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시간이 응고된 古風 거리

바이크조선

입력 : 2021.12.15 10:00

서울 북촌

서울이 조선 600년 왕도였다는 흔적은 북촌 언저리에서 특히 선명하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사대부들이 터 잡았던 이 마을은 한옥이 밀집해 왕도의 역사를 애잔하게 간직하고 있다. 이제는 관광지로 각광받으며 사람들로 북적대는 고풍스런 거리는 학창시절의 추억이 아련히 어린 곳이기도 하다.

	북촌한옥마을은 경복궁과 창덕궁. 종료 사이 기회동과 삼청도에 자리 잡고 있다. 주민들의 거주지로서 방문시간이 오전 10시에서 오후 5시까지로 정해져있다.
북촌한옥마을은 경복궁과 창덕궁. 종료 사이 기회동과 삼청도에 자리 잡고 있다. 주민들의 거주지로서 방문시간이 오전 10시에서 오후 5시까지로 정해져있다.
서울 북촌(北村). 서울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서울의 화려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곳. 과거 한 시점에 시간의 흐름이 멈춰 있는 듯한 곳. 골목길을 걷다보면 언젠가 이곳에 살았던 것 같은 기시감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익숙한 곳이다.

북촌은 지금의 계동, 가회동, 삼청동 지역으로 청계천의 북쪽에 있다고 해서 북촌이라고 불린다. 조선시대 궁궐이던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권문세가 양반들이 큰집을 짓고 모여 살았다. 청계천 남쪽 회현동 방면 남산골은 남촌이라고 했고, 경복궁 서쪽 지금의 통인동, 옥인동, 사직동 부근은 서촌이라고 했다.

북촌은 1920년대까지는 큰 변화가 없었는데 1930년대 서울의 행정구역이 확장되며 집을 지을 땅이 부족해지자 당시 주택회사들이 북촌의 대형 필지와 임야를 매입하여, 그 자리에 중소 규모의 한옥들을 집단적으로 지었다. 지금의 한옥주거지들은 모두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그 북촌이 얼마 전부터 새로운 개념의 관광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한옥들이 밀집한 동네 골목길을 걷기도 하고 한옥을 개조한 멋진 분위기의 식당이나 카페에 앉아 맛있는 커피와 맛난 음식을 먹는 것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북촌이 이렇게 관광지화 된 것은 불과 20여년밖에 안 된다. 그전에는 그냥 서울 속에 있는 조용한 주거지였다. 4대문 안에 있기는 하지만 개발이나 재테크는 먼 이야기였고 조용하면서도 인정이 있어 살기가 좋아 한번 들어오면 떠날 수 없이 대대로 사는 그런 동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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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가득 메우던 교복 무리

내가 북촌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40년이 훌쩍 넘어 이곳에 있던 고등학교에 다니면서부터였다. 당시 서울지역에는 고등학교 평준화가 시행되어 컴퓨터 추첨으로 학교를 배정받았다. 연합고사라는 전국적인 시험을 치고 나서 중학교 3학년이 끝날 무렵 학교를 배정받는다. 반의 학생들을 다 모아놓고 담임 선생님이 한사람마다 이름을 부르면서 학교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번호표를 하나씩 줬다. 그리고 그날 저녁때가 되면 방송에서 번호와 학교를 하나씩 발표한다. 자기 실력에 맞게 진학을 하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운이었던 것이다.

당시에 고등학교가 평준화 되었다고는 하지만 오랫동안 명문이었던 학교들은 교풍이나 인식 등으로 여전히 명망이 높아 누구나 명문고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 번호표를 받고 저녁때가 되어 방송에서 발표를 듣는데 “휘문!”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바로 북촌인 계동에 있는 휘문고였다. 지금은 강남구 대치동으로 이사를 갔지만 당시에는 지금의 현대건설 자리에 학교가 있었다. 서울에서 휘문이라고 하면 상당히 좋은 학교였다. 역사도 오래되었고 소위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에도 많이 들어가는 학교였다. 그렇게 휘문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북촌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당시는 지하철도 없었고 버스편도 많지 않았다. 그냥 광화문이나 종로3가에서 내려 학교까지 걸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꽤 먼 길인데 몇 년 동안 불만도 없이 참 잘도 걸어 다녔다. 부근에 남학교는 휘문, 중앙, 대동상고가 있었고, 여학교는 창덕, 풍문, 덕성여고가 있었다. 거기에 중학교들까지 함께 있었으니 그 동네는 완전히 학교 밀집지역이었다. 안 그래도 내 또래는 베이비붐 세대라서 학생들이 정말 많아 그 등하교 시간대면 정말 길을 꽉 채우고 걸을 정도였다. 요즘 사람들이 보면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매일 가두시위를 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내 고향 서울에서 가장 잊히지 않는 곳

