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미니 지방의 역발상 매력

바이크조선

입력 : 2021.10.18 10:00

충북 증평

충북 한가운데 자리한 증평은 울릉도를 제외한 전국의 군(郡) 중에 가장 작다. 달랑 읍면이 하나씩밖에 없고 면적은 대도시 구(區) 2개 정도다. 청주가 지척이고 두타산(598m)과 좌구산(658m) 사이 평야지대에 자리해 인구는 늘고 있다. 국토종주 오천자전거길이 지나며, 그밖에도 군 전역에 걸쳐 자전거도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둔재로 태어났으나 조선시대 최고의 독서왕이 된 김득신 선생의 유적과 가르침은 깊은 울림을 준다.

	금강 지류인 보강천이 흐르는 증평읍내 풍경. 작은 사진은 삼기저수지 산책로에 있는 김득신 선생 동상(좌), 어린이교육용 미니어처 거리로 해외에까지 알려진 증평자전거공원
금강 지류인 보강천이 흐르는 증평읍내 풍경. 작은 사진은 삼기저수지 산책로에 있는 김득신 선생 동상(좌), 어린이교육용 미니어처 거리로 해외에까지 알려진 증평자전거공원
충북 증평군(曾坪郡)은 2003년 8월 30일 괴산군에서 분리되어 탄생한 군으로 1읍 1면에 면적도 82㎢로 내륙에 있는 군(郡) 중에 가장 작으며, 서울의 자치구 두 개 정도의 크기다. 주위에 큰 지자체들로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 마치 유럽의 스위스나 아시아의 싱가포르를 생각나게 한다. 그래서 그런지 증평군에서는 슬로건으로는 ‘증평+싱가포르’인 ‘증가포르’를 내세우고 있다고 한다.

	초미니 지방의 역발상 매력


	초미니 지방의 역발상 매력
인구는 3만6천명으로 면적에 비해 그렇게 적지는 않다. 면적이 이렇게 작은데도 별도의 군으로 독립해 있는 데는 뭔가 특별하고 흥미로운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알아보았다. 증평은 조선시대까지 청안군(淸安郡)이었다가 1914년 괴산으로 통합되었다. 하지만 괴산과는 생활권이 달라 갈등을 겪다가 2003년 결국 증평군으로 독립했다.
 
세계지리를 배울 때 유럽의 소국들, 예를 들어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 피레네산맥에 위치한 안도라, 프랑스 안에 있는 모나코,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의 리히텐슈타인, 이탈리아 내의 산마리노공화국 등 작은 나라들이 나름대로의 특징을 가지고 발전하고 존재하는 모습을 보면 신비로운 느낌과 호기심으로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어지는 것과 같은 그런 느낌이다.

	좌구산 구름다리. 명상구름다리라고 하며 총연장 230m이며 그중 130m가 출렁다리 구간이다. 구름다리에 서면 삼기저수지와 좌구산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좌구산 구름다리. 명상구름다리라고 하며 총연장 230m이며 그중 130m가 출렁다리 구간이다. 구름다리에 서면 삼기저수지와 좌구산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전거 친화 지방
 
증평이 흥미로운 것은 증평의 또 다른 슬로건이 ‘증평 바이크타운’이라는 사실이다. 이름에 맞게 자전거길을 아주 잘 조성해 놓았다. 보강천 하천공원길, 증평도안 하천언덕길, 삼기천 자전거길 같은 멋진 하이킹 코스가 있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중 오천자전거길이 증평을 관통하는데 보강천 자전거길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어 라이더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다.

