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찾아 왔더니… 그대로 남거나, 좋게 격변했거나

바이크조선

입력 : 2021.11.19 10:00

강원 원주

원주는 필자와 인연이 많다. 어린 시절 수련회로 여러 번 들렀고 업무나 여행으로도 자주 찾았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갔어도 제대로, 깊이 있게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치악산 둘레길 개통을 계기로 다시 찾은 원주는 변함 없는 산악미와 전원도시의 소박함, 추억의 흔적들이 정겹게 맞아주었다.

	추억 찾아 왔더니… 그대로 남거나, 좋게 격변했거나
얼마 전 뉴스에서 치악산 둘레길이 완전 개통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치악산은 정상인 비로봉(1,288m)까지 오르는 등산길이 상당히 험하다. 일반적인 등산코스는 구룡사에서 올라가는 그 유명한 사다리병창길인데 거리가 5.7km로 등산코스 중 상급이다. 특히 계속되는 계단길이 상당히 힘들다. 이 길로 오르는 데만 4시간이 걸린다. 여기 말고 입석대쪽에서 올라가는 코스가 있는데 최단거리라 2시간밖에 걸리지 않지만 경사도가 엄청나다. 지금은 계단과 데크길이 잘 설치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흙길과 바위길뿐이라 진짜 유격훈련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시내에서 10분 거리인데 이렇게 원시림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계곡이 있을 줄이야. 국형사 계곡과 원주의 상징물
시내에서 10분 거리인데 이렇게 원시림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계곡이 있을 줄이야. 국형사 계곡과 원주의 상징물
치악산은 길게 가든 짧게 가든 힘든 산임에는 틀림없다. 체력이 좋을 때 입석대에서 출발해 정상에 몇 번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정상에 가야한다는 일념 하에 경치를 즐길 여유도 없이 그냥 이를 악물고 앞만 보고 오르기만 했으니 등산을 마치고 나서도 늘 아쉬웠다. 당시 등산은 즐기는 게 아니라 거의 고지점령 전투였다. 그 좋은 산을 그렇게 여유 없이 갔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멋진 치악산을 만끽하면서 한 바퀴 걸을 수 있는 둘레길이 개통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매우 반가웠다. 이제는 정말 여유롭게 산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과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치악산둘레길은 치악산을 중심으로 강원도 3개 시군(원주,횡성,영월)의 옛길과 등산로, 마을길을 연결한다.
치악산둘레길은 치악산을 중심으로 강원도 3개 시군(원주,횡성,영월)의 옛길과 등산로, 마을길을 연결한다.
치악산 둘레길 사전답사 겸

치악산 둘레길은 치악산 아래 139.2km를 한 바퀴 도는 길로 모두 11개 코스로 짜여 있다. 험한 경사로가 아닌, 마을도 지나가는 편안한 수평길이다. 그래도 산길이다 보니 평지처럼 빠르게 걸을 수는 없을게다. 며칠이면 다 돌 수 있을까? 하루에 한 20km를 걸을 수 있을까? 그러면 꼬박 1주일이 걸리는 코스다. 둘레길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꼭 도전해보고 싶었다. 틈날 때마다 조금씩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완주해보고 싶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오늘은 둘레길 사전정찰도 할 겸 멋진 치악산을 품고 있는 건강도시이자 청정도시 원주를 찾았다. 원주는 상고시대 마한의 한 국가였다가 삼국시대에 백제가 마한을 통합하면서 백제에 속하게 되었다.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정책 때는 고구려에 속해 평원군이라고 불렸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여 전국에 9주5소경을 설치할 때는 북원소경이라고 하였다. 신라말기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날 때는 양길의 세력권이었다. 이후 고려 태조 때 지금의 이름인 원주로 개칭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강원도의 중심지로서 강원감영이 설치되었다. 강원도의 강은 강릉이고 원은 원주를 칭한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추억의 원주

원주는 이번이 첫걸음은 아니다. 1년에 2~3번은 올 정도로 자주 오는 곳이다. 집에서 별로 가깝지 않은데도 이상하게 가깝다고 느껴져서인지 자주 찾아오게 된다.

