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작게 접히는 자전거, 한국 동호회 회원 4만명… 굉장하네요"

한현우 기자 hwhan@chosun.com 이

입력 : 2017.05.19 16:05

최대 수입국 한국 방문한 英 '브롬톤' 윌 버틀러-애덤스 CEO

제조 과정 모든 게 수작업
모든 제품마다 영문 이니셜… 엔지니어들 이름 따온 거죠

브롬톤(Brompton)은 '세계에서 가장 작게 접히는 자전거'로 불린다. 영국 최대 자전거 회사 '브롬톤'에서 만드는 이 자전거는 특히 한국에서 사랑받는다. 2006년 첫 200대 수입을 시작으로 작년 4500대를 들여온 한국은 연 5만대를 생산하는 브롬톤의 세계 최대 수입국이다. 1975년 창업주 앤드루 리치(70)가 런던 서부 켄싱턴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디자인해 1981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이 자전거는 두 바퀴를 겹치고 핸들과 헤드튜브를 꺾은 뒤 안장을 내리면 거의 사각형으로 접힌다. 어디나 들고 다닐 수 있다는 점과 각종 디자인상을 받은 고유의 모양이 브롬턴 인기 비결이다.

윌 버틀러―애덤스(43)는 창업주 리치가 2002년 고용한 브롬톤 CEO다. 영국 뉴캐슬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듀퐁, ICI 같은 화학 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자전거 괴짜'에게 반해 브롬톤에 입사했고, 빠르게 승진해 2008년부터 CEO로 일하고 있다. 최근 한국서 열린 '브롬톤 월드챔피언십 코리아' 참석차 한국에 온 그를 서울 신사동 브롬톤 전문 매장 '위클'에서 만났다.


	영국 최대 자전거 메이커 브롬톤의 윌 버틀러―애덤스 CEO는 한국을
영국 최대 자전거 메이커 브롬톤의 윌 버틀러―애덤스 CEO는 한국을 두 번째 찾아온다고 했다. 한강 자전거길이 정말 잘 돼 있어서 놀랐다고 했고, 자전거 동호회에서 만나 결혼까지 한 커플을 만났을 때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가 들어 보이는 브롬톤 자전거 뒤로 접힌 브롬톤들이 즐비하다. / 이진한 기자

세계에서 가장 작게 접히는 자전거

―한국 사람들이 왜 브롬톤을 사랑할까요.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사랑받습니다. 한국인은 아시아에서도 특히 열정적이고 자전거 타는 일에도 아주 열심이죠. 아주 강하고 창의적인 사람들이에요. 아마도 한국인이 일에 대한 압박감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자전거를 타면서 사람을 만나고 생생한 경험을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 아닐까요? 인터넷으로도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지만 자전거를 타고 만나는 사람들처럼 생생하지는 않죠. 한국인은 브롬톤을 너무 아끼는 것 같아요. 일본도 마찬가지고요. 맨날 닦고 기름 치고 하더군요. 영국에서는 진흙탕에 던져뒀다가 다시 타곤 하는 자전거입니다. 자전거는 도구(tool)일 뿐이에요."

―한국을 매력적인 시장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2006년에 한국에서 누군가 런던에 찾아와 문을 두들기기 전까지는 한국을 몰랐고 그 시장성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한국을 알게 되면서 자전거 만드는 즐거움이 훨씬 커졌습니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세계 어디서나 비슷해요. 자전거를 타면 즐겁고 행복해진다는 것이죠. 특히 한국인은 그 행복감을 더 많이 느끼는 것 같습니다."

―브롬톤 자전거는 전부 수작업으로 만든다던데요.

"(자전거 한 대를 꺼내 프레임 아래쪽을 보여주며) 여기 J.B라는 글자 보이죠? J.B라는 이니셜을 쓰는 엔지니어가 이 부분을 만든 겁니다. 또 여기는 V.A라고 쓰여 있네요. 모든 브롬톤은 이렇게 수많은 사람의 이름들로 뒤덮여 있습니다. 이 정도면 설명이 됐겠지요?"

한국에는 브롬톤 동호회가 여럿 있지만 가장 큰 동호회는 회원 수가 4만명에 육박한다. 버틀러―애덤스에게 "동호 회원이 몇 명일 것 같으냐"고 묻자 그는 "6000명쯤 되느냐"고 되물었다. "4만명"이라고 알려주니 그는 "와, 미쳤군요. 굉장하네요(That's mad. That's awesome)"라며 "우리는 직원 250명에 불과한 작은 회사인데 한국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브롬톤을 탄다니 정말 신기하다"고 말했다.

―브롬톤의 접힌 모양은 만족스러운데 좀 무겁다고 평합니다.

"사람들은 더 가볍게 만들어 달라고 해요. 우리 경쟁 회사들도 가볍게 만들지요. 가볍게 만드는 건 아주 쉬워요. 그렇지만 사람들은 20년, 30년 탈 자전거를 원해요. 우리는 기본적으로 강철을 써요. 가벼운 걸 원하면 티타늄으로 만든 브롬톤도 있어요. 물론 값이 더 비싸긴 하죠."

―프레임이 강철인데 가격도 비싼 편이죠. 특히 한국에서는 계속 가격이 상승했죠.

