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1273m! 구름은 눈높이, 뭇 산은 발아래

바이크조선

입력 : 2021.10.25 10:00

거창 기백산(1331m) 업힐

함양과 거창 경계에 솟은 기백산(1331m)~금원산(1353m)은 산체가 크고 골이 깊어 거산의 풍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인근의 명산인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에 가려 관심이 덜하지만 웅장한 산세는 이들에 뒤지지 않는다. 함양 용추계곡에서 금원산~기백산 주능선을 오른다. 수직 고도차가 720m에 달하는 거창한 업힐은 장쾌한 조망으로 보답한다.

	기백산~금원산 주릉으로 오르는 도중 해발 1000m 지점에서 내려다 본 풍경. 임도 오른쪽 아래가 용추계곡, 우측 끝에 뾰족한 첨봉은 황석산(1190m)이다.
기백산~금원산 주릉으로 오르는 도중 해발 1000m 지점에서 내려다 본 풍경. 임도 오른쪽 아래가 용추계곡, 우측 끝에 뾰족한 첨봉은 황석산(1190m)이다.
지리산과 덕유산, 가야산 사이에서 특별히 우뚝한 기백산(1331m)에 마음을 뺏긴 것이 어언 수십 년인데, 이제야 그 품에 든다. 기백산으로 통칭하지만 겨우 3km 거리를 두고 능선을 잇대고 있는 금원산(1353m)이 더 높아 기백산~금원산으로 함께 부르기도 한다. 등산할 때는 두 산을 연결해서 오르는 코스가 기본이다. 높이만 본다면 기백산은 금원산의 한 봉우리인 셈이지만 함양이나 거창 들판에서 보면 기백산이 정상처럼 보여 존재감이 더 높다.

두 산을 잇는 주능선은 최저점이 해발 1220m나 될 정도로 높고 완만하다. 바로 여기, 최저점안부까지 임도가 나 있어 어렵지 않게 자전거로 오를 수 있다. eMTB로 가니 별로 힘들지 않을 것 같지만 고도차가 워낙 크고 경사가 심해 배터리를 아끼자면 PAS를 저단으로 두고 열심히 페달링을 해야 한다.

	힘든 업힐에 eMTB도 잠시 드러누워 휴식을 취한다. 뒤쪽으로 황석산의 첨봉이 오똑하다.
힘든 업힐에 eMTB도 잠시 드러누워 휴식을 취한다. 뒤쪽으로 황석산의 첨봉이 오똑하다.

	주릉 직전에서의 남쪽 조망. 왼쪽 황석산 뒤로 지리산 천왕봉~반야봉 간 주능선이 아득하고, 오른쪽 뒤편의 둔중한 산은 모노레일로 오를 수 있는 대봉산(1253m)이다.
주릉 직전에서의 남쪽 조망. 왼쪽 황석산 뒤로 지리산 천왕봉~반야봉 간 주능선이 아득하고, 오른쪽 뒤편의 둔중한 산은 모노레일로 오를 수 있는 대봉산(1253m)이다.
엄청난 수림과 수량

주능선의 서쪽, 함양 용추계곡이 진입로다. 동쪽은 금원산~기백산이, 서쪽은 남덕유에서 흘러내린 능선이 월봉산(1279m)을 거쳐 거망산(1184m)~황석산(1190m)으로 이어지는 장대한 산줄기가 마주하고 있다. 산이 높고 골이 깊으며 수림이 울창하니 계곡의 수량이 대단하다. 직전에 비가 내린 이유도 있지만 계곡 전체가 마치 폭포수인양 굉음을 울린다.
 
까마득히 솟은 기백산을 바라보며 용추계곡으로 들어서 용추사 근처에서 라이딩을 시작한다. 출발점은 해발 500m, 주능선 안부는 1220m이니 고도차 720m를 올라야 한다. 주능선길이 라이딩 할 만하다면 금원산까지 가는 것이 목표다.

용추자연휴양림 직전에서 ‘숲관찰로’ 방면 오른쪽 산길로 접어들면 바로 급경사 업힐이 시작된다. PAS를 2단으로 올리고 변속기는 1단으로 낮췄지만 페달링이 버거울 정도의 경사다. 급경사가 한동안 이어지는 대신 고도는 훌쩍 높아져 순식간에 750m를 넘고 있다. 이윽고 내리막이 나오더니 월봉사 입구 사거리에 닿는다.

