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라스의 한없이 푸른 하늘과 붉은 흙에 취하다

글 사진 이남석 서울성동공고 교사

입력 : 2017.10.30 11:01

자전거 탄 채 하이아틀라스 넘고 모로코 고원 가로질러


	와라자자트를 지나 하이아틀라스의 마지막 고원지대로 이어진 길. 길 주변으로 나타나는 마을과 고원, 끝없이 이어지는 산줄기는 서정적이며 아름답다.
와라자자트를 지나 하이아틀라스의 마지막 고원지대로 이어진 길. 길 주변으로 나타나는 마을과 고원, 끝없이 이어지는 산줄기는 서정적이며 아름답다.

유럽에 피레네산맥이 있다면, 북아프리카에는 아틀라스산맥이 있다. 결코 낮지 않은 봉우리들이 열 지어 북에서 남으로 달리니,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한 마리의 큰 용과 같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습한 공기가 아틀라스를 넘어가면서 3,000~4,000m 고지대에 비와 눈으로 습한 기운을 모두 내려놓으니 동쪽으로 내닫는 기류는 건조하고 뜨겁다.

이런 영향으로 아틀라스 동부는 메마르고 황막한 평원 지대가 전개되다가 동남쪽으로 내려가면 마침내 사하라사막에 이른다. 베르베르인들의 터전이 된 아틀라스 고원지대는 이렇듯 변화무쌍한 기후변화와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갖춘 곳이다. 아틀라스 고원은 동서의 폭이 대체로 넓은 곳은 200km에서 좁은 곳은 100km에 이르는 평원지대다. 강수량이 적고 토양은 비옥해서 일찍부터 베르베르인들의 유목과 경작의 터전이었다.

하이아틀라스의 마지막 고개를 넘기 전 우리는 유명한 오아시스 스코우라에 도착했다. 오아시스라고 하면 야자수가 무성하고 큰 샘이나 호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야자수만 무성할 뿐 웅덩이나 호수는 보이지 않았다. 평상시 생각하던 오아시스 개념과는 전혀 달랐다. 나중에 알았지만 오아시스는 땅속 일정한 깊이에 많은 물이 있어 어디를 파더라도 충분한 양의 물을 구할 수 있는 지역을 말했다.

자전거 바퀴를 돌리며 우리는 여행이 주는 선물을 아낌없이 받았다. 특히 아틀라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예측할 수 없는 지역이었다. 사람들은 질박하면서도 인정이 넘쳤으며, 아이들은 부모 품 안에서 나와 세상구경을 하는 새처럼 높이 날기를 원했다. 농부들은 쟁기로 밭을 갈고 양치는 사람들은 그들 몸 안에 유전자가 시키는 대로 양들을 몰고 다녔다.

티니가르를 지나 갑자기 경사가 급해졌다. 좁고 긴 회랑을 지나듯 암벽으로 둘러싸인 계곡을 달렸는데 우리는 자주 자전거를 세워야 했다. 좁고 가파른 바위절벽을 재주부리듯 헤집고 나아가는 양떼는 사람들이 접근해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목동은 뒷짐을 진 채 막대기를 짚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동양인 여행자를 바라봤다.

바람과 비에 의해 오랫동안 침식되어 단단한 바위만 남은 지형 덕분에 자연 동굴이 곳곳에 있었다. 동굴에는 베르베르인들의 초기 생활 형태나 다름없는 유목민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시력이 얼마나 좋은지 멀리서 지나가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가, 우리가 자전거를 세우고 그들을 바라보면 몇 km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아틀라스의 고원도시 아조로우를 지나면서 본 풍경. 건물 색깔이 특이하고 사람들 생활 역시 단조롭고 소박하다.
아틀라스의 고원도시 아조로우를 지나면서 본 풍경. 건물 색깔이 특이하고 사람들 생활 역시 단조롭고 소박하다.

“어머! 이런데서 유럽인이 아닌 한국인 자전거 여행자를 만나는 건 처음이에요. 그것도 부부가! 어디서 오는 중이에요?”

투드라계곡에 들어서자 비로소 우리는 관광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2주째 모로코를 여행 중이라는 중년 여성은 우리를 만나자 반가움과 함께 쉬지 않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투드라계곡은 모로코에서도 워낙 유명한 곳이라 한국인뿐만 아니라 각국의 많은 여행자들이 찾았다. 어느 한국인 여성 여행자로부터 스페인 산티아고순례길을 걸은 뒤 모로코에 왔다는 얘기를 듣고 감동했는데, 그녀는 오히려 자전거 여행자인 우리 부부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수려하고 험준하면서도 아름다운 아틀라스

티니가르를 출발해서 스코우라와 하이아틀라스 최대 도시인 와라자자트Warazazat까지는 전형적인 고원의 풍경이었다. 북서로 뻗어 내린 하이아틀라스산군은 흰 말의 갈기처럼 펄럭거리고, 산맥이 끝나는 부분부터 이어진 평원은 좌우로 장엄하게 펼쳐졌다. 이정표는 위병처럼 나그네에게 방향을 일러주었으며, 협곡과 평원이 반복되는 산맥 가장자리는 길을 숨기기도 하고 때로는 지평선 가까이까지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풍경이라면 누구라도 어디 적당한 곳에 텐트를 치고 밤을 기다려 볼 것이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엄청난 별 무더기가 쏟아져 내리는 고원의 대지에 등을 대고 누워 그 무수한 별을 품어볼 것이다.

