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곽 건축의 꽃, 수원 화성에 올라

바이크조선

입력 : 2016.06.03 14:52

분당~수원 일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 화성은 조선시대 성곽건축의 백미다. 축성 후 한 번도 전란을 치른 적이 없어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곽이 잘 보존되어 있다. 탄천 자전거길을 이용하면 서울 방면에서도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수원 화성을 지은 주역인 정조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이 있는 융·건릉과 용주사도 함께 돌아보면 더욱 알찬 여정이 된다.

코스 : 분당 율동공원 → 분당천 → 탄천 → 성북천 → 정평사거리(43번국도) → 수원 화성 → 수원역 → 세평지하보도(43번국도) → 고색사거리 → 화산터널 → 용주사 → 황계교 → 원천천 → 원천교(42번국도) → 신갈오거리 → 구성역 → 탄천 → 분당천 → 율동공원. 거리 : 약 72㎞


	벽돌로 쌓은 봉수대인 봉돈 근처를 지나는 수원 화성 외곽길
벽돌로 쌓은 봉수대인 봉돈 근처를 지나는 수원 화성 외곽길

올해는 ‘수원 화성 방문의 해’이다. 그래서 수원의 대표적인 명소인 화성과 용주사(龍珠寺)를 다녀왔다.

수원시는 ‘2016 수원 화성 방문의 해’를 맞아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1월 개막식 및 개막축하 공연을 비롯해 정조대왕 능행차, 무예24기 공연, 수원화성음악제, K-POP공연, 화성순례 등 다양한 공연과 축제가 예정되어 있어 한번쯤은 찾아 볼 만하다.

서울에서 자전거로 수원 화성에 가려면 탄천 자전거길을 이용하면 되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진다고 생각되면 전철을 이용해 점프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필자 집이 분당에 있어 율동공원에서 출발해 수원과 화성을 돌아오는 여정을 소개한다. 서울에서 남하하는 탄천 본류를 기준으로 하자면 분당선 야탑역이나 성남종합버스터미널,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출발하는 것과 비슷하다. 서울 잠실에서 출발한다면 왕복 30㎞가 추가되어 총 102㎞ 정도의 코스가된다.


	동북각루에 해당되는 방화수류정의 빼어난 자태. 정자 아래에는 용연이란 못까지 파서 운치를 더해준다.
동북각루에 해당되는 방화수류정의 빼어난 자태. 정자 아래에는 용연이란 못까지 파서 운치를 더해준다.

남문이 아니라 북문이 정문인 까닭

율동공원을 출발해 탄천을 거슬러 올라가 죽전역 인근 탄천과 만나는 우측의 성복천을 따라 가다가 정평사거리에서 43번 국도를 따라가면 수원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사거리가 나온다. 출발지인 율동공원을 기점으로 분당천, 탄천, 성복천의 자전거길은 14.2㎞이며, 정평사거리에서 43번 국도를 만나 창룡문사거리 입구까지는 도로변으로 6.7㎞를 달려야 한다. 특히 43번 국도는 차량 통행이 많아 각별히 안전에 신경을 써야 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인도에 보행자겸용자전거도로가 있어서 가능하면 이 길을 활용한다.


	수원 화성의 정문은 북문인 장안문이다. 서울에서 정조가 행차할 때 먼저 들어서는 문이기 때문이다.
수원 화성의 정문은 북문인 장안문이다. 서울에서 정조가 행차할 때 먼저 들어서는 문이기 때문이다.

수원 화성은 성곽 외곽으로 6.5㎞의 둘레길이 있어 자전거로 달려도 무방하다. 내곽길도 일부 구간은 자전거로 둘러 볼 수 있으나 자전거는 적당한 곳에 보관하고 걸어서 한 바퀴 돌아보기를 추천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원 화성은 정조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기면서 축조한 성이다. 220년 전, 조선 최고의 개혁군주이자 효자였으며, 백성을 사랑했던 정조는 한양 대신 수원에 한성보다 더 아름답고 뜻 깊은 화성(華城)을 지었다. 수원 화성은 조선후기 도시기반시설과 생산기반시설의 총화로 이뤄진 자족적 계획도시였다. 성벽은 전체 길이가 5744m로 대부분 돌로 쌓았으나 일부 중요한 방어시설은 벽돌로 쌓은,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세계문화유산이다.

