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단풍코스 흥정계곡, 한강기맥 구목령과 장곡현 넘어

바이크조선

입력 : 2021.02.08 10:00

평창 봉평
지난 가을의 추억

자전거로 찾을 수 있는 최고의 단풍코스로 평창과 홍천 경계에 있는 흥정산(1279m) 일대가 꼽힌다. 흥정산은 남쪽으로 <메밀 꽃 필 무렵>의 무대인 봉평을 안고 있고 운두령, 모래령, 불발령, 장곡현, 구목령 등 5개의 큰 고개가 넘나드는 주변 산악지대의 임도가 아름답다. 때 묻지 않은 자연계곡을 원한다면 흥정산에서 흘러내리는 흥정계곡이 그만이다.

코스 봉평-구목령 ~ 생곡리 ~ 장곡현 ~ 봉평
거리 약 59km


	장곡현 오르는 길. 길과 능선, 골짜기 할 것 없이 온통 샛노란 단풍으로 물들었다.
장곡현 오르는 길. 길과 능선, 골짜기 할 것 없이 온통 샛노란 단풍으로 물들었다.

지난해 가을 단풍이 한창 진해지던 계절, 코로나19는 사라질 기미도 안 보이고 전반적인 사회 시스템은 마치 정지된 듯 국민들은 깊은 피로감에 빠져있었다. 그래도 자연은 어김없이 바뀌어 가을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계절을 맞이하고 있었다.

단풍이 절정으로 물든 봉평의 가을 산하. 울긋불긋 곱게 물든 산자락과 깊고 깊은 계곡에 곱게 화장한 단풍에 취해 보기 위해 2박3일 간 여정으로 봉평을 찾았다.

많은 사람들이 ‘메밀’이라고 하면 봉평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아마도 한국문학의 한 걸작으로 꼽히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효석이 태어난 곳도 봉평이다. <메밀꽃 필 무렵>은 오래 전부터 교과서에 실려 있었고, 소설 속의 메밀밭 풍경 묘사와 주인공 허생원 스토리가 아름다워 온 국민이 봉평에 대해 ‘문학적 향수’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구목령으로 출발하기 전 일행과 더불어
구목령으로 출발하기 전 일행과 더불어
메밀밭 대신 단풍밭 속으로

이번 코스는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한강기맥에 자리한, 홍천군 서석면·내면과 평창군 봉평면 경계의 흥정계곡에서 출발해 구목령~장곡현 능선으로 이어지는 임도 코스다. 한강기맥은 백두대간 오대산 두로봉에서 시작해 양평 두물머리까지 이어지는 길이 167km의 산줄기다.

문학적 향수를 떠나 봉평은 흥정계곡으로 유명하다. 장돌뱅이 허생원 일행이 당나귀와 함께 장터를 찾아 다녔듯이 나는 일행과 자전거를 타고 옛 보부상이 다녔을 고갯길을 느리게 다녀 볼 참이다. 달빛을 받으며 메밀꽃 하얗게 핀 들녘이 아닌, 알록달록 단풍이 물든 산길을 달리는 것이 다를 뿐이다.

	자주 보이는 낙엽송 숲은 옛날 화전민의 집터나 밭터였다.
자주 보이는 낙엽송 숲은 옛날 화전민의 집터나 밭터였다.
절경의 흥정계곡

흥정천은 봉평면 흥정리 흥정산(1279m)에서 발원해 남동쪽으로 흘러, 진부면에서 오는 속사천과 합류하여 평창강을 이룬다. 흥정리라는 마을 이름과 마찬가지로 하천 이름도 흥정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흥정계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아트인아일랜드 캠핑장에서 상류로 거슬러 임도 차단기가 있는 곳까지 약 8㎞ 구간은 절경을 자랑하며, 숙박시설을 비롯해 식당이 줄지어 있다.