아들이 어릴 때는 치악산계곡으로 밀어를 잡으러 함께 다녔다. 봄철에 계곡에 가서 밀어를 잡아다가 어항에 넣고 한참을 키웠었다. 밀어는 망둑어과 물고기로 갯벌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망둑어와 비슷한 종류다. 얘는 다른 물고기처럼 어항속을 헤엄쳐 다니지 않고 모랫바닥을 기어 다닌다. 돌밑에 집을 짓는데 모습이 아주 귀엽다. 가끔 어항 너머로 눈이 마주치기도 한다. 그때는 나를 보고 있는 듯 눈을 대구륵대구륵 구르면서 쳐다보고 있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바라보고 있기도 한다. 다른 물고기보다 잡기도 쉬워 작은 뜰채 하나만 있어도 10마리는 금방 잡는다. 그렇게 잡다가 한번은 돌틈에서 큰 꽃뱀이 스르륵 나오는 바람에 소스라치게 놀랐던 기억도 난다.

그 후에도 주말이나 휴일이면 가족이 함께 와서 치악산의 좋은 공기를 마시고 원주중앙시장에 가서 맛난 시장음식도 먹고 신선한 야채를 사오기도 했다. 그렇게 늘 다니던 원주를 오늘 또 찾아왔다.

	2015년에 새로 지어 100년이 넘은 용소막성당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2015년에 새로 지어 100년이 넘은 용소막성당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자연과 어우러진 용소막성당

오늘 첫 번째 방문지는 용소막성당이다. 용소막성당은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강원도 산골지방으로 숨어들어가 몰래 모여 신앙생활을 계속하다 그곳이 원주공소로 지정되면서 처음에는 초가집형태로 지었던 건물이다. 그러다 1915년 중국인 기술자들을 불러 지금의 건물로 다시 지었다. 벽돌로 지은 고딕양식으로 아담하고 검소한 느낌을 준다. 아주 웅장하거나 멋진 조각물이 있어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그런 곳은 아니다. 하지만 먼 옛날부터 원래 이곳에 있었던 듯 주위의 산·들과 너무 잘 어우러져 있다.

	용소막성당 내부.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들어갈 수 없지만 아담하고 차분해 의자에 앉기만 해도 좋을 것 같다.
용소막성당 내부.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들어갈 수 없지만 아담하고 차분해 의자에 앉기만 해도 좋을 것 같다.

	치악산둘레길에는 총 22개의 스탬프가 설치되어 있고 다 모으면 완보증명서를 준다.
치악산둘레길에는 총 22개의 스탬프가 설치되어 있고 다 모으면 완보증명서를 준다.

	스탬프마다 이렇게 예쁜 그림들이 그려져 있어 모으기만 해도 즐거운 추억이 될 것 같다.
스탬프마다 이렇게 예쁜 그림들이 그려져 있어 모으기만 해도 즐거운 추억이 될 것 같다.
이렇게 역사가 깊은 성당을 찾아오면 초기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의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도 좌절하거나 굴하지 않고 자신의 믿음을 지킨 결의가 느껴진다. 이곳에는 구약성서를 한글로 번역한 선종완 신부의 동상과 기념관이 있다. 그리고 용소막성당은 치악산둘레길 7, 8번 코스의 분기점이다. 성당 아래 큰 주차장에는 치악산 스탬프러리가 있다. 이렇게 스탬프러리마다 놓여있는 예쁜 그림의 스탬프를 다 찍으면 모두 22개인데 다 받아오면 완보인증서를 준다.

	원주역사박물관은 원주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어 원주를 아는데 큰 도움이 된다.
원주역사박물관은 원주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어 원주를 아는데 큰 도움이 된다.
원주역사박물관과 최규하 대통령
 
용소막성당의 잔잔한 감동을 뒤로하고 원주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지금까지 수십년 간 원주에 놀러도 오고 업무로도 왔지만 원주가 어떤 고장인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이번에는 원주를 제대로 알고 싶어 처음으로 원주역사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은 2000년 11월에 개관했으니 벌써 20년이나 되었다. 입장료는 무료다. 이곳에는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의 석기·토기와 삼국시대 초기의 고분출토품, 원주의 여러 옛절터에서 수집된 불상 등 불교문화재들과 조상들의 삶을 알 수 있는 생업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원주에는 큰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군도제’라는 군행사를 연 사실도 알았다. 옛날 사진을 보니 군인들이 군무를 하는 모습이 있어 흥미로웠다.