월봉산과 금원산 사이의 수망령(895m)까지는 비교적 완만하고 노면도 좋아서 느긋하게 숲길을 즐긴다. 간혹 자동차도 다니는 듯 하고, 작은 경작지도 있다. 일부 등산객은 수망령에 주차를 하고 월봉산이나 금원산을 오르는데, 해발 900m에서 시작하니 시간과 체력을 크게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다.

	북쪽으로는 사진 중간의 월봉산(1279m)에서 남덕유산(1507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웅장하다.
북쪽으로는 사진 중간의 월봉산(1279m)에서 남덕유산(1507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웅장하다.
황석산 너머 저곳은, 지리산이다!

수망령 200m 전에 삼거리가 나오는데, 우회전해서 150m 가다 좌회전해야 주능선 방면이다. 삼거리가 겹쳐 헷갈리기 쉬워 길 찾기에 유의해야 한다.

고도 1000m를 넘어서면 조림지가 나오면서 조망이 트이기 시작한다. 첨봉이 하늘을 찌를 듯 아득하던 황석산이 저쪽으로 눈높이다. 이제 주능선도 얼마 남지 않았다.

황석산 높이를 넘어서면 뒤편으로 천왕봉(1915m)을 필두로 지리산 주릉이 펼쳐지고 이윽고 반야봉(1733m)까지 전모를 드러낸다. 거망산 너머로는 오전에 모노레일로 오른 대봉산(1253m)이 우뚝하다. 발밑으로 지그재그를 그리는 복잡한 임도는 임산물 관리용으로 출입금지 구역이다.

장쾌한 조망과 아찔한 고도감을 즐기며 올라가는 사이 어느새 주능선에 도착했다. 놀랍게도 초로의 남자가 SUV를 타고와 혼자 ‘차박’을 준비하고 있다. 그도 혼자 올라온 나를 놀라워한다. 외진 산속에서 만나는 사람은 반가움 반 경계심 반이다. 가벼운 인사와 대화로 서로의 경계심을 풀었다.

	해발 1220m의 주능선 안부. 팔각정 옆 계단은 기백산 방면, 반대편은 금원산 방면이다. 숲이 짙어 조망이 가렸다.
해발 1220m의 주능선 안부. 팔각정 옆 계단은 기백산 방면, 반대편은 금원산 방면이다. 숲이 짙어 조망이 가렸다.
그런데 아래에서 볼 때는 완만한 주능선이었지만 가까이 가보니 걷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좁고 거친 등산로여서 ‘끌바’도 난망이다. 그나마 금원산이 기백산보다 가까워 자전거를 남자에게 맡겨두고 등산로 상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역시 수풀이 우거지고 길이 좁아 끌바도 어렵다. 생각보다 등산객이 많이 다니지 않는 모양이다. 이런 길에서 23kg이나 되는 e원식스티를 ‘멜바’로 옮길 수는 없다.

어디 사방이 트인 바위가 있으면 조망이나 즐기자 싶어 살펴보는데, 안부에서 200m쯤 들어온 곳에 돌출바위가 있다. 잠시 숲을 헤치고 바위에 오르니 소나무 한 그루가 고고하게 서 있고 시야가 확 트인다. 고도계를 보니 1273m. 치악산(1288m) 높이다.

	안부 서쪽 200m 지점의 해발 1273m 돌출바위에서 본 기백산은 거의 눈높이다. 오른쪽으로 황석산과 지리산 천왕봉이 겹쳐보인다.
안부 서쪽 200m 지점의 해발 1273m 돌출바위에서 본 기백산은 거의 눈높이다. 오른쪽으로 황석산과 지리산 천왕봉이 겹쳐보인다.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 동시 전망대

기백산은 남부지방의 고봉인 지리산(1915m), 덕유산(1614m), 가야산(1433m) 세 산이 이루는 삼각형의 중심부에 자리해 한 번에 세 산을 볼 수 있다. 마침 오늘은 시계가 50km 이상 되는 화창한 날씨여서 세 거봉이 시야의 끝을 장식해 준다. 작은 쌍안경으로 이 아름답고 웅장하며 친근한 풍광을 즐긴다. 산줄기 사이에는 아담한 들판이 펼쳐지고, 산과 들판 끝에는 크고 작은 마을들이 아늑하다.

