래 장한평에는 조선시대부터 목마장(牧馬場)이 있었다. 대동여지도에도 ‘장한벌’이라고 적힌 곳인데 일본사람들이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서 장안평이라고 불렀단다. 모두들 헛갈렸나보다. 1995년 어느 일간지도 친절하게 장안평의 역사를 다시 일깨워 주었다.


	조선시대 최장의 돌다리인 보물1738호 ‘살곶이다리’(서울 성동)
조선시대 최장의 돌다리인 보물1738호 ‘살곶이다리’(서울 성동)

본명은 찾았으되 관성은 길고도 질겼다. ‘장안’과 ‘장한’이 공존하지만 그렇다고 장안의 위력이 줄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지금도 장안평은 국내최대의 중고차거래시장이다. 원래 이곳은 공구상이나 있던 낙후된 곳이었는데 1976년 종로3가의 자동차부품상들이 교통체증을 유발한다고 강제 이전한 것이다. 청계천공구상가가 송파 장지지구로 가든파이브를 야심차게 짓고도 여전히 어정쩡한 상태인데 비하면 성공적이다. 아마도 시대가 1970년대니까 가능했을 것이다. 80년대의 마이카 붐, 90년대의 허가제 중고차거래의 신고제 전환, 2000년대 SK의 진출 등으로 중고차시장은 신차시장의 2배 규모로 불어났다.

장안평은 한 시절 호객꾼들의 잡아끌기와 눈속임 같은 서글픈 자동차거래의 격전장이었다. 경찰서로 쇄도하던 고소, 고발의 시대를 지나면서 쇠락을 거듭했다. 쇠락이 있으면 반전도 있는 법, 2014년 ‘종합자동차유통 벨트화’라는 기치를 내걸며 왕년의 장안평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여전히 장안평과 장한평은 뒤죽박죽으로 사람들의 입에 살아있다.


	작은 매봉은 꼭대기 정자가 화룡점정이다. 봄날 개나리가 만개하면 암벽은 노랑잔치가 벌어진다.(조용연 자료사진, 서울 성동)
작은 매봉은 꼭대기 정자가 화룡점정이다. 봄날 개나리가 만개하면 암벽은 노랑잔치가 벌어진다.(조용연 자료사진, 서울 성동)

청계천과 살곶이다리

한양대학교를 바라다보면서 청계천을 가로지른다. 자전거는 갈수 없는 청계천이다. 사람만으로도 넘치니 자전거가 들어설 공간은 없다. 휴일이나마 청계천변 1차로를 빌려주는 게 감지덕지다.

살곶이다리에 이르면 강폭도 넓어져 이제 중랑천여정도 끝에 가깝다. 용비교와 두모교가 지척이다. 구한말에 서빙고에서 채집하던 얼음을 한강 오염으로 두모포(현 옥수동)로 옮겼다는 기록을 보면 수질 오염이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살곶이다리는 조선시대 돌다리 중에서 가장 길다. 마장, 군대 열병장, 광나루매사냥을 가던 임금님 행차를 위해서도 필요했다. 뚝섬에서 한강 건너 봉은사로 가던 도선을 타기위해서도 쓰였고, 강릉, 충주지방으로 가는 사람들이 이용하던 다리였다. 세종2년(1420년)에 착공하여 무려 62년이 걸렸으니 사연도 많았겠다. 대원군이 경복궁 재건 때 돌다리 일부를 갖다 쓰기도 했다하고, 을축(乙丑)년(1925년) 대홍수에 부서진 채 우리 현대사를 지켜보기도 했을 테니까.


	용비교의 석양을 촬영하던 사진 동호인에게 일부러 셔터를 부탁했으나 기대가 너무 컸나보다.(서울 성동)
용비교의 석양을 촬영하던 사진 동호인에게 일부러 셔터를 부탁했으나 기대가 너무 컸나보다.(서울 성동)

뚝섬과 성수동시대의 부활

용비교에 이르면 한강이다. 지금은 물에 잠겼지만 두모교와 용비교 아래엔 금호동 옥수동 아이들이 여름날 헤엄쳐 건너다니던 모래섬 2개가 강북강변도로 아래에 펼쳐져 있었다.

