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멩코 선율 따라 ‘오야일숙’하며 올리브 향기에 취하다

글·사진 | 이남석 서울성동공고 교사

입력 : 2017.05.19 10:34

잉꼬 부부의 1,800km 스페인~모로코 자전거 여행 이야기


	스페인
스페인 세비아의 에스파냐 광장을 지난다. 절제된 형식과 화려함이 돋보이는 건축물이다.

자전거 여행을 출발하는 순간 우리는 고의든 아니든 오래전에 잃어버린 어린 시절 본성을 회복할 수 있다. 그것 하나만으로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사람들의 여행담을 들어보면 낭만적이고 교훈적이며 심지어 출발부터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일들만 있었던 것처럼 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열 가지 중 일곱은 힘들고 고통스럽다. 여행은 여정에서 경험하는 것을 인내하고 재해석해서 아름답게 만드는 과정이다.

지난해 12월 말, 아내와 나는 스페인 세비야공항에 도착했다. 세비야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대표적인 도시이다. 안달루시아 지역은 기원전 페니키아인들이 살았으며, 카르타고와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반달족과 서고트인, 유태인을 포함한 아랍인과 무어인까지 여러 인종이 뒤섞여 살았다. 종교적으로는 중세 이후 기독교와 이슬람이 충돌했던 지역이다. 때문에 인종의 특이성은 물론이고 문화·종교적으로도 스페인의 다른 지역과는 확연하게 다른 특징을 간직하고 있다.

안달루시아는 집시의 고향이라고도 하는데, 쉽게 말하면 살던 곳을 등지고 떠난 사람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유럽의 다른 지역과는 지리적으로나 기후적으로 확연하게 대비되는 것이 지중해를 거쳐 대서양으로 이어지는 해안과, 거기에 맞닿은 높은 산맥, 그리고 넓은 경작지 때문에 수천 년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그로 인한 인종 갈등과 잦은 충돌이 결국 집시라는 대량 유민을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스페인 세비야공항에서 자전거를 조립한 후 곧바로 지중해를 건널 수 있는 항구도시 타리파로 출발했다. 바람을 타는 늙은 말갈기처럼 변화무쌍한 길을 따라 세비야를 벗어나자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됐다. 빛은 늦가을을 닮았으며 공기는 계곡물처럼 달콤했다. 스페인 지도만 놓고 보면 거의 평원지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스페인은 북동쪽으로는 프랑스와 피레네산맥을 맞대고 있으며, 중앙의 메세타고원, 그리고 우리가 넘어야 할 시에라모레나산맥 등 우리나라보다 더 험하고 높은 산악지형이다.


	스페인
1 스페인 작은 도시의 문화원 벽화. 풍부한 색체와 독특한 형상의 그림이 작품을 이루었다. 2 예레즈 외곽의 강변에서 야영한다. 스페인 어디를 가든 야영할 만한 장소는 있다. 3 올리브를 수확하는 사람들. 이들 대부분 남미에서 온 노동자들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되도록 아내의 의견을 따르기로 약속했다. 그간은 혼자 여행하던 습관 때문에 몇몇 상충되는 것들이 있었다. ‘마트에서 장보는 시간 충분히 주기’, ‘가다가 펍(Pub)을 만나면 별일 없는 한 맥주 한 잔씩 하기’로 약속했다. 그래도 분명히 한 것은 ‘필요 없는 데 돈 안 쓰기’, 5일은 야영하고 하루는 호텔에서 자는 일명 ‘오야일숙’은 확고부동하게 지키기로 했다.

지중해의 대표적 작물인 올리브는 기름부터 시작해서 소금에 절인 뒤 숙성한 장아찌까지 우리로 치면 김치와 마찬가지로 모든 음식에 빠질 수 없는 식품이다. 여기선 어딜 가나 질서정연하게 심어놓은 올리브농장을 만난다. 작은 도시의 허름한 선술집에 들어가 맥주 한 잔을 시키면 우리네 막걸리에 마늘쫑이나 김치 나오듯 소금에 절여 숙성한 올리브 한 접시가 나왔다. 잡다한 생각을 내려놓고 주변 분위기와 어깨를 맞댄 채 아내와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키면 평온은 솜처럼 일어나고, 여행의 잔잔한 흥이 뒤따라왔다.