그렇게 몇 년 동안 열심히 다니던 북촌이지만 졸업하고는 거의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알려진 관광지가 되고 나서도 다 아는 곳이라는 생각에 멀리 있는 다른 곳만 찾았지 이곳에 올 생각은 전혀 안했다. 이제 여유를 되찾아 오래전 인연을 맺었던 북촌에 옛추억을 더듬으며 다시 가게 되었다.

2년 전 지인의 소개로 미니벨로를 장만하고 약속대로 여행기를 쓰기 시작한 게 벌써 2년이나 되었다. 그동안 미니벨로를 타고 서울근교부터 강원도, 전라도, 충청도 등 여러 곳을 많이 돌아다녔다. 그렇게 다니던 미니벨로 여행이 이번을 마지막으로 당분간 연재를 중단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여행기의 마지막을 어디로 하면 좋을까 많이 고민했다. 그러다 아주 오래전 추억들이 떠올랐다.

내 고향 서울에서도 가장 기억나는 곳. 잊혀지지 않는 강한 추억들을 지니고 있지만 오랫동안 발걸음을 하지 않았던 북촌을 마지막 여행지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야기거리도 많고 볼 곳도 많은 곳. 북촌이라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지금도 눈에 선한 길들을 다시 가본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한편으로는 두근거렸다. 그곳에 가면 그 당시 친구들을 큰길이나 골목길에서 당장이라도 마주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운현궁은 그대로인데 희중당은 어디로?

북촌여행은 매일 등교할 때처럼 종로3가에서 시작했다. 도심길을 미니벨로를 타고 가니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식당이나 카페에서는 접어서 들고 들어가면 딱 좋다.

낙원동 악기상가를 지나 운현궁에 들렸다. 넓은 마당과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가 어서 오라는 듯 반겨준다. 자전거는 입구에 세워두고 걸어서 하나하나 돌아보았다. 운현궁은 조선말기 흥선대원군이 살며 정치를 했던 곳이고 고종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일반 상류주택이었던 이 건물은 고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영역이 크게 넓혀지고 건물들도 더 들어섰다. 조선시대 천문을 맡아보던 관청인 서운관(書雲觀) 앞의 고개(峴)라는 뜻으로 ‘운현(雲峴)’이라 불렸다고 한다. 운현궁은 원래 현재의 덕성여자대학교부터 일본문화원, 중앙문화센터, 운현초등학교 일대까지 포함된 넓은 지역이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규모가 크게 줄어들었다. 당시에는 창덕궁과 거의 연결되어 있었다.

운현궁을 나오면 지하철 3호선 안국역이 나오고 길을 건너면 내가 다녔던 휘문고등학교 자리다. 지금 가는 이 길을 아침저녁으로 다녔다. 1978년에 학교가 강남으로 이사를 가면서 지금은 현대건설 사옥이 들어서있다. 당시 학교의 상징이던 희중당 건물은 이사와 함께 사라졌다. 한국최초의 3층 건물이었는데 보존이나 이전이라는 개념 없이 그냥 없앤 것이다. 희중당은 3층의 빨간 벽돌건물이었는데 아주 오래된 담쟁이로 덮여있었다. 여름이면 건물 전체가 담쟁이 잎으로 파란 숲 그 자체였고 가을이면 빨간 담쟁이 단풍이 들었다. 그때쯤이면 늘 한두 명의 화가가 이젤을 놓고 열심히 희중당을 그리고 있던 게 생각난다. 그때의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지금은 당시 건물이 모두 사라졌지만 교내에 있던 관상감은 사적지로 지정되어 아직도 남아있다.