흥정리와 홍천군 서석면 생곡리를 넘나드는 한강기맥의 구목령과 장곡현에는 임도가 개설되어 있다. 구목령으로 가는 길목은 ‘흥정계곡오토캠핑장(옛 무의초교 흥정분교)’ 앞의 ‘돌탑마을’ 이정표 입구에서 도로명이 ‘흥정계곡길’과 ‘흥정계곡4길’로 갈린다. 흥정계곡4길로 직진하면 장곡현과 불발현으로 가며, 왼쪽의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진행하면 ‘흥정계곡길’로 구목령 가는 임도가 나온다.

흙길을 따라 굽이굽이 깊은 계곡을 달리다 보면 멋들어진 바위와 절묘하게 어우러진 소(沼)를 수시로 만난다. 인적이 드문 만큼 원시계곡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끼리 조용한 휴식을 원하는 이들에게 알맞은 곳이다.

산굽이를 돌 때마다 새롭게 펼쳐지는, 화려한 물감으로 곱게 물든 단풍나무들과 곧고 길게 하늘을 향해 뻗은 진노랑 낙엽송(이깔나무) 군락이 짙은 가을의 향연으로 맞아준다. 계곡의 병풍바위와 반석을 흐르는 계류는 그야말로 별천지여서 마치 전설 속의 ‘무릉도원’에 와 있는 듯 찬사가 아깝지 않다. 투명하게 바닥이 들여다보이는 물은 참으로 맑고 깨끗해 청량감이 절로 느껴진다. 산과 물이 기막히게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다.

	구목령 업힐 도중의 단풍. 역시 단풍제1경 흥정산 답다.
구목령 업힐 도중의 단풍. 역시 단풍제1경 흥정산 답다.
구목령 넘어 태기왕 전설 어린 피리골로

옛 무의초교(흥정분교) 입구에서 완만한 골짜기를 따라 구목령까지는 약 10km로 라이딩 내내 청정한 계곡수와 천연림을 감상하며 여유롭게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단풍에 취해 천천히 오르다 보니 어느덧 구목령이다. 구목령(935m)은 한강기맥을 넘는 고개로 오래된 고목 아홉 그루가 있었다고 해서 구목령이라 불린다. 오대산에서 두물머리까지 남한강과 북한강을 가르는 한강기맥 중에서도 오지로 손꼽히는 고개다. 과거 봉평장과 서석장을 오가는 보부상들이 구목령을 넘나들었다고 한다.

	한강기맥을 넘어가는 구목령(935m) 정상
한강기맥을 넘어가는 구목령(935m) 정상
구목령을 내려가면 홍천군 서석면 생곡리다. 정상부에 피리샘터를 알리는 푯말이 있고 굽이길을 돌아 내려가면 생곡2리다. 예전에 자연발생 지명이 ‘피리골’이어서 도로명도 ‘피리골길’이다. 피리골은 구전에 의하면 진한의 마지막 임금인 태기왕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데, 이곳에서 유숙하며 구릿대로 피리를 만들어 불면서 밤을 지새우고 떠났다고 해서 피리골이 되었다고 한다.

구목령 옛길에는 다양한 수종의 나무가 늘어서 있다. 단풍나무는 붉게 물들었고, 자작나무는 흰 수피를 드러내고 있다. 아직 초록의 기운이 여전한 젊은 나무가 있는가 하면, 노랗게 잎을 물들인 낙엽송도 드문드문 섞여 있다. 그래서 피리골길로 내려가는 숲속 옛길은 오붓하다. 돌길을 푹 덮은 단풍잎이 켜켜이 쌓여 푹신하고, 졸졸대는 계곡물 소리와 산새소리도 정겨울 뿐더러 숲 향기는 싱그럽다. 그 속에 깃든 공기 또한 청량하기 그지없다.

	홍천 생곡리에서 장곡현(955m)으로 올라가며. 급경사가 많아 체력안배를 잘 해야 한다.
홍천 생곡리에서 장곡현(955m)으로 올라가며. 급경사가 많아 체력안배를 잘 해야 한다.


	장곡현을 넘으면 흥정계곡 방면으로 내내 다운힐이다.
장곡현을 넘으면 흥정계곡 방면으로 내내 다운힐이다.
장곡현 업힐

삼생초교 앞에서 56번 국도를 만나 우회전해서 2.7km 가다 우측으로 판관교를 건너면 ‘고분대월길’이 시작된다. 판관교에서 장곡현과 불발현이 만나는 임도삼거리까지는 약 10km다.

