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남다른,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

바이크조선

입력 : 2021.06.25 10:00

당진 합덕

당진군에 속한 소읍인 합덕은 예전에는 바닷가여서 일찍부터 외국 선교사들이 찾아와 이 땅을 대표하는 천주교의 성지가 되었다. 필자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지만 신앙과 신념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사람들의 유적을 돌아보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오르는 수리시설인 합덕제의 제방길과 유채꽃밭도 차분한 산책코스로 더없이 좋다.

	합덕제 유채꽃밭에서
합덕제 유채꽃밭에서
직장생활 할 때 친하게 지내던 거래선 사장님이 계신다. 알게 된지 거의 30년이 되가는데 신기하게도 서로의 나이를 모른다. 아마 나보다 10살 정도 많은 것 같은데 정확치는 않다. 이분은 항상 부지런하고 바쁘게 사신다. 나이가 적지 않은데도 철인3종경기에 나갈 정도로 체력도 뛰어나다. 목소리만 들어도 힘이 넘치고 좋은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사장님 사무실 바로 앞에 추어탕을 맛있게 하는 집이 있어 가끔 만나면 추어탕을 함께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얼마 전에 뵈었을 때 마침 고향 이야기가 나왔다. 이전에 어렴풋이 충청도 어디라고는 들었는데 정확하게 몰라 고향이 어디시냐고 여쭤봤다. 당진 합덕이라는 동네란다. 합덕(合德)? 처음 듣는 동네기는 한데 듣는 순간 어감이 참 좋았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덕이 많고 점잖으며, 착한 분들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다 문득 합덕 생각이 나서 정보를 찾아보았다

천주교 성지

합덕은 참 특이한 곳이었다. 우리나라에는 드문 천주교 신앙의 성지였다. 그곳에 가면 뭔가 영적으로 힐링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합덕의 정식지명은 당진시 합덕읍이다. 고려 때 합덕부곡이었다고 하며 1924년 합덕면이 되었고 1973년 합덕읍으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른다. 삽교호방조제와 서해안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당진에서 서울로 가는 유일한 길목이라 경제적으로 상당히 부흥했다. 지금은 바다를 많이 간척해서 완연한 내륙지방이 되었지만 오래전에는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그때 외국 선교사들이 배를 타고 도착해 처음 포교를 시작한 곳이 바로 합덕이다. 그래서 합덕에 천주교 유적지가 많은 것이다.

	합덕수리민속박물관. 합덕제를 기념하기 위해 2005년
개관했다. 합덕제를 산책하기 전에 이곳에서 기본지식을
알고 가면 많은 도움이 된다.
합덕수리민속박물관. 합덕제를 기념하기 위해 2005년 개관했다. 합덕제를 산책하기 전에 이곳에서 기본지식을 알고 가면 많은 도움이 된다.


	박물관 내 1전시실에는 합덕제의 기원과 축조기법, 한국
의 수리역사, 수리도구를 전시하고 있다. 2전시실에는 합
덕과 당진의 문화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박물관 내 1전시실에는 합덕제의 기원과 축조기법, 한국 의 수리역사, 수리도구를 전시하고 있다. 2전시실에는 합 덕과 당진의 문화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합덕제 유유자적

합덕까지는 집에서 자동차로 1시간30분 정도밖에 안 걸린다. 서울시내 안에서도 길이 조금 막히면 걸리는 시간이다. 처음 찾아간 곳은 합덕제라는 작은 저수지다. 사람들이 합덕제를 다녀와서 느낀 글을 보니 조용하고 깨끗한 분위기에 가만히 걷기만 해도 힐링이 되었다고 했다.

합덕제는 후백제의 견훤이 왕건의 군대와 싸우기 위해 군마용으로 우물을 파 놓은 것이 시초였다는 전설과, 그보다 훨씬 전인 삼국시대 축조설이 있으나 조성 경위를 알 수 있는 정확한 기록은 없다. 하여간에 상당히 오래전에 만든 인공저수임에는 틀림없고 합덕이라는 지명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후 증축을 거듭하여 조선시대에는 3대 저수지로 알려질 정도로 큰 규모였다. 원래는 둘레가 8km에 이르는 큰 저수지였으나 조금씩 매립하여 어느 순간 넓은 논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합덕을 재조명하는 움직임 속에 1989년부터 복원을 시작해 지금은 아담한 저수지가 되었고 앞으로 계속 확대 복원을 계획하고 있다.