예레즈에서는 강가에서 야영했는데 다음날 다소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발했다. 안달루시아는 동서로 긴 산맥과 협곡, 북쪽 내륙으로는 산맥의 내리막이 급해지는 지형적 특성이 있다. 특히 산맥의 정점부터 수십km에 걸쳐 뻗은 고원의 경작지는 올리브나무와 밀로 가득하다. 피카소의 고향이 안달루시아니 굳이 연관시키지 않더라도 풍부한 빛과 잘 정돈된 자연, 자유분방한 사람들의 정서도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도

아내는 시인이자 작은 거인

아내는 주변 풍경에 흠뻑 취해 큰 힘 들이지 않고 자전거 페달을 돌렸다. 이 작은 거인은 조그맣고 단단한 몸집으로 자신보다 더 커 보이는 짐을 매단 자전거를 잘도 굴렸다. 대서양과 지중해는 쉬지 않고 바람을 만들어 산맥으로 보냈으며, 상쾌한 빛을 품은 채 얇고 촘촘한 잎사귀를 흔드는 올리브나무는 향기 나는 열매를 위해 길고 추운 겨울을 인내하고 있었다.

안달루시아 지역은 가옥 외벽의 색깔이 도시나 농촌 할 것 없이 거의 흰색으로 칠해져 있다. 강수량이 적고 큰 오염원이 없으니 흰색으로 겉을 칠해도 오래도록 그 빛깔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다보니 멀리서 봐도 한눈에 집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으며, 가벼운 듯 짙은 하늘빛과 어울린 마을은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 구글지도와 GPS의 힘을 빌려 길을 찾아봤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수시로 자전거를 세워 위치를 파악해야 하고 휴대전화 배터리 소모도 빨리 되어 갈림길이 없는 곳에서는 꺼둬야 했다. 그렇다보니 주변 경관에 빠져 길만 따라가다간 계획한 경로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도로를 연결하는 마을을 차례대로 메모해 놓고 물어서 가는 고전적인 방법을 택했다.

야영을 주로 하는 자전거 여행은 대체로 출발 3~4일째가 고비다. 이 기간을 잘 버텨야 남은 여행을 잘 마칠 수 있다. 아무래도 야영은 집에서 자던 방식과 달라 하루 정도는 견딜 수 있지만 이틀째가 되면서부터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조금씩 고단해진다. 특히 샤워는 물론이고 세수조차 거르는 날이 대부분이기에 생활 리듬이 깨지면서 3일째가 되면 빨리 호텔로 들어가 씻고 편히 자고 싶다. 하지만 그 순간을 잘 이기고 넘어가 5일째가 되면 자연스럽게 야영에 익숙해진다.

안달루시아를 여행하는 동안 옛날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어린아이가 바람에 일렁대는 푸른빛이 투영되는 보리밭 길을 걷는 느낌이었다. 누가 종종걸음으로 와서 무슨 얘기라도 걸 것 같은 분위기는 한적하고 따스한 안달루시아의 특징이었다.

이곳에선 상점을 만나기가 쉽지 않아, 큰 마을에 가야 마트 같은 상점을 보게 되었다. 때문에 식료품을 충분히 사야 했다. 나는 어릴 적 제때 먹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던 시절을 살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늘 아내에게 충분히 빵과 치즈와 잼을 사자고 했다. 어떨 땐 빵을 너무 많이 사서 빵이 오래되어 굳어버려 먹지 못하고 버린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아내는 조금씩 먹을 만큼만 사자고 내게 지청구를 주곤 했는데, 별로 귀에 와 닿지 않았다.

