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야와 호반길의 아늑함, 거친 산길의 스릴

바이크조선

입력 : 2020.09.23 10:00

해남 땅끝자전거길 12코스 산호길 42.5km

두륜산과 주작산 동쪽에 펼쳐진 북일면은 고분들이 산재해 한때는 상당한 세력이 자리잡았던 거점이다. 산은 높고 들은 넓으며 바다는 가까우니 천혜의 환경이다. 땅끝자전거길 12코스 산호길은 북일면 일대의 들길과 호반길, 해변길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주작산 주릉을 넘나드는 산길을 포함한 다채로운 환경과 경관이 특징이다.


	주작산 북릉에서 바라본 주작산~두륜산 간 땅끝기맥의 맥동. 공룡의 등줄기처럼 기암괴석이 돌출한 암릉이 금강이나 설악 같은 거산의 면모를 보여준다.
주작산 북릉에서 바라본 주작산~두륜산 간 땅끝기맥의 맥동. 공룡의 등줄기처럼 기암괴석이 돌출한 암릉이 금강이나 설악 같은 거산의 면모를 보여준다.
한반도를 종단해 땅끝으로 치닫는 산줄기(땅끝기맥)는 영암 월출산(809m)에서 확실한 갈래를 잡은 다음 가학산(575m)-흑석산(653m)-서기산(511m) 즈음에서 오르락내리락 잠시 좌충우돌을 겪는다. 그러다 강진 덕룡산(433m)으로 접어들면서 바위가 돌출하고 일직선으로 쭉 뻗은 전형적인 칼날능선이 본격화된다. 덕룡산 이후 주작산(475m)을 거치면 해남으로 접어들어 두륜산(703m)~달마산(489m)에서 마치 공룡의 등줄기 같은 산줄기가 쏜 화살처럼 직선으로 땅끝을 향해 뻗어난다.

두륜산과 주작산 사이에는 상당히 넓은 들판이 있는데 바닷가에 방조제를 쌓아 거대한 담수호(사내호)를 만들고 갯벌을 간척해서 한층 더 넓어 보인다.

이제 들판과 호수, 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산길까지 넘나드는, 땅끝 최후의 광야와 산을 달린다.

	사내호 방조제 중간쯤에 있는 수문 쉼터. 장쾌한 경관이지만 찾는 이가 거의 없다.
사내호 방조제 중간쯤에 있는 수문 쉼터. 장쾌한 경관이지만 찾는 이가 거의 없다.

	아길이 3260m의 장대한 사내호 방조제. 토종견 한 마리가 강진 방면으로 가고 있다.
아길이 3260m의 장대한 사내호 방조제. 토종견 한 마리가 강진 방면으로 가고 있다.

	사내호 방조제길. 뒤편으로 펼쳐진 사내호는 둘레가 8km나 된다.
사내호 방조제길. 뒤편으로 펼쳐진 사내호는 둘레가 8km나 된다.

	아담한 사내항에 들러 해발 0m의 바다향을 맛본다.
아담한 사내항에 들러 해발 0m의 바다향을 맛본다.


	사내호 북안길. 오른쪽 둑 너머가 호수인데 둑길이 없어 다소 답답한 농로를 달려야 한다.
사내호 북안길. 오른쪽 둑 너머가 호수인데 둑길이 없어 다소 답답한 농로를 달려야 한다.
둘레 8km의 광대한 사내호

형태와 규모까지 북한산 인수봉과 흡사한, 거대한 암봉인 두륜산 투구봉(495m)과 주작산을 남북으로 바라보는 북일면사무소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북일면 일대는 일본 고유의 묘제로 알려진 대형 전방후원분(장고분)을 포함해 다수의 고분이 분포해서 고대에는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상당한 규모의 집단이나 정치세력이 거점으로 삼았음이 분명하다. 장벽 같은 산줄기는 차가운 북서풍을 막아주고 너른 들판은 풍요를 보장했으며, 지척의 바다는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는 교통의 자유를 주었을 것이다. 그만큼 고대부터 살기 좋은 땅이었고 그 핵심은 산과 들판 그리고 바다를 낀 입지 덕분이었다.

북일면사무소에서 사내호로 가는 들길은 광활하다. 간척지 특유의 완벽한 평면과 반듯한 격자형 구획이 시각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안정감을 준다.

사내호는 1993년 북일면 앞바다에 길이 3260m의 방조제를 막아서 조성한 담수호다. 사내호라는 특이한 이름은 방조제 양단의 강진 사초리(沙草里)와 해남 내동리(內東里)의 앞자에서 따왔다.