안국역 4거리에서 조금 올라가면 헌법재판소가 나온다. 이곳은 옛날 창덕여고 자리다. 그때 이쪽 길로는 거의 다니지 않았다. 창덕여고 학생들은 혼자서도 우리학교 앞길을 잘도 걸어 다녔는데 남학생들은 혼자는 물론이고 여럿이도 여학교 앞길을 이상하게 다니지 못했다. 남녀공학이 없던 시기라 쑥스러워서 그랬나보다.

헌법재판소 안에는 천연기념물 제8호인 백송이 있다. 정문안내소에 백송을 보러왔다고 이야기하면 특별한 절차 없이 들여보내준다. 마침 오늘 어떤 법관의 탄핵심판이 있어서 주차장에는 방송국과 언론사 차들이 가득하고 사람들도 많았다. 자전거를 탄 채로 많은 사람들 옆을 지나 백송으로 향했다.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미니벨로를 타고 씩씩하게 주차장을 가로질러 가는 나를 아주 신기하게 바라본다. 슬쩍 뒤를 돌아봤는데 계속 쳐다보고 있다. 백송은 조그만 산책로 위에 있다. 백송은 참 특이하다. 파란 이파리만 제외하고는 모든 게 하얗다. 누가 일부러 하얀색을 칠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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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 유유자적

헌법재판소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면 북촌한옥마을이 나온다. 먼저 북촌문화센터에 들렀다. 북촌의 역사와 가치 그리고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리기 위해 2002년 10월에 개관하여 운영되고 있다. 북촌 내에서는 ‘계동마님댁’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제 자전거를 끌고 한옥마을로 들어선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많다. 이곳에 오는 이유는 한옥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것인가를 직접 보고 한옥에 대한 지식을 얻기보다는 그냥 골목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여유로움을 느끼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지금도 주민들이 거주하는 주택지라서 걷다가 동네주민을 만나면 웃으며 눈인사라도 하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걷다가 골목길에서 한옥을 잘 개조한 멋진 분위기의 카페라도 만나면 그냥 쓱 들어가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쉬었다 가면 되는 것이다. 나도 자전거를 끌며 골목길을 걸어 다니다 아담한 카페를 만나 그냥 쑥 들어갔다. 차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 이제 오랜 아파트 생활을 접고 이런 한옥집에서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북촌한옥마을을 나서 삼청동길로 가면 정독도서관이 나온다. 학교 다닐 때는 정독도서관을 참 많이도 갔다. 그때 이곳 구내식당에서는 점심식사가 100원인가 했다. 토요일에는 오전수업만 했기에 수업이 끝나면 얼른 이곳에 와서 100원짜리 점심을 먹고는 바로 책을 빌려 보았다. 그때 읽었던 책들이 지금도 기억나는데 데미안,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죄와벌 등 주로 고전들이었다. 그런 책들은 사려고하면 책값이 비쌌고 빌려주는 곳도 없어 이렇게 큰 도서관에나 와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주말이면 학교공부보다는 그런 책들을 많이 읽었는데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유지하는 독서 습관은 그때 들였던 것 같다.

하얀색 외관을 가진 정독도서관은 40년이 지났는데 옛모습 그대로다. 정문에서 도서관 건물로 가는 길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단풍이 들고 낙엽이 떨어지고 있다. 그때는 줄기도 가는 아주 어린 나무였던 것 같은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 구불구불하게 굽은 모습으로 점잖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나무들을 보니 함께 세월을 살아온 오랜 친구를 만난듯해서 아주 반가웠다.

커피 한 잔과 바꾼 하룻밤

정독도서관 앞에는 빨간 벽돌로 지은 서울교육박물관이 있다. 한국 교육의 역사를 보존하고, 서울 교육과 관련된 사료를 수집, 보존하기 위해 건립된 박물관으로 1995년에 문을 열었다. 안에는 한국의 교육제도 및 과정, 내용, 기관, 활동 등에 관한 유물과 사진자료를 시대별로 전시하고 있다.

가회동에서 삼청동으로 넘어가는 이 고갯길을 홍현이라고 하는데 이곳에 북촌관광안내소가 있다. 이곳에 오면 한번 들러보는 것도 좋다.

홍현을 넘어 삼청동쪽으로 가면 왼쪽으로 서울현대미술관이 있다. 이곳도 관람객이 끊이지 않는다. 정식명칭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인데 민현준 건축가 설계로 2013년 11월 개관했다. 서울관 부지는 조선시대 소격서, 종친부, 규장각, 사간원이 있던 자리로 6·25 후에는 국군수도통합병원, 기무사 등이 자리했던 역사적 유래를 가진 곳이다. 오른쪽으로는 분위기 좋은 카페와 예쁜 소품을 파는 가게가 많아 걸음을 멈추게 한다.