끝없이 펼쳐진 올리브밭 사이를 내달렸는데 올리브가 지루하다 싶으면, 밀밭이 그 뒤를 이었다. 아쉬운 것은 초록색 밀싹만 볼 수 시기였다. 3월 이후에는 대서양이 들어다 붓는 비를 맞으며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집시
플라멩코를 추는 거리의 매혹적인 집시.
고원을 지나는 동안 빛에 감탄하고 또한 빛에 취했다. 달팽이 더듬이처럼 느슨해진 눈과 귀와 피부를 통해 안달루시아의 색깔에 흠뻑 취해버린 것이다. 아내는 여행 내내 10대 소녀의 감성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소리를 내며 깔깔 웃다가도 갑자기 어린 시절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들추어내며, 이곳과 비교하며 먼 곳을 가리키면, 나는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면서 공감했다. 이런 공감은 함께 여행하며 얻는 여행자의 기쁨 중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

지나간 길은 심장에 소박한 얘기를 남겼으며, 가야 할 길은 늘 과연 앞으로 어떤 장면이 나올까, 기대와 호기심을 담은 보물상자 같았다. 자전거여행이 지루하지 않은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안달루시아고원은 일정하게 평원이 이어지는 곳도 있지만 대체로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힘껏 페달을 밟고 언덕을 오르다보면 어느새 날은 저물고 야영지를 찾게 된다.

올리브밭 사이로 그림자가 길어질 때, 우리는 낭만적인 올리브나무 밑에 텐트를 쳤다. 아내는 진실로 여행을 즐길 줄 알았다. 말이 없으면 느끼는 중이었고, 말을 걸어오면 교감하는 한순간을 감동적으로 표현해 낸 시(詩)였다.

관목으로 덮인 숲은 얇은 옷을 입은 무희처럼 구름과 산맥이 그대로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만약 어느 화가가 여인의 발걸음이 남긴 여운 같은 산수를 표현하고자 한다면, 안달루시아는 훌륭한 모델이었다.

길거리 집시의 플라멩코 공연이라도 좋았다

간혹 사람들은 큰 도시를 방문해 유명한 유적들을 둘러보지 않은 것이 서운하지 않은지 물었다.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이런 대답을 했다. 인사동에 가지 않아도 봉화의 산골 집들 사이로 난 길을 달리는 것도 충분히 낭만적이며, 종묘를 방문하지 않아도 도계를 거쳐 태백시를 들렀다가 빠져나오면서 길 옆에 선 효자각을 바라보며 돌덩이에 새겨진 비문을 읊어보는 것도 괜찮다고.

세비야에서는 근사한 식당이나 공연장에서 플라멩코를 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광장에서 무명의 무희가 추는 플라멩코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비록 집시들이 동전을 얻기 위해 추는 플라멩코지만, 어쨌거나 인공적 조명보다는 나무 사이로 자연광이 쏟아지는 곳에서 보는 플라멩코도 괜찮았다.


	이남석씨 부부
1 안달루시아의 고원을 달리는 부부. 스페인 남부는 겹겹이 포개진 산맥과 온화한 빛, 넓은 올리브 숲과 밀밭이 압권이다. 2 오래 된 수로 옆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이남석씨 부부. 3 세비야 대성당. 안달루시아의 독특한 건축양식과 색을 읽을 수 있다.
세비야나 다른 도시에서 저렴한 숙소에 머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손쉬운 것은 유럽의 평범한 단체여행객들이 머무는 곳으로 가면 된다. 대체로 유적지 주변의 일반 주택이 밀집된 곳에 가면 ‘펜션(Pension)’이라고 쓴 간판을 만난다. 우리식으로 하자면 여인숙이나 게스트하우스쯤 되는데 보통 한사람이 15~30유로 정도만 내면 하루 잘 수 있었다.

스페인과 모로코에서 우리는 여행 내내 빵에 취해서 살았다. 그만큼 빵과 잼, 치즈와 과일주스는 우리의 주식이었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소화가 잘 되었고, 충분한 에너지가 되었다. 간혹 다른 음식을 맛보기도 했지만 보기만 그럴 듯했지 빵만큼 식욕을 당기게 하지는 않았다. 빵은 0.5~1유로 정도며 잼이나 크림치즈도 대형상점을 기준으로 한다면 우리나라 마트 3분의 1가격이었다.

세비야를 출발해 중간에 GPS 해독을 하지 못한 탓에 헤매기는 했지만 우리는 거의 5일 만에 모로코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는 타리파(Tarifa)에 도착했다. 승선요금은 37유로이고 자전거는 분해하지 않고 짐과 함께 무료로 실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제 아프리카 북서부의 모로코로 간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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