짧은 중랑천 여정이 아쉽다면 성수대교 아래서 토끼굴을 통해 서울숲으로 올라서 보라. 뚝섬의 버려진 땅을 서울숲으로 만든 것은 절묘한 선택이다. ‘집이 아니라 주거예술’이라는 갤러리아포레가 서울에서 제일 비싸다는 아파트로 솟아올라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남향에 대한 선호는 신앙에 가깝다. 서울숲이 정원이고, 한강이 앞 냇가다. 한강을 돌아앉아야 볼 수 있는 압구정동은 잽도 안 된다. 늦게 들어선 고급아파트가 터줏대감 삼표를 향해 떠나라고 난리다.


	성수대교 아래, 중랑천 진입 1㎞ 전방이라는 표지가 분기점을 말해준다.(서울 성동)
성수대교 아래, 중랑천 진입 1㎞ 전방이라는 표지가 분기점을 말해준다.(서울 성동)

뚝섬은 고양군 뚝도면이었다. 어두운 지하를 지루하게 1㎞ 간격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던 지하철 2호선이 땅위로 솟아오르는 지점이 중랑천부터다. 건설비용을 아끼자고 만든 고가전철은 철공, 염색, 가발 봉제공장을 거쳐 공장들이 해외로 피신해 나갈 때까지 성수동의 쇠락을 고공에서 내려다보았다. 이제 구두거리는 빼어난 손 기술로 다시 태어나고, 용도 폐기된 공장은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 베이징 따산즈(大山子)의 ‘798예술구’를 본딴 문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중이다.


	최고의 아파트와 오랜 공장의 갈등, 힘이 힘을 밀을 내겠지(서울 성동)
최고의 아파트와 오랜 공장의 갈등, 힘이 힘을 밀을 내겠지(서울 성동)

눈 내린 2004년 겨울 북경에서 만난, 적벽돌이 검게 그을린 공장은 위압적이었다. 독일과 소련기술로 무기를 만들던 공장, 공산당의 증산구호가 그대로 붙어 있는 벽, 옛 철제선반기구 옆에 놓인 금속제 설치미술은 기괴하지만 변화하는 중국을 상징했었다. 그곳이 세계적 미술의 명소로 자리 잡으면서 치솟는 임대료에 밀려나는 예술가들이 바로 실존이다. 성수동은 닮아가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은 허망한 것일까. 분당선 전철로 한 정거장 한강바닥만 건너가면 압구정이고, 청담이다. 서울숲 역은 또 다른 문화로 가는 출입구다.

<참고자료>

1. 디지털양주문화대전,
2. 노원의 변천, 위키디피아
3. <왕년의 중고차허브 장안평 돌아온다> 강인식/중앙일보, 2014. 3. 19
4. 한국하천일람, 국토교통부, 2012

<협찬>
팬텀 26XC (전기자전거) - 삼천리자전거


<강둑길에서 만난 사람>


	이익상(58) ,이몽룡(62), 윤창모(53), 황원석(53), 장성욱(42)
이익상(58) ,이몽룡(62), 윤창모(53), 황원석(53), 장성욱(42)

양주 마전3교 다리 아래서 만난 자전거 동호인들이다. 어둠이 채 가시기 전에 집을 나서 한강에서부터 중랑천을 거슬러 동두천까지 올라가고 있는 중이라 했다.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버너에 불을 붙이는 그들 방식의 송년행사라 했다. “한 주일 열심히 일하고 스트레스를 이렇게 풀지요. 우린 충무로 뒷골목에서 인쇄소 하는 사람들입니다. 인쇄업도 세월 따라 많이 변했지요.” 나의 대학시절 진양상가 골목의 생선구이집 이야기까지 더해지자 그들은 금세 추억담에 올라탔다. “사는 게 너무 팍팍해요. 경기도 그렇고….” 어두운 경제 전망과 함께 자전거 인구 1000만 시대에  라이더로서도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여행 만들기>

수도권에 산다면, 휴일 느지막이 일어나서도 다녀올 수 있는 짧은 거리라 우선 편안하다. 1호선 전철이 경원선 소요산까지 바로 이어지므로 덕계에서 내려 중랑천을 따라 내려오는 편이 좋다. 의정부 부대찌개촌이나 용마폭포공원 등으로 빠져 맛과 정취를 느껴보는 것도 좋다. 한강과 합류하는 종점에 이르러서도 부족하다면 서울숲과 성수동의 뒷골목까지를 자전거로 배회해보는 것도 넉넉하게 즐기는 방법이다.