수원 화성은 동서남북 사대문이 있다. 북쪽의 장안문, 남쪽의 팔달문, 서쪽의 화서문, 동쪽의 창룡문이 그것이다. 그런데 화성의 정문은 왜 남문이 아니고 북문일까? 대부분의 성은 남문을 정문으로 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정조가 아버지 무덤을 살피기 위해 서울에서 올 때 가장 먼저 성안으로 들어오는 문이 북문이었기 때문에 장안문이 정문이 된 것이다.


	수구가 나 있는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전쟁시설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축미가 빼어나다.
수구가 나 있는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전쟁시설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축미가 빼어나다.

작은 틈조차 허용 않는 성돌 쌓기

창룡문사거리에서 팔달문까지 이어지는 1.7㎞의 동쪽 성곽길을 먼저 달려보자. 가다보면 동북노대, 창룡문, 동일포루, 동일치, 동포루, 동이치, 봉돈, 동이포루, 동삼치, 동남각루로 해서 팔달문까지 연결된다.

아름다운 성벽길을 따라가는 산책로는 도심에서 보기 힘든 풍경을 자랑한다. 성벽을 따라 경사진 잔디밭 위로 부드러운 굴곡미를 자랑하는 성벽이 참으로 아기자기하다. 성벽을 달리다보면 그 돌을 하나씩 포개놓은 옛사람의 섬세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큰 돌과 작은 돌을 맞춰나가면서 작은 틈조차 남기지 않았고, 때때로 직사각형의 한 모서리를 기역자로 파 아귀를 맞추며 견고함을 더했다. 크기가 모두 다른 돌을 쌓으면서도 멀리서 보면 성곽 전체의 흐름은 수평을 유지하고 있다. 그 많은 돌을 쌓으면서도 틈이 맞지 않아 괸 쐐기돌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당시 석공들이 일궈낸 작품에 입을 다물 수 없다. 겨울이라 성곽길을 산책하는 사람이 드물어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에도 무리가 없다.


	각기 크기와 모양이 다른 돌을 기가 막히게 조합시켜 완벽한 성벽을 만들어냈다.
각기 크기와 모양이 다른 돌을 기가 막히게 조합시켜 완벽한 성벽을 만들어냈다.
동북노대를 지나면 바로 창룡문이다. 창룡문은 풍수지리상 좌청룡이며, 동쪽을 의미한다.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옹성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구간 중간쯤에는 다섯개의 굴뚝 모양 봉돈이 나온다. 봉돈은 봉화를 올리는 곳으로, 다급한 연락을 취할 때 이곳에서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길로 신호를 보냈다. 다섯 개의 봉돈은 모두 벽돌로 쌓았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것이라고 한다. 팔달문에 다다르면 수원천을 사이에 두고 지동시장과 영동시장이 있다. 먹거리장터로 잘 알려진 지동시장은 성곽을 배경으로 형성된 상설시장으로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팔달문 근처의 지동시장은 먹거리장터로 유명하다.
팔달문 근처의 지동시장은 먹거리장터로 유명하다.

전쟁시설에도 꽃을 피운 풍류와 미학

팔달문 서쪽으로 팔달산이 지척이다. 팔달산의 옛 이름은 ‘탑산’이었으나 조선 태조가 탑산을 본 뒤 ‘아름답고 사통팔달한 산’이라고 하여 산 이름을 팔달산이라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성곽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지고 팔달산 정상 서장대에 오르면 수원시내와 화성행궁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팔달문에서 팔달산 기슭으로 올라가면 순환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팔달산 남쪽 수원시민회관을 거쳐 경기도청을 우회해 화서문으로 이어진 길이다. 화서문은 화성의 4대문 중 서쪽 대문이다. 화서문 바로 옆에는 특이한 건축물인 ‘서북공심돈’이있다. 공심돈은 적의 동향을 살핌과 동시에 공격도 가능한 시설로 수원 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속이 빈 돈대’란 의미에서 공심돈(空心墩)이라 하는데, 성벽을 돌출시키고 높게 대를 쌓았다. 꼭대기에 있는 건물에서 군사들이 거주하며 적을 감시하고 공격과 방어를 겸하는 곳이다. 돈대의 중간 중간에 뚫린 구멍은 총을 쏘기 위한 구멍으로 본래 세 곳에 설치되었지만, 지금은 서북공심돈과 동북공심돈에만 남아 있다.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공심돈은 속이 빈 높은 건물로 공격과 방어를 위한 시설이다.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공심돈은 속이 빈 높은 건물로 공격과 방어를 위한 시설이다.