	좌구산천문대
좌구산천문대

	좌구산 MTB 코 스. 총
16km로 다양한 업힐과 다운힐로 이루어져있다. 해마다 전국산악자전거대회가 개최된다.
좌구산 MTB 코 스. 총 16km로 다양한 업힐과 다운힐로 이루어져있다. 해마다 전국산악자전거대회가 개최된다.
증평도안 하천언덕길은 봄이 되면 좌우에 만발하는 벚꽃경치가 정말 아름답다. 삼기천 자전거길은 하천 폭이 좁아 경치는 보강천만 못하지만, 주변이 다 논밭이라 자전거로 천천히 가며 고즈넉한 시골길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달리다보면 콧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다이내믹한 산악주행을 원하는 라이더를 위해서는 좌구산에 MTB 코스를 마련해놨다. 총 16km의 원점회귀형 코스로 숲속에서 좋은 공기를 마시며 라이딩을 할 수 있고 한 바퀴 돌고나서는 근처 휴양림에서 쉬었다 가기에도 좋다.

	율리마을 옆으로 ‘백곡 김득신 이야기길’이 있다. 선생의 일대기를 만화로 표현한 길을 걸어 오르면 김득신 묘소가 나온다. 걷다 보면 김득신의 대기만성을 느낄 수 있다.
율리마을 옆으로 ‘백곡 김득신 이야기길’이 있다. 선생의 일대기를 만화로 표현한 길을 걸어 오르면 김득신 묘소가 나온다. 걷다 보면 김득신의 대기만성을 느낄 수 있다.

	삼기저수지 둘레를 도는 등잔길. 등잔골의 전설을 간직한 테마길로서 3km의 수변 산책코스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안심관광길 25선’에 뽑혔다.
삼기저수지 둘레를 도는 등잔길. 등잔골의 전설을 간직한 테마길로서 3km의 수변 산책코스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안심관광길 25선’에 뽑혔다.
2018년 문을 연 증평자전거공원은 대만, 일본, 중국인 관광객만 800명이 오는 등 새로운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지역주민들도 잘 모르는 장소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각광받은 것이다. 어린이 자전거 교통안전 교육을 위해 어린이 키에 맞춘 미니어처 도시와 도로를 만든 것이 사진 명소로 알려지며 유명해졌다고 한다.

또 하나, 가장 중요한 증평만의 이야기가 있다. 바로 김득신 선생이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 대첩을 이끈 김시민 장군의 손자로, 조선시대 독서왕이자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런데 이 김득신 선생의 이야기가 깊은 감동과 삶에 대한 깨달음을 준다. 자세한 내용은 김득신문학관 소개에서 다시 다루기로 한다.

이번 여행은 증평의 자전거길을 직접 타보고 김득신 선생의 자취를 찾아보는 것을 테마로 해보았다.

	삼기저수지는 좌구산의 물을 모아 1963년에 만든 저수지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마치 오래전부터 있던 산중호수 같은 그윽한 분위기다.
삼기저수지는 좌구산의 물을 모아 1963년에 만든 저수지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마치 오래전부터 있던 산중호수 같은 그윽한 분위기다.
증평의 명산이 된 좌구산

증평 가는 길은 그다지 편하지 않았다. 평일인데도 길이 많이 막혀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도 집에서 거의 3시간이나 걸렸다. 그렇지만 절대 지루하거나 짜증이 나지 않았다. 길이 막혀 정체되어 있을 때는 운전대를 두 팔로 감싸 안고 맑은 가을하늘을 올려 볼 수 있어 좋았고, 서행할 때는 가을 논에 노랗게 익어가는 벼를 보는 게 즐거웠다. 마음을 완전히 열어놓고 느긋하게 가다보니 어느덧 증평에 도착했다.

첫 목적지는 좌구산이다. 좌구산은 증평군 율리에 있는 한남금북정맥의 최고봉(658m)으로 증평·청주·괴산 3개군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전에는 정맥종주하는 산꾼들이나 알고 있던 시골의 작은 산이었지만 증평군이 독립하면서 휴양림과 출렁다리를 만들면서 유명해졌다. 산세가 거북이가 앉아 있는 형태라고 하여 앉을 좌(坐), 거북 구(龜)를 써서 좌구산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고 의아했던 것은 거북이가 앉은 모습이라는 게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거북이가 앉아 있을 수도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닐 것 같다.