"1950년대 영국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전거로 출퇴근했습니다. 그때 알루미늄 자전거가 나왔죠. 그런데 튼튼하지 못해요. 알루미늄은 어느 순간 퍽 하고 부러져 버립니다. 그러나 강철은 서서히 구부러지죠. 훨씬 더 안전해요. 그래서 브롬톤에는 강철이 최고의 소재입니다. 브롬톤이 비싼 이유는 노동 집약적으로 만드는 자전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부품을 자체 생산합니다. 일본의 시마노 같은 부품을 쓰지 않아요. 이 자전거를 만드는 사람을 2~3년 교육하고, 그 교육 비용만 1인당 2만5000파운드(약 3600만원)가 듭니다. 게다가 브롬톤에는 돈으로 매기기 어려운 가치가 있습니다. 20년 이상 유지되는 가치죠. 브롬톤은 트렌드나 유행이 아닙니다. 80세까지 이 자전거를 탈 수 있다면, 그때 이 자전거와 함께한 추억들을 되돌아본다면 과연 비싼 가격일까요? 요즘 수많은 물건이 잠깐 쓰고 바꾸는 것들이지만, 브롬톤은 수십 년을 쓰는 물건입니다."

모든 자전거에 제작자 이름 새겨

―당신은 브롬톤으로 출퇴근합니까.

"여름이면 오전 5시 45분에 일어나 자동차에 브롬톤을 싣고 외곽 주차장까지 가서 거기서부터 13㎞가량을 타고 7시까지 출근합니다. 겨울에는 어렵습니다. 런던의 겨울은 무척 춥고 어둡거든요."

브롬톤을 타는 사람들끼리 '자전거를 얼마나 빨리 접을 수 있는가'는 끊이지 않는 화제다. 올해 제5회를 맞은 '브롬톤 월드챔피언십 코리아'에서 부대 행사로 열린 '빨리 접기 대회' 1등 기록은 6.61초였다. 주 행사였던 '셔츠·재킷 입은 채 16㎞ 브롬톤 경주'에서는 남자 1위가 27분11초, 여자 1위 30분7초를 기록했다.

버틀러―애덤스에게 "당신은 몇 초 만에 접을 수 있는가" 했더니 그가 직접 시범을 보였다. 스톱워치로 재보니 접는 데 9초가 걸렸다. 그는 "9초라니! 너무 느려. 분명히 8초 이내에 접을 수 있는데"라고 말했다.

―브롬톤에 우연히 입사했다고 들었습니다.

"2001년 런던에서 버스를 탔는데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창업주인 앤드루의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그게 완벽한 행운이었던 거죠. 저는 그때 MBA 과정에 들어가려고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앤드루를 한번 만나보기로 했어요. 그때만 해도 브롬톤에 대해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었어요. 저는 영국 북부에 살고 있었고 브롬톤은 런던에서만 타는 자전거였거든요. 여하튼 앤드루의 공장에 가보니 1930년대 공장처럼 생겼더라고요. 모든 게 구식이었죠. 저는 최첨단 소재를 다루는 화학 회사 엔지니어였고 앤드루는 모든 걸 손으로 두들겨 만드는 괴짜 발명가였어요. 그때만 해도 브롬톤 전 직원이 24명이었어요. 친구들은 '이 멍청아 그런 작은 공장에 왜 취직하느냐'고 말렸어요. 사실 MBA에 입학하기엔 제 이력이 좀 부족하기도 했고, 런던에 살아보고 싶기도 했고…. 그렇게 브롬톤에서 일하게 됐지요."

―브롬톤이란 이름은 무슨 뜻입니까.

"앤드루는 케임브리지대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브롬톤도 그 아파트에서 탄생했지요. 앤드루가 브롬톤을 디자인한 책상 위에 창문이 있고 그 창문 너머 '브롬톤 교회'가 있었어요. 디자인을 마치고 나서 이름을 뭐로 지을까 하다가 그 교회를 보고는 그냥 '브롬톤'으로 했대요. 브롬톤은 그 동네 이름이고요."

―브롬톤의 경영 방식도 독특하다던데요.

"우리는 첫째, 품질이 좋아야 한다는 데 회사의 사활을 겁니다. 그리고 둘째는 고객과의 관계입니다. 만약 우리가 옷이나 과자를 팔았다면 다음번 고객을 생각하겠지만 자전거는 한 대 파는 순간 그 고객과의 관계가 시작됩니다. 브롬톤을 20년 탄 사람이 수리해 달라고 가져오면 반드시 그 부품이 있어야 해요. 그런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업을 합니다." 그에게 "내가 갖고 있는 브롬톤 기어에 문제가 있어 변속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하니 그는 "오, 내가 당장 고쳐야 하는데, 내가 그거 전문인데" 하면서 "집이 머냐. 지금 가져올 수 없느냐"고 여러 번 물었다.

―어떤 비전을 갖고 있습니까.

"런던 인구의 5%가 자전거를 탑니다. 베를린이나 암스테르담·코펜하겐·함부르크는 그 비율이 35%까지 올라갑니다. 지금 런던 시내에 브롬턴 10만대가 굴러다니고 있으니까 만약 런던 자전거 인구가 35%로 올라가면 브롬톤도 70만대가 다니게 될 거예요. 지금도 런던 시내에서는 눈 돌리기 무섭게 브롬톤을 볼 수 있는데, 70만대로 늘면… 상상만 해도 행복해요. 요즘 사람들은 스마트폰이 생겨서 더 이상 외롭지 않지만 육체적 활동은 더 줄어들었어요. 더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과 어울려 자전거를 타면서 행복과 즐거움을 느꼈으면 해요. 꼭 브롬톤이 아니어도 돼요. 자전거를 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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