낮에 와라자자트를 통과했는데 아틀라스 고원지대의 도시 중 가장 컸다. 주변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토산품과 농산물, 새롭게 자리 잡으려는 문명의 상징물들이 뒤엉켜 마치 고원에 들어서는 에펠탑처럼 변해 가는 도시였다.

우리는 아직 아틀라스를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비록 우리가 봇짐 하나에 의지해 유랑하는 음유시인도 아니고 집시도 아니었지만 자전거에 의지해 무엇이든 접촉하고 사색하며 더불어 몸 안에 그 모든 것들을 저장했다. 아내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면서 내 생각을 물어보다가도 어떤 때는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자전거 위에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아틀라스 어느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 이들에게 여행객은 언제나 신기하고 관심의 대상이다.
아틀라스 어느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 이들에게 여행객은 언제나 신기하고 관심의 대상이다.

	화려한 색깔의 빨래를 말리는 베르베르인의 가정 풍경.
화려한 색깔의 빨래를 말리는 베르베르인의 가정 풍경.

하이아틀라스는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수려하고 험준했으며 또한 평화로웠다. 길게 늘어선 산맥 위로 흰 눈을 이고 있는 봉우리들이 겹겹이 포개져 있는 것이 마치 히말라야 초입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우리는 오르막이 시작되는 곳에서 여유를 가지고 페달을 돌렸다. 고원에 노을이 번지면 야영지를 찾는 것조차 우리 부부에게는 낭만적인 시간이었다.

철저하게 고립된 고원이라 해도 텐트만 치면 한밤은 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와라자자트를 지나 고원에 들어서면서 반대편에서 오는 자전거 여행자를 만나기도 했다. 대부분 유럽에서 모로코로 이동해서 서부 해안을 따라 내려온 후 아틀라스로 진입하는 중이었다.

전통 채색토기와 기념품을 파는 가게 주인의 배려로 창고 지하실에서 야영을 하기도 했으며, 벌판 위에 버려진 듯 서있는 집의 담 밑에서 하루를 머무르기도 했다. 문득 폐가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날이 새면서 쏟아지는 햇빛과 흰 띠를 두른 듯 남북으로 가로지른 설산이 주는 감동은 우리가 상상한 그 이상이었다. 아름답고 깊이가 있는 마지막 하이아틀라스는 처음부터 범상치가 않았다.

서양화에 나타난 두껍고 어두운 질감처럼 투박하고, 거친 산맥의 밑에서 시작해 예리하게 올라간 봉우리에 이르기까지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진열해 놓은 것만 같았다. 하이아틀라스는 자전거 여행자의 헐떡이는 호흡과 현실과 꿈속을 헤매는 듯 경이로움에 취한 여행자를 부드럽게 포옹했다. 오후로 접어들면 빛은 어부가 그물을 내리듯 평원으로 가라앉았다. 멀리 한 무더기의 양떼와 목동은 천천히 자신이 쉴 곳으로 이동했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길에서 만나는 여러 가지 예측하지 못한 어려움을 극복하다 보면 결국 그것들은 최종 결과인 행복과 즐거움이 버무려져 전체가 환하게 빛을 내게 되는 것이다.

모로코를 여행한 사람은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다. 아틀라스 하늘을 덮고 있는 100% 순도의 푸른빛, 어디를 가든 볼 수 있는 특이한 양식의 모스크와 거기서 흘러나오는 알라를 향한 찬송가-. 이는 모로코인들의 정신을 떠받치는 기둥이나 마찬가지였다. 베르베르인들은 고원의 흙이 언제나 붉은색인 것처럼 코란의 음성이 깃든 아틀라스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었다.


	 아틀라스산맥이 달리는 내내 병풍처럼 펼쳐진다.
아틀라스산맥이 달리는 내내 병풍처럼 펼쳐진다.

	아틀라스의 한없이 푸른 하늘과 붉은 흙에 취하다
자전거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마라케시로 가는 길, 가장 큰 고비는 아틀라스 고지대인 하이아틀라스였다. 먼 배경처럼 보이던 설산 자락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비로소 하이아틀라스 고개가 다가와 있었다.

날이 저물어 큰 기념품 가게 앞마당에 텐트를 쳤다. 늦은 저녁 텐트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어 우리는 깜짝 놀랐다. 그는 우리를 자기 숙소로 초대해 차를 대접했다. 비록 그가 하는 얘기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처음 만난 동양인 여행자에게 정성껏 차를 대접하는 그에게서 나그네에게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하던 우리네 옛적 산골 사람들이 떠올랐다.