합덕제의 제방길은 차가 다니는 도로와 비포장의 멋진 산책길이 함께 있다. 초봄에는 벚꽃이 가득 피어 장관을 이룬다. 지금은 이미 벚꽃이 졌지만 대신에 노란 유채꽃이 한가득 피어있다. 유채꽃은 ‘쾌활·명랑’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는데 꽃말대로 보기만 해도 마음이 상쾌해진다.

자전거를 꺼내 제방길을 따라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전날 일기예보에는 날씨가 화창하다고 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하늘에 구름이 가득했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와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다. 그렇다고 우중충하지는 않고 오히려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화창한 날씨에 자전거를 타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비 내리기 전의 선선한 공기를 맞으며 달려 보는 것도 느낌이 괜찮다.

제방길은 자전거로 천천히 둘러보아도 좋고 그냥 걸어도 좋을 것 같다. 산책로 중간중간에는 나지막한 통나무 벤치가 있어 쉬면서 저수지도 보고 하늘도 보면 좋다. 길가 곳곳에 있는 스피커에서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온다. 음악을 들으며 걷기만 해도 힐링이 된다.

	합덕제는 봄에는 벚꽃과 유채꽃이, 여름에는 연꽃이 아름답다. 꽃이 핀 제방길을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천천히 걸어보자. 걷다가 길가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어 보자.
합덕제는 봄에는 벚꽃과 유채꽃이, 여름에는 연꽃이 아름답다. 꽃이 핀 제방길을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천천히 걸어보자. 걷다가 길가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어 보자.


	왜수차라고도 하는 통차. 세종 때 일본에 통신사로 갔던
박서생이 보고 온 수차를 기본으로 우리 실정에 맞게 만
들어 전국에 보급했다.
왜수차라고도 하는 통차. 세종 때 일본에 통신사로 갔던 박서생이 보고 온 수차를 기본으로 우리 실정에 맞게 만 들어 전국에 보급했다.

유채꽃의 비밀

호젓한 제방길을 자전거로 천천히 달린다. 노란 유채꽃밭이 계속 이어져 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지고 벅차오른다. 꽃밭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자전거를 세웠다. 유채(油菜)는 배추과의 두해살이풀로서 이름 그대로 기름을 얻기 위해 재배하는 채소다. 배추처럼 널리 식용으로 활용되지는 않지만 꽃이 피기 전 어린잎으로 나물이나 김치를 담가 먹는다. 어린 시절의 이른 봄, 밥상에 오르던 ‘하루나’라는 채소가 바로 이 유채다.

유채에는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이 식물은 원래부터 배추처럼 존재하던 채소가 아니다. 아주 오래전에 야생배추와 야생양배추가 자연상태에서 교잡되어 새롭게 생겨난 종이다. 이 사실은 한국의 유명한 식물학자로 씨 없는 수박을 발명한 우장춘 박사가 발견했는데 당시 식물학계에서 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꽃씨로 만든 기름은 고급 일식집에서 사용하기는 하지만 향미에서 호불호가 갈려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지는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카놀라유는 유채기름이기는 하지만 일반종 유채는 아니다. 캐나다의 식물학자들이 냄새와 맛을 좋게 하기 위해 1970년대에 유전자조작으로 만든 유채의 변종이다. 그래서 이름도 캐나다의 CAN과 기름의 OLA를 붙여 지었다.

제방길 입구에는 합덕수리민속박물관이 있다. 합덕제의 유래와 농사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방문하면 좋은 교육이 될 것이다. 박물관 옆에는 농기구 전시관이 있는데 필자가 어릴 때만 해도 농촌에서 실제로 사용했던 농기구들이다.