	김득신 이야기길의 벽화. 이런 내용을 몇 번 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선생의 멋진 일대기와 시를 지을 때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김득신 이야기길의 벽화. 이런 내용을 몇 번 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선생의 멋진 일대기와 시를 지을 때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독서왕 김득신 선생이 태어나 자란 증평에 와서 독서의 계절 가을에 책과 함께 여유로움을 누려보면 어떨까
독서왕 김득신 선생이 태어나 자란 증평에 와서 독서의 계절 가을에 책과 함께 여유로움을 누려보면 어떨까
내 생각에는 이 고장의 유명인사인 김득신 선생의 이야기에서 유래한 게 아닐까 싶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 이야기 속에 거북이가 바로 김득신 선생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이 경주에서 거북이가 최종적으로 이긴 이유는 앞서 가는 토끼를 이기는 게 목표가 아니라 자신만의 목표를 정해놓고 오로지 그것을 향해 정진했기 때문이다. 김득신 선생은 <사기> ‘백이열전’을 무려 11만3천 번 읽었다고 한다. 그렇게 읽으면서 책의 정수를 깨우친 것이다. 이렇게 거북이처럼 묵묵하게 자기 길을 간 김득신 선생을 생각하며 산의 이름도 거북이를 상징하는 좌구산이 된 게 아닐까 하고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좌구산 3절

좌구산에는 유명한 것이 3가지 있다. 하나는 출렁다리다. 저번 포천여행에 이어 이곳에서도 출렁다리를 건너가 보았다. 좌구산 출렁다리는 길이 230m에 높이는 50m로 이름이 ‘명상구름다리’다. 아득히 높은 협곡을 가로지르는 웅장한 규모는 아니지만 건너면서 제법 흔들리는 스릴감이 재미있다. 다리 이름에 맞추어 명상을 하려고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해보았지만 전혀 집중이 안 된다. 오히려 공포심만 깊어진다. 역시 출렁다리에서의 명상은 무리인가보다. 다리 중간쯤에 서면 멀리 삼기저수지의 아름다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출렁다리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MTB 코스가 나온다. 총 16km의 임도코스가 잘 정비되어 있어 MTB를 즐기는 라이더에게는 좋은 경험을 제공한다. 다시 더 올라가면 좌구산천문대가 있다. 국내에서 가장 큰 356㎜ 굴절망원경이 설치되어 아주 멀리 떨어진 천체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주변 불빛에 의한 광공해가 적어 밤에는 5등급 정도의 희미한 별 1,500여개를 볼 수 있으며, 낮에는 태양과 금성, 3등급의 별을 관측할 수 있다.

휴양림도 잘 조성되어 있어 며칠이고 머물면서 아침에 일어나면 산책을 하고, 낮에는 MTB를 타고 밤에는 별을 관측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근에는 공해시설이 전혀 없어 공기가 너무나도 맑다. 나무그늘에 들어가면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시원해 돗자리라도 펼쳐놓고 한숨 자고 싶다.

삼기저수지 등잔길
 
좌구산에서 내려와 삼기저수지를 향했다. 삼기저수지는 부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좌구산에서 발원된 물을 모아 1963년에 조성했고 2013년에 둑을 증축했다. 저수지 주위로는 등잔길이라는 약 3km의 아름다운 산책로를 조성했다. 나무데크 길과 일반 농로가 함께 있어 물을 바라보며 천천히 한 바퀴 돌면 운동도 되고 자연스럽게 걷기명상도 된다. 걷다보니 길 곳곳에 김득신 선생의 동상과 시를 새겨놓은 비석들이 있다. 물속에는 살아있는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나무의 생명력에는 그저 경탄이 나올 뿐이다.

저수지를 한 바퀴 돌고 김득신문학관으로 향했다. 가는 길목의 과수원에 사과가 빨갛게 익어 있었다. 갑자기 사과가 먹고 싶어져 농장에 들러 혹시 파는지 물어보았다. 아주머니는 “그럼요. 우리집 사과는 모두 유기농사과예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주인아주머니가 칼로 한 조각 베어줘 먹어보니 아주 달았다. 집에 가서 두고두고 먹으려고 중간 정도인 알로 한 박스 샀다. 증평은 인삼이 유명하고 사과도 맛있다.