	원주역사박물관의 최규하 대통령 전시실. 원주 출신의 제10대 최규하 대통령의 유품과 관용차량을 전시하고 있다. 당시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감회가 남다르다.
원주역사박물관의 최규하 대통령 전시실. 원주 출신의 제10대 최규하 대통령의 유품과 관용차량을 전시하고 있다. 당시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감회가 남다르다.
박물관 실내·외에는 봉산동 석불좌상, 일산동 오층석탑과 석불좌상을 비롯한 석조물들이 상당히 많이 전시되어 있어 이 지역이 예전에 찬란한 불교문화를 가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별전시실에는 원주 출신 최규하 대통령의 전용차량과 소박한 삶을 보여주는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양복정장을 한 신사분이 다가와 “다 보셨나요? 궁금하시거나 더 알고 싶으신 것은 없으신가요?”하고 친절하게 물어봤다. 박물관 책임자나 관계자 같다. 나는 “특별히 궁금한 점은 없고요, 잘 보았습니다”하고 인사했다.

일본에서 살았을 때 어떤 도시에 여행을 가면 먼저 그 도시의 역사박물관을 찾아갔다. 박물관에 가면 도시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비전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고나서 도시를 둘러보면 느끼는 게 훨씬 많고 깊어진다. 오늘도 그런 의미에서 원주박물관을 찾은 것이다.

	중앙시장 칼국수. 식당의 정식이름은 ‘3개 김치만두’로 만두칼국수가 대표 메뉴다. 튀김만두도 별미
중앙시장 칼국수. 식당의 정식이름은 ‘3개 김치만두’로 만두칼국수가 대표 메뉴다. 튀김만두도 별미
원주중앙시장의 그 칼국수집

점심때가 되었다. 원주에 오면 늘 가는 식당이 있다. 원주중앙시장 안에 있는 칼국수집이다. 원주중앙시장은 도심에 있는 재래시장으로 점포수가 300개를 훨씬 넘는 아주 큰 규모다. 내가 이 시장에 오는 첫째 목적은 칼국수를 먹기 위해서다. 원주는 한우고기가 유명하고 추어탕의 대명사인 원주추어탕도 유명하다. 그런데 올 때마다 꼭 이집에 와서 칼국수를 먹는다. 다른 곳에는 아예 들리지 않고 오직 칼국수만 먹고는 바로 떠난 적도 있다. 이집에는 맛난 칼국수와 특이한 튀김만두가 있다. 그리고 ‘인간극장’의 사연에 나온 아버지와 아들, 식당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흥미로워 자주 간다.

2010년인가 이 식당의 사연이 인간극장에 ‘아버지의 만두’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그때 그 방송을 보고 처음 왔을 때는 식당이 아주 작아서 주방을 지나 방에 들어가 앉아서 먹었다. 당시 칼국수 가격이 2천원인가 3천원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여러 개의 식탁이 있는 좋은 시설로 발전했고 다른 곳에 분점도 하나 냈다고 한다. 가격은 6천원으로 2배 이상 올랐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아들이 지금은 훌륭한 청년이 되어 식당을 맡아서 운영하고 있다.

칼국수 맛은 그때보다 월등히 좋아졌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 칼국수였는데 지금은 장인의 경지까지 간 것 같다. 특히 면발이 다른 곳에 비해 상당히 부드러우면서 쫄깃하다. 우동 맛집의 우동 비슷하다. 게다가 튀김만두는 예술이다. 어디에도 이런 맛은 없을 것 같다. 이곳에 오면 튀김만두는 꼭 맛볼 것을 추천한다. 이렇게 맛이 좋아진 것은 식당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되고, 많이 찾아오니 맛에 더 정성을 기울이는 선순환의 시너지효과가 나면서 발전하게 된 것 같다. 이렇게 어떤 식당이 끊임없이 좋은 모습으로 발전하는 것을 보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올 때마다 10년 전 방영된 인간극장의 속편을 내가 계속 만들어가는 그런 기분이 든다.

오늘은 만두칼국수와 튀김만두를 시켜서 맛나게 먹었다. 차림표를 보니 칼국수는 천원만 더 내면 곱배기를 준다. 보통을 시켜도 양이 많은데 곱배기를 시키는 사람도 있는가보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꽤 있다고 한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행구수변공원은 기후테마공원으로 조성되었으며, 넓이가 총 8만6000㎡이다. 안에는 기후교육센터, 홍보관도 있고 여름에는 치악산의 차가운 계곡물을 끌어들여 만든 물놀이장도 있다.
행구수변공원은 기후테마공원으로 조성되었으며, 넓이가 총 8만6000㎡이다. 안에는 기후교육센터, 홍보관도 있고 여름에는 치악산의 차가운 계곡물을 끌어들여 만든 물놀이장도 있다.
적악산에서 치악산이 된 사연