<음식점>


	스시장(월릉교)
스시장(월릉교)

스시장 02-971-0088

월릉교 석계역 3번출구 앞에 있는 스시집이다. 간단하게 초밥으로 요기하고 라이딩하기에 좋다. 각별히 친절하지는 않아 오히려 편하다. 모둠초밥 8000원(11시30분~15시), 특초밥 1만2000원, 알탕 8000원


	뚝섬 갈비골목(서울 성동)
뚝섬 갈비골목(서울 성동)

뚝섬갈비골목

뚝섬역 앞에 있는 음식점 밀집지역이다. 서울숲 역에서도 가깝다. 이 골목에 들어서면 온통 갈비냄새가 진동한다. 소갈비, 돼지갈비에 장작불 통닭구이에다 곱창집까지 서로 마주보면서 맛 자랑을 하니 입맛 당기는 곳에 들어가면 된다.
●늘봄숯불갈비(02-497-0301)
●수원원조갈비(02-463-6975)
●뚝섬숯불갈비(02468-9726)

<교통편>

- 1호선 전철 덕계역 하차, 불곡산 아래 산북교까지 1.5㎞
- 매시간 2~3회 소요산행 전철 운행


	지도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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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에 건네는 말(46)   by 조용연

이 겨울, 다리 밑에서


	도봉이 멀리 보이는 다리 밑에서 사람들은 한 해를 마감하는 중이라 했다. 충무로 인쇄골목에서 평생을 보낸 가족 같은 사람들이다. 올 한해 경기에 대해 모두 입을 다물었다. 한숨이 이들의 질주를 삼킬까봐 두려운 듯 했다. 그래도 웃었다. 웃지 않는다고 뾰족한 수가 있으랴. 이 겨울, 다리 밑 작은 건배가 고단한 한해에 대한 위로가 된다면야 기꺼이 합창해 주리라.
도봉이 멀리 보이는 다리 밑에서 사람들은 한 해를 마감하는 중이라 했다. 충무로 인쇄골목에서 평생을 보낸 가족 같은 사람들이다. 올 한해 경기에 대해 모두 입을 다물었다. 한숨이 이들의 질주를 삼킬까봐 두려운 듯 했다. 그래도 웃었다. 웃지 않는다고 뾰족한 수가 있으랴. 이 겨울, 다리 밑 작은 건배가 고단한 한해에 대한 위로가 된다면야 기꺼이 합창해 주리라.

바람도 갑갑했는지
다리 아래 포장마차 비닐을 뚫었다
뚫어진 불투명에 대고
사람들이 또 뚫었다
뚫어도 뚫어도 갑갑해선지
허공의 구멍마저 날아가 버렸나 보다

안개를 헤치고 달려온 사람들이
벗어던진 갑갑한 두건
꺼내 든 막걸리 한 병
속이 보이지 않는다

종이 잔 속 그저 탁(濁)하다
허공에다 대고 “위하여”라고 했다
보이지 않는 내일을 보기 위하여

제 색깔 나오지 않는 윤전기 옆
꾸벅꾸벅 졸며 넘긴 세월 한 장 한 장
원컨대 꼬까옷 달력위에
맞손 잡은 세배 영험하기를
안개 젖은 세월이 뽀송해 질 때까지
충무로 뒷골목에 하얀 눈 내릴 때까지


	도봉과 수락 사이로, 갈꽃이 아름다운 서민들의 강

글·사진 조용연(여행작가, 前 울산지방경찰청장)
·1954년 경북 문경 출생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졸업
·경기 여주경찰서장, 서울 동부경찰서장(현 광진경찰서)
·경찰청 기획과장, 주중국대사관 참사관(북경)
·서울청 교통지도부장, 경찰청 경무기획국장
·충남지방경찰청장, 울산지방경찰청장
·현 에스원 감사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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