	김득신 선생의 독서에 얽힌 일대기를 만화로 그려놓았다.
김득신 선생의 독서에 얽힌 일대기를 만화로 그려놓았다.
김득신이 독서광이었던 이유
 
김득신문학관은 증평읍내에 있다. 선생은 조선중기인 1604년(선조 37)에 태어나 1684년(숙종 10)에 8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공(子公)이며 호는 백곡(栢谷)이다. 할아버지가 진주대첩의 명장 김시민이고 아버지는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김치(金緻)다. 두 분 모두 수재였다.


	김득신 선생이 사기열전 백이편을 억만번(지금의 십만번) 읽었다는 것을 기념하는 작은 정자. 가운데 있는 것은 선생의 문집인 백곡집
김득신 선생이 사기열전 백이편을 억만번(지금의 십만번) 읽었다는 것을 기념하는 작은 정자. 가운데 있는 것은 선생의 문집인 백곡집
김득신 선생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노력하는 사람의 표본이다. 어릴 때 천연두에 걸려 심하게 앓았으나 다행히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 뇌손상을 입었는지 심하게 아둔했다고 전해진다. 10살이 돼서야 글을 깨우쳤고 기억력은 배우고 뒤돌아서면 모두 잊는 수준이었다고. 그러나 아버지의 애정 어린 독려와 가르침으로 이를 극복하여 20세에 처음으로 글을 지었고, 39세에 식년시 진사시에 3등 51위로 합격했다. 그리고 1662년(현종 3) 무려 환갑이 다된 59세의 늦은 나이에 증광시 문과에 급제했다. 사헌부장령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했고 이후 동지중추부사에 오르고 안풍군(安豐君)에 봉해졌는데, 얼마 뒤 사직하고 고향에 내려와 독서재 취묵당(醉墨堂)을 짓고 시(詩)를 지으며 지냈다.

	김득신 선생이 1만 번 이상 읽은 책은 36종이나 된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독서량이다.
김득신 선생이 1만 번 이상 읽은 책은 36종이나 된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독서량이다.
선생의 책을 읽는 횟수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사기> 백이열전(伯夷列傳)을 1억1만3천(지금의 11만3천) 번 읽은 것 외에도 36가지 작품을 모두 다 1만번 이상씩 읽었다. 보통사람은 도저히 생각할 수도, 시도해 볼 수도 없는 노력이다. 이렇게 읽으려면 밥도 안 먹고 잠도 못 잤을 것 같다. 딸이 먼저 죽어 장례를 치르는데 곡은커녕 백이열전을 읽는데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김득신문학관 기둥에는 증평군민들이 직접 참여해 만든
전시물이 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을 사연과 함께
추천해 만든 설치물이다.
김득신문학관 기둥에는 증평군민들이 직접 참여해 만든 전시물이 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을 사연과 함께 추천해 만든 설치물이다.
수재 아버지와 둔재 아들

김득신 선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뭐니뭐니 해도 끈기다. 여기서는 책으로 이야기되고 있지만 책이 아니라도 무엇인가를 정해놓고 열심히 파고들면 반드시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는 못 당한다. 문학관 앞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마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렸을 따름이다.’ 몇 번을 읽었더니 시간을 뛰어넘어 선생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과는 뒤도 옆도 돌아보지 말고 무조건 사랑해도 좋다는 의미?
책을 좋아하는 사람과는 뒤도 옆도 돌아보지 말고 무조건 사랑해도 좋다는 의미?