오늘은 큰길가에 있는 블루보틀에 들어갔다. 블루보틀은 커피가 맛나기로 유명한 곳인데 드립커피가 진짜 맛있다. 나는 커피를 참 좋아해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 행복감마저 느낀다. 직장생활할 때는 커피를 하루에 5잔이나 마셨다. 그러고도 밤에 누우면 바로 코를 골며 잤는데 은퇴하고 나니 카페인에 아주 취약해져서 커피를 마신 날은 잠을 거의 못 잔다. 그래서 요즘은 늘 디카페인 커피를 마신다. 하지만 디카페인 커피는 아무래도 맛이 카페인이 듬뿍 들어있는 진한 커피보다 못하다.

오늘은 정말 큰맘을 먹고 그냥 진한 커피를 마셨다.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넣었다. 입안 그득히 풍기는 진한 향, 부드럽게 목을 넘어가는 진액의 느낌, 따뜻한 커피가 목을 훑으며 식도를 지나 뱃속까지 내려가는 게 느껴진다. 이게 얼마만인가. 행복감마저 들어 한 모금 한 모금 음미하면서 다 마셨다. 그런데 오늘 밤이 조금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밤은 맛난 커피 덕분에 말짱한 정신으로 옛날 추억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밤을 꼬박 새웠다. 맛난 커피 한잔과 하룻밤의 잠을 교환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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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앞길 단상

오늘은 처음으로 청와대앞길을 가보았다. 경복궁 둘레길을 따라가면 왼쪽은 경복궁 돌담길이고 오른쪽으로 삼청동 마을을 지나면 청와대가 나온다. 서울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청와대앞길을 가보는 것은 처음이다. 청와대앞길이 개방되고 나서도 이상하게 오게 되지를 않았다. 이 길은 1993년부터 개방하기는 했지만 밤에는 못 가는 등 통행에 제한을 했다. 그러다 2017년부터 완전개방을 했지만 막상 그때부터는 별로 가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오늘 처음 가는 것이다.

언덕길을 올라가니 드디어 청와대가 보였다. 청와대 춘추관이 나오고 이어 정문이다. 북악산 아래 자리 잡은 청와대를 실물로 보는 것은 처음이다. 사진을 찍으려다 잠시 움칫했다. 촬영하다 누가 뭐라고 하면 어쩌지. 근처에 있는 경호실 직원인지 사복경찰인지 검은 코트를 입은 젊은이에게 “여기 사진을 찍어도 되나요?” 하고 물어보았다. “그럼요! 되고말고요. 제가 한 장 찍어드릴까요? 자전거 타신 모습이 멋있는데 찍어 드릴게요.” 뜻밖의 대답에 나는 “아, 아닙니다. 고맙습니다.”하며 사양하고 건물과 풍경 사진만 많이 찍었다. 나중에 돌아와서는 아까 찍어달라고 할 걸 그랬나, 잠시 후회했다.

청와대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저곳에 살았던 대통령들은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사명감으로 대통령이 되려고 한 것일까, 아니면 개인적인 명예나 이익을 위해서 그랬던 것일까? 그도 아니면 자기만의 철학을 실험해 보려고 그랬던 걸까? 저곳을 거쳐 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왜 모든 국민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만의 문제였을까? 아니면 그들을 그 자리에 앉힌 국민들의 수준과 자질의 부족 때문일까? 우리는 언제나 모든 국민이 진정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대통령을 저 앞에서 만날 수 있을까?

자전거로 경복궁 한 바퀴

경복궁 둘레길에는 여러 개의 큰문들이 있다. 4대문과 2소문인데 제일 앞쪽에 있는 게 정문인 광화문이고 삼청동쪽에 있는 건춘문, 뒤쪽에 있는 신무문과 영추문이다. 그리고 작은 2개의 문인 광무문과 계무문이 있다. 경복궁에는 여러 번 왔지만 이제야 광화문 말고도 다른 문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으니 진짜 배움의 길은 끝이 없다.

