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위업을 알려 자전거문화를 부흥시키고 싶다”

바이크조선

입력 : 2016.12.29 16:13

사이클 영웅 엄복동의 손자, 엄재룡 씨

엄복동 선수의 손자 엄재룡 씨는 사고로 자전거를 멀리한 지 20여년 만에 다시금 안장에 올랐다. 할아버지 엄복동 선수의 명예를 기리기 위해 엄복동 재단을 설립해 국내에 사이클 문화를 바르게 세우는데 앞장서고 있다



	“할아버지의 위업을 알려 자전거문화를 부흥시키고 싶다”

20세기 초, 일제침탈로 인해 나라 곳곳에 묻은 암울한 분위기는 많은 민생을 불우하게 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당시에도 스포츠는 많은 사람들의 열광의 대상이었고, 스포츠를 통해 일제에 저항의식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스포츠는 지금의 야구와 축구 등 인기종목이 아닌, 바로 자전거였다. 투르 드 프랑스 대회가 최초로 열린지 20여년 만에 머나먼 극동의 땅에서도 자전거 열풍이 분 것이다.

그 중심에는 엄복동(1892~1951)이라는 불세출의 선수가 있었다. 일본과 중국의 쟁쟁한 선수들을 모두 제치고 대회란 대회는 모두 1등을 휩쓸었던 엄복동 선수. 암울한 일제 치하의 삶 속에서 민심은 엄복동 선수를 바라보며 해방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2016년. 엄복동 선수의 이름이 한반도에 널리 퍼진지 근 100년이 지났다. 그 손자인 엄재룡(49) 씨는 과거 사이클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이제는 명예로운 조부의 이름을 따, 재단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사이클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한 계획을 하나하나 실행에 옮기고 있다.


	팀 엄복동을 후원하는 스타사이클의 유진석(좌) 대표와 엄재룡(우) 씨. 유 대표는 경륜선수 출신으로 현재 인천사이클연맹의 전무이사를 맡고 있다
팀 엄복동을 후원하는 스타사이클의 유진석(좌) 대표와 엄재룡(우) 씨. 유 대표는 경륜선수 출신으로 현재 인천사이클연맹의 전무이사를 맡고 있다

조부의 자취를 따라 자전거를 타게 되다

엄재룡 씨는 엄복동 선수의 친손자다. 조부인 엄복동 선수는 6·25 전쟁 때 작고한데다 아버지마저 3세때 여의었으니, 엄재룡 씨마저 조부의 이야기는 남은 친척들과 다른 사람들을 통해 들은 것이 전부라고. 하지만 피는 못속인다고, 그 역시 학창시절 자전거 선수 생활을 했다.

그는 어릴 적 축구로 운동에 입문했다고 한다. 그건 초등학교 시절이었는데, 중학교 진학 후에도 그렇게 운동생활을 이어가던 중 사이클 관계자의 권유로 사이클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관계자라는 사람은, 어느날 운동중이던 그에게  다가와서 대뜸 “네가 엄복동 선수의 손자냐” 라고 묻고는 다짜고짜 자전거를 타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재룡 씨가 사이클계에 첫 발을 들이게 된 계기였다.

당시만 해도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탔다는 정도의 인식뿐이었던 그는 여의도고교 진학 후 본격적으로 사이클 선수생활을 시작하며, 동시에 할아버지에 대한 공부도 시작하게 되었다.


	팀 엄복동 멤버들과의 훈련모습
팀 엄복동 멤버들과의 훈련모습

하지만 그의 선수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임진각에서 훈련하고 복귀중에 낙차하여 크게 다친 후 8개월여의 치료를 받았으나 복귀하기에는 후유증이 너무 심했다고. 그래서 이후 실업팀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들어왔으나 안타깝게 자전거를 포기해야만 했다.

다시 자전거에 오르다

이후 그는 일반 직장인으로 20여년의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늘 자전거에 대한 꿈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조부인 엄복동 선수의 뜻을 잇고자 다시금 안장에 오르게 된다. 물론 선수생활을 한다거나, 대회에 참가하는 등의 활동까지는 무리지만 그만의 소소한 팀을 꾸려 조부의 명예를 기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렇게 해서 작년에 탄생된 팀이 바로 ‘팀 엄복동’이다. 팀은 현재 20여명의 팀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40대 동호인들이 주축을 이룬다.


	엄재룡 씨의 자전거. 조부의 이름과 그 업적을 프레임 곳곳에 새겨놓았다
엄재룡 씨의 자전거. 조부의 이름과 그 업적을 프레임 곳곳에 새겨놓았다

팀 엄복동, 그저 달리기만 위한 팀은 아니다

팀의 목적 또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 보다는, 많은 이들이 엄복동 선수를 알아가고 우리나라에도 사이클 영웅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사이클 문화를 고양시키는 데 있다고 한다.

엄재룡 씨는 “사실 일제강점기 역사에 그런 사이클리스트가 있었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어려웠던 시절에도 엄복동 선수의 선전은 일제에 저항하는 나름의 독립투쟁이었으며, 그 정신을 현대에도 잇고자 한다”면서 활동의 의의를 설명했다.


	엄재룡 씨의 자전거. 조부의 이름과 그 업적을 프레임 곳곳에 새겨놓았다
엄재룡 씨의 자전거. 조부의 이름과 그 업적을 프레임 곳곳에 새겨놓았다

엄복동 재단으로 사이클 부흥을 꿈꾼다

엄재룡 씨는 팀을 중심으로 앞으로는 엄복동 재단의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그가 설립한 엄복동 재단은 2014년 12월 발족했으며 현재 팀원들과 사이클 문화를 전파하는데 여념이 없다고 한다. 또 인천사이클연맹과 협력해 사이클 원로들을 모시고 한편으로는 사이클 영재를 발굴하기도 한다.

과거에 있었던 엄복동 사이클대회의 부활, 엄복동 경기장 건립 등 구상중인 계획이 벌써 한가득이라고. 앞으로 엄복동이라는 이름이 드높아져 많은 사이클리스트들이 엄재룡 씨의 행보를 가슴 뛰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날이 얼른 오기를 바란다.

최웅섭 기자
사진 최웅섭 기자·박세정(사진 작가)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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