	김득신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2019년에 개관한 김득신문학관.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선생의 생애와 문학을 계승, 보존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김득신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2019년에 개관한 김득신문학관.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선생의 생애와 문학을 계승, 보존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자전거도시 증평은 널찍하고 잘 관리된 자전거도로가 시내 곳곳을 연결하고 있어 자전거만으로 어느 곳이든 안전
하고 여유롭게 다닐 수 있다.
자전거도시 증평은 널찍하고 잘 관리된 자전거도로가 시내 곳곳을 연결하고 있어 자전거만으로 어느 곳이든 안전 하고 여유롭게 다닐 수 있다.
노력의 표본인 선생도 선생이지만 더 감동을 주는 것은 선생의 아버지다. 수재인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둔재인 아들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달랐다. “이 아이는 분명 나중에 문장으로 이름을 크게 날리게 될 것”이라며 어린 그가 좌절하지 않도록 항상 격려해 주었고, 남들이 과거에 합격하는 스무 살 무렵 비로소 아들이 글을 지은 것을 보고서도 꾸짖기는커녕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미련한 자식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성실히 노력하는 자세를 자랑하고 다녔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아버지의 격려와 애정이 있었길래 김득신 선생이 있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이 내용을 읽으며 나는 과연 우리 아들에게 그런 격려와 칭찬을 잘 해왔을까 하는 반성을 했다.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아들은 이미 성인이 되었지만 지금보다 더 열심히 격려하고 칭찬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증평에 꼭 한번 가보기를 간곡히 권한다.

	한가득 피어 있는 보강천의 백일홍이 초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한가득 피어 있는 보강천의 백일홍이 초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증평 추억의 보고, 보강천

김득신문학관에서 길을 건너면 증평의 자랑 ‘보강천 미루나무숲’이다. 보강천(寶崗川)은 서울로 치면 한강과도 같은 하천이다. 증평중심부를 동서로 흐르는 허리하천으로 길이가 13km다. 증평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애환과 추억이 되는, 말 그대로 증평을 상징하는 곳이다. 1970년대까지 이곳에서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고 물고기를 잡으며 뛰어 놀았다고 한다. 증평 지역부대 37사단 훈련병들은 고된 훈련을 씻는 ‘요단강다리’의 추억을 간직한 곳이라고 한다.


	보강천변에 조성된 미루나무숲에는 수십m 높이의 미루나무와 느티나무가 줄지어 있다. 주민들의 좋은 산책로 겸 운동공간이다.
보강천변에 조성된 미루나무숲에는 수십m 높이의 미루나무와 느티나무가 줄지어 있다. 주민들의 좋은 산책로 겸 운동공간이다.
보강천에는 1990년대부터 꽃과 나무를 조화롭게 가꾼 자연공원과 테니스장, 롤러스케이트장, 잔디축구장, 게이트볼장, 어린이 바이크공원 등이 조성되었다. 증평군민에게 보강천은 삶 그 자체다. 매일 이곳을 보며 시간이 날 때마다 산책을 한다. 천변에는 자전거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여유롭게 자전거를 즐기고, 간간이 국토종주를 하는 라이더들이 가을 햇빛에 검게 탄 팔과 다리를 자랑하며 힘차게 패달을 밟으며 지나가고 있다.

내가 보강천을 찾은 이유는 주민들이 어떤 표정, 어떤 분위기로 산책을 하고 있는지를 느껴보고 싶어서다. 가만히 보니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아주 여유롭다. 푯말에 붙어있는 ‘살고 싶은 곳, 살기 좋은 곳 증평’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떡이게 되고 마음속으로도 푸근하게 다가온다. 웃음 띤 얼굴로 벤치에 앉아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표정도 여유롭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표정으로 “어서 이곳으로 이사오세요. 정말 살기 좋아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엄마들은 콧노래를 부르며 천천히 걷는다. 공원에는 수십미터 높이의 미루나무와 느티나무가 몇 십 그루나 줄지어 있다. 미루나무 이파리는 강바람이 불때마다 쏴 하는 소리를 내며 늦더위에 맺힌 땀을 시원하게 씻어준다.