아뿔싸, 호반에 접어들었으나 호수가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호수를 둘러싼 둑 위에 길이 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둑 위는 수풀에 완전히 묻혀 둑 아래 농로를 따라 일주하는 수밖에 없다. 둑길을 반듯하게 정리한다면 아주 멋진 호반길이 될텐데.

방조제로 나서면 비로소 호수의 전모가 드러나는데 끝이 가물거릴 정도로 큰 규모에 입이 떡 벌어진다. 삼각형 형태의 호수는 둘레가 8km에 달하고 면적이 약 3㎢로 서울 여의도보다 크다. 호수가 이렇게 넓다는 것은 그만큼 이 호수 물에 기대 경작하는 들판도 넓다는 뜻이니 실로 소중한 젖줄이다.

수문과 쉼터가 있는 방조제 중간 즈음에서 강진군과 경계가 갈린다. 길을 잃은 건지, 집을 찾아가는 건지 당당한 자태의 토종견 한 마리가 아득히 뻗은 방조제 위를 홀로 걷고 있다.

	들판을 지나 영관리 즈음에
서 주작산으로 접근하며. 삐
죽거리는 장대한 암릉은 전
설의 새인 주작(朱雀)이 날
개를 펼친 듯하다.
들판을 지나 영관리 즈음에 서 주작산으로 접근하며. 삐 죽거리는 장대한 암릉은 전 설의 새인 주작(朱雀)이 날 개를 펼친 듯하다.

	주작산으로 올라서는 임도.
숲이 울창하고 곳곳에 급경
사가 나타난다.
주작산으로 올라서는 임도. 숲이 울창하고 곳곳에 급경 사가 나타난다.


	해발 290m의 도림재. 고개
의 입지와 암봉이 드리운 풍
경까지 달마고도의 바람재
와 닮았다.
해발 290m의 도림재. 고개 의 입지와 암봉이 드리운 풍 경까지 달마고도의 바람재 와 닮았다.
들판 가로질러 산으로

방파제를 지나 강진의 사초항에 잠시 들러 해발 0m의 바다 향을 맛본다. 산의 완벽한 실종상태가 바다라면, 오를수록 물이 사라지는 것이 산이니 상반된 역설의 동시경험이다.

이제 해수면을 떠나 점차 고도를 높여 산으로 향한다. 흐릿한 대기 때문에 7km 떨어진 산줄기는 몽롱한 윤곽으로 남았다.

영관리에서 장수저수지를 지나면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주작산 남서릉은 기암괴석이 돌출한 암릉인데 주능선 바로 턱밑인 해발 300m 지점에 자리한 관악사가 마치 허공 위에 뜬 든 까마득하다. 나중에 저곳까지 올라야 한다 싶으니 무더위에 맥이 빠지면서도 과연 저런 곳에 오르면 조망이 어떨지, 어떤 절일지 호기심도 더해진다.

관악사 입구에서 이제 본격적으로 주작산 주릉을 오른다. 임도는 잡초가 많이 자라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길임을 말해준다. 곳곳에 상당한 급경사가 등장하지만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어 접지력을 살리며 오를 수 있어 좋다.

경사가 급할수록 고도는 금방 높아지는 법. 어느새 주능선이 훌쩍 가까워지고 저 아래 들판은 아득한 원경으로 물러나 있다.

해발 280m의 주능선을 넘으면 강진군으로, 주작산 자연휴양림 임도와 만난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길 상태가 좋아 관리가 잘 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모양이다. 여기서 좌회전, 등고선을 따라 500m 가면 도림재(290m, 작천소령)다. 지형과 경관이 달마고도의 바람재와 닮았다. 바람재 정도는 아니지만 봉우리 사이의 안부여서 시원한 바람이 끊이지 않고 분다.

	도림재에서는 경치 좋고 노면도 좋은 5km 다운힐이 이어진다.
도림재에서는 경치 좋고 노면도 좋은 5km 다운힐이 이어진다.


	도림재 다운힐 도중에 지나는 편백나무 숲. 왼쪽의 말뚝은 임도의 구간 이정표
도림재 다운힐 도중에 지나는 편백나무 숲. 왼쪽의 말뚝은 임도의 구간 이정표
장쾌한 다운힐 5km

도림재에서는 왼쪽으로 내려가 오른쪽으로 다시 올라오는 11.2km의 순환 코스가 시작된다. 그동안 힘겹게 올라온 노력을 보상받을 시간이다. 용동리까지 5km가 넘는 다운힐이 기다리는 것이다. 고도차가 200m 남짓으로 크지 않아 약간의 기복이 있지만 대체로 다운힐이고 중간중간 조망도 트여 경관의 스케일도 대단하다. 저지대에는 조림을 위해 벌채한 구간이 있어 민둥산 사이로 구불거리는 한줄기 길이 한층 극적이고, 늘씬한 편백 숲은 이국적인 느낌마저 준다.