행구동 수변공원은 행구기후테마공원이라고도 하며, 2014년에 개장되었고 총 넓이는 8만8600㎡이다. 공원 안에는 기후변화대응교육연구센터, 기후홍보관, 수변데크, 분수, 물놀이 시설, 파크 골프장 등이 있다. 공원에 서면 바로 뒤쪽으로 우람한 치악산 줄기가 마치 병풍처럼 길게 펼쳐져 있다. 걸어가면 10분도 안 걸릴 것 같다. 공원에는 잘 관리된 넓은 잔디밭과 아담한 규모의 연못이 시민들에게 좋은 쉼터를 제공한다. 원주에는 치악산과 백운산 등 좋은 산과 숲 그리고 계곡이 많지만 이런 도심 공원을 찾아 잠시의 여유를 즐기는 것도 아주 좋을 것 같다. 잔디밭에 놓인 나무벤치에 기대 연못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마음도 차분해진다. 이렇게 좋은 공원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럽다. 서울은 그나마 조금 있는 공원도 없애고 아파트를 지으려고 하는데 말이다.

	수변공원 자전거발전기. 에너지 체험기구인 ‘자가발전 운동기구’로 핸드폰 충전도 가능하다.
수변공원 자전거발전기. 에너지 체험기구인 ‘자가발전 운동기구’로 핸드폰 충전도 가능하다.
이제 드디어 치악산 둘레길이 시작되는 국형사로 향한다. 참고로 치악산은 한자로 꿩 치(雉)자를 쓴다. 치악산은 예전에는 적악산(赤岳山)이었다고 한다. 이름이 바뀐 데는 전설이 있다. 많은 전설이 그렇듯 이야기는 과거시험 이야기로 시작된다. 어느 날 과거를 보러가던 젊은이가 뱀에게 잡아먹히려던 꿩을 구해주었고(까치라고도 한다) 밤길에 길을 잃어 산속 어떤 집에 묵는다. 자다가 밤에 답답해 깨보니 주인여자가 뱀으로 변해 몸을 칭칭 감고 죽이려고 했다. 낮에 젊은이가 까치를 구해주느라 죽인 뱀의 아내였던 것이다. 살려달라고 하니 뱀은 “만약 종소리가 나면 살려주겠다”고 했다. 그때 기적적으로 종소리가 났고 젊은이는 살게 되었다. 아침이 되어 종이 있는 곳에 가보니 꿩이 종에 머리를 부딪쳐 종소리를 내고는 죽어 있었다. 이게 바로 은혜 갚은 꿩 이야기다. 오래 전에는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도 실렸는데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여간에 그때부터 적악산을 치악산으로 바꿔 불렀고 젊은이가 이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절을 세웠는데 그 절이 상원사라고 한다. 물론 젊은이는 과거에 급제해 명재상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 태조3년(1395년)에 설치된 강원감영을 재현한 곳이다. 감영에는 관찰사가 최고책임자로 정무를 본다.
조선 태조3년(1395년)에 설치된 강원감영을 재현한 곳이다. 감영에는 관찰사가 최고책임자로 정무를 본다.
치악산 둘레길의 시·종점, 국형사

국형사까지는 차로 갈 수 있다. 국형사는 월정사의 말사로 신라 경순왕 때 무착대사가 창건해 당시는 고문암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아담한 규모의 절이다. 1층에는 절에서 운영하는 수페라는 카페가 있어 숲속에서 운치 있게 맛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산속에 커피라? 생각치도 못한 호사다.


	국형사는 신라 경순왕 때 무착대사가 창건한 전통사찰이다. 조선 태조가 이곳에 동악단을 쌓아 제향을 올렸다고 한다.
국형사는 신라 경순왕 때 무착대사가 창건한 전통사찰이다. 조선 태조가 이곳에 동악단을 쌓아 제향을 올렸다고 한다.

	국형사에서 운영하는 숲속 카페 ‘수페’. 숲속의 맑은 공기와 함께 마시는 커피가 일품이다.
국형사에서 운영하는 숲속 카페 ‘수페’. 숲속의 맑은 공기와 함께 마시는 커피가 일품이다.
국형사 주차장 왼쪽에는 둘레길 1코스가 시작되는 입구가 있고 왼쪽 계곡에는 11코스가 끝나는 출구가 있다. 이곳이 치악산 둘레길의 처음과 마지막인 것이다. 국형사에는 사실 이것을 보러 왔다. 일종의 사전답사다.