	전국 10대 자전거거점도시를 표방하는 증평자전거공원
전국 10대 자전거거점도시를 표방하는 증평자전거공원
증평자전거공원

이제 마지막 목적지인 증평자전거공원으로 향했다. 증평자전거공원은 자전거를 주제로 하는 이색테마공원으로 증평군의 거리와 건물들을 축소해 놓아 이색적이다. 테마공원이라고 해서 서울랜드나 에버랜드 같은 놀이공원을 생각하면 안 된다. 그저 조금 큰 주차장 크기다. 하지만 실망은 없다. 아기자기하게 만들어 놓은 건물과 길이 재미있다. 건물에는 증평군청도 있고 증평소방서도 있다. 아이들과 함께 와서 자전거 타는 사진을 찍으면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지자체에서 이런 발상을 했다는 게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 고장이 가장 살기 좋고 사랑스러운 곳이라는 주민들
의 자긍심과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다.
내 고장이 가장 살기 좋고 사랑스러운 곳이라는 주민들 의 자긍심과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다.
미니벨로를 타고 돌아보았다. 작은 미니벨로가 엄청 크게 느껴진다. 웃음이 계속 나온다. 공원 뒤편에는 실내 어린이자전거교육관도 있다. 내부에는 최초의 자전거를 비롯한 자전거의 종류와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어린이들이 직접 자전거를 타며 게임을 하고, 자전거의 원리와 변천사를 접해 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김득신 선생의 시 ‘제촌벽’(題村壁, 시골벽에 쓰다)과 보강천에 노니는 백로를 그린 ‘영백로’(詠白鷺) 시비
김득신 선생의 시 ‘제촌벽’(題村壁, 시골벽에 쓰다)과 보강천에 노니는 백로를 그린 ‘영백로’(詠白鷺) 시비
팬데믹 시대의 지혜

이제 하루 동안의 증평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향한다. 증평은 역사가 깊어 유적지가 많이 있거나 화려한 테마공원이 있는 곳은 아니다. 그렇다고 멋진 자연풍경으로 유명한 곳도 아니다. 그저 내륙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작고 아담한 소도시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하루를 보내며 뭔가 모를 뿌듯함으로 가득 찬다. 노력의 대명사 김득신 선생으로 시작해 천변을 오가는 주민들의 표정에서 여유로움과 알찬 삶을 느끼게 해준다.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 사람들 속에서 항상 떠들썩하고 정신없이 바쁜 삶을 살았다. 모든 게 그래야만 했고 그것밖에 없으니 달리 선택은 없었다. 그러다 팬데믹으로 인해 이제 그런 관계 속에서 벗어나 나만의 즐거움과 깨달음을 얻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런 변화의 시기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넋을 잃고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든가, 무리해서 옛날의 습관을 유지하거나 그리워하지 말자. 어서 이 사태가 끝나 과거처럼 화려했던 해외여행을 하는 꿈을 꾸며 기다리지도 말자.

	시내 공원에 있는 하늘레일바이크. 의외로 운동이 꽤 된
다. 물론 무료다.
시내 공원에 있는 하늘레일바이크. 의외로 운동이 꽤 된 다. 물론 무료다.

	증평자전거공원의 상징물로 인스타그램에 소개되어 해
외에서도 유명해졌다. 파란 가을 하늘과 분홍색 하트모
형이 잘 어울린다.
증평자전거공원의 상징물로 인스타그램에 소개되어 해 외에서도 유명해졌다. 파란 가을 하늘과 분홍색 하트모 형이 잘 어울린다.
이런 시기에는 증평 같은 소도시를 찾아보는 것을 적극 권한다. 주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고, 지자체가 어떻게 고장을 발전시키고 주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려고 애쓰는지 직접 느껴보자. 뜻하지 않은 곳에서 푸근함과 함께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번 증평여행은 이러한 관점에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세상에는 볼 것도 배울 것도 느낄 것도 무궁무진하다. 어떤 관점에서 접근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꼭 증평을 찾아 하루 종일 김득신 선생의 노력을 생각하고, 아버지의 인내와 자식에 대한 애정을 배워보기를 추천한다. 덤으로 좌구산천문대에 가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고, 스릴 넘치는 짚라인도 타보고, 아기자기한 자전거공원에도 가보자. 그러면 평생 기억에 남을 보람찬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증평에 가면 자전거로 모든 곳을 돌아볼 수 있다. 바로 그것이 나는 참 좋다.

	초미니 지방의 역발상 매력

글·사진
조기중(전 삼성전자 상무)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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