	버그내순례길을 따라가며 스탬프를 모아 보는 것도 즐거
운 추억이 될 것이다.
버그내순례길을 따라가며 스탬프를 모아 보는 것도 즐거 운 추억이 될 것이다.


	버그내순례길 안내판. 규모는 작지만 성지 순례길인 점
에서 ‘한국의 산티아고’라고도 부른다. 길에 ‘ㅂㄱㄴㅅㄹㄱ’이라는 표시는 버그내순례길의 로고다.
버그내순례길 안내판. 규모는 작지만 성지 순례길인 점 에서 ‘한국의 산티아고’라고도 부른다. 길에 ‘ㅂㄱㄴㅅㄹㄱ’이라는 표시는 버그내순례길의 로고다.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 합덕성당

합덕제 바로 옆 낮은 언덕에는 우아한 모습의 합덕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합덕성당은 충청남도 기념물 제145호로 1899년 당시 초대 본당주임이었던 퀴를리에 신부가 건축했다. 정면의 종탑이 쌍탑으로 되어있는 것이 특징인 이 성당은 3개의 출입구와 창들이 모두 둥근 반원형이다. 외벽은 붉은 벽돌인데 벽돌 색깔이 아주 친근한 느낌을 주어 일부러 다가가서 만져 보았다. 아침 햇살에 따뜻하게 데워진 벽돌 감촉이 참 좋다.

이곳 합덕성당은 교회가 박해를 받을 때는 순교의 장소가 되기도 한 한국 천주교회의 발상지적 역할을 했던 곳이다. 성당 입구에는 돌비석이 하나 있다. 무심코 뒷면을 살펴보니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 “남에게서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주시오.” 성경 누가복음에 나오는 말인데 이것이야말로 삶의 황금률이다. 평소에도 알고 있던 말이지만 오늘처럼 마음에 깊게 와 닿은 적이 없다. 글귀를 읽고 또 읽었다. 오늘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앞으로도 정말 베푸는 삶을 살고 싶다.

성당 경내를 천천히 걸어보았다. 작은 화단의 소나무 옆에 비석이 하나 서 있길래 이번에는 무슨 글귀로 나에게 깨달음을 줄까 하고 가까이 가보았다. 앞면에도 뒷면에도 아무 글귀도 없었다. 무슨 의미일까? 마음을 깨끗이 비우고 이제부터 하나하나 새겨 나가라는 의미일까?

경내에는 특이하게도 4개의 무덤이 있다. 사제들과 순교자들의 무덤이다. 조금 생소하다. 절이나 교회 같은 다른 종교 시설에는 없는 무덤이다. 생소함을 떨치고 무덤 앞에 가까이 가보았다. 보통 무덤이 주는 꺼림직함과 섬찟함이 없고 오히려 마음이 포근해지고 경건해진다. 참고로 나는 천주교인은 아니다.

합덕에는 버그내순례길이라는 멋진 산책로가 있다. 김대건 신부의 생가가 있는 솔뫼성지에서 합덕성당을 거쳐 신리성지까지 13km다. 걸으면 3시간, 자전거로는 1시간쯤 걸리는 길이다. 중간중간에 명소를 둘러보면서 가면 딱 한나절 걸리는 좋은 코스다. 버그내는 합덕의 옛지명이라고 한다.

	합덕제 유채꽃은 전국 어느 유채꽃 명소에도 뒤지지 않는다. 물가에도 제방길에도 노란 유채꽃이 활짝 피어 ‘쾌활·명랑’이라는 꽃말답게 다가가기만 해도 마음이 상쾌해진다.
합덕제 유채꽃은 전국 어느 유채꽃 명소에도 뒤지지 않는다. 물가에도 제방길에도 노란 유채꽃이 활짝 피어 ‘쾌활·명랑’이라는 꽃말답게 다가가기만 해도 마음이 상쾌해진다.