	치악산 둘레길 1코스 꽃밭머리길. 국형사에서 시작되는 1코스는 11km다. 성문사, 관음사를 지나 참숯까지 간다.
치악산 둘레길 1코스 꽃밭머리길. 국형사에서 시작되는 1코스는 11km다. 성문사, 관음사를 지나 참숯까지 간다.


	국형사는 치악산 둘레길의 시작점이자 종점이다. 이곳에 주차를 하고 둘레길 투어를 시작한다. 시내버스도 이곳까지 들어온다.
국형사는 치악산 둘레길의 시작점이자 종점이다. 이곳에 주차를 하고 둘레길 투어를 시작한다. 시내버스도 이곳까지 들어온다.

	11코스 한가터길. 반곡역에서 시작해 국형사까지 7.6km다. 계곡과 숲속을 걷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명상이 될 것 같다.
11코스 한가터길. 반곡역에서 시작해 국형사까지 7.6km다. 계곡과 숲속을 걷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명상이 될 것 같다.
1코스를 따라 올라가보았다. 처음은 ‘무장애길’이라고 해서 계단이 없는 나무데크길로 이루어져 있다. 데크길을 따라가다 보면 울창한 소나무숲길이 나온다. 그곳부터는 무장애길과 그냥 숲길로 갈라진다. 이제 겨우 몇백미터를 왔을 뿐인데도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계속 큰 호흡을 해본다. 이 맑은 공기를 넣고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생각만 한다. 이렇게 시작된 코스를 다 돌고 11번 코스 출구로 나올 때는 가슴이 뚫릴 뿐 아니라 깨달음까지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치악산둘레길 무장애길은 계단이 없고 평탄해 몸이 약하거나 불편한 사람도 숲속의 좋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할 수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치악산둘레길 무장애길은 계단이 없고 평탄해 몸이 약하거나 불편한 사람도 숲속의 좋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할 수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치악산 숲길. 둘레길을 위해 새로 낸 길이다. 울창한 소나무숲에 들어서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린다.
치악산 숲길. 둘레길을 위해 새로 낸 길이다. 울창한 소나무숲에 들어서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린다.
다시 돌아 나와 11코스를 거꾸로 가보았다. 11코스는 국형사 계곡길이다. 시내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계곡은 마치 원시림 같은 분위기다. 바람에 쓰러진 큰 나무가 계곡을 가로질러 외나무다리같이 걸쳐져 있다. 이끼가 멋지게 낀 돌틈 사이로 계곡물이 여러 개의 작은 폭포를 이루며 흘러내리고 있다. 이 풍경을 기억에 담아두려고 사진을 계속 찍었다. 아무리 찍어도 그 느낌이 그대로 나지 않는다. 너무나도 멋진 풍경이다.

계곡에는 그냥 서있기만 해도 온몸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것 같다. 여름날이라면 물속에 그대로 뛰어들고 싶다. 울창한 숲과 시원한 계곡 공기가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가을이 깊어져 가서 그런지 여름 내내 괴롭히던 모기도 없다. 계곡가 바위에 앉아 한참을 쉬었다. 흘러내리는 계곡물을 하루 종일 바라만보고 있어도 좋을 것 같다.

	간현에서 어린 시절 추억을 더듬으며 그때 그 길을 미니벨로로 달려본다.
간현에서 어린 시절 추억을 더듬으며 그때 그 길을 미니벨로로 달려본다.
40여년 전 추억 따라 간현으로

마지막 목적지인 간현역폐역으로 향한다. 간현역은 중앙선 무궁화호가 운행하던 역이었다. 중앙선이 복선전철화하면서 2011년에 폐역이 되었다. 예전의 기차길이 전철로 바뀌면서 선로가 바뀌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폐역들이 생기고 있다.

간현은 중학생 때부터 여름방학이면 교회에서 여름수련회로 오던 곳이다. 학생회에서 여름수련회를 꼭 이곳 간현으로 왔다. 청량리에서 친구, 선후배들과 함께 한껏 들뜬 마음으로 기차에 타서 기타 치며 노래 부르고 깔깔거리고 웃다 보면 어느새 간현역에 도착했다. 간현역에서 수련회장소까지는 시골길을 한참 걸어갔다. 수련회장소에 짐을 풀고는 꿈같은 3박4일을 보내고 왔다. 마지막 날에는 다들 모여서 캠프파이어도 했다. 행사가 끝나고 밤에 숙소까지 걸어갈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반딧불을 보았고 산속에 날아다니는 도깨비불이라는 것도 보았다. 그때의 광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때가 1970년대였으니 이제 40년도 훨씬 넘었다. 40년이라는 시간이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훌쩍 지나갔다. 그 후 처음으로 간현역을 찾아가는 것이다.