장안공원 성곽 산책길을 달리다 보면 어느덧 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인 장안문에 도달한다. 장안(長安)이라는 말은 수도라는 뜻으로 또 다른 서울이라는 의미를 담고있다. 서울의 숭례문보다 크기가 큰 것이 특징이다.

화성에 세워진 건축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는 북수문과 동북각루를 꼽을 수 있다. 화홍문으로 알려진 북수문은 물이 흐르는 수로 위에 지어진 것으로 아치와 어우러진 건물이 아름답다.


	팔달산 정상, 성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서노대
팔달산 정상, 성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서노대

북수문 위쪽 구릉에는 동북각루가 있다. ‘방화수류정’으로도 불리는 동북각루는 인공 연못과 수양버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다운 것은 물론이고, 이곳에서는 아치가 아름다운 북수문도 잘 보인다. 각루는 높은 곳에 설치하여 성곽 주위를 감시하던 곳으로 휴식 공간이기도 하다. 휴식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만큼 경치가 뛰어난 곳에 지어졌는데, 화성에 세워진 4개의 각루 중 가장 경치가 빼어나다. 북수문과 동북각루를 보고 있으면 군사시설까지 아름답게 지은 선조들의 멋과 지혜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팔달산에서 내려다본 화성행궁
팔달산에서 내려다본 화성행궁

화성행궁 거쳐 팔달산 정상으로

화홍문에서 나와 마지막으로 화성행궁으로 가본다. 행궁이란 임금님이 지방을 둘러보거나 전쟁이나 재난으로 궁궐을 떠나 지방에 머물 때 임시로 사용했던 궁궐을 말한다. 화성행궁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행궁으로, 정궁 형태로 완성되어 자그마치 600여 칸에 이르는 대규모 공간이었다. 정조가 어머니를 위해 잔치를 베풀었던 장소와 정조가 업무를 보았던 곳, 옛날 과거시험을 치렀던 현장을 볼 수 있다.

수원 화성 외곽길을 따라 자전거로 천천히 달리면 1시간30분 가량 소요된다. 그러나 성곽을 따라 건설된 많은 시설물을 자세히 보려면 자전거마저 거추장스럽다. 그래서 수원 화성을 잘 살펴보려면 성곽을 따라 걷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 ‘느린 만큼 더 많이 보인다’는 말이 있지만, 수원 화성은 천천히 걸어야 제대로 볼 수 있는 유적지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우선 전체적인 화성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팔달산 정상의 서노대로 가보자. 그래야 화성이 얼마나 잘 건설한 도시인지 알 수 있다. 화성에서 가장 높은 곳인 서노대에 서면 지형에 따라 다른 높이로 쌓은 성벽부터 4곳의 대형 출입문과 주요 군사시설은 물론이고 화성행궁과 옛날 사람들이 살았던 지역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군사훈련 지휘대인 서장대(화성장대)도 서노대 옆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군사훈련 지휘대인 서장대(화성장대)도 서노대 옆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팔달산 정상에서 장군이 병사들을 지휘했던 서장대는 서노대와 함께 성의 가장 높은 곳에 있어 성 안팎을 두루 살피면서 군사 훈련을 지휘할 수 있었다. 정조도 이곳에서 직접 군사 훈련을 지휘했다고 한다. 정조의 명령이 떨어질 때마다 우렁찬 나팔 소리와 함께 서장대 앞에 있는 깃대에 깃발이 올라갔으며, 병사들은 이 깃발을 보면서 훈련했다고 한다. 그 다음에는 동북쪽 성곽을 따라 이동해 보자. 화성의 상징인 웅장한 장안문과 공심돈, 아름다운 화홍문과 동북각루, 은밀한 군사시설인 동암문, 봉돈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지역에 모여 있다. 따라서 체력이 충분할 때 먼저 이곳을 둘러본 뒤 나머지 지역은 여유를 갖고 천천히 둘러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편안한 신발과 화성 안내지도, 물과 간단한 음식을 준비하면 더 즐거운 화성 답사가 될 것이다.