장곡현(955m)을 향해 굽이길 임도를 따라 올라가는 코스는 가도 가도 끝이 없을 정도로 멀고 고단하다. 고분대월길을 따라 마을을 지나면 임도차단기가 지점부터는 오르막 경사가 심해져 체력안배에 신경을 쓴다. 한강기맥의 북사면이다보니 임도는 늘 그늘져 춥기까지 하다.

장곡현 정상부에 이르면 임도삼거리가 나온다. 주변에는 굴참나무에서 자생하는 겨우살이가 제법 많이 달려있다. 여기서 직진해서 100m 올라가면 장곡현 정상으로 더 이상 길은 없고 한강기맥 등산로만 나있다. 따라서 앞서 삼거리에서 차단기가 설치되어 오른쪽 길로 진입해야 한다.

	흥정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 단풍이 짙어 공기도 물들고 옷마저 물들일 듯
흥정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 단풍이 짙어 공기도 물들고 옷마저 물들일 듯
흥정계곡 다운힐

장곡현에서 흥정계곡까지는 내리막길만 있다. 아름다운 단풍의 향연을 보기 위해서는 빠르게 속도를 내기보다 천천히 눈 호강을 하면서 내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장곡현 삼거리에서 약 1km 내려가면 다시 임도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우측으로 진입해야 흥정계곡으로 갈 수 있다. 왼쪽은 불발령 방면으로 고개를 넘어 홍천군 내면 자운리로 이어진다. 불발령(1052m)은 불발현 혹은 불바래기 등으로 불린다. 현지 주민들은 옛 삼한의 하나인 진한의 마지막 임금이었던 태기왕이 “불을 밝히라”고 명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믿고 있다. 산 중턱 마을의 이름이 ‘화명동’(火明洞)인 걸 보면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니지 싶다.

불발령 임도는 보래령터널까지 19.5km, 보래령에서 다시 운두령까지 12km가 개설되어 있다. 가을은 해가 짧아 이 코스는 무리가 있어 생략한다.

임도 삼거리에서 흥정계곡을 따라 약 7km 내려가면 무의초교 흥정분교를 다시 만나게 된다. 온 산과 골짜기는 불이 붙어있는 형상이다. 역시 흥정계곡의 주인은 붉은 단풍이다.

낙엽송 사연

흥정계곡엔 유난히 낙엽송 숲길이 많은데 오래전 화전민들이 살았던 흔적이란다. 1968년 이 일대에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계곡 여기저기 마을을 이루고 살던 화전민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정부는 그들이 살던 마을과 밭 등에 죄다 낙엽송을 식재했던 것이다. 노랗게 변하는 낙엽송 단풍도 볼 만하다.

인적 드문 가을 숲과 청정 물길을 감상하기엔 계곡 최상류 쪽이 좋다. 계곡 상류에는 곳곳에 작은 소와 여울이 어우러지고, 오랜 시간 물이 흘러 깎여나간 바위가 장관이다. 계곡물을 자세히 관찰하면 청정수 밑에 모래무지, 갈겨니, 꺾지, 버들치 등 1급수에 서식하는 물고기를 볼 수 있다.

흥정계곡 상류에서 어느 정도 내려오면 차단기를 지나야 하며, 이때부터 계곡 옆 도로에 펜션들이 빈틈없이 늘어서 있다. 그래도 물소리는 여전히 맑고 상쾌하다. 최근에는 펜션과 캠핑장이 더욱 늘어나는 추세여서 마치 계곡 속 도시에 온 듯한 인상도 주지만, 그만큼 숙박시설이 넉넉해서 머물기도 좋다.

	최고의 단풍코스 흥정계곡, 한강기맥 구목령과 장곡현 넘어

	최고의 단풍코스 흥정계곡, 한강기맥 구목령과 장곡현 넘어

글·사진
이윤기 이사
협찬 첼로스포츠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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