경북궁 둘레길은 모두 2.7km로 자전거길이 잘 만들어져 있다. 자전거전용도로는 통행방법이 정해져 있어 일방통행길이다. 내자동·효자동쪽에서 와야 궁벽을 따라 제대로 돌아볼 수 있고, 거꾸로 삼청동쪽에서 오면 건너편 길로 가든지 아니면 울퉁불퉁한 인도의 돌길을 따라가야 한다. 거리에는 높이가 20m는 훨씬 넘는 오래된 가로수들이 가을빛으로 노랗게 물들어 있다. 서울에는 덕수궁 돌담길도 유명한데 경복궁 둘레길을 돌아보니 덕수궁 돌담길보다 훨씬 좋은 것 같다. 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아 호젓하고 공기도 더 맑다. 게다가 자전거로 한 바퀴 돌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경복궁 둘레길과 청와대앞길을 돌아보고 삼청동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만추의 짧은 해가 막 넘어가려고 한다. 자전거를 타거나 언덕길을 만나면 내려서 밀고 다녔더니 꽤 운동이 되었다. 휴대폰에 있는 만보계를 보니 벌써 2만보를 넘어섰다.

삼청동에는 오래되고 맛있는 음식점들이 많다. 그중에 오늘은 맛집으로 유명한 삼청동수제비집을 찾았다. 주말이면 손님이 많아 대기표를 받고도 한참을 기다리는 곳인데 평일이다 보니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대표메뉴인 수제비를 시켰다.

수제비는 밀가루로 만들다 보니 식재료가 부족할 때 먹던 서민 음식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밀가루가 흔치않은 고려 때부터 먹던 상당히 귀한 음식이었다고 한다. 수제비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곳에 온 김에 한번 먹어보기로 했다. 이집은 수제비를 오랫동안 만들다보니 달인의 경지에 들어선 것 같다. 수제비가 아주 얇아 빛이 통과할 정도다. 어떻게 이렇게 얇게 만들 수 있을까? 밀가루 반죽은 늘리다보면 곧잘 찢어지던데… 그 부분이 노하우인 모양이다. 한입 먹어보니 식감이 아주 좋다. 너무 부드럽다. 마치 우동이나 칼국수를 넓게 펴놓은 것 같다. 한 숫갈 두 숫갈 먹다보니 어느새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국물 맛도 일품이다. 감자와 야채가 녹아 들어갔는지 수프처럼 걸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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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 위안 받은 여정의 종점
 
맛난 수제비를 먹고 나오니 어느새 밖에는 어둠이 깔렸고 가로등에도 불이 들어왔다. 삼청동길 벤치에 앉아 오늘 하루를 정리해본다.

오늘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포근해지는 추억의 장소 북촌을 찾아왔다. 매일처럼 등하교 하던 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보았다. 그때도 이 미니벨로가 있었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났다. 어릴 때도 호기심과 모험심이 많아 늘 가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찾아 걷고는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때 북촌한옥마을 골목길들도 많이 걸어본 것 같다. 혼자 가기도 했고 친구들과 함께 가기도 했다. 그때의 느낌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인 것 같다. 골목길의 냄새도 그대로인 것 같다. 저녁때면 집집마다 나오던 밥 짓는 연기가 지금도 나올 것 같다. 심지어 그때에 비해 나이는 많이 먹었지만 내가 느끼는 지금의 내 모습은 그때의 모습인 것 같다.

이렇게 걷다보니 잊혀졌던 기억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친구들과 떠들며 걸어가던 가회동길, 정독도서관의 추억… 참으로 정겹던 시기였다. 서울에 그렇게 오래 살았으면서도 청와대 앞길을 처음 가보았고 경복궁 둘레길도 처음이다. 오늘 오래전 추억의 한 장을 넘겨보았고 새로운 추억의 한 장을 만들어 보았다.

미니벨로를 타고 시작한 자전거여행은 이렇게 한 바퀴를 돌아와 이곳에서 끝을 맺는다. 글을 쓴 경험도 없으면서 얼떨결에 연재를 시작했다. 집앞 안양천길을 따라 백운호수까지 다녀온 첫 글이 전국을 한 바퀴 돌아 이제 어릴 적 깊은 추억을 가진 북촌에서 끝을 맺는다. 그동안 졸작을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신 독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기회가 되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뵙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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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조기중(전 삼성전자 상무)
제공 자전거생활
출처
바이크조선
발행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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