	합덕농촌테마파크. 옛 농촌의 풍경을 재현해 놓았다.
어린이들에게 좋은 학습경험이 될 것이다. 여름에는 지하수를 끌어올려 개울과 물놀이장을 만들어 가족 여행지로는 최고다.
합덕농촌테마파크. 옛 농촌의 풍경을 재현해 놓았다. 어린이들에게 좋은 학습경험이 될 것이다. 여름에는 지하수를 끌어올려 개울과 물놀이장을 만들어 가족 여행지로는 최고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초가집을 잘 재현해 놓았다. 억지가 없이 자연스럽게 당시의 모습과 사용하던 도구들을 전시하고 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초가집을 잘 재현해 놓았다. 억지가 없이 자연스럽게 당시의 모습과 사용하던 도구들을 전시하고 있다.


	합덕제는 자전거로 천천히 돌아보기에 더없이 좋다.
합덕제는 자전거로 천천히 돌아보기에 더없이 좋다.
들판 한가운데, 신리성지

합덕성당을 뒤로하고 신리성지로 향했다. 신리성지는 내포교회의 초창기 공소가 있던 곳으로 1866년 병인박해 때 이곳에서 체포된 5명의 신부와 신자들이 순교한 유적지다. 제5대 조선교구장 마리 다블리 주교가 1845년 10월 김대건 신부와 함께 입국하여 1866년 병인박해로 순교하기까지 천주교 서적을 저술하고 한글번역 작업을 하면서 21년 동안 은둔한 곳이기도 하다. 신리는 천주교 탄압기 동안 조선에서 가장 큰 천주교 교우마을로 마을주민 400명이 모두 신자였다고 한다. 선교사들의 비밀 입국처이기도 했으며, 한국의 천주교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조선의 카타콤바(로마의 비밀교회)’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자전거를 세우고 성지 안으로 들어갔다. 넓고 파란 잔디밭이 무척 아름답다. 잔디밭 안에는 자그마한 집모양의 기념물이 몇 개 있다. 그중 한곳에 들어가 보았다. 순교자인 성(聖) 손자선 토마스라는 분의 기념물이다. 동판에는 이분이 한 말이 적혀있다. “나는 솔직히 죽는 것이 몹시 무섭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죽는 것보다 몇 천 배 더 무서운 것은 바로 하느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진해서 순교를 택했다고 한다. 그 글을 몇 번이나 읽어보았다. 죽음을 앞두고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사람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다. 그러나 만약 살기위해 자신의 믿음을 저버렸다면 이후에는 살아가면서 죽는 날까지 매일 매일이 후회와 부끄러움의 나날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생지옥이 아닐까? 꼭 신앙뿐 아니라도 살면서 외압에 의해 자신의 신념과 믿음을 버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낮은 잔디언덕 위에는 아무 장식도 채색도 없이 콘크리트 상태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신리성당이 있다. 믿음이란 아무 꾸밈도 없다는 것을 의미일까? 건물위에 십자가의 모양이 특이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사람모양이다. 약간 흐린 하늘과 콘크리트 성당건물 그리고 사람 모양의 십자가의 분위기가 묘하게 잘 어울린다. 푹신한 잔디밭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음이 평온해진다. 산들바람이 불어와 금세라도 잠이 들 것 같다. 꿈속에서 이곳에 순교자들을 만나는 것은 아닐까?

합덕에는 이곳 말고도 몇 군데의 성지가 더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솔뫼성지도 아주 좋다고 한다. 오늘은 이정도로 충분히 힐링이 되었다고 생각해 다음을 기약한다.

	실치회. 실치는 배도라치의 치어로 4월초에서 5월초까지만 회로 먹는다. 식감이 어디에도 비할 수 없는 묘한 맛이다.
실치회. 실치는 배도라치의 치어로 4월초에서 5월초까지만 회로 먹는다. 식감이 어디에도 비할 수 없는 묘한 맛이다.
때를 맞춘 장고항 실치회

어느덧 점심때가 지났다. 아침에 일찍 나왔더니 속이 출출하다. 오늘 점심 메뉴는 오랫동안 별러온 당진 장고항의 실치회다. 실치라는 물고기는 별도의 어종이 아니고 배도라치라고 근해에 사는 물고기의 치어다. 뱅어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전혀 다른 물고기다. 뱅어는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멸종상태라 찾아보기 어렵다. 실치는 대략 4월초에서 5월초까지 한 달 정도가 시즌이다. 이 시기가 지나도 잡히기야 하지만 그때부터는 뼈가 굵어져 회로 먹기가 어렵다. 그때부터는 뱅어포 비슷한 실치포로 만들어 먹는다.