아름다웠던 마라케시의 야경

고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길지 않았다. 사방이 열려 있어 등뼈처럼 곧게 통과하는 산맥의 중심에서 사방으로 갈라져 나가는 지능선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대부분 봉우리는 눈이 덮여 있어 접근이 어려워 보였다. 간혹 배낭을 메고 산으로 향하는 베르베르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양떼를 모는 목자도, 등산을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석영이나 루비, 혹은 화석이나 보석을 채집하는 사람들이었다. 고개 정상은 콜데 티츠카Colde Tichka 패스로 높이가 2,260m로 상당히 높았다. 고개 주변의 눈이 녹지 않은 봉우리들은 작은 히말라야나 파미르를 연상시켰다.

고개를 넘자 계속 내리막이 이어졌다. 지루하다 싶을 정도의 내리막이었다. 평소 같으면 쉬었다 갈 만한 마을도 그냥 지나쳤다. 마라케시를 50km 남겨놓고 한 농가 주인의 배려로 그 집 뒤뜰에서 야영을 했다. 주인 가족으로부터 차와 음식 대접을 극진하게 받고 대신 우리는 그때까지 가지고 다니던 프라이팬 겸 다용도 요리용 그릇을 선물했다.

마라케시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기차역으로 가서 스페인으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는 탄지에르행 야간 침대 열차표를 예약했다.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염려 없다는 매표원의 말만 믿고 일단 표를 샀다. 하지만 이게 또 모로코에서의 마지막 이벤트가 될 줄은 몰랐다.

	아틀라스의 한없이 푸른 하늘과 붉은 흙에 취하다

	하이아틀라스를 넘어 마라케시로 가는 길의 필자와 아내.
하이아틀라스를 넘어 마라케시로 가는 길의 필자와 아내.
마라케시는 큰 도시였다. 중심부에 숙소를 정하고 그날 저녁은 푸짐하게 식사를 했다. 높낮이가 서로 다른 상인들의 목소리가 광장에 가득하고 여행객들은 더 신기하고 재미있는 광경을 찾아내기 위해 돌아다녔다. 여행은 바로 이런 분위기를 느끼고 즐기는 것이 아닐까?

케이크 가게에 가서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과 빵을 사온 아내는 그동안 단것이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내 옆에서 맛있다는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이곳은 겨울이 우기라는 얘기를 듣고 왔지만 실상 한 번도 비를 만나지 않았다. 아틀라스 동쪽은 전혀 비가 내리지 않아 준비한 비옷을 입을 기회가 없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 틈에 섞여 그들과 함께 도시의 감정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우리가 호흡한 여행의 긴박함이 풀어지면서 우리는 버드나무가 바람에 휘듯 감정이 자유롭고 느슨해졌다. 마라케시의 야경은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고기잡이배의 등불처럼 아름답고 조화로웠다. 옛날 추억들을 건져 올리는 듯 아련하기까지 했다.

다음날 기차역으로 갔지만 역 정문에서 출입을 제지당했다. 자전거는 기차에 실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연히 예매한 표를 보여 주며 항의했다. 결국 비번이었던 표를 판 직원을 소환하고 역장이 나와서 중재를 하는 등 한바탕 소란을 벌인 후에야 자전거를 분해해 일반 짐처럼 화물로 싣고 갈 수 있었다.

모로코 탄지에르에서 스페인 타리파로 가는 배에 올라 아내와 포옹했다. 여정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여행은 한순간의 꿈같았으며 추억은 가슴속에 새겨져 있었다. 우리 부부는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스페인 세비야에서 귀국 비행기를 타는 순간까지도 아틀라스 고원의 그림 같은 풍경과 감동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연재끝>


	스페인 - 모로코 자전거여행 노선도
스페인 안달루시아~모로코 아틀라스고원
자전거 여행 꿀팁

1
스페인 세비야행 왕복 비행기 표를 예약한다. 여행기간은 보통 35일 정도면 충분하다.

2 세비야 공항에 도착하면 바로 자전거를 조립해서 모로코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는 항구도시 타리파로 출발한다. 가는 동안 집시들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안달루시아 지방을 통과하게 된다.

3 타리파에 도착해서 모로코 탄지에르로 가는 배를 탄다. 운임은 약 37유로이며 자전거는 무료로 실어 준다.

4 탄지에르에서 미들아틀라스를 거쳐 아틀라스산맥의 고원지대를 따라간다. 일단 하이아틀라스의 와라자자트까지 가서 개인 능력에 따라 다른 곳을 더 둘러볼 수도 있다. 여행의 종점은 마라케시나 카사블랑카 두 도시 중 하나를 선택하는데 바로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배를 탈 수 있는 탄지에르행 기차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5 올 때와 반대로 배를 이용해 탄지에르에서 스페인의 타리파로 온 후 다시 자전거를 타고 세비야로 온다. 탄지에르에서는 자전거를 싣는 데 돈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무시하고 주지 말아야 한다. 모두 한 회사에서 운항하는 배편이므로 무료다.

6 두 사람의 비행기 요금 200만 원, 여행 경비 700유로(100만 원). 
총 300만 원으로 32일 동안 두 사람이 여행한 셈이다.

7 숙소는 대부분 야영으로 해결했으며, 특히 모로코에서는 야영 외에는 별 다른 방법이 없다. 식사는 가게에서 빵과 치즈, 고기와 야채를 사서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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