	화성행궁 앞에서는 전통무예 시범 행사가 진행된다.
화성행궁 앞에서는 전통무예 시범 행사가 진행된다.

융·건릉과 용주사가 이웃한 배경

수원 화성을 나와 수원역 앞을 지나는 43번 국도를 달려 고색사거리에서 좌회전, 시가지를 벗어나면 화산터널을 통과하게 된다. 터널을 나오면 융·건릉과 용주사가 양옆으로 있다. 화산(108m) 아래에 위치한 융·건릉은 사도세자와 헌경왕후 홍씨를 합장한 융릉과 정조와 효의왕후 김씨를 합장한 건릉이 있는 능원이다.

인고의 세월을 굳건히 이겨내고 왕좌에 등극해 혼탁해진 정치를 바로 잡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개혁정치가 정조와 비명에세상을 떠난 사도세자가 잠들어 있는 융·건릉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상념에 잠겨본다. 굶주림의 고통 속에서 애절한 몸부림과 통한의 고통 속에서 끝내 뒤주 속에서 숨을 거두어야 했던 비운의 사도세자,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가슴으로 새겨야 했던 어린 정조, 자식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밖에 없었던 할아버지 영조의 운명적인 삶은 지금도 가슴을 적신다.


	사찰이라기보다 궁궐을 닮은 용주사
사찰이라기보다 궁궐을 닮은 용주사

융·건릉을 왼쪽에 두고 빠져나오면 불과 1.6㎞ 거리에 숲으로 둘러싸인 용주사가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는 화성시 송산동 성황산(133m)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용주사는 신라시대에 지어진 고찰이었으나,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새로 만들면서 이곳을 원찰로 삼아 다시 크게 지었다고 한다. 정조는 총애하던 화원인 단원 김홍도를 이곳에 보내어 용주사를 중창하는 일에 가담하게 했다고 전해진다.

용주사에 남아 있는 김홍도의 손길 중 하나가 부모님 은혜의 높고 깊음을 설법하고 있는 ‘부모은중경’이라는 불교경전을 그림으로 그린 ‘부모은중경판’이다. 이 그림을 그리기 전에 김홍도는 정조의 명으로 일주일간 기도를 해야 했다고 하니 정조의 효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내용은 절 안의 효행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대웅보전의 후불탱화 또한 김홍도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최초로 서양화의 음영기법을 이용해서 그린 탱화다. 용주사에는 국보로 지정된 고려 범종이 유명한데, 몸통에 삼존상이 새겨져 있으며 위로는 용 모양의 음통이 만들어져 있다.


	용주사 대웅보전의 후불탱화는 김홍도의 작품이라고 한다.
용주사 대웅보전의 후불탱화는 김홍도의 작품이라고 한다.

용주사는 보통의 절과 다른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매표소에서 천왕문까지 큼직한 선돌들이 양 옆에서 호위하며 방문객을 맞는데 보기 드문 광경이다. 사천왕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 궁궐의 대문처럼 보이는 삼문각이 있고, 그 옆으로 행랑과 유사한 건물이 있으며, 대웅전 앞마당에는 돌을 깔아 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 이색적이다. 절이라기보다 궁궐 또는 관아의 모습으로, 정조의 행차 때문에 이러한 구조로 지어졌던 것 같다.

이 밖에도 용주사는 눈여겨볼 거리가 많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호와 제12호인 금동향로와 청동향로도 보관하고 있다. 대웅보전 편액은 정조의 친필이며, 용주사 창건문·상량문도 정조가 쓴 것이라고 한다.


	원천천 자전거길
원천천 자전거길

용주사 입구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가면 황구지천이다. 하천을 거슬러 북쪽으로 달려 황계교를 건너면 원천리천이 1번 국도 옆으로 흐른다. 원천리천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원천저수지와 신대저수지가 나온다. 원천저수지는 과거에 인근 주민들이 즐겨 찾던 유원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신도시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황구지천과 합류하는 지점에서 원천리천을 따라 약 7㎞ 가면 42번 국도가 지나는 원천교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동쪽으로 4.2㎞ 가면 신갈오거리다. 신갈오거리에서 성남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3.2㎞ 가면 구성역에서 탄천을 만나 순조롭게 출발지로 갈 수 있다.

글·사진 이윤기(자전거생활 여행사업부 이사)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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