실치회를 먹으려고 몇 년 동안 계획했지만 공교롭게도 해마다 4월이 되면 다른 일정이 생겨 한 번도 못 왔다. 그러다 이번에 합덕여행을 하면서 시간을 맞출 수 있게 된 것이다. 합덕에서 장고항까지는 자동차로 30분 정도 걸린다. 장고항에 가면 작은 수산물시장이 있다. 실치회는 이곳에서 사서 바로 먹을 수도 있고 근처에 많은 횟집에 가서 먹을 수도 있다. 수산물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근처에 있는 횟집에 들어갔다. 그동안 꿈에도 그리던 실치회와 실치전을 시켰다. 잠시 후에 기름장을 한 실치회 한 접시와 초고추장으로 양념을 한 양배추 한 접시가 함께 나왔다. 아마 양념양배추와 실치를 함께 먹는 방식인가보다.

실치회는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다. 혹시 비리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먹어보니 전혀 비리지 않았다. 뭐랄까, 물고기 식감은 아니었다. 마치 우뭇가사리를 먹는 식감이랄까? 아무튼 특이한 식감이었다. 실치는 솔직히 말해 아주 허겁지겁 맛있게 먹는 그런 맛은 아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자꾸 손이 간다. 신기하기도 하다. 자꾸 먹으면서 웃음이 나왔다. 회 한 접시를 눈 깜빡할 사이에 다 비웠다. 잠시 후 함께 주문한 실치전이 나왔다. 그런데 실치전의 맛은 잘 모르겠다. 요리를 잘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실치회 한 접시로 딱 좋을 것 같다. 그것도 바로 이 시기에 말이다.


	서해에서는 드물게 바다 위로 일출과 일몰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왜목해변. 처음에는 갯벌만 있다가 2008년에 인공적으로 길이 600m의 모래사장을 조성했다.
서해에서는 드물게 바다 위로 일출과 일몰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왜목해변. 처음에는 갯벌만 있다가 2008년에 인공적으로 길이 600m의 모래사장을 조성했다.


	마을 지형이 왜가리 목을 닮은 데서 유래한 왜목해변을 상징하는 왜가리 조형물. 바다속에 있는 금속제 형상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을 지형이 왜가리 목을 닮은 데서 유래한 왜목해변을 상징하는 왜가리 조형물. 바다속에 있는 금속제 형상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왜목항

실치회를 맛나게 먹고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왜목항으로 향했다. 왜목해변은 지형이 왜가리의 목처럼 길게 돌출되어 있어 왜목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서해안에서 바다로 뜨고 지는 해돋이와 해넘이를 함께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나는 처음 와본다. 그러고 보니 국내에도 처음 와본 곳이 너무 많다. 많이 돌아다닌다고 다녔는데도 이렇다. 그동안 하도 바쁘게 살아와서 그런가 보다. 이제는 은퇴하고 여유를 찾았으니 이곳저곳 많이 다녀봐야겠다.

오늘은 장관이라는 왜목항의 해넘이를 볼 것이다. 오늘의 일몰시간은 오후 7시20분이다. 해넘이까지는 1시간 정도 남아서 모래사장을 걸었다. 왜목해변은 작은 곳이라서 한쪽에서 끝까지 걸어도 30분이면 충분하다. 바다에는 왜가리를 형상화한 금속모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는데 해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날이 흐려 해가 구름 뒤에 숨은 모양이다. 날이 맑아지는 것을 기대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다. 게다가 빗방울까지 후두둑 떨어진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집에서 1시간30분 거리니 언제라도 올 수 있다. 약속이 없는 날, 집에서 아침 먹고 쉬고 있다가 아! 오늘 왜목항 일몰이나 볼까 하고 출발해도 충분할 것이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다니. 다음번에는 오늘과 똑 같은 코스로 한 번 더 와야겠다. 그때는 또 다른 느낌일 게다. 오늘 다닌 길을 가족여행의 하루 코스로 하면 즐겁고 보람된 여행이 될 것 같다.