5.1km를 다운힐 했다가 도로를 따라 산간지대를 되오르면 도림재까지 3.5km의 업힐이 기다린다. 앞서 도림재를 오를 때보다 완만하고 길이도 짧아 큰 부담이 없다. 도중에 관악사 뒤편의 암릉이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점이 나온다. 여기에 서면 어디 금강이나 설악의 한 능선을 보는 듯 기암괴석이 늘어선 능선이 빼어나다. 400m대라고는 믿기지 않는 위용마저 보여준다.

다시 도림재를 넘어 앞서 올랐던 길을 내려가 마지막으로 관악사 업힐에 도전한다. 700m 정도의 짧은 구간이지만 경사가 대단하고 노면이 거친데다 때로는 이끼까지 끼어 있어 이번 코스 전체에서 가장 험난하다. 그래도 쉬엄쉬엄 오르다 보면 어느새 산문 앞이다. 주위로 벼랑을 두르고 급사면에 겨우 터 잡은 절집은 어딘가 특이하다. 천왕문을 겸한 산문이지만 사천왕상은 비어 있고 대웅전 옆에 일반 숙소가 딸린 것을 보면 정통사찰은 아닌 듯하다. 내실에 있던 노보살은 절에는 혼자뿐이라면서 자세한 설명은 않는데, 나중에 주민들 애기를 들어보니 민간요법으로 유명하다니 절의 성격이 짐작이 간다.

벼랑위에 위태로운 산신각과 대웅전 앞마당에서는 저 아래로 북일면 들판과 사내호까지 훤하게 보이지만 대기가 흐릿해 바다는 가물가물하다. 맑은 날이면 조망이 대단할 것이다.

	기암절벽 아래 위태롭게 자리한 관악사
기암절벽 아래 위태롭게 자리한 관악사



	산을 내려와 여유로운 마음으로 풍요의 들판을 누빈다.
산을 내려와 여유로운 마음으로 풍요의 들판을 누빈다.

들녘의 풍요

관악사를 내려와 산기슭 임도를 따라 잠시 남서향 하다가 운전리 방면으로 산을 벗어난다. 반듯한 격자형으로 정리된 논 사이로 한 치 오차 없는 직선 농로가 뻗어난다. 잘 개간된 광야에서는 근원적인 결핍이 사라져 저절로 안도하게 되고 마음도 페달링도 여유로워진다.

풍수지리에서는 흔히 산을 의인화 혹은 생물화해서 표현하는데, 두륜산은 누가 봐도 대흥사를 감싸면서 서쪽으로 향하고 동쪽 북일면 방면으로는 등을 돌린 형세다. 정말 그런 줄만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다. 서쪽으로는 좁고 깊은 협곡을 빚어 대흥사와 숱한 암자를 품은 탈속의 경계를 빚고, 동쪽으로는 풍요의 들판을 포근하게 감싸는 세속의 공간을 품고 있는 야누스의 면모다. 세속이 없으면 탈속이 무슨 의미나 소용이 있을 것인가.

인구가 얼마 되지 않는 작은 면(面)이지만 북일면의 마을과 거리에는 활기가 넘치고 사람들은 여유로우며 인심도 후하다. 이런 기질은 ‘이처럼 멋진 자연 환경에서라면!’ 하고 절로 이해가 간다.

info
추천 숙박

* 설아다원 : 녹차밭과 카페, 한옥스테이를 겸한 특별한 숙박시설이다. 북일면 삼성길 153-21 061-533-3083
* 에루화헌 : 두륜산 투구봉 바로 아래에 있어 엄청난 산악미를 감상할 수 있다. 북일면 백도로 651-57

추천 식당
* 북일기사식당 : 북일면소재지의 큰 도로변에 있다. 1인당 8천원에 깜짝 놀랄 정도로 푸짐한 한 상이 차려진다. 맛도 일품. 북일면 백도로 783 061-533-0292
* 용궁짜장 : 북일면사무소 맞은편에 있다. 볶음밥(6천원), 삼선짬봉(8천원) 추천. 북일면 백도로 806 061-532-3739

주작산 & 사내호 : 42.5km


	평야와 호반길의 아늑함, 거친 산길의 스릴
글·사진 김병훈(본지 발행인)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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