	하산길에 되돌아본 주능선. 오른쪽 옴폭한 곳이 안부, 가운데 나무 한 그루가 튀어나온 곳이 돌출바위 조망처(1273m)다.
하산길에 되돌아본 주능선. 오른쪽 옴폭한 곳이 안부, 가운데 나무 한 그루가 튀어나온 곳이 돌출바위 조망처(1273m)다.
해외에 가면 훨씬 더 높고 웅장한 산들이 많지만 히말라야나 알프스는 물론, 가까운 일본의 산들만 해도 너무 높고 가팔라 인간의 접근을 거부하며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지질학적 대상으로 느껴진다. 우리의 산처럼 마을과 들판 지척에서 마치 바람을 막아 보호하듯 포용하는 형세가 아니다. 고장마다, 마을마다 수호신 같은 진산(鎭山)을 둔 것도 산과의 인문적 친연성을 보여준다. 전통 마을은 대부분 산과 들판이 만나는 접점에 자리한다. 한국인은 산 아래서 태어나 자라고 평생을 보내다 죽어서는 산에 묻힌다. 우리에게 산은 정서적 원형이자 영혼의 고향이다. 내가 산을 오르고 이런 조망을 특히 좋아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높은 산에 오르면 한 발 물러나서 세상과 삶을 관조할 수 있는 거리감을 줘서 더욱 각별하다. 더구나 자전거로 어렵지 않게 올라설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금원산~월봉산 사이를 넘는 수망령(895m). 등산 거점이 되어 정자와 공터가 마련되어 있다.
금원산~월봉산 사이를 넘는 수망령(895m). 등산 거점이 되어 정자와 공터가 마련되어 있다.
저 길은 어디로

“어때요? 자전거로 갈 수 있겠어요?”

차박하는 남자가 산에서 내려서는 내게 물었다. ‘설마 저런 길을 자전거로 갈 리야 없겠지’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길이 나빠 도저히 안되겠습니다. 조망을 봤으니 이제 내려가야지요.”

나는 남자에게 인사를 하고 다운힐을 시작한다. 지금이야 이렇게 쾌청하고 아늑하지만 사방이 칠흑으로 바뀌는 심야는 완전한 단절과 고립으로 돌변할 텐데, 남자가 이 밤을 어떻게 보낼지 살짝 걱정된다. 그나마 텐트가 아니라 차에서 자니 나을 것이다.

앞뒤 트래블이 160㎜나 되는 올마운틴 풀서스펜션은 다운힐의 재미를 더해준다. 일부러 거친 노면과 단차를 찾게 만들 정도다. 과속단속 카메라는 없지만 애써 속도를 줄이려고 신경을 쓰면서 순식간에 고도를 낮춰 산을 내려선다.

수망령에 올라서니 임도 사거리가 복잡하다. 저 길은 어디로 이어지고 또 어떤 풍경을 보여줄까. 월봉산 북사면을 돌아 남덕유로 이어지는 임도가 호기심을 부추기지만 오늘은 바로 하산한다. 월봉산 임도를 돌아오면 15km 정도이니 코스 길이가 부족하다면 추가해도 좋겠다.

	용추자연휴양림 구내를 흘러내리는 계곡수. 수량이 엄청나다.
용추자연휴양림 구내를 흘러내리는 계곡수. 수량이 엄청나다.
용추자연휴양림에 들어서자 계곡 물소리가 굉장하다. 울창한 수림과 수량은 지리산의 큰 계곡 못지않다.

용추계곡을 뒤로 하고 산을 벗어나는 도중에도 계속 뒤를 돌아보게 된다. 어느새 황혼을 안고 까마득히 솟은 기백산이 “뭘 오다말고 가느냐”고 힐문하는 것 같다. 내 대답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곧 다시 올 거니까!”

	해발 1273m! 구름은 눈높이, 뭇 산은 발아래
Tip

용추사 일주문 앞 또는 용추사 구름다리 옆에 화장실이 딸린 무료 주차장이 있는데 이곳을 기점으로 잡는 것이 호젓하고 편하다. 금원산~기백산 안부(1220m)까지는 편도 9km이고 고도차는 720m나 되는 상당한 업힐이다. 안부는 숲에 가려 조망이 트이지 않으며 주능선에서의 라이딩이나 끌바는 무리다. 안부에서 금원산 방면으로 200m 가면 돌출바위가 있어 조망을 즐길 수 있다. 수망령~월봉산 임도~월성리~수망령 구간을 더하면 33km 코스가 된다. 용추계곡 초입에 식당과 편의점이 있다. 천궁산장(055-962-0082)의 닭백숙과 오리요리(4인 기준 각 5만5000원), 돌솥비빔밥(각 9000원) 추천. 편의점은 안의면소재지로 나가야 있다.
글·사진 김병훈(본지 발행인)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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