	간현역폐역. 중앙선이 다니던 역으로 1940년부터 2011년까지 운영하다 중앙선 전철화로 폐역이 되었다.
간현역폐역. 중앙선이 다니던 역으로 1940년부터 2011년까지 운영하다 중앙선 전철화로 폐역이 되었다.
당시의 역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해서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갔다. 도착해보니 간현역사가 있었다. 옛날 그때의 건물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아무렴 어떠냐. 그 시절 추억을 떠올리는 마중물 역할을 훌륭하게 해주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간현역에서 판대역까지 풍경열차를 타고 갔다가 올 때
는 본인이 직접 운전하는 레일바이크를 타고 온다.
간현역에서 판대역까지 풍경열차를 타고 갔다가 올 때 는 본인이 직접 운전하는 레일바이크를 타고 온다.


	심산천을 지나는 간현철교는 옛모습 그대로다.
심산천을 지나는 간현철교는 옛모습 그대로다.
그때 떠들며 걷던 시골길은 지금은 잘 포장된 도로가 되었다. 자전거를 꺼내 옛날 기억을 더듬어 페달을 밟아 그 길을 따라가 가보았다. 길은 바뀌었지만 그때 헤엄치고 물장난하던 시냇물은 그대로다.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니 간현관광지가 나오고 다리를 건너 조금 더 가다 문득 머리를 들어보니 아득히 높은 곳에 유명한 소금산 출렁다리가 보인다. 시간이 늦어 그런지 출렁다리에 관광객은 없었다. 온 김에 가볼까 했는데 이미 마감했다고 한다. 공연장에서는 마침 무슨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음악과 함께 시냇물에 설치된 대형분수에서 높은 물줄기를 쏘아 올린다. 드럼으로 두두두두… 하다가 심벌즈를 꽝 치면 물줄기가 높게 올라간다. 높이가 20m는 되는 것 같다. 물줄기는 물보라를 일으키고 물보라는 바로 멋진 무지개를 만든다. 그 광경을 계속 보고 있었다. 다음번 것만 보고 가야지. 그러다가 그 다음 그 다음 하다가 “이제 잠시 후 야간 공연 때 멋진 조명과 함께 계속하겠습니다.” 하는 안내방송이 나올 때까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요즘은 몰입을 너무 잘한다. 밤에는 형형색색의 조명을 해서 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주위에서는 벌써 야간 공연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길이 200m 높이 100m의 소금산출렁다리와 분수. 옆
에는 올해 12월에 완공되는 잔도공사가 한창이다. 잔
도에는 유리바닥과 유리다리가 포함된다고 한다.
길이 200m 높이 100m의 소금산출렁다리와 분수. 옆 에는 올해 12월에 완공되는 잔도공사가 한창이다. 잔 도에는 유리바닥과 유리다리가 포함된다고 한다.
옛 추억과 미래의 추억이 공존하는 곳

이제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향한다. 오늘 원주 여행은 오래전 추억들을 다시 꺼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해준 가슴 훈훈한 여행이었다. 아주아주 오래전 중고등학생 때 여름이면 간현에 놀러와 오래 남을 추억을 쌓았고, 대학교 때는 친구들과 치악산 줄기 등산을 했다. 어른이 되어서는 아들과 함께 밀어를 잡아 어항에 넣고 키우기도 했다. 회사 다닐 때 전국을 책임질 때는 원주지점 직원들을 데리고 입석대 코스로 해서 비로봉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직원들이 “내려올 곳을 뭐 하러 올라가는 거야” 하고 투덜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정상까지 끌고 올라갔었다. 그 당시 후배들을 만나면 지금도 그때 이야기들을 한다. 비록 띄엄띄엄 세월을 건너뛰기는 했지만 원주는 오랫동안 나와 함께 즐겁고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곳이다.

오늘 옛 추억을 안고 원주를 찾았다. 그리고 또 치악산둘레길 걷기라는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수백km에 달하는 대규모 둘레길은 아니어도 몇 년이 지나고 나면 또 하나의 큰 추억이 될 시작인 것이다.

원주는 나에게 있어서는 과거의 추억과 현재 그리고 더 재미있을 것 같은 미래가 공존하는 그런 곳이다. 늘 오고 또 오고 그리고 또 오고 싶은 곳이다.

	추억 찾아 왔더니… 그대로 남거나, 좋게 격변했거나

글·사진
조기중(전 삼성전자 상무)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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