	황금률.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수훈 속에 있는 것으로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대접하라”는 가르침이다. 3세기 로마황제가 이 문장을 금으로 세겨 벽에 걸어놓은 데서 황금률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황금률.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수훈 속에 있는 것으로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대접하라”는 가르침이다. 3세기 로마황제가 이 문장을 금으로 세겨 벽에 걸어놓은 데서 황금률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무제비석. 그 어떤, 무엇이라도 좋다. 이곳에서 느낀 것을 마음속에 새기고 실천하라는 의미인가 보다
무제비석. 그 어떤, 무엇이라도 좋다. 이곳에서 느낀 것을 마음속에 새기고 실천하라는 의미인가 보다


	합덕성당은 1890년 예산에서 양촌성당으로 설립되었다가 1899년에 이곳으로 옮겨오며 합덕성당이 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1929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사진은 성당의 뒤편 모습
합덕성당은 1890년 예산에서 양촌성당으로 설립되었다가 1899년에 이곳으로 옮겨오며 합덕성당이 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1929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사진은 성당의 뒤편 모습



	신리성지에 있는 성 손자선 토마스의 무덤. 3대째 천주교를 믿는 신앙가정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와 형, 당숙 모두 순교했다고 한다. 토마스는 자진하여 천주교인임을 밝히고 신앙을 지키며 순교했다. 1984년 교황 요한바오로2세 때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신리성지에 있는 성 손자선 토마스의 무덤. 3대째 천주교를 믿는 신앙가정에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와 형, 당숙 모두 순교했다고 한다. 토마스는 자진하여 천주교인임을 밝히고 신앙을 지키며 순교했다. 1984년 교황 요한바오로2세 때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작지만 남다른,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
합덕에서 얻은 깨달음

합덕이라는 곳을 우연히 알게 되어 왠지 좋은 느낌과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왔는데 실제로 와보니 기대 이상이었다. 요즘 같은 시기에 힐링 장소로 적극 추천한다. 노란 유채꽃이 활짝 핀 길을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걸어보자. 함께 자전거를 타도 좋을 것이다. 그러다 멈춰서 유채꽃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보자. 시간이 지나 사진을 꺼내보면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지어질 것이다. 오랫동안 쌓인 우울함이 다 사라질 것이다.

합덕은 잔잔한 감동으로 힐링이 되는 좋은 여행지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야기해주는 신념의 힘을 몇 백 년이라는 시대를 뛰어넘어 공감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그분들의 마음과 정신이 내가 지금 걷고 있는 흙속에, 길가의 나무 이파리에, 산들 부는 바람 속에, 그 모든 곳에 다 깃들어 있는 것 같다. 합덕성당 비석의 뒷면에 새겨진 삶의 황금률, 신리성지에서 만난 순교자의 다짐, 모든 게 나에게는 잔잔한 깨달음을 얻은 시간이었다.

젊을 때는 내가 가진 신앙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생각하고 다른 종교는 극도로 배척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생각을 많이 하면서 신앙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다 좋은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고 이제는 다른 사람의 신앙도 깊이 존중하고 경외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 나의 종교와는 다른 종교의 성지에 와서도 깊은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변했다는 게, 그리고 발전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다

좋은 지인을 알게 되어 오늘 합덕이라는 곳에 찾아올 수 있었다는 것도 감사하다. 여행기가 실린 책이 나오면 그 사장님을 찾아가야겠다. 맛난 추어탕을 함께 먹으며 오늘 다녀온 합덕 이야기를 즐겁게 나눠 봐야겠다.

	작지만 남다른,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


글·사진
조기중(전 삼성전자 상무)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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